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루카 4,34)
교회는 오늘 대 그레고리오 교황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540년경 부유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난 그레고리오는 로마에서 교육을 받고 뛰어난 능력과 학식을 바탕으로 고위 공직자라 할 수 있는 장관을 지낼 정도로 그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도생활을 꿈꾸어 왔던 성인은 모든 것을 버리고 574년 로마와 시칠이아에 수도회를 세우고 스스로 수도원에 입회합니다. 그 후 교황대사로 활동하던 성인은 자신의 수도회로 돌아와 수도회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으로 선출되기에 이릅니다. 교황이 되어서는 뛰어난 학식을 바탕으로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훌륭한 설교가로서 많은 저서를 남겼으며 교황 스스로를 가리키는 말, ‘하느님 종들의 종’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쓴 교황으로서 교황의 직무를 지배하는 특권이 아닌 봉사하는 특전이라는 뜻을 피력한 최초의 교황입니다. 이 같은 성 대 그레고리오 교황 학자를 기억하는 오늘 복음 말씀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점은 바로 마귀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건네는 말씀입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사람이 예수님께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루카 4,34)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곁에 있던 이들, 예수님을 따르는 군중들과 예수님의 제자들조차 예수님이 이루시는 놀라운 기적과 그 분이 하시는 하늘나라에 관한 말씀들을 듣고 예수님이 무언가 특별한 분이신 줄은 희미하게나마 깨닫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정확히 누구이신지, 그 분의 정체는 과연 무엇이며 그 분이 무엇을 하시는 분이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중에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인물, 그것도 더러운 마귀의 영에 들린 이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 분의 정체를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굉장히 역설적이면서도 그가 더러운 영이나마 영적 존재에 사로잡혀 예수님의 정체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그 경위야 어찌되었든 더러운 마귀의 영에 사로잡힌 그는 그가 고백한 것처럼 예수님이 하느님의 거룩한 분임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 자신과 무슨 상관이 있는 줄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는 다음의 말이 이 사실을 잘 드러내 줍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저희를 멸망시키러 오셨습니까?”(루카 4,34)
예수님이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분명히 알고 있던 그는 정작 예수님을 자신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 그리고 심지어 그 분은 자신을 멸망시키러 온 사람이라고 파악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그 분의 정체를 누구보다 정확히 알고 있던 그가 정작 그 분이 무슨 일을 행하는 분이신지는 전혀 깨닫지 못하는 상황, 아니 깨닫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전혀 180도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일들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을까?
이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오늘 독서의 말씀 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교회 공동체에 편지글을 보내면서 하느님의 지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그리고 하느님의 깊은 비밀까지도 통찰하십니다. [...]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오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선물에 관하여, 인간의 지혜가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가르쳐 주신 말로 이야기합니다. 영적인 것을 영적인 표현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1코린 2,10.12-13)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처럼 하느님의 거룩한 영, 성령에게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현세적인 것을 넘어서는 영적인 것을 보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이해의 마음이 생겨납니다. 이 하느님의 영을 통해 새로운 눈을 가지게 된 사람들은 세상의 눈으로만 바라보는 이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게 되고, 세상의 소리만을 듣는 이들이 들을 수 없는 하느님의 말씀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 오늘 복음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한 답을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같은 면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더러운 마귀에 사로잡힌 이는 바로 이 점이 부족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곧 빛으로 깨어 있지 못한 채, 이전의 자신의 처지, 곧 밤과 어둠에 머물러 있으려 하였다는 것, 바로 그 점이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정확히 알면서도 그 분이 하시는 일에 관해서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이라 믿어 고백하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를 위해, 내가 그 분과 함께 살게 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치신 분입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베풀어진 하느님의 사랑을 죽음으로 드러내신 분, 그 분이 바로 그리스도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영이십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은 바로 이 하느님의 영으로 하느님이 보내신 분, 곧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님이 하느님의 거룩한 분이심을 깨달았지만, 세상의 영에 사로잡혀 하느님의 거룩한 그 분이 자신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해 오신 분을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복음의 말씀에서처럼 다음의 어리석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오늘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을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지금 이 순간, 바로 여러분 각자를 위해 베풀어지고 있습니다. 그 사랑을 믿고 그 사랑을 한번 체험해 보십시오. 그 사랑이 화답송의 시편의 말씀처럼 우리가 쓰러질 때 붙들어 세워 주시는 분, 꺾인 이를 일으켜 세워 주시는 하느님을 직접 체험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그 사랑만을 희망해보십시오. 그러면 오늘 화답송의 시편저자의 외침처럼 우리의 빛이자 구원인 주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셔서 아무 두려움 없이 기쁨과 희망 속에서 그 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 분과 함께 하는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우리의 빛이자 구원이신 그 분을 믿고 바라고 희망하며 주님의 집으로 초대되어 주님과 함께 누리는 기쁨과 희망으로 가득하시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은 말씀마다 참되시고, 하시는 일마다 진실하시네.
넘어지는 누구라도 주님은 붙드시고, 꺾인 이는 누구라도 일으켜 세우시네.”(시편 145(144),13ㄷㄹ-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