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자. 옛날 옛날 아주 오랫 옛날에 우리는 초가집에서 하루 세끼먹는게 감사하고, 감자 한덩이에 눈물이 뚝뚝 떨어진 그런때가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면 지금처럼 산성비에 머리가 벗겨질 걱정이 아닌 안방 천장에 물이 고일까봐 물동이를 갖다 놓는게 걱정인때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때 우리에게 배우는건 그리 중요한게 아니였다. 우선은 하루 세끼가 걱정이고, 그 하루 세끼가 바로 삶이였기 때문이다.
현재는 2003년, 올림픽과 월드컵을 거뜬히 치루고, 세계에서 최고의 교육열을 자랑하고 있는 나라로 성장해 있다. 새끼들의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조금씩 변화하면서 당시의 하루 세끼가 지금은 좋은 학교보내서, 연봉 많은 직장에 다니면서, 돈많고 빽좋은 집안의 신랑, 신부가 되는 것으로 변해있다.
김봉두는 그런 것을 너무나 잘알고 있다. 부모들의 그런 사랑이 당연한것이고 그 당연한것에 자신이 챙기는 돈봉투 역시 당연한것이다. 이 돈봉투는 세상에 처음 발을 내딛을 자신의 제자들에 대한 씨앗이다. 씨앗을 뿌리지 않고 어떻게 열매를 걷어들일수 있단 말인가. 스스로 자신을 합리화 시키면 세상은 정말 살기가 편해진다. “..나 봉두야..왜이래 이거!!..” 그는 언제나 당당하다.
이 첩첩산중 오지의 학교로 온 것은 순전히 운이 나빠서다, 그놈이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나는 영계들이 기다리는 룸싸롱과 내 카드값을 챙겨주는 학부모들이 있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자습을 시키고 어제 먹은 술 때문에 시원한 숙직실에서 두발 뻗고 달콤한 낮잠을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곧 폐교 된다니 머 그냥 바람 쐰다고 생각하고 있어보자,학생 다섯명뿐인 학교가 얼마나 가겠어...
하루, 이틀..시간은 자꾸가고 봉두는 자꾸 초조해진다. 이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지도 않고 익숙해질때까지 있지도 않을것이다. 슬슬 엉덩이가 아파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언제나 사람들에게 환타지와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시원한 액션이나 생각지도 못한 로맨스, 그리고 어떤 상상도 가능한 환타지, 모든 것을 대리 만족 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또하나 내가 동화될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 일상에서는 일어나지는 않겠지만 영화에서만은 꼭 ‘그럴거같은’ 이야기들을 들으면 액션이나 환타지못지 않은 카타르시스를 제공할때가 있다.
"선생 김봉두"는 그래서 참 영악한 영화다.
누구나 쉽게 동화할수 있는 아이들을 무기로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동화할수 있게 만든다. 근래 나온 어떤 최루성 영화보다 훨씬 강력한 최루탄 역할을 하는 것 또한 이 아이들이다. 어떻게 현실에서 아이들이 돈을 벌어서 선생님에게 봉투 주는걸 상상이나 할수 있을까? (그렇지만 영화는 이 장면에서 가장 큰 클라이막스를 제공하면서, 관객들에게는 “한방”을 먹인다. 이게 영화다.) 그렇지만 는 이 클라이막스 뿐만이 아니라 영화 곳곳에 사람들이 '그럴거같은, 그러고 싶은‘ 이야기들을 수시로 준비해 둔다.
말뿐인 운동장이 있고, 학교를 파하고 나면 갈곳이라고는 학원밖에 없는 도시의 아이들은 참 불쌍하게 느껴질정도로 "선생 김봉두"의 아이들은 자유분방하다. 학교가 파하면 동네 시냇가로가는 것은 당연한것이고, 학원을 가지 않으면 갈곳이 없는 그런 왕따도 없다. 당당히 학교 운동장 에서 비석치기를 하고, 선생님이 지나가도 “지금 갈꺼예요” 하는 말대신 “선생님도 같이 해요”를 외치는 아이들이 어떻게 부럽지 않을소냐. 그리고 또 한가지! 과연 도시 아이들이 라면을 그렇게 맛있게 먹을수 있을까?
"선생 김봉두"는 영화보는 두시간 내내 울고 웃기에 충분하다.
울고 싶을때 울수 있는 영화란 그리 흔치 않다.
혼자서 울고 웃다가 똥구멍에 털이 나고, 하루 세끼가 삶인 사람들이라도 이 영화는 꼭보라고 권하고 싶다.
첫댓글 글잘읽었습니다.산울림님의 글을 앞으로도 많이 볼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