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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비전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예예
성 경 : 행1:3-5절
제 목 :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신 예수님
일 시 : 2026. 4. 15.
사도행전 1:3-5/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예수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의 보편적인 생각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이라는 생각입니다. 예수님께서 의심 많은 도마를 만나셔서 하셨던 말씀 때문에 그것이 마치 예수님의 부활에 관한 말씀의 전부라고 생각하고 그것만을 주장해 왔기 때문입니다. 요20:26-29/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29절 말씀을 이렇게 주석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도마의 믿음의 동기에 대해 지적하지만, 그것은 책망이 아니라 교훈적인 의미에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서 일단은 도마의 믿음이 인정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믿음은 본 것에 근거해 있다. 주님이 바라는 바는 믿음이지만 그 믿음에 이르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1) 하나는 보아야 믿는 형태이며, 이 믿음은 현상적으로 증명될 수 있는 모종의 이적을 요하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2) 다른 하나는 보지 않고 즉 어떠한 이적적인 사건에 의하지 않고도 믿음을 갖는 것이다. 물론 도마를 비롯하여 제자들은 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바람직한 것은 후자의 경우이다. 이것은 요한의 독자들 그리고 이어지는 세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주는 것이다.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였고 그 결과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제자들에게만 주어진 특정한 상황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부활하신 예수를 직접 보지 않고서도 성도들은 제자들이 가졌던 믿음과 동일한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왜냐하면 믿음에 있어서 '보는 것'은 불가결의 조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완성된 신.구약성경이 예수를 증거하고 또한 성령께서 친히 예수를 증거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의 모습을 직접보지 않아도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벧전 1:8)라고 했기 때문이다 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주석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바람직하고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이런 주석가들의 주석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당연시 해 왔습니다. 또한 성경에는 그것을 옹호하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고후5: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라고 했으며, 히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으며, 히11:27/믿음으로 애굽을 떠나 임금의 노함을 무서워 아니하고 곧 보이지 아니하는 자를 보는 것같이 하여 참았으며/라고 했으며, 히11:39/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라고 했으며, 벧전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말씀들은 다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을 칭찬한 말씀입니다.
그렇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못 보는 것이 복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행하신 표적을 보면서도 믿지 못한 것에 비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인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다는 증인들의 말과 성경말씀이 믿어지니까 말입니다. 그렇지만 더 높은 차원에서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어떤 사람에게 나타내 보여준 사람이 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자신을 나타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잠8:17/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고 했으며, 요14:21,23/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며 그런 사람들과 거처를 함께 하신다고 했습니다. 다른 말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 보여 주십니다.
또한 다른 성경말씀을 보시면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그 말씀을 전폭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신이 부활하셨다는 것을 여러번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세 번씩이나 자신의 부활하신 모습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21:1/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고 했으며, 요한복음 21:14/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을 보시면 예수님은 사도행전 1:3-5/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교회와 성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나지도 못하고 성령세례도 받지 못하고 그냥 믿기만 하면서 살아가니까 무능하고 무기력하고 어떤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의 기독교는 초자연적인 능력의 하나님을 증거하거나 들어내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에게 기독교라는 종교는 불필요한 존재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보면 지금의 기독교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이지 지금도 여전히 살아 계시는 부활과 능력의 하나님을 믿는다고 볼 수 없습니다.
1.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서 왜 주님은 제자 누가를 통해서 이 말씀을 기록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3절을 보시면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3절을 보시면 크게 세 가지 내용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먼저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부활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셨습니다. 나타내다란 파리스테이 라고 하는데 옆에 서 있는, (타동사)전시하다, 제공하다, 혹은(자동사)바로 가까이에 있다, 증명하다, 제공하다, 보이다, 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나타내다 라는 단어의 뜻은 바로 옆에 또는 가까이에 서서 자신이 살아 계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보여 주셨다 라는 뜻입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것이 복이 있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부활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제자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가까이에서 증명하며 보여 주셨습니다.
2) 두 번째로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까지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 사이에 제자들에게 열 번 나타나셔서 그의 육체적 부활을 증거하셨습니다(마28:1-19,막16:9-18,눅24:13-50,요20:11-23,26-29,21:1-23,고전15:5-8). 공식적인 것과 비공식적인 것을 합치면 10번이나 제자들에게 자신이 육체적으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거해주셨습니다.
40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라고 했는데 보이시며란 옵타노마이라고 하는데 응시하다(크게 뜬 눈으로), 나타나다, 쳐다보다, 보다, 자기를 보이다 라는 뜻으로 예수님께서 의도적으로 자신을 나타내 보이셨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모습을 감추거나 숨기지 않으시고 제자들이 확실하게 볼 수 있도록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뜻입니다.
3) 세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직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공생애 시간 동안 일어났던 사건들의 의미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으리라고 짐작됩니다. 왜냐하면 눅24:44-48/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나라는 구약의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었으며,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시작되었으며 예수님의 재림 때에 완성이 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이 왕으로 다스리는 나라입니다(시103:19). 그래서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와 주권과 왕권이 시행되어지는 모든 장소이며 또한 종말 이후에 천국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은 그의 나라를 세우기 위해서입니다. 바로 그런 것들을 제자들에게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말씀하시기 위해서 부활이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을 만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게 관하여 말씀하시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2. 그렇다면 왜 부활을 믿는 사람들과 믿지 안는 사람들로 나누어질까요?
왜 어떤 사람은 부활을 믿고 어떤 사람은 안 믿을까요? 사실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은 인간적인 방법으로써는 설명할 수가 없고, 과학이나 의술로도 설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일입니다. 그리고 보통사람들은 믿어지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과 그것이 믿어지는 것이 비정상적인 일처럼 여겨집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날까요? 그 차이는 간단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것이 확실히 믿어집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않거나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거나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고 손으로 예수님을 만져 보고 확인하고 나서 믿는 사람이 있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거나 보지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증언을 듣고 간접적으로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의심 많은 제자 도마를 만나셔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요20:29/...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하고 만나지 못했어도 믿어져서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에게 특별한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믿어지거나 믿는 사람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부활을 믿기는 하지만 부활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믿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다섯 가지 표적은 따르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막16:17-18/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믿는 자들, 체험적인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다섯 가지 표적이 따르게 됩니다. 그 증거가 바로 뒤에 있는 말씀입니다. 막16:19-20/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막16:14-18절까지의 말씀을 하시고 드디어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우편에 앉으셔서 세상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런데 20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40일 동안 직접 만나고 체험했던 제자들은 자신들이 머물러 있던 집에서 나가서 두루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결과 따르는 표적(다섯 가지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함께 역사하사란 쉬넬게오라고 하는데 동역자가 되다, 협력하다, 함께 일하다 라는 뜻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과 함께 일하셨다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보았던 제자들은 성령의 불세례를 받고 나가서 복음을 전했을 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표적들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확실하게 증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지 않고 믿는 자들에게는 그런 표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들과 함께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지 않고 믿는 것도 복이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는 직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거나 자신의 눈으로 보고 그분으로부터 능력과 불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훨씬 더 복이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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