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우크라이나 서부 도시 르비우의 한 광장에는 유모차 109개가 줄지어 서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유모차는 비어있었어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지 어언 한 달 여, 르비우 광장의 빈 유모차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무참히 생명을 빼앗긴 작은 천사 109명의 삶을 상징합니다.
지금까지 4차례에 걸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했지만 합의점을 도출해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는 동안 러시아는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실전에 배치하며 민간인 대피 시설까지 집중 포격을 가했습니다.
유엔 인권 사무소는 개전 일인 2월 24일 오전 4시부터 한 달이 지난 3월 23일까지 목숨을 잃은 민간인이 977명이라고 밝혔습니다. 그 중 아이들은 81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건 집계된 인원일 뿐 실제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또한 전쟁으로 살던 곳을 떠난 난민의 수가 불과 한 달 만에 360만 명을 넘었다고 발표했습니다.
르비우 광장에 빈 유모차를 보니 한 권의 그림책이 떠올랐습니다. 바로 꾸준히 전쟁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작품을 발표한 로베르토 인노첸티의 <에리카 이야기>입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전쟁 중이었고 그래서 '살았다'기보다는 '지냈다'는 생각이 든다. 좋은 기억이 없다.
1940년에 태어난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이탈리아 플로렌스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어요. 2차 대전 후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불과 13살의 나이로 제철소에서 일을 해야 했지요. 그의 첫 작품은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백장미>입니다.
<에리카 이야기>는 루스 반 더지가 글을 썼습니다. 루스 반 더지는 '어린이에게 삶의 진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는 베트남 전 등 세상의 진실을 알리는 데 주력합니다.
열차에서 던져진 아기
이야기는 2차 대전이 끝나고 50년이 지난 때부터 시작됩니다. 작가 부부가 우연히 만난 중년의 여인 에리카가 그 주인공입니다.
나는 1944년 어느 때 쯤엔가 태어났습니다. / 나는 생일을 모릅니다. / 나는 아기 때 이름도 모릅니다.
죽음의 수용소로 가는 도중 기차 밖으로 내던져진 아이, 1933년에서 45년 사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60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이 '총살을 당하거나, 굶주려 죽거나, 화덕에서 불태워지거나, 가스실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다행히 목숨을 보존한 아기, 그런데 바람 부는 날 지나가는 기차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소녀의 뒷모습에서 바람 같은 그녀의 삶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사실적인 그림체에 충실한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마치 한 편의 다큐처럼 그 날의 이야기를 재구성합니다. 과거의 그 날은 모두 흑백으로 표현됩니다. 사람들은 짐짝처럼 가축용 화물차에 실립니다. 하지만 그림책에서 그들의 얼굴을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들을 호송하는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표정을 알 수 없는 그들의 뒷모습, 열차에 실린 하반신이 외려 전쟁의 비극성을 더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그렇게 흑백 사진 속의 한 장면처럼 달려가는 기차, 그런데 그 기차에서 분홍색의 꾸러미가 던져집니다. 바로 에리카입니다. 이후 에리카의 이야기는 색을 찾습니다. 비록 바람을 하염없이 맞으며 달려가는 기차를 바라보지만 그녀의 삶은 생명의 색 속에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종'을 말살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나치의 망상, 그런데 로베르토 인노첸티는 색을 잃은 흑백의 화면 안에서 화물차에 실려 가는 유대인들의 가슴에 노란 별을 빛나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그 빛나던 별은 이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중년의 에리카 목에 '다비드의 별' 목걸이로 여전히 빛나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나의 별은 아직도 빛나고 있습니다'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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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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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동안 간직한 여름방학 숙제
전쟁의 참화 속에 가족을 잃은 또 한 명의 소년이 있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입니다. <에리카 이야기>도 그렇고,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 도 그렇고 '실화'에 바탕을 두고 작품화한 그림책이기에 그 울림이 더 큽니다.
1939년 당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스키빈스키는 여름방학 숙제로 일기 쓰기를 해야했어요. 소년은 그날 그날 일어난 일을 공책에 하라는 대로 딱 한 문장 씩 적었어요. 그래야 2학년에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마지 못해 한 문장씩 적어가는,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간 아이의 모습이 떠올려져 미소가 지어지지요?
그림책은 당시 일기의 질감을 그대로 살려내면서 소년이 쓴 일기의 내용을 묵직한 유화의 풍경으로 되살려 냅니다. '교회에 갔다', '시냇가에 갔다'라는 단 한 줄이 풍성한 인상파의 화풍으로 다가옵니다.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라는 제목에 걸맞는 서정적인 풍경들이죠.
하지만 그 서정성은 그래서 더욱 전쟁의 아픔을 실감나게 합니다. 그림책에는 끝내 인물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왔다'는 날에는 숲 속 공터에 오롯이 비워진 빈 벤치가 그려져 있습니다. 아버지가 왔는데 그래서 더욱 아버지의 빈자리가 다가오는 풍경입니다.
단 한 줄씩 썼던 일기, '1939년 9월 1일 전쟁이 시작되었다'에 이은 마지막 장면에는 그 한 줄마저 없습니다. 대신 파란 하늘과 푸르른 녹음이 짙어지던 여름의 폴란드는 검은 폭염에 뒤덮이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8월 29일 스키빈스키가 만난 아버지, 하지만 그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조종사였던 아버지는 9월 9일 전사했습니다. 전쟁을 목도하고 그 전쟁에서 아버지를 잃은 소년 미하우 스키빈스키는 훗날 신부님이 되었습니다.
신부님이 고이 간직하던 80년 전의 일기는 조카에 의해 젊은 화가 알라 반크로프트에게 전해졌고, 볼로랴 라가치 상을 수상하는 그림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그림책을 통해 21세기의 우리들도 그 시절 폴란드에서 벌어진 전쟁의 비극을 공감할 수 있게 되었지요.
<에리카 이야기>와 <아름다운 딱따구리를 보았습니다>는 전쟁의 참화를 겪은 두 아이의 이야기를 다루었습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흐르고, 러시아의 일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 과정에서 사람들은 다시 한번 2차 대전을 떠올린다고 합니다. 도무지 말도 되지 않는 '논리'로 밀어붙인 전쟁의 피해는 그림책에서도 그렇지만, 고스란히 그 지역에서 평화롭게 살던 이들에게 닥칩니다.
특히 보호받아야 할 아이들은 전쟁 속에서 '보호'의 손길을 잃고, 때로는 목숨마저 잃습니다. 여전히 세계는 전쟁 중입니다. 부디 아이들의 생명이, 그들의 가족이 지켜지기를 바랄 뿐입니다.
첫댓글 전쟁의 아픔..
부디 아이들의 생명이, 그들의 가족이 지켜지기를.
그림책이 보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