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이어 일요일도 황사가 덮친다기에 시립도서관으로 갔다. 2층 자료실에서 신착도서를 펼쳐보았다. 집 컴퓨터로는 동아리 카페에 글 올리기가 되지 않아 디지털자료실에 들려 간밤 쓴 글을 올려두었다. 점심때가 되어 창밖을 보니 황사는 어느 정도 물러갔지 싶었다. 봄 하늘이 모처럼 파랬다. 나는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불모산동으로 갔다. 종점에서 계곡 따라 올랐다.
불모산동도 십여 년 전의 불모산동이 아니었다. 그때는 담쟁이넝쿨이 붙어 자라는 돌담 골목이 있던 자연마을이었다. 마당귀 높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텃밭에 부추나 시금치도 자랐다. 이제는 저수지 둑 아래 자연마을은 모두 헐리고 택지로 조성 중이었다. 이제는 둑 안에만 몇 채 집들이 있었다. 예전 계단식 논은 온데간데없고 숯가마 찜질방이 들어서 여러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고향마을 같던 불모산동은 그새 많이 바뀌었다. 내 마음이 허전함은 다른데도 있다. 불모산동에서 전기연구원 뒤 산자락으로 가면 텃밭과 같은 곳이 있었다. 길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숲에 들어 방아풀을 땄고 머위 순이 자랐다. 간간이 두릅도 마련했다. 여름이면 산딸기 송이가 지천으로 달렸다. 고향까지 갈 일 없이 잠깐 틈에 들리면 고향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나의 안식처였다.
이런 불모산동이었는데 근래 제2창원터널 개설공사로 사정이 달라졌다. 터널굴착을 위한 진입로 공사가 시작되면서 나의 텃밭과 같은 산자락이 뭉개져 버렸다. 아침저녁 출퇴근길 창원터널을 지나가면서 차창 밖 풍경을 바라보게 된다. 불모산동 저수지 건너편 산자락은 중장비가 밀어버려 숲은 사라지고 벌건 토사가 드러나고 말았다. 그간 내가 관리했던 텃밭은 사라지고 말았다.
텃밭이 사라졌다 해서 실망하거나 낙담할 일 아니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고 새로운 텃밭을 찾아 나서면 되었다. 터널입구에서 용지봉 골짝으로 오르면 계곡이 깊고 인적이 드물다. 불모산동에서 잃어버린 텃밭을 새로 찾아 나섰다. 나는 몇 해 전 용지봉 계곡에서 석간수 따라 오르다가 머위를 발견했더랬다. 보드랍고 파릇한 머위 새순이었다. 머위 잎을 한 잎 두 잎 땄다.
곁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이었다. 그때 내보다 앞서 누군가 머위 잎을 따 간 흔적이 보였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굴까 궁금했다. 내가 머리를 들어 위쪽을 바라보니 사람이 아니라 잿빛 털의 짐승이었다. 겨울을 난 노루는 봄이 되자 새싹을 찾아 계곡 아래로 내려왔다가 머위를 찾았다. 나는 몸을 낮추고 노루를 관찰했다. 노루는 머위 잎을 따 먹느라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산속 머위 잎의 진정한 임자는 노루라 생각했다. 불법침입자요 나그네에 지나지 않은 나였다. 나는 노루가 놀라지 않도록 한참 동안 엎드려 있었다. 얼마 지나 노루는 머위 잎을 먹을 만큼 뜯어 먹었는지 유유히 숲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노루가 있던 자리로 가보았다. 계곡 아래서 보았던 머위와 같이 멱이 똑똑 끊어져 잎은 보이질 않았다. 노루가 먼저 시식했던 머위 잎이었다.
나는 불모산동에서 차량바퀴 소리 들렸던 굴다리를 지났다. 오리나무는 연두색 잎눈이 나왔고 상수리나무는 아직 낌새가 없었다. 찔레나무도 새순이 나오고 있었다. 곧이어 화살나무 잎도 돋을 것이다. 나는 상점고개 가는 길에서 다시 계곡으로 들었다. 예전에 머위 잎을 따다가 노루 만났던 지점을 가늠해보았다.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이 그윽해 어디가 어딘지 분간이 쉽지 않았다.
석간수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헤매다 머위를 찾아냈다. 아직 철이 일러 머위 순이 활짝 펼쳐 자라지 않았다. 나는 불모산자락에서 잃어버린 텃밭을 용지봉 계곡에서 되찾은 셈이었다. 머위 잎을 두어 줌 따서 배낭에 넣고 어린 순은 남겨 두었다. 보름정도 뒤 다시 오면 더 자라지 싶었다. 그새 노루가 내려와 머위 순을 먼저 따 먹고 가도 상관없다. 어차피 노루보다 내가 후순위 아닌가. 10.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