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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총동창회장기 골프대회
맑은 가을 하늘아래 푸른 잔디 위에서 펼쳐지는 총동창회기 골프대회에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일시: 2025년 10월 29일(수요일) 날짜 변경
•장소: 라비에벨CC 올드코스
•참가 방식: 단체전: 상위 성적 3인 타수 합계
개인전: 메달리스트, 우승(신페리오 방식), 니어리스트, 롱기스트 등
*경기 객관성을 위해 선후배를 한조로 편성
*친목을 위한 참여 회원은 별도 조 편성
•참가 신청 및 문의:
총동창회 사무총장 박만흠(29회) 010-3423-7499
용담회 총무 김세진(37회) 010-3222-0806 (mouzin@naver.com)
- 신청 시 기재사항: 이름/회수/핸디 기타 세부사항은 <큰그릇> 및 개별 공지합니다
제6회 총동창회장배 당구대회
생활스포츠로 자리 매김한 당구를 통해 용산고 동문 간 우의와 결속을 도모하는 동문 축제의 장입니다.
각 회에서 많은 참가를 바랍니다.
•일시: 2025년 10월 하순 예정
•장소: 참가 팀 확정 후 통보
•참가 방식: 단체전(각 회별 3인)
* 1점제, 15득점, 시간제한 50분, PBA룰
*세부 경기방식은 대표자에게 추후 통보
•참가 신청 및 문의:
총동창회 사무총장 박만흠(29회) 010-3423-7499
용당29회 총무 조완호(29회) 010-8980-0918
- 신청 시 기재사항: 이름/회수/핸디 기타 세부사항은 <큰그릇> 및 개별 공지합니다.
•참가 마감: 8월 31일(일) 17:00
*협찬품 및 협찬금 찬조를 적극 환영합니다. 후원하실 동문들께서는 임원진에게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칼럼 | 허 장·13회·홍맥회 창설자
여생지락餘生之樂
‘남은 인생 즐겁게 살자!’
孔子(공자)도, 莊子(장자)도 ‘즐기는 자가 최고’라고 했고, 로마의 정치가였던 키케 로는 ‘젊은이 같은 노인을 만나면 즐겁다.’라고 했습니다.
財物(재물)이 아무리 많아도 인생을 즐기지 못하면 그것은 ‘Wellbeing’, 즉 잘 살고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 人生(인생)과 自然(자연)을 즐기는 것이 지혜로운 삶의 비결이라 하겠습니다.
바쁘다고 서둘러 지나치지 말고, 인생이라는 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겨보십시오.
가을을 기다리느라 화끈한 여름을 놓치지 마십시오. 겨울이 되어서야 푸르렀던 여름을 그리워하지 마십시오.
돈이 있다고, 출세했다고, 잘난 체, 다 아는 체 할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순박하고, 겸손한 마음을 지니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황혼은 ‘베풀며 너그러워야’ 합니다. 일이 있어 늙을 틈이 없어야 합니다.
바보처럼 앉아서 기다리지 마시고 떨치고 나가 길을 찾고, 매일 즐기며 사십시오.
오늘 하루 매 순간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최선을 다하다 보면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앞만 보고 산을 오르다 보면 옆의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기 쉽습니다. 조금은 느리게 오르다 보면 놓치고 가는 아름다움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내일 일을 훌륭하게 하기 위한 최선의 준비는 바로 오늘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해야 할 일이면 내가 하고, 내가 해야 할 일이면 최선을 다하고, 어차피 해야 할 일이면 기쁘게 하고, 언젠가 해야 할 일이면 바로 지금 하면 될 것입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고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질 때 내일을 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맞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빠도 자기만의 놀 여유 시간을 가진 사람들은 상대를 품고 긍정적 사고로 창조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지요.
그들은 남이 보기에 노는 것처럼 보일 정도이지만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몇 배 능률을 내는 전문가들로서 지극히 긍정적이고 여유가 있기에 주도적 삶을 살아가지요.
그들은 ‘NO!’라는 말 대신 ‘WHY NOT!’이라는 말로 여유를 갖고 대처해 나가지요.
당신은 대체적으로 긍정적(WHY NOT)입니까? 부정적(NO)이십니까?
그 선택 여하에 따라서 당신의 운명이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어리석은 삶, 지혜로운 삶 89: 김상대·7회·아주대 명예교수
반대가 진리다
1. 우리는 배우다
졸부는 어쩌다 대통령이 되면 정신을 못차리고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지며 안하무인으로 오만방자하게 굴다가, 그 자리에서 물러나면 온갖 수모와 불행으로 죗값을 톡톡히 치른다.
우리는 세상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세상을 단지 하나의 거대한 드라마로 생각해야한다. 우리는 세상을 포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도피해서는 안 된다. 그속에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세상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아주 유쾌하게 받아들이라. 세
상은 우주적인 농담이다. 큰 스승들은 그것을 신의 유희라고 부른다.
세상이 신의 유희라면 그때 우리는 그 유희에 참여하고 있는배우일 뿐이다. 연기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어떤 드라마에서 왕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막이 내리면 우리는 자신이 왕이었던 것에 대해 모두 잊어버린다. 그것 때문에 우리는 자만하지 않는다. 우리가 부자라도 자만하지 말라. 혹은 우리가 가난하더라도,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 우리는 모두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역할을 가능한 한 근사하게 연기하라. 그러나 삶 전체는 모두 하나의 게임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기억하라. 죽음이 찾아올 때 막이 내린다. 그때 배우들은 사라진다. 그들은 모두 하나인 우주 에너지 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을 기억하면서 세상 속에서 살 수 있다면, 우리는 모든 불행에서 완전히 벗어난다. 불행은 현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데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그리고 지복은 현실을 가볍게 받아들임으로써 생기는 부산물이다. 삶을 즐거운 것으로 여기고
그 속에서 기뻐하라.
2. 부분과 전체
사람들은 소원성취하면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모르고, 반대로 실패하면 낙담하여 하늘이 무너진 것처럼 절망한다. 마치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삶의 전부인 양,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휩쓸려 다닌다.
우리 마음은 사물을 부분들로 나누어서 보는 습관이 있다. 그럼으로써 스스로를 속인다. 이렇게 사물을 나누어서 보면 스스로 속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시각에서든지 사물을 바라볼 때는 전체적으로 보라. 거기에서부터 구도는 시작된다. 사물을 나누어 보지 말라.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라. 태어남과 동시에 죽음도 거기 있음을보게 될 것이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축하하라. 그럼과 동시에 슬퍼하라, 죽음도 시작되는 것을. 사람이 늙어서 죽을 때 슬퍼하라. 이와 동시에 기뻐하라, 새로운 탄생을,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것을.사물을 부분들로 나누어 볼 때 왜 스스로 속게 되는가? 우리는 부분을 보면서 그것이 전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탄생 자체가 가짜라서 거기에 속는 것이 아니다. 죽음이 가짜라서 거기에 속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하기도 싫어서 탄생이라는 인생의 한 부분을 전체로 보고 싶어한다. 죽음을 망각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속는 것이다.
행복은 우리를 속이지 않는다. 행복을 불행과 나누어 보기 때문에 스스로가 속는 것이다.
우리는 부분을 보면서 전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 행복한 사람에게 “어떻게 지내세요?”라고 물으면 그는 “잘 지냅니다.”라고 대답할것이다. 하지만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다. 길모퉁이만 돌면 불행이 기다리고 있다. ‘잘 지냅니다.’라고 생각할 때도 불행은 커튼 뒤에서 있다. 곧 다음 순간에 불행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복이 속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행복에 속은 것같이느끼는 사람은 ‘행복은 가짜다. 우리를 속인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우리 눈 때문에
스스로 속는 것이다. 한 면만을 보고 다른한 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버리기 때문에 속는 것이다.
한 부분을 취해 놓고 그것을 전체라고 우기면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짓이다. 우리는 하찮은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덧없는 것을 영원한 것으로 여긴다. 우리가 하나의 사물을 보면서 그것을 다른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이다. 우리 속임에 우리가 넘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환영의 본질이며, 힌두교가 말하는 마야의 본질이다.
항상 어떤 사물을 볼 때는 그 반대의 것도 염두에 두라. 주변에 있는 반대의 것을 항상 생각하라. 죽음이 탄생 뒤에 숨어 있음을 알라. 행복이 지나가면 불행이 찾아오는 것을보라. 불행이 지나가면 행복이 찾아오는 것을 지켜보라. 그렇게 할 수 있게 되면 행복에 빠진 나머지 너무 들뜨지도 않으며 불행에 진 나머지 너무 비참해하지도 않게 된다.
그러면 행복 속에서 웃지 않으며, 불행 속에서 울지 않는다. 둘을 넘어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둘 다를 넘어간다는 말은 진리에 가까이 다가간다는 말이다. 우리가 둘을 동시에 알게 될 때 우리는 둘을 초월하기 시작한다.
행복도 불행도, 탄생도 죽음도, 밤도 낮도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은 왔다가 간다. 오직 우리만이 남는다. 오직 침착하게 지켜보는 의식만이 남는다. 관조하는 본성만이 남는다. 관조자만이 남는다.
3. 비교
사회는 비교를 가르치고 경쟁을 가르친다. 사회는 성장의 열망은곧 돈을 많이 버는 것이라고, 최고가 되는 것이라고 우리를 조건화한다. 그래서 우리는 주위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게 돈을 많이 가져야 하고,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다.
어떤 비교도 좋은 것이 아니며 바람직하지도 않다. 왜냐하면 비교란 기본적으로 잘못된 접근 방식이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일 뿐이다. 우리는 동료나 적 그 누구와도 비교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것은 옳지 않다. 모든 비교는 기본적으로 잘못된 것이기 때문이다. A는 A고B는 B다. 그리고 나는 나다. 어떻게 장미꽃과 연꽃을 비교하겠는가?
사실은 두 송이의 연꽃이라 해도 서로 비교될 수 없다. 그들은 각자 나름대로의 독창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수천 년 동안 이러한 비교라는 생각과 함께 살아왔다. 우리는 언제나 비교한다.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을 비교하여 상자에 담아 둔다. 누구는 얼마나 잘 살고 누구는 얼마나 못 사는지, 우리는 각각 어떤 범주에 속하는 사람인지.
우리의 이해가 좀 더 깊어지게 되면 그 모든 피상적인 구분을 없애고 개인의 유일성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비교하기 때문에 모방하기 시작한다. 우리는 자신의 유일함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존재에 대하여 존중하지못한다. 비교하지 말라. 누구나 필요한 부분은 꼭 가지고 있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라. 비교하는 것은 건강한 것이 아니다. 비교는 끊임없이 모방을 일으킬 뿐이다.
우리는 남과 같이 옷차림을 한다. 남이 가지고 있는 차를 사들인다. 남이 꾸며놓은 것처럼 방을 장식한다. 비교하는 마음은 이웃의 모습에 유혹되거나 갈등을 느낀다.
나를 다른 누구와도 비교하지 말라. 나는 단순히 나 자신일 뿐이다.
신은 결코 복사품을 창조하지 않는다. 언제나 원본만을 창조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자신의 본래 얼굴을 가지고 온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라. 거울 속에 비추어지는 것은 언제나 새롭다. 거울은 비어있고,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나는 이 얼굴을 전에 본 적이 있다. 더 예뻐졌다.’ 비어있는 거울 처럼 되라. 에고가 없는 존재가 되라. 그러면 비교가 생기지 않으며,
삶이 황홀경이 된다
이택순의 역사 기행 1: 아무르 강을 따라 우리의 얼을 찾다
아무르(연해주-시베리아-북만주), 대륙에 서다
‘실크로드 도전기’, ‘일본 열도 기행’ 등 3권의 역사 기행서를 펴낸 이택순(21회·전 경찰청장·국제펜한국본부 회원) 동문이 블라디보스토크를 출발하여 아무르 강을 따라 한민족의 얼이 시작된 이르쿠츠크 바이칼호까지를 목표로 역사 기행을 떠났다. 만주 북쪽 경계를 따라 흐르는 아무르 강과 시베리아에 묻힌 고려인의 고된 생활과 조국 독립을 위해 애쓴 민초들의 흔적을 연재한다.<編輯者 註>
<아무르강(흑룡강): 시베리아 남동부에서 발원하여 중소국경을 따라 오호츠크해로 흐르는 4350km의 강.
양자강 황허강과 더불어 아시아 3대의 강>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지 3년이 지나고 있건만, 평화의 소식은 감감하다. 코로나로 3년, 전쟁으로
3년이 지났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연해주와 북만주까지 답사하는 구상(아무르 프로젝트)’을 실행할 기
회는 사라지는 것인가?
해방 전후 역사를 탐색 중 일본 육사 출신 독립투사 김경천이라는 흥미로운 인물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르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은 북만주와 연해주, 하바롭스크(아무르주)에서 펼쳐진 것이다.
러시아 입국이 관건이었다. 러시아 직항 비행편은 서방 국가들의 대러시아 제재로 폐쇄되었다. 강원도 동해항에서 블라디보스토크 가는 페리는 살아있었지만,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일주일에 한 번만 운행할 뿐이다. 중국 항공편을 이용해 우회하여 입국할 방법을 찾았다. 중국은 전쟁 중이라도 비행기 편이 모두 살아있고, 오히려 확대되는 어부지리를 보고 있었다. 중국 연길(옌지)과 하얼빈으로 가서 중국항공으로 갈아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길이 보였다.
일단 중국 비행기로 연길로 가서 러시아로 입국해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롭스크를 답사한다. 출국은 김경천의 경로를 따라 철도로 러시아 우스리스크를 출발해 하얼빈까지 와서 하얼빈에서 비행기 편을 이용할 계획을 세웠다. 안중근 의사도 이 경로로 하얼빈에 입국했다.
가보지 않은 길, 호기심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법이다.
어떤 문제가 도사리고 있을까?
답사의 동행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전쟁 중인 러시아를 방문하는데 모두 꽁무니를 뺀다. 여러 그룹에 제안
끝에 고교 동창 H가 합류하기로 했다. 현지에서 활동하는 활동가를 통해 현지 여행사와도 연결이 되었다. 안갯
속에서 맴돌던 아무르 구상이 10박 11일로 구체화되었다. 덮어두었던 러시아 교과서를 꺼내 들고 하라 쇼(굿)
와 스파씨바(댕큐)를 외쳐 됐다.
6월 2일 오후 중국남방항공(CHINA SOUTHERN)편으로 인천에서 연길(옌지)로 향했다. 연길 도착 후 2시간 이내에 다시 중국남방항공으로 갈아타야 하는데 입국과 출국 절차를 다 밟아야 한다. 사회주의 국가의 엄격한 절차를 감안하면 빠듯한 시간이다. 환승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짐도 간편하게 좌석은 앞자리에 잡았다.
문제가 발생했다. 비행기가 도착했는데, 비행기 문이 열리지 않는다. 웅성거릴 만도 한데 모두 침묵이다. 역시 대국 중국인가! 30여 분 실랑이 끝에 문이 열렸다.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하니 마음은 더욱 조급해진다.
공항을 날아다니며 입출국 절차를 밟는다. 다행히 공항이 작아 이동 거리가 길지 않았다. 친구 H가 최근 중국여행을 자주 다녀 노하우가 있었다. 노랑머리 러시아인들 틈에 섞여 환승 시간 내에 중국 비행기로 갈아타는데 성공했다.
휴! 여행 중 발생할 수 있는 환승 미스라는 최대의 어려움이 하나 해결되었다.
전쟁 중인 나라, 비우호 국가를 방문하는 것은 이렇게까다로웠다. 중국남방항공으로 갈아타고 어둠이 물들기 시작하는 20:30경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에 착륙했다. 한국과의 시차가 있어 1시간 빨랐다. 거대한 백곰의 나라 러시아 입국 절차는 예상외로 간단했다, 간단한 입국서류와 여권 대조 끝에 여행목적을 ‘트래블’이라 말하니 통과다. 모스크바까지 7천 km라는 바닥 표지판이 영토 대국 러시아를 실감시킨다.
블라디보스토크 공항은 푸른색 조명에 은은히 빛나며 손님을 맞고 있었다. 전쟁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공
항에 마중 나오기로 한 O가 보이지 않는다. 국제전화를 돌려보나 통화가 안 된다.
90여 분의 기다림 끝에 O가 허겁지겁 나타난다. 구글지도에 의존해 운전하던 중 스마트폰에 이상이 발생했다. 헤매다가 아날로그 방식으로 물어물어 찾아온 것이다. 현대사회의 큰 맹점이다.
공항에서 햄버거를 구입해 저녁을 해결했다.
공항 근처에 예약해둔 아르좀의 호텔을 찾아가는 것도 난항이었다. 가지고 나온 투박한 소련제 반 트럭 라다(LADA)에 올라타고, 칠흑의 어둠 속을 기억에 의존해 위태위태하게 찾아들었다. 밤늦게 도착한 호텔 프런트에서는 거구의 러시아 여인이 구글 번역기에 의존하는 한국 여행객을 재미있다는 듯 굽어보고 있었다. 우리는거칠고 불편한 침대에 골아떨어졌다.
김세봉의 고전산책 38: 김세봉·28회·(사)유도회 한문연수원 교수
그 아버지에 그 아들 – 이성·이청 부자
《구당서(舊唐書)》 권 133, 열전(列傳) 83에 보면 이성(李晟, 727∼793년)과 그의 아들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성은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고 한다. 그는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기예에 능하였고, 18세에 군대에 나가 용맹을 떨쳤다. 그는 토번(吐蕃) 정벌에 나서 활로 적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워 1만 사람을 대적할 만한 의미로 만인적(萬人敵)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누차 전공(戰功)을 세워 우금오위 대장군(右金吾衛大將軍)·개부의동삼사(开府儀同三司) 등을 역임하고 합천군왕(合川郡王)에 책봉되었다.
또한 하삭 삼진(河朔三鎭)의 반란(叛亂)을 평정하였을 뿐 아니라 주자(朱泚)의 난(亂)도 평정하는 등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서평군왕(西平郡王)과 태위 겸 중서령(太尉兼中書令) 등에 책봉되었다.
사후에는 태사(太師)에 추증되고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덕종(德宗)의 묘정(廟廷)에까지 배향된 인물이다.
그는 훌륭한 장수였지만 또한 재상으로서도 그에 못지않은 훌륭한 면모를 보였다. 그는 일찍이 위징(魏徵)이 바른말로 태종(太宗)에게 지극히 간(諫)하여 요순(堯舜)보다 뛰어나게 되었다며 위징이야말로 참된 충신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는 말로써 뿐만 아니라 본인이 실지로 몸을 아끼지 않고 임금에게 할 말을 숨기는 일 없이 모두 하면서 고문에 응하였으며, 은혜를 입은 자에게는후하게 보답하였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의 작은 선(善)이라도 기록하여 드러냈고, 붕당을 미워하는 등 권선징악(勸善懲惡)에도 게을리하지 않았. 그가 죽자 당시 황제였던 덕종은 매우 슬퍼하며 5일 동안 조회(朝會)를 정지하고 백관(百官)들로 하여금 상례(喪禮)에 참석하게 하였으며, 경조윤(京兆尹)에게 장례일을 관장하게 하고 장례 도구를 지급하였으며 영구를 보내면서 손수 글을 지어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에게는 무려 1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그 중 이원(李愿)·이소(李愬)·이청(李聽)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세아들 중 이청과 관련된 일화를 하나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목종(穆宗)이 태자였을 때 이청은 우림장군(羽林將軍) 지위에 있었다. 이청에게는 좋은 말이 하나 있었는데 태자가 주변의 사람들을 그에게 보내어 말을 넘겨달라는 뜻을 은근히 전하였다. 태자가 누구던가? 바로 차기 황제가 될 인물이 아니던가? 웬만하면 그러한 태자의 부탁이니만큼 군말 없이 말을 넘겨줄 법도 하건만 그는 자기가 친군(親軍)을 거느리기 때문에 감히 말을 줄 수 없다며 거절하였다.
훗날 태자가 황제가 되었을 때 하동(河東)의 장수 자리가 결원이 생겼다. 여러 신하에 의해서 장수가 될 만한 사람으로 많은 이들이 추천되었지만 정작 황제는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하기를, “이청은 짐(朕)에게 말을 주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러니 이 직책을 필히 맡길 만하다.”라고 하고는 이청을 기용하여 썼던 것이다.
감히 태자가 요구하는 말을 주지 않았던 이청도 이청이려니와 그것에 혐의를 두지 않고 쓸 만한 인재라 하여 이를 등용한 목종 또한 보통내기가 아니다. 어찌 보면 위와 같은 상황에서 태자가 설령 요구하지 않았을지라도 먼저 찾아가 말을 바치며 아부할 법도 하건만 이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게다가 요구해오는 말을 거절까지 하였으니 보기에 따라서는 괘씸죄(?)에 걸릴 수도 있는 위험을 감수했다고도 할 수 있다.
대부분 적당히 시세를 따르며 약삭빠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출세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그러한 것들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였음을 알게 된다. 누가 알아주고 알아주지 않음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옳다고 여기면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고 꿋꿋이 지켜낼 때 그들이 바로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됨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이준환의 편의점 이야기 20: 이준환·36회·(주)제이탑컴퍼니 대표이사
직원과 손님의 호흡
노트를 활용하라
우리는 작은 공간의 점포에서 근무한다. 그렇기에 누가 들어오는지, 어느 상품을 사러 왔는지 다 보인다.
음료를 사러 왔는지, 라면을 사러 왔는지, 김밥을 사러왔는지, 점포에 들어온 뒤 1분이면 다 파악할 수 있다.
고객은 본인이 사려는 상품이 없으면 카운터에 물어본다.
“OO 없어요?”
“OO 한 개 더 주세요.”
“죄송해요. 현재 결품입니다.”
“죄송해요. 거기 있는 게 다네요. 더 필요하신가 봐요?”
이런 대화가 오간다.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대화를통해 알아갈 필요가 있다. 편의점은 24시간 영업하는 업태이다. 주인인 내가 24시간을 근무할 수 없다. 최소한 2교대, 많게는 3교대를 해야 한다. 쉬는 날까지 더하면 같은 곳에서 근무하는 직원도 2~3일 못 볼 때도 있다. 우리 점포에서는 야간근무를 내가 직접 하지 않지만 매출은 그 시간 때가 제일 높다. 도대체 뭘 사 가는 거지?
무엇이 부족한지 알 길이 없다. 그래서 점포의 전달 노트 활용이 다른 업태보다 더욱더 중요하다.
우리 점포 바로 옆에 술집이 있다. 이 집은 멤버십으로 운영하는 강남에서도 유명한 고급 룸살롱이다. 오랫동안근무를 하다 보니 룸살롱의 기도와 친해졌다. 처음에는두려움에 아는 척을 못 했는데 시간이 지나 대화를 하다보니 옆집 아저씨 같았다. 우리 점포에 늘 와서 김밥이나 담배 외에도 많은 물건을 구매했다. 소중한 단골 고객인 것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기도 하지만 주변의 많은 경쟁점을 가지 않고 우리 매장을 찾아주니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하고 근처에서 친구들과 만나 맥주 한잔하고 지나가는 길에 다른 편의점에서 나오는 덩치 큰 남자를 봤다.
‘뭐 다른 데도 이용하겠지.’
그렇게 좋게 생각하고 그날은 그냥 지나쳤다.
며칠 후 난 그 아저씨와 음료수를 함께 마시게 되었다.
아저씨의 무용담을 열심히 들었다. 조직이 어떻고, 자기보스는 어떤 사람이고, 별로 관심 없는 얘기들…, 한참 듣다가,
“지난번 보니까 저쪽 OO 편의점에서 뭐 사 오시더라 고요, 우리 점포에 뭐가 없었나 봐요?”
“아! OO 양주 몇 병 샀지요. 여기 없더라고요. 몇 번 야간근무자들에게 얘기했었는데….”
그 룸살롱은 밤에 영업을 하고, 나는 거의 낮에 근무하기 때문에 그와 마주칠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는데 오늘은 그 아저씨(일명 기도)가 영업 시작 전 좀 일찍 나와서 준비하는 까닭에, 나와 잡담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듣고 보니 이런 이야기였다.
“OO 양주가 가끔 떨어질 때가 있어서, 또는 독특한 양주를 찾는 고객이 있어서, 그럴 때 OO 편의점에서 사다가 그 손님한테 판다고.”
와우! 양주가 한 병에 얼마인가? 그것도 5~6병이면….
우리는 양주를 취급하지 않았다. 잘 팔리는 상품도 아니고 워낙 고가라 가지고 있다가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난처한 일이어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었다니, 전달만 해 주었어도 내가 듣기만 했어도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어마어마한 기회 로스(loss)가 생긴 것이다.
저녁 근무자들은 모두 아르바이트생이다. 자기 장사도 아니니 그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흘린 것이다. 어린 아르바이트생들이 느끼기에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오는 손님에게만 친절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누구를 탓하겠는가? 내 잘못이다. 노트는 만들어놓았지만 어떻게, 어떤 때에 작성하라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혹시 손님이 찾는 것이 있는데 점포에 없으면 꼭 적어놔라.”
우리는 이렇게 노트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제는 근무자별로 많은 정보를 쏟아낸다.
“점장님, 오늘 OO김밥이 5개 들어왔는데 오자마자 독서실 총무가 다 사 갔어요. 내일 또 사 간다네요. 발주 좀 증가시켜주세요.”
사소하지만 이런 것이 중요한 정보다.
그 뒤로 별 내용이 아니더라도 무조건 한 줄은 쓰라고한다.
“점장님, OO과자 유통기한 얼마 안 남았어요.”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정보이다.
이제, 이 전달 노트는 다음 점장 또는 점주한테 우리점포의 메뉴 이력과 비결을 전달해 주는 Guide book이
될 것이다.
이 노트 하나면 인수인계는 다 되는 거 아닌가?
돈 주고도 절대 살 수 없는 귀한 정보 노트!
“바쁘시겠지만 퇴근 전 반드시 자기 근무시간에 있었던 일을 메모 해주세요.”
아침에
윤만근(13회)
내 나이 팔순
아침 외출 길
휴대폰 챙긴다는 것이
TV 리모컨을 손에 들었네
한참을 우두커니 서 있다
내가 왜 이러지
걱정이 앞선다
아내는
맞벌이하는 막내딸
외손자 돌봐준다고
미국에 있는데
어제 전화에
온몸이 아프다고 하소연하는데
당신 나이 77세
무리하지 말라는 말밖에 할 수 없네
서로 모르던 사이
우연으로 만나서 필연이 되어
고생 속에 아이들 키우느라
돌아볼 수 없는 세월
다 보내고
이제 아픈 몸
서로 걱정하는 처지가 되었네
누가 나이 들어가는 아픈 아내
돌봐주겠나?
나라도 그나마 건강 챙겨야
늙고 아픈 아내
손잡고 걸을 수 있기를……
손에 쥔 TV 리모컨 슬그머니 내려놓고
영양제 한 알 입에 넣는 아침
번안가요 읽어주던 남자 : 정우성·22회·전 한화그룹 임원
28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같은 세상
조영남: 물레방아 인생
C.C.R: Proud Mary
세상만사 둥글둥글 호박 같은 세상 돌고 돌아
정처없이 이 곳에서 저 마을로 기웃기웃 구경이나 하면서
밤이면 이슬에 젖는 나는야 떠돌이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부슬부슬 비가 내리면 두고 온 내 고향 그리워져
눈물을 감추며 돌아서듯 순이는 지금은 무얼 하나
만나면 이별이지만 이별은 서러워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끝없는 세상길 가다 피곤한 몸이면 쉬었다 가세
나물 먹고 물마시고 들판에 누워 하늘을 이불 삼아 팔베개하면
사나이 가는 길에 부러울 게 없다네
돌고 도는 물레방아 인생
조영남
1945.3 일제강점기 황해도 평산군 출생.
한양대 성악과 중퇴, 서울대 음대 성악과 편입 및 중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이런 저런 얘깃거리가 많이 들려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조영남이다. 그가 부른 ‘내 고향 충청도’(곡조만 차용한 번안가요, 30편. ‘The Banks of the Ohio’ - OliviaNewton John)의 가사가 말해 주듯 한국전 중 중공군을 피해 1.4후퇴 때 온가족이 LST 미국 군함에 몸을 실어 충남 예산 삽교천, 삽다리로 피란해 어린 시절을 보낸다.
1968년 서울대 성악과 편입 후 등록금을 벌기 위해 학생 신분을 숨기고 ‘고철(高哲)’이란 예명으로 미군 쇼단에서 노래를 불렀다.
이때 입수한 Tom Jones의 ‘딜라일라(Delilah)’라는 곡에다가 대충 번안한 작사 노랫말을 붙이고 작곡가 김인배가 편곡까지 해주어 이 노래로 1969년 조영남은 가수로 화려하게 데뷔한다.
서울대학교를 자퇴하고 음악 감상실 세시봉에서 이장희, 김세환,김민기 등과 음악 활동을 하며 주로 번안가요 ‘고향의 푸른잔디’, ‘제비’, ‘내 생애 단 한번만’ 등을 불렀다. 하여간 조영남 본인의 노래는 ‘이일병과 이쁜이’, ‘화개장터’밖에 생각이 나지 않는데 남의 노래와 옛 노래로 끈질긴 가수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한편 한창 때 세시봉에서 인연을 맺은 탤런트 윤여정과 1975년 미국 시카고에서 결혼하여 아들 둘을 낳았으나 성격 차이에다가 가정에 충실하지 못한 자유분방한 조영남을 보다 못해 결혼 13년 만에 이혼한다. 그 후 1995년 백은실과 결혼하고 딸 조은지를 입양하면서 가정을 다시 꾸렸지만 그것도 실패한 듯 지금은 딸 하고만 생활하고 있고 가수 외에 화가로, 라디오 MC로, 책을 쓰는 작가로, CF 광고 등 얼굴의 주름만큼이나 끊임없이 어수선하고 굴곡 많은 인생을 살고 있다.
조영남은 재혼이 다시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뭔가에 홀린 듯 세상을살면서 어수선하게 일을 늘어놓고 또 거창하게 벌려 놓고는 거품이 많은 용두사미(龍頭蛇尾)로 깔끔한 마무리를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아쉽다.
2017년에는 무명화가 2명이 그린 그림을 10만원 남짓의 적은 비용을 지불하고 평균 80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 재판매(2011년 발표한 ‘호밀밭의 파수꾼’ 등 20여점을 10여 명에게 1억6천만원에 판매함)
하는 그림 대작(代作) 사기의 혐의로 기소됐다.
현대예술에서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물리적인 실행은 다른 이에게 맡기는 게 미술계의 암묵적 관행이라고 하는 조영남 측의 주장과는 달리 검찰 형사부는 협업과 대작(代作)은 구분해야 한다며 그를 기소했다. 조영남에 대한 여론이 싸늘하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에서 2020년 6월 25일 “조수의 도움을 받는 미술계 관행을 법적 처벌대상으로 다루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결로 무죄로 풀려났지만 미술계의 반응은 찬반이 크게 엇갈렸다.
C.C.R : Proud Mary(1905년 건조된 증기선 이름)시골에서 도시로 돈 벌러 나간 노동자는 낮이고 밤이고 허드렛일을
했다. 어찌나 주인이 일을 독려하며 들볶던지 마음 편하게 잠 한 번 잘 수도 없었다.
직장을 옮겨 다니기를 여러 번. 지금 미시시피강이 흐르는 멤피스에 와서 궂은일 하던 중에 마침 Proud Mary 배를 얻어 탈 수 있었다.
증기선에는 커다란 굴뚝이 높이 솟아 있고 배 뒤쪽에는 커다란 물레방아 같이 생긴 프로펠라 Big Wheel 이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다.
촌놈이 처음으로 강 위를 달려보는 상쾌함과 또 그 배에 같이 타고 있는 사람들의 후한 인심을 보며 도시에는 또 이런 살만한 맛이 있기도 하구나 하고 후련함을 느낀다.
그래서 배를 향해 “Proud Mary야 달려라 달려” 하며 “rolling rolling”을 외쳐댄다. (출처. oscalc님의 블로그 팝송과 영어 문법.proud mary 편)
“렙트 어 굿 잡 인 더 씨리, 워킨 포 더 맨 에브리 나 랜 데이(Left a good job in the city Workin for the man every night and day) 롤~
링 롤~링 롤~링 온더 리버(Rolling rolling rolling on the river)”
그들이 부른 노래가 한 소절 귀에 스쳐가는 것만으로도 어느덧 세상을 한 바퀴 주파한 우리들 몸인데도 그만 움찔거리는 불기운이 지펴지고 한창 때인 1960-1970년대로 단박에 돌아간다.
왜냐고? 거기 에는 우리가 머물렀던 수많는 혼과 추억이 고스란히 남겨져 있는 곳이니까! 그 혼을 만나러 다시 갑니다.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 더렵혀진 물을 정화해서 재공급한다는 뜻) 의 리더 존 포거티 John Fogerty (1945년 캘리포니아 버클리 출생)를 중심으로 캘리포니아주 앨 체리토 중학교 어린 학생들이 <The Blue Velvets>이라는 록 그룹을 만들어 음악 활동을 시작한다.
실력을 쌓고 지방에서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싱글을 발표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다가 1968년 그룹명을 C.C.R.로 바꾸고 데뷔를 하는데, 앨범에 데일 호킨스의 곡을 개작한 ‘Suzie Q’가 1위로 히트하면서 상승기류를 탄다.
그 후 C.C.R 은 1972년 존 포거티의 우월성과 지배욕으로 멤버들 간에 갈등을 불러일으켜 해체되기까지 4년 남짓 사이에 엄청난 히트곡으로 인기몰이를 하며 짧고도 굵게 음악사를 장식한다.
그 짧은 활동기간에 각종 상을 휩쓴다.
•1969년 빌보드지 올해의 Top Single 아티스트상
•롤링 스토운지 최우수 아메리카 밴드상
•1970년 빌보드지 최우수 앨범 아티스트상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지 최우수 팝그룹상
•레코드 미러지 최우수 남성팝그룹 상 등...
폭발하듯 힘차고 울분을 토해 내는 열기는 당시 유행하던 GoGo 음악으로는 최고여서 젊은이들이 모이는 곳이면 한 곡만으로도 분위기를 확~ 바꿔 놓았다. 춤을 잘 추든 못 추든 상관없이 흔들어 댔으며흐트러진 모습이 더욱 아름다웠는데, 부수적으로 청춘남녀의 사랑을 빠름 빠름으로 진전시켜 줘 ‘+ 알파’도 많았다.
‘Proud Mary’는 1905년에 만들어진 증기선(蒸氣船)의 이름이다.
한편 C.C.R은 월남전 반전 운동에도 동참한 그룹이다.
•‘Have you ever seen the rain?’(이런 비를 본 적이 있나요?)
•‘Who’ll stop the rain’(누가 이 비를 멈추게 할 것인가?)에서
rain은 비행기에서 밀림을 말려 죽이려고 고엽제를 살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C.C.R.은 Rain 관련 노래 외에도 ‘Hey Tonight!’, ‘Cotton Fields’,‘Molina’ 등 고고 리듬의 유행을 만들며 당시 젊은이들에게 노래만 틀어지면 몸을 들썩거리게 했고 전국의 ‘고고장’ 무대에는 그들의 노래가 독점을 했다.
이들은 1995년 12월 내한공연을 해 로큰롤과 고고춤 향수를 다시들려줬다.
명사대국13 - 백: 춘천고 vs 흑: 박정호(24회), 강병두(27회), 이석희(30회)
제18기 YES24배 고교동문전(3국)
이번 달 명사 대국은 5월 24일 왕십리 한국기원에서 열린 제18기 YES24배 고교동문전 16강전 춘천고와의 경기 중 세 번째 대국인 릴레이 대국을 소개합니다,
돌을 가리니 모교의 흑번으로, 모교 1장 강병두(27회) 동문이 출전하여 좋은 흐름을 차지하고자 하였다. 백 36은 41자리가 정수. 백58은 악수 교환. 그냥 60자리로 두었어야 했다.
흑 61까지는 흑이 완벽한 초반 진행으로 흑이 많이 편안한 흐름이다. 흑 63은 그냥 75자리로 두는 것이 좋았다.
흑 77, 79는 155자리가 큰 자리, 흑이 편한 흐름에서 급하게 난전이 되었다.
모교 2장은 이석희(30회) 동문의 활약 시간. 흑 89는 90자리로 씌워가는 게강력했다. 백 100은 164로 우하귀 흑돌을 추
궁하는 곳이 좋았다. 백 108은 110자리가 정수. 흑 109가 찬스를 놓친 수, 116으로 먹여쳐서 패를 걸어갔다면 백이 곤란했다. 흑 113은 114, 113, 117 수순으로 두어갔으면 여전히 서로 어려운 난전이었다. 백 118~132
까지의 수순이 좋게 곤마가 타개가 되어서는 백이 우세를 잡았다.
흑 143으로는 182자리로 하변 백돌을 계속해서 공격하는 것이 좋았다.
백 148까지 흑 진영이 깨지면서 타개가 되어서는 흑이 덤이 부담스러운 형세가 되었다. 백 164는 166자리로 먼저 흑돌을 추궁했으면 흑이곤란했다. 흑 211은 241자리, 흑 223은 224자리로 끝까지 패를 버티면서 두었어야 했다. 백 224로 패가 해소되어서는 백의 승리가 확정되었다. 모교 3장은 박정호(24회) 동문이 많이 추격하였으나 격차를 줄이지 못하고 10집 반 패를 당하며 내년을 기다리게 되었다.
착점 위치: 백12→253자리. 흑63→224 왼쪽 옆자리. 흑65→63 왼쪽 옆자리. 백92→101 왼쪽 옆자리. 백110→103 왼쪽 옆자리. 흑111→116자리.흑121→65 왼쪽 옆자리. 흑123→316자리. 흑141→221자리. 백154→299
왼쪽 옆자리. 백158→171 왼쪽 옆자리. 백164→167 왼쪽 옆자리. 백174, 188, 194, 200, 206, 212, 218→333자리. 흑177, 191, 197, 203, 209,215→221자리. 백186→326자리. 백192→241 왼쪽 옆자리. 백204→49 왼쪽 옆자리. 흑213→214 왼쪽 옆자리. 흑219→228 왼쪽 옆자리. 흑225,
229, 235→241자리. 백226, 232, 238→187 왼쪽 옆자리. 백230→231 왼쪽 옆자리. 흑233→317자리. 흑239→240 왼쪽 옆자리. 흑243→328자리.흑247→293자리 백248→320자리. 백254→319자리. 백268→181자리. 흑289→320 왼쪽 옆자리. 백290→321자리. 흑291→325자리. 흑295→184 왼쪽 옆자리. 백322→327자리. 흑323→202 왼쪽 옆자리.
해설 허 진 프로 6단 , 글 정리김 원석(32회), 기보 작성 허 경일(27회)
형제결연, 장학기금 협찬 동문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학력증진비로 장학금 지원 지속
2025년도 1월~8월
형제결연 참여 동문(동문회)
행사소식
3회 동창회 정기 모임
3회 동창회 7월 정기모임이 지난 7월 22일 화요일 오후 1시 종로3가
국일관 이대감집에서 8명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맹위를 떨치는 더위에 건강 잘 유지하자는 다짐과 함께 8월 정
기 모임은 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으니 쉬고 9월 정기 모임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였다사. 진1,
회장 박돈서 010-2821-4110 총무이사 이윤호 010-8266-4257
14회 미주회장에게 공로패 전달
14회 동창회 장기홍 회장은 지난 7월 12일 토요일 시카고 유창성 동
기 자택에서 지난 6년(2019~2024) 동안 미주 동창회장직을 수행하며
미주 지역 14회 동문 친목을 위해 애쓴 신광식 회장에게 공로패를 전달했
다. 이날 전달식에는 미주 14회 동창회 임원들이 함께하여 신 회장을 축
하하였고, 신임 나수명 회장의 건배를 통해 흥겨운 시간을 만들었다사진. 2
회장 장기홍 480-385-8662
총무이사 고동근 010-8772-7269
17회 동창회 보신 산행
17회 동창회에서 지난 7월 31일 목요일 청계산에서 매년 실시하는 보
신 산행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는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청계산
을 등산하고 인근 매봉산장에서 65명의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삼복더위
를 이기기 위해 오리백숙과 닭백숙을 함께하며 오랜만의 반가운 만남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사 진3
회장 강찬구 010-2059-7141
총무이사 조승현 010-7686-3878
18회 동창회 3차 정기 모임
18회 동창회 2025년 3차 정기 모임이 지난 7월 18일 금요일 낮 12시
명동에 있는 아미소에서 46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열려 오찬을 함께하
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삼겹살을 주 메뉴로 연일
37도에 육박하는 더위를 잘 이기자고 다짐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9월 모
임에서 만나자고 다짐했다. 사진4
회장 이희명 010-5383-6662
총무이사 김주호 010-3785-1679
19회 동창회 보양 행사
19회 동창회에서 보양 행사를 지난 7월 31일 목요일 낮 12시 장암 공
주집에서 45명 회원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하였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최
고치를 경신하는 무더위를 함께 이기자는 다짐과 함께 보양식을 함께하
며 즐거운 시간을 만들고 김익기 회장은 “오늘 보양식으로 한 해 건강하게
보내기를 기원합니다”라고 건배사를 선창했다.사 진5
회장 김익기 010-3958-4547
총무이사 정광필 010-2662-5764
31회 동창회 보신 행사
31회 동창회에서 지난 8월 16일 토요일 오후 5시 종로3가에 소재한
돈화문닭한마리 식당에서 회원 41명이 참가한 가운데 2025년 보신 행사
를 갖고 즐거운 시간을 만들었다. 이날 참석 회원들은 기상관측 이래 최고
를 기록한 폭염 잘 이겨내고 풍성한 가을을 맞이하자는 의미를 담아 건배
를 크게 외쳤다. 사진6
회장 윤창원 010-4919-2605
총무이사 이언구 010-3590-7669
동문동정 / 출판 /개인전
모임 탐방 강송69회-강동·송파 지역 20회 모임
맛있는 음식 함께 먹고 정담 나누는 모임
무더위가 한풀 꺾일 시간인 오후 6시 무렵이지만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날씨임에도 석촌역 2번 출구 앞 완도산회 송파 별관이 시끌벅적하다. 매월 둘째 월요일에 만나는 20회 강동구 송파구 동문 월례회가 있는 날이다.
이름하여 ‘강송69회’. 1969년에 졸업해서붙인 이름이다. 이번 정기모임에는 2명이 지각이다. 지각생 이름은 메모에 꼭 적는다.
지각은 노신사의 올바른 마음가짐이 아니기때문이다. 벌칙은 비밀이란다.
‘강송69회’ 첫 모임은 2001년 1월 19일 오후 7시 30분 길동사거리 인근 일식집 제주수산에서 모였으니 어느덧 25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당시 모임을 만들며 돌린 안내문이 재미있다.
「50여 명이 넘는 용두열이 같은 동네에 살거나 일하고 있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다 같이 모이지 못한 것 자체가 우리의 자존심을건드렸습니다.
우리 다시 만나 옛 고교 시절로 돌아가, 젊어져 보고 더욱 우리들의 건강도 되찾아봅시다.
우리들의 여러 가지 지혜를 모으고 옛정을 더욱 돈독히 하여 상부상조하는 마음으로 하나로 뭉치고 힘을 키우려 합니다. 그러기 위하여아래와 같이 그 첫 번째 만남을 정하였습니다.」
당시 모임을 주선한 창단 준비위원이 김천배 김광출 조장혁이었고 초대회장에 김광출, 총무에 김천배가 선임되어 25년의 역사를 쌓으며 만남을 이어왔다.
유종현 회장은 “만나면 좋은 우리들입니다. 할 얘기는 별로 없어도 얼굴만 봐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저 맛있는 음식 함께 먹고 정담 나누는 모임이 ‘강송69회’입니다.”라고 얘기한다.
최장수 총무로 활약 중인 김천배 동문은 “장독대 뚜껑에 담아내온 시원한 물회에 멍게, 해삼, 전복, 숭어 등 여러 가지 해산물을 섞어서 냉면 사리까지 넣어 먹으니 무더위가 싹 가시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광어회에 초밥까지 먹으니 맛이 그만입니다”라고 얘기하며 “이정도 안주면 술을 많이 먹을 만한데 예상보다 적은 소주 8병을 먹었습니다”라며 세월이 흘러 “이제는 다들 몸을 사립니다”라고 예전과 달라진 모습이라고 얘기한다.
9시 전에 1차 모임을 끝내며 유 회장의 “자주 만남을 통해 자신의 얘기를 털어놓읍시다. 그리고 감사할 말만 있으면 즐거움이 따릅니다”라는 종례 말씀을 듣고 대부분은 귀가를 하지만 몇몇은 2차로 근처 맥주집에서 치킨+뱅이, 감자튀김을 안주로 못다한 얘기꽃을 피우는 모임이 유쾌하게 즐거운 20회 ‘강송69회’ 모임이다.
글 박만흠·29회·편집위원장
총동창회 연회비제(5만 원) 참여는
총동창회 운영을 건실하게 하는 최선책입니다
총동창회 연회비 납부 현황
(2025년 7월 31일 기준)
입금동문수: 1위 27회 / 참여율: 1위 / 12회 총액: 1위 11회
개인 연회비는 동창회와 모교 발전의 원동력
- 동기회에는 동기회비, 총동창회에는 총동창회 연회비
연회비(5만 원 이상) 납부
지로용지 또는 은행계좌: 국민은행 055237-04-005315 용산고등학교동창회(성명,횟수 기재바랍니다)
해외 동문 연회비 납부
개인수표를 이용하여 동창회 사무실로 우편발송 바랍니다.
Pay to: Yongsan High School Alumni Association 기재
우편물이 동창회까지 제대로 전달되도록 주소를 한글로 명확히 기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주소는 38쪽 참조
해외 동문을 위한 외화예금 계좌
(입금 시 입금자 이름과 회수 꼭 기재 바랍니다. 예: 홍길동15)
은행명: KEB Hana Bank
계좌번호: 350-910002-38638
예금주: YONGSAN HIGH SCHOOL ALUMNI ASSOCIATION
은행코드: KOEXKRSE
은행주소: 296, Hangang-daero, Yongsan-gu, Seoul, Korea, 04352
은행전화: 02-75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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