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정액제 반대운동 확산...Stop Dumping Music
대기업 유통지배 구조에서 곡당 ‘1.7원’ 받는 생산자들
국내 최대의 음원 제공 사이트인 ‘벅스뮤직’에선 한 달에 3천원만 내면 모든 음원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또 다른 음원 제공 사이트인 ‘멜론’도 마찬가지다. 3천원이면 이들 음원사이트가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 곡의 음악을 무제한으로 들을 수 있다. 그 보다 조금 비싼 9천원 가량을 내면 한 달에 150여 곡의 MP3를 다운받아 영구 보관 할 수 있다. 한 곡당 60원 꼴이다.
음원정액제 폐지를 위한 음악 생산자들의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작곡자를 중심으로 한 음악 생산자들은 스트리밍 정액제와 덤핑된 가격의 다운로드 금액으로 정당한 저작권료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수의 음악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라는 것이다.
2010년 인디 뮤지션 ‘달빛요정 역전만루홈런’의 사망사고로 음원 수익 배분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대두됐지만 이내 잠잠해졌다. 소비자들은 여전히 한 달에 한 번, 한 끼 점심값도 되지않는 금액을 결재하고 무제한의 음악을 듣는다. 음악 생산자들로 구성된 음악 생산자 연대는 ‘Stop Dumping Music’이라는 슬로건을 걸고 음원사이트들의 정액제 폐지와 다운로드요금 할인제도를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스트리밍 1회당 1.7원 받는다”
한국독립음악제작자협회의 김민규 회장은 “공정하지 못한 유통구조로 인해 음악생산자들이 정당한 저작권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민규 회장은<참세상>과의 통화에서 “음악 생산자들은 음원 사이트에서 발생한 수익금의 일정한 비율을 저작권료로 지급받는데 음원 사이트들이 정액제 스트리밍 서비스와 덤핑된 가격으로 음원을 판매해 정작 생산자들에게 돌아오는 금액은 미미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현재 음원사이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스트리밍 1회당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비용은 1.7원, 다운로드는 곡당 27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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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음원정액제 폐지 요구 가두행진 [출처: 음악생산자연대] |
문제제기가 지속되자 문화체육관광부는 ‘음악 전송 사용료 징수규정 개정안’을 발표하고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했으나 음악 생산자들은 이 역시 근본적인 문제해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번 개정안에 따르면 스트리밍의 경우 회당 7.2원을 받을 수 있는 종량제와 기존의 정액제를 병행할 수 있도록 했고, 다운로드 또한 시장가격 600원을 기준으로 곡당 360원의 저작권료를 받는 방식을 정하고 있다. 생산자들은 “요율의 단순 상승이 아닌 안정적인 공급 원가를 공급받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다.
생산자들은 ‘안정적인 공급원가를 제공받는 방식’으로 ‘종량제’를 요구한다. 올 초 열린 ‘디지털 음악 산업 발전 세미나’에서 한 음반 기획사 관계자는 “지난 3월에 빅뱅, 2AM, 미쓰에이 등 대형 가수들이 한꺼번에 신곡을 발표해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지금 구조에선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게 아니다. 한정된 시장에서 누가 더 가져가고 덜 가져가느냐 하는 배분만 달라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액제와 덤핑가격에 음원이 팔려나가는 구조에서는 ‘제로섬 게임’이 반복될 뿐이라는 지적이다.
음원사이트들은 왜 ‘덤핑’ 가격에
음원정액제는 P2P 사이트가 발달하며 성행한 불법 다운로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김민규 회장은 “당시엔 음지의 불법 다운로드를 양지로 끌어내겠다는 의도”였다고 술회했다. 불법 다운로드가 워낙에 많다보니 저렴한 가격으로 시작해서 점차 ‘정상가격’을 찾자는 의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음원사이트들의 주도로 확장된 음원 스트리밍 시장이 도리어 음악 생산자들의 목을 조이는 형세가 됐다.
낮은 가격으로 음원을 제공하는 것은 음원 사이트들에도 손해를 끼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김민규 회장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 음원 사이트들은 회원 수 확보와 음원 유통을 통해서 수익을 창출하기 때문에 낮은 가격에 책정된 모든 부담은 오직 생산자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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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원정액제 폐해를 알리는 웹툰 [출처: Stop Dumping Music 홈페이지] |
또한 음원 판매를 통해서 생성된 수익의 대부분을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음원 사이트가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음원 사이트로서는 음원 가격을 현실화 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음원 차트의 1위를 차지하고, 막대한 다운로드를 이끌어내도 정작 음악을 생산한 이보다 이를 유통하는 음원 사이트가 더 큰 수익을 창출한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들에게 부담을 지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음악 생산자들의 요구를 당장 받아들인다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피해를 체감하는 것은 소비자다. 저렴한 가격으로 음원을 공급받다 갑자기 음원이 현실적인 ‘가격’으로 인상되면 소비자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생산자들의 정액제 폐지운동을 ‘밥그릇 챙기기’로 비춰질 수도 있다.
Stop Dumping Music 운동은 당장 “돈없는 사람은 음악도 듣지 말라는 것이냐”는 비판에직면한다. 음악, 혹은 예술이 갖는 공공성에 대한 지적이다. 거기에 더해 ‘저작권’, ‘지적재산권’을 더욱 강화해 소비자들에게 더욱 높은 금전적 지출을 강요하고 있다는 비판도 가능하다.
이에 대해 진보신당 문예위원장인 음악평론가 나도원 씨는 “Stop Dumping Music운동은 음악 향유자들을 향한 싸움이 아니라 불공정한 음원 유통구조와의 싸움”이라고 대답했다. “소비자들이 더욱 많은 요금을 지불해 음원 가격을 올리자는 것이 아니라 음원 유통시장에서 적절한 분배구조를 찾고 대기업들의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일”이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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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top Dumping Music 페이스북] |
김민규 회장도 “지금과 같은 구조에서 음악 생산자들이 더욱 가난해 진다면 더이상 음악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향유자들도 그동안 제공된 가격이 ‘비정상’이라는 점을 인식해달라고 부탁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음악 창작과 예술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향유자들도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는 공동의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음악의 공공성을 보장하는 일에 대해서도 나도원 씨는 현실적인 문제를 짚었다. 그는 “많은 수의 음악인들이 더 많은 대중들이 자신의 음악을 듣길 바랄 것”이라고 말했다. 창작자들도 자신의 창작물이 공공성을 띄길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음악 등 예술의 공공성을 보장하기에 앞서 창작자들에게 어떠한 생존기반도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을 지적했다.
나도원 씨는 “대기업의 음원시장 독점을 없애고 생산자 소비자에게 정당한 가격의 음원이 공급되면 음악 생산자들도 더 많은 대중에게 자신들의 음악을 제공하고 싶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정책이 사업자 중심이 아니라 생산자와 향유자를 중심으로 꾸려지고 문화예술인들의 복지가 보장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을 공공재로 인식하기 위해선 그에 걸맞는 공공의 정책과 제도가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