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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나타난 일곱 가지 신비..성경대로 믿는 사람들 1992년 12월
<서론>
고린도전서 4:1-2을 보면, 이 구절에서 바울은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청지기는 책임지고 맡아야 할 가치있는 것들이 주어진 사람이고, 그리고 그의 주인을 위하여 그것을 책임지고 맡아야 한다고 기대되어진다.
엘리에셀이 아브라함 집의 “청지기”이었을 때(창15:1), 아브라함이 소유했던 모든 것들은 그의 관할 아래 있었다. 청지기에게는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 요구되어지는데, 왜냐하면 그에게 속하지 않은, 맡겨진 재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의 청지기직에 관해 이야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돈을 주셨고, 그러면 당신은 그 돈을 책임지고 맡아서 주님이 당신에게 생산하게 하신대로 생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4장의 이 구절에서는 우리는 돈의 청지기직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 그 구절을 보고, 그가 “하나님의 신비들”에 관해 말하는 것을 주목하라. 그는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고 말했다. 그는 몇 가지 “신비들”을 맡은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 바로 당신이 읽고 있는 구절에서 바울은 그에게 주어진 가르치는 것의 청지기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 청지기는 그것에 대해 신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에게는 주어진 맡아야 할 몇 가지 하나님의 신비가 있고, 그는 그것을 지키는데 신실해야 한다. 당신은 그 신비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 신비는 천국의 신비가 아니다. - 그것은 다른 세트이다. 이 신비들은 바울 서신에 있다. - 그는 그리스도의 몸에 관련된 신비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에 사람이 그 신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면, 어떻게 이 세상에서 그 신비를 지키는데 신실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더한 것은, 사람들은 그 신비가 무엇인지 관심조차 없다. 그들은 자기의 은행구좌와 사회적 안정, 연금 또는 보험금, 자기 아이들과 집, 그리고 자기 차와 인플레이션에 대해서만 관심이 있다.
Ι. 하나님이 육신으로 나타나심
디모데전서 3:16을 보자. 이것은 “경건의 신비”라고 불리는 첫번째 신비이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가장 훌륭한 구절인데, 한글 킹 제임스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 외에는 이렇게 분명한 구절을 가진 성경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만일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나 킹 제임스 성경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 구절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이상하지 않은가? 왜 새로 나오는 모든 성경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하는가? 몇몇의 구령자, 전천년주의자, 독립교회파, 근본주의자, 은사주의자들이 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모독한 성경을 추천하는 것을 상상해 보라! “최초의 헬라어 원문”은 그들에게만 유용할 뿐이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보았는가? 만약에 한글 킹 제임스 성경이나 킹 제임스 성경이 아니라면, 그 성경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는’(‘who’,‘he who’,‘it’)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등등. 그러나 한글 킹 제임스 성경과 킹 제임스 성경이라면,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God was manifest in the flesh)』라고 말한다.
그 구절은 신약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가장 훌륭한 구절이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지각이 있고, 그가 영적이라면, 그는 그 구절을 변개시키거나 변개된 그 구절을 갖고 있는 성경을 추천하지 못할 것이다. 그 구절을 공격한 성경을 추천한다면 하나님께 헌신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만약에 어떤 사람이 그 부분을 제외한 다른 모든 면에서 헌신되어 있다면, 그 부분은 그 사람과 마귀가 완전한 합의를 본 부분이 되는 것이다.
이제, 디모데전서 3:16이 무엇을 말하는지 알겠는가? 그 구절은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아기로 나타나셨다는 뜻이다. 왜 그것이 “신비”로 불리는지 알겠는가? 마리아는 예수님의 옷을 갈아입히고, “그것을 입에 넣지 말아라, 예수야, 입에 넣지 말라구”라고 하였다. 여러분은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났었습니까?”라고 말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그는 다른 아기들과 같았다. 『예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의 총애 속에서 자라가시더라』(눅2:52). 우리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단지 인간으로만 믿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믿는다.
그것을 이해하겠는가? 주님이 사람들을 혼란하게 하려고 하신다면, 주님은 무언가 커다란 것을 필요로 하지 않으셨다. 고린도전서 1:25에서는 『이는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더 지혜롭고, 하나님의 연약함이 사람들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니라』고 한다. 하나님의 어리석음 -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고전1:21)고 말한다. 바울은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리석은 자들이지만』(고전4:10)이라고 말했고, 『만일 너희 가운데 누구라도 이 세상에서 현명하다고 생각하거든 어리석은 자가 되라. 그러면 현명한 자가 되리라』(고전3:18)고 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 중에 어리석은 자들을 만들려고 무엇을 하셨는지 아는가? 하나님께서는 단지 한 여인으로 하여금 남자의 간섭없이 아기를 갖게 하셨다. 사람들은 그 이후에 그것을 모방하려고 노력해 왔다. 이 어리석은 자들은 인공수정과 무성생식, 그리고 이것 저것을 이식하려고 하는 어리석은 일을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네 가지 다른 방법으로 사람을 만드셨다. 하나님은 사람을 흙만 가지고 만드실 수도 있다. 하나님은 여자없이 남자로부터 여자를 만드실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여자로부터 사람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 또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함께 사용하여 사람을 만들어 내실 수 있다. 이제 하나님께서 네 가지 다른 방법을 사용하셔서 사람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주님이 사람들 중에서 어리석은 자를 만들기 위해 그 일을 하셨다. 하나님이 마루 위를 기어 다니셨다고? “아이야, 밥 먹을 시간이다.” 엉터리 같지 않은가? 하나님께서 남자의 간섭없이 여자가 아이를 갖게 하셨을 때, 이 세상의 지혜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으셨다.
자, 성경은 『지혜있는 자가 어디 있느냐? 학자가 어디 있느냐? 이 세상의 변론가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어리석게 만드신 것이 아니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세상이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께서 복음 전파의 어리석음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느니라』(고전1:20-21)고 말한다. 인간이 하나님을 이겨내기 위해 무엇을 했는지 아는가? 그들은 지혜를 사용하였다. 세상으로부터 지혜를 사용해서 그것을 얻어냈는가?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하나님을 이겨내기 위해 인간이 어떻게 했는지 아는가? 그들의 교육이다. 그러나 『그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기에 』.
자, 그것을 설명할 수 있든 없든 간에 신비는 그러한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이 할 일은 그것을 믿는 것이다. 이것이 첫번째 신비이다. 만약에 모든 설교자들이 그 신비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신실했다면, 강단에는 한 사람의 자유주의 신학자도 서지 못하리라는 것을 깨닫겠는가?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어떤 사람들이 신실하지 못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위탁을 받은 것을 지키지 못했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고 네가 많은 증인들 가운데서 내게 들은 것들을 신실한 사람들에게 맡기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딤후2:2)고 말했다. 만약에 모든 설교자들이 그 첫번째 신비의 책임에 신실했다면, 한 사람의 자유주의 신학자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그 첫번째 신비는 “동정녀 탄생”이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BB
'사후에 영생을 얻는 길은 즉 하나님처럼 되는 길은 죽은 한 유대인의 피를 신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만큼, 이보다 더 어리석은 말은 없다. 이보다 더 엉터리같은 말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 여인이 한 남자와 관계를 가진 적도 없는데 아기를 갖믐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갈4:4)
모든 교육받은 철학자들과 지적인 과학자들에 따르면, 그런 당신은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여겨지겠는가?
위의 글은 이송오 목사님이 92년에 작성하신 글입니다. 놀랍고 두렵고 떨릴 뿐입니다.
이송오 목사님으로 인해서 이 나라는 교리 논쟁이 없어졌습니다. 또한 참된 복음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글킹제임스성경이 참된 진리의 성경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이블 빌리버가 되는 것입니다.
일요일 성경공부에서 목사의 자격을 공부하다가 자격조건에 그리스도의 신비를 맡은 자라는 조건을 배웠습니다.
그래서 일곱 신비를 의미있게 찾아 보았습니다.
일곱 신비란 무엇인가?
성경은 신비주의가 아닌 “신비들”을 가르치고 있다. 성경의 신비들은 신비주의처럼 감추어지고 비밀스런 어떤 것이 아니라 명백하게 계시된 것들로서, 이성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믿고” 증거해야 할 성경의 핵심 진리들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며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로 여기게 하라. 청지기에게 요청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신실한 사람으로 발견되는 것이라』(고전 4:1,2). 이 『하나님의 신비들』은 “일곱 신비들”로 불리는데, 이 신비들을 설명할 줄 알아야 『그리스도의 일꾼』이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이 일꾼은 『하나님의 신비들을 맡은 청지기』이므로, “자신에게 맡겨진” 일곱 신비들을 오류 없이 정확히 가르칠 때 그의 소임을 다하게 된다.
첫 번째 신비는 디모데전서 3:16의 “경건의 신비”이다. 『경건의 신비는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 성령으로 의롭게 되셨으며, 천사들에게 보이셨고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믿은 바 되셨고 영광 가운데로 들려 올라가셨음이라.』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신약의 위대한 구절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하나님께서는 육신으로 나타나셨고』라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이 신비가 『논쟁의 여지없이 위대하도다.』라고 선언하기 때문이다. “경건”(godliness)이란 “하나님처럼 생각하고, 하나님처럼 말하고, 하나님처럼 반응하는 것”을 말하는데, 그 일을 온전하게 행하실 수 있는 “하나님 자신”이 육신으로 나타나셔서 아기부터 성인까지 인간으로 사시다가 하늘로 올라가셨기에 “경건의 신비”인 것이다. 이 신비는 논쟁거리가 아니라 다만 믿어야 할 진리인데,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다는 신비를 부인하는 자는 다름 아닌 적그리스도이다(요일 4:3; 2:22).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오신 분이시기에 『영원하신 아버지』(사 9:6)로도 불리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요일 2:22)의 이 신비적인 관계를 읽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게 된다.
두 번째 신비는 골로새서 1:27의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이방인들 가운데서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알리고자 하셨으니 이 신비는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라.』 이것은 죄로 인해 죽어 가는 우리의 육신 안에 거룩하신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신비이다. 하나님께서 더러운 죄의 몸 안에 사신다는 것은 결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다. 죄와 반역, 고집, 정욕, 탐심이 가득한 옛 사람이 있음에도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서 그 옛 사람과 동거하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영광의 소망』을 소유한 것이며, 이 죄의 몸이 죽고 썩어도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로 인해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고 누릴 수 있는 영광을 갖게 되었다. 『이 신비의 영광의 풍요함』은 실로 대단한 것이다.
세 번째 신비는 에베소서 5:31,32의 “그리스도와 그분의 교회”이다. 『이런 까닭에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그 둘이서 한 몸이 될지니라. 이것은 위대한 신비라.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그 교회에 관하여 말하노라.』 남녀가 부부로 결합했을 때 그 “두 사람”은 “한 몸”이 된다. 바울은 이 신비를 그리스도와 그분의 신부인 교회에 적용하고 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한 몸 됨을 『위대한 신비』라고 말씀하는 것은, “그리스도 한 분”과 “수억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한 몸”이 되는 진리를 인간의 머리로는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죄인은 거듭남과 동시에 성령님에 의해 그리스도의 몸 안으로 넣어지는데(고전 12:13), 그런 그리스도인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그리스도를 『한 남편』으로, 그리스도인들을 『한 순결한 처녀』로 제시할 뿐 아니라(고후 11:2), 그 한 남편과 한 순결한 처녀의 결합을 “한 몸”이라고까지 말씀하고 있으니, 도무지 설명할 방법이 없는 신비 중의 신비인 것이다.
네 번째 신비는 로마서 11:25,26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이방인들의 충만함이 차기까지는 이스라엘의 일부가 완고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믿지 않는 유대인들은 “복음의 원수”임에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한다(롬 11:28). 종국에는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구원받게 될 것이라는 이 진리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영원히 결별하지 않으셨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1,900여 년 동안이나 나라도 없이 전 세계를 유랑하면서, 특히 히틀러에 의해 많은 유대인이 살해당했지만 1948년에 극적으로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왔다. 이제 곧 『야곱의 고난의 때』(렘 30:7)라 불리는 대환란을 통과하면서 그 수는 극소수로 줄어들 터인데, 그 “남은 자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해 내셔서 주님께로 회심시키실 것이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고 가장 천대받던 민족이 민족들의 머리가 되어 세상을 통치하게 될 것이다. “중동의 천덕꾸러기”가 세상을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다섯 번째 신비는 요한계시록 17:5의 “큰 바빌론의 신비”이다. 『그녀의 이마에 한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신비라, 큰 바빌론이라, 땅의 창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고 하였더라.』 큰 바빌론이라 일컬어지는 “창녀”는 요한계시록 17장에서 『땅의 왕들을 다스리는 큰 도성』(18절)이라 불리며, 『자주색과 주홍색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장식하고 손에는 금잔을...』(4절)으로 상징되는 “성모”교회, 곧 로마카톨릭이다. 지리적으로는 “일곱 산 위에 앉은” 것으로 묘사되므로(9절) 로마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이다. 그들은 “암흑시대”를 통해 입증되었듯이 『그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순교자들의 피에 취하였더라.』(6절)라는 말씀과 일치한다. 이 신비는 여지없이 로마카톨릭에 관한 것이다. 성경은 이 창녀가 탄 주홍빛 짐승을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는 존재로 묘사하는데(3절), 이 짐승은(적그리스도) 요한계시록 12:3의 “일곱 머리와 열 뿔을 가진 커다란 붉은 용”(사탄)과 관련이 있다. 계시록의 창녀는 님롯의 “바빌론 종교”가 로마 제국으로 숨어들어 로마카톨릭으로 신비롭게 부활한 존재다. 그렇기에 『큰 바빌론』이라 불리는 것이며, 또한 그 창녀의 이름을 『신비』라고 지은 것이다.
여섯 번째 신비는 데살로니가후서 2:7의 “불법의 신비”로서, 위의 큰 바빌론의 신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이 신비는 『큰 바빌론』의 수장으로 등장할 적그리스도에 관한 신비이기 때문이다. 『불법의 신비가 이미 활동하고 있나니 현재는 막는 자가 있어 막을 것이나 그가 그 길에서 옮겨질 때까지만 그리하리라.』 적그리스도는 그의 불법을 인류 역사의 흐름 속에 뿌려 놓았다가 마침내 그 실체를 드러낼 것이다. 그는 신비의 인물이며, 성경에서 예수 그리스도 다음으로 많이 논의되는 인물이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육신으로 나타나셨듯이, 사탄도 이를 흉내 내어 적그리스도로 육화될 것이다. 이 역시 신비인 것이다.
마지막 일곱 번째 신비는 고린도전서 15:51,52의 “휴거의 신비”이다. 『보라 너희에게 한 가지 신비를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오히려 우리가 모두 변화될 것이니 마지막 나팔 소리에 눈깜짝하는 순간에 그러하리라.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하는 몸으로 일으켜지며 우리도 변화되리라.』 지상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이 어느 한날에 단 한 사람도 남지 않고 이곳 지상에서 사라져 버릴 신비이다. 이들뿐 아니라 그들보다 앞서서 주 안에서 잠든 성도들도 썩지 않는 몸을 입고 무덤에서 일어나 공중으로 올라갈 것이다. 지상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은 채 동일한 몸을 입고서 뒤따라 올라갈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몸을 입은 그들은 죽지 않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게 된다(살전 4:14-17). 이것은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해당되는바, 사망도, 음부도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줄 수 없는(고전 15:54,55) 신비인 것이다.
성경의 신비들은 감춰지지 않았다. 모두 계시된 것들이며, 다만 믿음이 요구될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초월적 존재이시지만 자신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위의 일곱 신비들은 인류 역사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성경의 핵심 진리들이다.
출처 : 2018년 3월호 성경대로믿는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