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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마 26:36-4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추석 명절을 잘 보내셨습니까?
서울을 갔다 왔는데, 오고 가는 길에, 들판에 누렇게 익어가는 벼를 보고, 크고 이름답게 떠오른 달을 바라보면서, 풍성한 가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보았습니다.
강력한 태풍이 왔다가 지나갔습니다. 아직도 그 상처의 아픔이 치유되지 못한 이들이 많이 있는데, 하루빨리 그 모든 일들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여하튼 그 태풍은 지나갔습니다. 지나간 그 태풍은 다시는 오지 않습니다.
태풍이 지나간 것처럼, 코로나 19도 지나갔으면 좋겠는데, 우리 곁에 있는 감기나 독감처럼, 코로나도 그렇게 함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은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만, 해결되지 않고, 더욱더 꼬여만 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기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경 안에는 우리 인생의 문제에 대한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볼수록, 우리는 평안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 37:5절을 보면,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라고 말씀합니다.
시편 55:22절을 보면,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고 말씀합니다.
잠언 16:3절을 보면,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5:7절을 보면,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심지어, 원수까지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12:19절을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때, 우리는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릴 적, 명절 아침이 되면, 일찍 일어나,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과 함께, 3대 할아버지, 할머니에서부터, 돌아가신 조상들의 묘를 찾아, 성묘를 하고, 친가와 외가를 한 바퀴 돌면서, 인사하는 것이 기본이었습니다. 마지막 외할아버지 집을 찾아갈 때는 버스 타고 갔지만, 하루 종일 걸어다녔습니다.
명절 때가 되면, 왜 그렇게 친가, 외가를 방문했을까요? “우리는 하나, 우리는 한 가족”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같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 중에서도, 우리는 하나요, 한 가족이라고 하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매주일,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 드리는 것입니까?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한 가족임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매주일, 우리는 동일한 사도신경을 고백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엡 2:19-22)라고 선포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의 보혈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염려, 걱정, 근심, 행사, 계획 등 모든 것을 맡길 수가 있습니다. 수고와 무거운 짐도 맡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마 7:7-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불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마 7:9-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장 좋은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가장 좋은 것을 구하는 방법이 바로 기도입니다.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엡 3:20)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할 때,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채워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하나님은 풍성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전에, 명절을 맞아, 시골 집에 갈 때, 빈손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것 저것, 들고 갔습니다. 그리고, 돌아올 때에도, 이것 저것 가득 들고 돌아왔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하는 우리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미처 구하지 못한 것이나, 다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가득 채워 주십니다. 풍성하게 안겨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형편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고자 하는지도 다 알고 계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디에서나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욘 2:1-4)
물고기 뱃 속 같은 그런 상황에서 기도해 보셨습니까?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 안에서 기도했습니다.(행 16장)
야곱은 얍복 나루터에서 밤새 혼자, 기도했습니다.
기도는 아무 곳에서나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기도하고, 가정에서도 기도하고, 우리가 머무는 그 어떤 곳이라도, 기도의 자리가 될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 기도할 수 있을까 보다는 어느 순간에도 기도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수많은 기도의 방법을 다 알고 있다 할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수많은 기도의 방법을 알고 있는 것보다는 단 일분이라도,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지금은 기도할 때입니다. 어디에서다,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바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있다고 한다면, 금상첨화이겠지만, 그런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고기 뱃속이 어디 기도할 수 있는 장소입니까? 캄캄하고, 매맞고 고통스러워하는 죄수들이 가득한 감옥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장소는 아닐 것입니다.
여러분! 어디에서나 기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단 일초라 할지라도,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 나라의 왕이 신하인 느헤미야의 얼굴을 보고,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심이 있느냐”(느 2:2)라고 묻는다고 하는 것,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어찌 왕 앞에서 수심에 잠긴 얼굴로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잘못하면, 죽음입니다.
그 순간, 느헤미야는 크게 두려워하여,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내 조상들의 묘실이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폐하고 성문이 불탔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심이 없사오리이까”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왕은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느헤미야는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느 2:4)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오랜 시간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왕의 물음에 빨리 대답을 해야 합니다. 늦게 대답하는 것도 죄가 되고, 죽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길게 기도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닙니다. 어쩌면, 기도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됩니다. 기도하는 것조차 들키지 않을 만큼 순간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순간의 기도로,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대답할 수 있었고,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으로 가, 무너진 성벽을 쌓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무엇을 위하여 기도해야 할까요?
첫째, 우리는 우리 자신과 가정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야베스의 기도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대상 4:10)
야베스는 자기 자신을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저는 산에 올라가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제가 자란 순천의 봉화산에 올라가면, 멀리 순천만이 보이고, 광양과 여수 쪽의 바다가 보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짓말 보태서, 그쪽으로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텅빈 논과 밭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을 아래에는 순천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저 기차를 타면, 서울로 올라갈 수 있는데, 저 논과 밭에 좋은 집들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하는 그런 생각들을 가졌는데, 그 생각대로, 저는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고, 그 논과 밭에는 신도시가 개발되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는 순천국가 정원이 들어왔고, 그 너머에는 순천만 습지로 개발되었습니다. 순천국가 정원 안에 자리잡고 있는 언덕들이 있을 것입니다. 초등학교가 바로 그 근처에 있기에, 철마다, 학교에서, 소풍을 가서 놀던 언덕들입니다. 지금은 너무나도 많이 변해버렸기에, 한번은 그쪽으로 가다가, 길을 못 찾아 헤매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릴 적, 생각하면서, 땅이라도 사 두었더라면, 큰 부자가 되었을텐데, 지금 와서 보니, 생각만 하고 실천에 옮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기도 합니다.
야베스는 하나님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야베스가 구한 모든 것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존귀한 삶을 살게 되어, 훗날에는 야베스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 이름을 후손들이 야베스라고 바꾸어 불렀습니다.
아직 보지 못했지만, 지난 금요일에 “히든싱어”에, ‘송가인 편’을 방송했다고 합니다. 시청률이 평소 시청률보다 2배나 뛰었다고 합니다. 전남 진도에 가면, 송가인이 자란 동네 이름을 송가인 마을이라고 부르고, 송가인 생가도 있고, 송가인 공원도 조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하면, 우리 자녀들 가운데, 그런 자녀가 있게 되리라 기대합니다.
“나는 안돼”라고 자책하지 말고, 큰 기대와 바램을 가지고, 여러분 자신과 자녀들을 위하여, 더 열심히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한 나라의 왕이었던 다윗도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삼하 7:29)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기도했더니, 영원히 복을 받는 집이 되었습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 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히스기야는 비록 왕이었지만, 나라가 위급할 때, 하나님을 찾아 기도했습니다.
여호사밧도, 나라가 위급할 때,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대하 20:12)
오직 주만 바라보고, 기도함으로, 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왕의 술관원이었던 느헤미야는 망한 이스라엘을 생각하고, 무너진 예루살렘을 생각하면서, 항상 기도했습니다.
포로로 먼저 끌려왔던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살피던 중,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주저 앉아,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느 1:1-4)
그렇게 기도하던 느헤미야는 왕의 허락을 받고, 예루살렘에 돌아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을 수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를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안정과 경제적인 성장과 공정한 부의 분배와 소외된 자들이 없는 사회를 위하여,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서, 원망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쏟아내기보다는, 그 일들을 생각하면서,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있을 때, 그 문제를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그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문제가 많은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기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풍성한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께 기도하오니,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필요한 것들을 아시는 주님, 그때그때마다, 가장 필요할 때에 주시옵소서.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고,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옵소서.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바로 서게 하여 주옵소서.
모든 사람들이 더불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