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에서의 예배
여호수아 5:13-14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축복의 새역사를 시작하셨습니다.
2025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벤츄라교회에 도전을 주셨습니다. 지난 수년 동안, 여러분의 헌신과 기도로 지켜졌던 우리의 성전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광고 시간을 통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러다보니, 부수적으로도 많은 일들이 생기더군요. 지난 한 주간, 특별새벽 부흥회와 더불어 교회를 중심으로 십여 곳의 교회를 방문하여 문의를 하고, 교회의 살림살이는 정리할 방법들과 장소를 찾다보니, 한주가 정말 빨리 지나가더군요.
이런 시간을 보내면서 이 일의 핵심이 무엇일까 묵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마음은 ‘예배’였습니다. 벤츄라교회는 다른 어떤 것보다 예배가 중심인 교회입니다. 주일 예배를 드리며, 새벽기도회가 교회의 중심입니다. 구원받은 자답게 하나님께 예배를 통하여 영광 돌리고,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벤츄라교회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벤츄라교회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해 주세요’가 기도가 되더군요. 그런 마음으로 예배에 대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첫째, 예배를 지켰던 신앙인들
기독교의 역사는 예배의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의 역사였습니다.
초대교회가 박해 속에서 예배 드렸던 공간을 카타콤이라고 합니다. 카타콤은 일반적으로 지하 묘지를 의미하지만 기독교도들은 그곳을 묘지라고 여기지 않고 ‘잠자는 곳’(a sleeping place)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죽음을 최종적인 것으로 보지 않고 죽음 이후의 삶을 생각했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잠시 자는 곳’ 정도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이 4세기 이전까지 로마 제국에서 박해 받았다는 점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이지만, 기원 64년 이후 박해가 시작되고 불법의 종교로 간주된 기독교는 종교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257년에는 모든 집회, 즉 예배와 모임이 법령으로 금지되었고 심지어는 장례식에도 같이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258년에는 보다 강력한 처벌을 명시하는 성문화된 칙령이 발표 되었습니다. 갈레리우스 황제 때였다. 유죄판결을 받는 경우 성직자들은 사형에 처해졌고, 원로원 의원이나 귀족들은 그들의 직위를 박탈당했고, 귀족 출신 부인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유배되었습니다. 황실에서 일하던 자들은 황실 직유지의 강제노동 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이런 시기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예배 드릴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되었고, 지하무덤이었던 카타콤은 적절한 피난처이자, 예배의 자유를 얻을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카타콤의 예배가 250년 동안 지속되었다고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소아시아로 불리는 곳은 오늘날 터키, 튀르키예의 중심부인 아나톨리라는 지역입니다. 이 지역에는 아나톨리아에 '수도사의 고향'으로 불리는 신비의 땅 카파도키아가 있습니다. 이 지역은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많은 동굴이 생성되었고, 예전에는 도둑들을 피해 사람들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초대교회의 박해가 시작된 1세기 후부터는 로마로부터 탈출한 기독교인들이 숨어 지내면서 교회를 만들고, 무덤을 만들고, 학교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교회가 현재 발견된 것만 600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신학교 시절부터 성지순례로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지역입니다. 그렇게 수 백년 이상을 지내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들에게 불편함보다, 환경보다 중요했던 것은 자유로운 신앙생활과 예배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는 옛날 이야기만이 아닙니다.
“북한교회사”(강석진, 쿰란출판사)에 나오는 “우리 가문의 신앙생활과 지하교회”를 소개하는 글은, 북한의 그루터기 교인들이 어떻게 명백을 유지시켜 왔는지 잘 보여줍니다. 1997년 탈북하여 한국에 온 한 저자의 고백을 요약한 말씀을 전합니다.
내가 태어나서 자란 평안북도 피현군은 선천, 평양, 의주와 더불어 해방 전까지 기독교인이 많기로 유명한 지역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군민이 기독교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습니다. 아버지는 장로셨고, 어머니는 1971년 돌아가시는 날까지 꿋꿋하게 신앙을 지켰습니다.
어머니는 새벽 1~2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이불 속에서 기도하셨습니다. 해방 직후 남으로 내려간 아버지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길은 통일밖에 없다고 믿으셨기에 평화통일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셨습니다. 나는 넷째 딸이었지만 결혼 후에도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살았던 덕분에 신앙을 이어받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북한에서 마지막으로 성경을 본 것은 1947년이었습니다. 당시 북한 당국은 기독교인 집안을 수색해 성경과 찬송가 등을 압수했기 때문입니다.
그후로부터 어머니는 구전으로 찬송과 성경을 익혔습니다. 1996년 중국으로 와서 50여 년 만에 성경과 찬송을 다시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 에 내가 모르는 찬송가는 거의 없을 정도였습니다. 내 아이들도 그렇게 신앙을 이어받았습니다. "달고 오묘한 그 말씀”으로 시작되는 찬송을 들려주면 아이들은 "사탕 과자도 아닌데 어째서 말씀이 다냐?"고 묻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배워 나갔습니다.
나의 남편은 기독교 신자가 아니었지만 1978년경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하루는 내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친정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남편에게 "살다 보면 어려운 일이 있다. 그럴 때 하나님께 기도해라"고 했던 것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았습니다. 북한에서는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하는 일이 김일성, 김정일의 초상화를 닦는 '정성 사업'이었습니다. 남편은 이 일을 하다가 초상화를 떨어뜨렸던 것입니다. 북한에서는 이보다 더 무서운 죄는 없습니다. 새파랗게 질린 남편은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서 남편은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남편이 근무하는 병원에 검열대가 갑자기 닥쳐 15일간 검열을 받느라 당비서가 남편의 조치를 잊고 넘어간 것입니다. 10대 원칙 위반의 경우 3일 안에 조치가 취해지지 않으면 당비서도 문책을 받게 되어 있어 아예 없었던 일로 하기로 자체 결정을 한 것입니다.
1990년대, 김일성 주석이 사망하고, 여러 이유로 통제가 약해졌을 때에 우리 가족은 이웃 중에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성경이 없으니 십계명을 외워 설교를 대신했습니다. 이것이 지하교회입니다. 가까운 사람들 중에는 남한의 극동방송을 몰래 듣는 이들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우리 집에는 단파 라디오가 없어 한 친구에게 성경 말씀을 좀 적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었다. 친구는 성경 구절을 받아 적은 쪽지를 돌돌말아 머리카락 속에 놓고 모자를 눌러쓰고 와서는 성경 구절을 읽어 보고, 종이는 불에 태워 없앴습니다.
둘째, 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을 보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요단강을 가르는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면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여리고성 바로 앞, 여리고 평지, 즉 길갈에 도착했습니다. 눈 앞에는 거대한 성, 여리고성이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강물을 갈라버리시는 하나님의 엄청난 기적의 역사를 경험하고 온 상태였습니다. 이스라엘 군사들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고, 그들의 함성은 여리고성의 군사들의 오금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 이제 쳐들어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여세를 몰아 여리고성으로 진격해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이기는 싸움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곳에서 돌 열 둘을 취하고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의 유숙할 그곳에 두라.”(수4:3)
한마디로 ‘예배 드려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금 고지가 바로 눈 앞인데. 이제 밀고 들어가면 단숨에 정복할 수 있는 순간인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보다도 예배드릴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요단강 도하 기념 예배를 드리고 난 뒤, 이제는 출발해야죠. 이제는 진격해야죠. 전투는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이제 여리고를 공격해야죠.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또 뭐라고 하셨습니까? 5:2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부싯돌로 칼을 만들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시 할례를 행하라.”
할례를 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시로 할례를 받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당시는 마취약도 소독약도 없었어요. 그러니 할례를 받고 나면 며칠 동안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지금은 전투중이고 바로 눈앞에 여리고성이 있고, 여리고성의 군사들이 지금 초긴장을 해서 이스라엘을 주시하고 있는데, 할례를 하라는 겁니다.
할례는 나중에 성을 정복하고 나서 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왜 꼭 지금 해야 하는 겁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금 당장 할례를 행하여 거룩하여 질 것을 명령하십니다. 그럼 할례가 끝나면 이제 전진할까요?
아니요. 한 가지가 더 남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길갈에 진 쳤고 그 달 십사일 저녁에는 여리고 평지에서 유월절을 지켰고.”(수5:10)
할례를 하고 나니, 이제 또 뭘 하느냐? 이제는 유월절이 되었다는 율법에 따라 유월절 감사 예배를 드렸다는 겁니다.
이 무슨 바보 같은 짓입니까. 이 바쁘고 절박하고, 이 절묘한 타이밍 중에 이 무슨 시츄에이션들입니까. 지금 눈앞에 여리고 군사들이 눈이 벌겋게 되어서 주시하고 있는데 이 무슨 바보 같은 행동들입니까.
셋째, 이제 왔느니라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 어리석게 보이는, 이런 바보스러운 짓을, 우리에게 시키시는 것일까요? 너무나도 치열한 전투의 현장 속에서, 왜 우리에게 먼저 예배 드리기를 원하시는 걸까요?
5장 13-14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웠을 때에 눈을 들어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섰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그가 가로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드디어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왔느니라.”
즉 “이제 내가 왔다! 걱정 말라. 너희들은 나의 뒤를 따르라. 내가 앞장서겠다. 내가 적들을 물리쳐 주겠다!”
그리고 6장으로 이어집니다. 여리고성이 함락되는,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결국 예배란 무엇입니까?
내 영혼에 할례를 행하여, 나를 무장해제 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는 존재입니다. 내 힘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능력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 이길 수 있는, 나 자신조차 이길 수 없는, 그런 약한 존재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가진 잔꾀, 잔재주를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여호와의 군대장관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장해제된 내가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힘으로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에 목숨을 거십시오. 여리고를 무너뜨린 것은 길갈에서의 예배 때문입니다. 예배는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아니, 예배를 통해서만이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예배가 아니었으면 여호와의 군대장관도 오지 않았고, 군대 장관이 없었으면 여리고성도 못 이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