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태국북부 여행 (2014. 12. 11 - 2014. 12. 18)
서울 -(Air Asia) (쿠알라룸푸르 1박 경유) (Air Asia)- Yangon, Myanmar -(야간버스)-Bagan -(버스)- Mandalay -(Air Asia)- 방콕 돈므왕공항(DMK) 환승 ? Chiang Rai, Thailand ? Golden Triangle 왕복 ? Chiang Rai ? 방콕 수완나품공항(BKK) 환승 -(KE 보너스)- 서울 도착 (여정표는 맨 끝 편에 첨부)
4일차. 2014. 12. 14 (일) (Bagan 아침 도착 및 투어)
- (앙코르와트에 버금가는 바간) 깊은 잠에 빠졌나 보다. 버스는 그새 바간 터미널에 도착했다. 호텔에 찾아들어가 가방을 맡기고 투어에 나선다. 바간 고고학지역 외국인 입장료 미화 15달러를 먼저 지불한다. 외국인 관광객이라서 과다한 비용을 지불하기 벌써 몇 번 째다. 새짖는 소리가 바간의 아침을 연다. 낮에는 어떨지 모르지만 아침 공기는 차가울 정도로 선선하다. 고대도시 바간(Bagan)은 9세기부터 13세기까지 고대왕국 파간(Pagan)의 수도였다. 11-13세기 왕국의 전성기에 1만개가 넘는 불탑과 사원, 수도원이 세워졌던 곳으로서 그중 2,200여개가 8백년 넘는 세월을 견디고 남아있다. 미얀마 관광 1번지로서 혹자들은 불교 유적지로서는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Angkor Wat)를 능가한다고 평가한다.
불탑이 있는 풍경1 |
- (일을 그르친 엉성한 복원) 한때 융성했던 고대도시는 1287년경 몽골의 침입으로 인구가 떠나기 시작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지진이나 풍화로 파괴된 유적지는 관광산업을 진흥시키려는 군사정부의 계획에 따라 1990년대 대대적으로 복구를 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지정 신청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역사의 원형을 무시한 주먹구구식 복구로 인하여 세계문화유산 지정에 실패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겪게 된다. 그러나 유네스코 등재와 관련없이 바간은 거대한 평원과 함께 분명히 이집트 피라밋 못지 않은 매력적인 방문지임에 틀림없다. 마르코폴로는 ‘종소리가 울려 넘치고 승려복 깃이 스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리는 도시’라고 부르지 않았던가?
슈웨지곤 파고다 |
- (버려진 천년전 제국의 수도) 버스에서 알게된 말레이시아 화교계 여성 2명과 비용을 나누어 택시를 하루 4만짯(kiat, 약 4만원)에 렌트하여 뜨거운 평원을 누비기로 했다. 수많은 목적지 중 어디를 가야할지는 기사겸 가이드에게 맡긴다. 투어는 슈웨지곤(Shwezigon) 파고다에서 시작한다. 미얀마 불교가 시작된 곳으로 상징성이 높은 곳이다. 이어서 작은 언덕 위에 있는 이름모를 사원을 찾는다. 작은 언덕이지만 사원터 위에 올라서니 멀리 이라와디(Irrawaddy)강과 그 너머 더멀리 거칠고 메마른 산맥까지 눈길이 이어진다. 거친 산맥은 몬순 바람을 막아주어 바간을 미얀마에서도 가장 건조하고 메마른 땅으로 만들었다.
불탑이 있는 풍경 2 |
- 그 사이로는 수십, 수백의 크고 작은 불탑들이 저마다 비슷한 모습, 혹은 다른 모습으로 펼쳐진다. 이런 광경이 이 세상에 여기말고 또 어디에 있을까? 천년 세월의 풍상을 모두 견디게한 견고하고 치밀한 건축 구조의 비밀은 무엇일지 유심히 살펴 본다. 거대한 60m 높이의 아난다(Ananda) 사원을 지나 성안으로 탐방이 이어진다. 버려진 천년전 제국을 상상하니 우리나라 경주의 황성옛터를 보는 것 같아 비감한 마음마저 든다. 평지인 바간은 자전거나 e-바이크(전동자전거)로 찾아다니는 관광객들이 적지 않다. 거리에는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포스터도 눈에 띤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 인도 등 열강들이 미얀마 투자와 개발에 눈독을 들이고 있지만 정작 미얀마는 한국의 발전 모델에 관심이 많다는 말이 허언은 아닌 것 같다.
불탑이 있는 풍경 3 |
아난다 사원 |
- (획일성과 다양성의 조화) 바간에 있는 수천 개의 탑들은 궁극적으로 종(鐘)모양으로 진화해 나갔다고는 하지만 전문가의 눈을 가지지 못한 나에게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바간의 탑들을 ‘획일성과 다양성의 조화’라고 평가한다. 저마다 개성있는 모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일정한 바간 고유 패턴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마지막으로 일몰을 보기 위하여 전망이 좋은 불탑 하나를 찾아간다. 일몰 한 시간전이지만 이미 위치가 좋은 곳은 앉을 자리가 없다. 대부분 서양 젊은이들인 관람자들은 모두 말이 없다.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평원너머 서쪽 하늘을 상념에 젖은 듯 말없이 바라보기만 한다. 오늘따라 서쪽 해가 더디게 저무는 것 같다. 모두의 인생살이가 사연이 많은가 보다. 나도 해가 진 한참 뒤까지 물끄러미 서쪽 하늘을 바라본다.
일몰을 기다리며 |
- (린과 치치 부부) 오늘은 좀 특별한 일이 있었다. 가이드 겸 택시기사 린(Lin)이 자기의 승객인 나와 말레이시아 화교계 두 여성을 자기 집으로 저녁 초대하겠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저녁을 사줘도 시원치 않을 판에 난데없는 호의에 당황했으나 이방인에게 한없이 친절한 미얀마 사람들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그를 따라 나선다. 시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의 아담한 집에 도달하니 독일에서 돌아온 아내 치치(Kyi Kyi)가 우리를 반긴다. 린과 치치로부터 들은 그들의 인생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린은 자수성가하여 마부에서 시작하여 지금은 토요타 캠리(Camry)의 주인이자 관광가이드일을 하고 있다. 장차 미니버스와 중형버스도 사들여서 투어에이전트의 사장이 되는 포부에 찬 야무진 남성이다. 일하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다는 그는 일벌레다. 그의 아내 치치 얘기는 더 특별하다. 한국계 여행사에서 가이드도 했다는 그는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며 남편 린을 만났고 10년전 전문 관광가이드 공부를 하겠다는 일념으로 단신 독일 유학길에 오른다.
일몰 무렵 |
-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 2008년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강타했을 때 미리 잡아놓았던 독일대사관 비자 인터뷰를 놓칠 수 없어서 사흘 밤낮을 폐허를 헤치고 양곤 독일대사관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의 지극한 정성에 감동하여 그동안 비자 거절을 되풀이했던 독일 영사가 비자를 내줌으로써 그의 유학길이 열린다. 말이 유학이지 고학(苦學)에 가까운 힘든 독일 생활이었지만 끝내 돈까지 모아 고향에 집도 마련했고 남편에게 토요타 차량도 사줄 수 있었다. 이제 그의 꿈은 시작일 뿐이다. 10년후, 20년후 더욱 번성해 있을 그의 모습이 기대된다. 이제는 독일에서 기반을 잡았을 터인데 끝내 고향에 돌아오겠다고 한다. 어디서 어떻게 태어났건 세상은 꿈꾸는 자들의 것이라는 진리를 여기 미얀마에서도 새삼 확인하며 린과 치치의 인생에 박수갈채를 보낸다.
5일차. 2014. 12. 15 (월) (Bagan → Mandalay)
- (노스탤지어 여행) 오늘도 새벽버스를 타고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 만달레이(Mandalay)행 중형버스는 사람반 짐반이다. 먼지만 나지 않을 뿐 비포장도로와 다름없는 간이 포장 시골길을 네시간 반 달려 만달레이에 닿는다. 고생스러웠지만 북부 미얀마의 농촌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한 여정이었다. 어린 시절 가난했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기억하는 한국의 중장년들에게 미얀마 여행은 노스탤지어 그 자체다. 중간에 지나치는 작은 도시마다 수킬로미터는 족히 걸어왔음직한 어린이들이 밝은 표정으로 학교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읽어 본다.
만달레이 가는 길 |
- (새로운 교역 중심 만달레이) 중국이 멀지 않은 미얀마 북부의 중심도시 만달레이는 수도가 떠난 양곤보다 활기차 보인다. 특히 지난 20년동안 서방이 미얀마에 각종 제재를 가하는 동안 반대 급부로 미얀마와 중국의 교역이 활발해졌던 것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만달레이에서 중국 윈난(雲南)성 남서부 국경도시 루이리(瑞麗)는 480km 떨어져 있으니 770km 떨어진 양곤보다 더 가깝다. 산으로 막힌 내륙 윈난성 입장에서 미얀마는 바다로 통하는 출구이니 얼마나 소중한가? 영국이 통치하면서 남긴 격자형 도시설계와 지번 시스템으로 반듯하게 짜여진 가로망, 곳곳에서 분주하게 신축중인 쇼핑센터와 아파트, 분주한 시장 등 만달레이는 미얀마 제2의 도시 이상으로 활기차다. 뜨는 중국의 투자에 힘입어 중국과 미얀마 남부, 인도를 잇는 교역의 중심지로 부상하는 도시의 위상을 역력히 읽을 수 있다.
만달레이 왕궁의 망루와 성벽, 해자 |
- (역사의 시련 많았던 도시) 이 도시의 별난 교통수단인 모터사이클 택시를 9천짯(약 9천원)에 대절하여 도시탐방에 나선다. 인구 123만명의 만달레이는 비교적 최근에 성립한 도시이다. 1857년에 민돈왕(King Mindon)이 세운 수도로 뒤늦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버마가 영국에 합병되고 티보(Thibaw) 왕가가 망명길에 오를 때까지 26년간 수도로 기능했다. 그러나 주변의 풍부한 물산과 전략적 위치 덕에 일약 미얀마 제2의 도시로 부상했다. 만달레이는 유독 역사의 시련을 많이 겪기도 했다. 영국 통치(1886~1948)에 들어가면서 영국은 왕궁을 약탈, 값진 보화들을 본국으로 방출하여 빅토리아앨버트(Victoria Albert) 박물관에 전시해 놓았다. 일본의 통치중에는 궁전 일부가 병참기지로 활용되었는가 하면 2차대전 말기에는 연합군의 폭격으로 망루만 남기고 궁궐이 전소되기도 했다. 오늘날은 중국의 부상에 따른 이득을 챙기고는 있지만 밀려드는 중국인들이 상권을 장악하고 땅을 사들여서 중국의 식민지아닌 식민지가 되고 있다는 탄식이 터져나올 지경이니 옛 만달레이 왕국의 영화는 되찾기 어려운 일이 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만달레이 왕궁 |
- (웅장한 왕궁) 이런 사연을 되새기며 왕궁에서 도시탐방을 시작한다. 만달레이 언덕(Mandalay Hill) 기슭에 가로세로 네 블록에 걸쳐 쌓은 2km가 넘는 성벽과 64m 넓이와 4.6m 깊이의 해자로 둘러싸인 왕궁은 일단 압도적으로 거대하다. 물론 오늘날 왕궁은 일부만 남아서 방문자를 반길 뿐 나머지는 군대 주둔지역으로 폐쇄되어 있지만 웅장한 규모와 함께 해자로 둘러싸인 성벽은 여전히 제국의 상징처럼 보인다. 성벽 너머에 한때 융성했던 제국의 영화가 깃들여있음을 경외로운 눈으로 바라본다. 한때 라오스, 태국 등 인도차이나 이웃나라들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나라 아닌가? 이제는 시민의 고즈넉한 휴식 공간으로 변한 왕궁의 오후 한 때가 평화롭다. 여행자를 지치게 했던 양곤의 겨울 더위도 여기는 없다.
만달레이 언덕 (Mandalay Hill) |
- 왕궁을 나와 인근 쉐난도 수도원(Shwenandaw Monastery)을 찾는다. 절묘한 솜씨로 섬세하게 깎은 멋진 목조건물로서 한때는 왕궁의 일부였으나 왕궁 외곽으로 옮겨 앉았다고 한다. 거기서 도로 하나 건너편에는 멋진 정문을 가진 만달레이 대학이 북부 미얀마의 명문답게 우아한 모습으로 서있다.
쉐난도 수도원 |
- (세계에서 가장 큰 책) 왕궁 주변 만달레이 언덕 기슭에는 수많은 사원과 수도원, 불탑 등 볼 것이 많다. 그중에서도 쿠토도 파고다(Kuthodaw Pagoda)는 일명 ‘세계에서 가장 큰 책’으로서 2013년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바간의 쉐지곤 파고다(Shwezigon Pagoda)를 본따 1857년 민돈왕이 건축한 파고다로서 729개의 석판들이 늘어선 모습이 장관이다. 바로 그 석판 하나하나마다 불경이 새겨져 불경 전체가 이곳에 담겨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큰 책이라고 불릴만도 하다.
- (땅의 축복을 받은 나라) 이어서 오토바이 택시는 만달레이 언덕 정상을 향하여 힘겹게 오른다. 이곳을 찾았던 부처가 여기에 위대한 도시가 들어서리라 예언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230m 높이 언덕 정상에서 도시를 조망하는 기분이 삼삼하다. 높은 건물없이 넓고 멀리 퍼져나간 도시와 도시 주변 드넓은 평야가 시원스레 펼쳐진다. 땅의 축복을 받은 나라다운 풍경이다. 멀리 이라와디강이 도시와 맞닿은 모습이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큰 책 (쿠토도 수도원 입구) |
- (이라와디 강변 풍경) 마지막으로 오토바이를 재촉하여 이라와디 강변으로 향한다. 겨울철 건기라서 빈약한 강이라도 보면 좋겠다고 찾은 강변에는 의외로 풍부한 강물이 격류를 이루며 흐른다. 고등학교 지리시간에 들어서 이름만으로만 기억하는 강 아닌가? 인도양과 중국 내륙을 직결하는 강의 가치는 풍부한 수량으로도 금세 확인할 수 있다. 강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은 승객 서비스라며 오토바이 택시 기사가 일부러 시장 골목골목을 돌아서 온다. 만달레이 평야에서 산출하는 넘치는 물자가 모여서 형성된 거대한 시장이다. 힘찬 이라와디강과 사람과 물자로 펄떡이는 시장에서 도시의 생동감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금은 가난하여 보잘 것 없는 나라로 뒤쳐졌지만 남한의 7배에 달하는 국토면적이나 6천만을 바라보는 인구, 다양하게 펼쳐지는 기후와 풍광까지 결코 간단치 않은 나라임을 확인한다.
이라와디강 포구 |
- (순수한 미소를 지닌 사람들) 무엇보다도 고마운 것은 미얀마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무엇인지,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질서의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그들은 아직은 순진한 눈망울을 가지고 있어서 좋았다.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수줍게 미소짓던 그 모습들은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선의의 웃음도 자칫 적의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한국같은 초문명사회의 각박함에 숨막혔던 여행자에게는 작은 힐링의 시간이었다고나 할까?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총명하기에 머지않은 장래에 가난을 딛고 일어서겠지만 부디 그러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미소와 순수한 마음만은 잃지 말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3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