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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밖의 양들을 찾으라
요한복음 10:16~18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느니라 하시니라”(요 10:16~18)
오늘 주일 예배에는 우리가 지난 지지난 주일과 지난 주일에 살펴보았던 본문 말씀을 다시 한번 잠시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바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님이 증거하시는 말씀의 전체 맥락을 보면 이 부분의 언급하신 내용이 좀 갑작스럽게 꺼낸 주제같이 느껴집니다. 이 말씀은 안 꺼내면 더 흐름이 매끄러울 터인데도 예수님은 이 말씀을 일부러 꺼내어 말씀하심으로써 이 점이 더 두드러지게 강조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만큼 이것이 예수님의 마음속에 깊이 오랫동안 간직했던 그의 가르침의 주제였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선한 목자 예수님은 항상 이미 자기의 우리 안에 있는 양들뿐 아니라 우리 밖에 방황하고 있는 다른 양들까지도 다 이끌어들여서 그가 돌보셔야 한다는 간절함이 마음에 한 가득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밖의 양들’은 당시 말씀을 듣고 있는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유대인이 아닌 다른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 가운데 자기가 이미 택하신 자기 양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방인들도 인도해서 하나님 백성의 양 우리 안에 이끌어 들이며 양의 문이신 예수님 자신을 통하여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들고 날며 꼴을 얻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는 은혜를 누리게 하시고자 바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구약 선지자들을 통하여 예고된 메시야의 언약 말씀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눈먼 자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내며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이사야 42:6)
장차 오실 그리스도는 단지 이스라엘과 유다 가운데에서만 그의 백성을 건지고자 오시는 것이 아니요 이방의 빛이 되어 이방인 곧 영적으로 눈멀고 옥에 갇히고 흑암에 앉아 있는 이방인들도 그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여 구원하시러 오실 것이라고 예언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약속대로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지만 그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고 함께 이웃의 어린아이들과 함께 자라나며 청소년과 청년기와 장년기를 함께 지내면서 보고 호흡을 같이 하였던 사람들은 갈릴리 나사렛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갈릴리 나사렛은 거의 이방 지역과 흡사한 곳이었습니다. 이는 구약 성경 이사야 9장 말씀에서도 이미 예언된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사야 9:1 이하에 보면, 그리스도가 이곳에서 사역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 나와 있습니다.
“전에 고통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전에는 여호와께서 스블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쫓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이는 그들이 무겁게 맨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이 불에 섶같이 살라지리니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자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이사야 9:1~7)
이 말씀을 보면 명백히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자라났고 훗날 구원 사역의 주 활동 무대로 삼았던 납달리와 스불론 지역인 갈릴리 해변이었던 점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바로 그 갈릴리 지역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거의 섞여 살고 있던 지역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방의 갈릴리라고 이사야 선지자도 예언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사역이 유다와 예루살렘에서도 일하셨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갈릴리의 수많은 동네와 성읍들을 두루 다니면서 진리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방인들과의 혈통적, 문화적 경계를 친히 넘어 가셔서 그들과 직접 대면하면서 전도하시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어쫓는 일들을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에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혼혈 족속이었던 사마리아 지역에도 친히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고 그들 가운데 구원 얻을 자들을 찾으셨습니다. 또 당시 언어와 문화의 한계 밖에 있는 이방인들인 두로와 시돈과 데가볼리와 베뢰아 지역 곧 지금의 레바논과 시리아와 요르단 사람들이 살고 있던 이방인들에게까지 몸소 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주고 이적을 베풀어주셨으니, 그들도 유대인들에게처럼 동일하게 예수님의 이름을 알고 구원의 길에 들어서도록 친히 초대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보았듯이 예수님께서 자신을 선한 목자로 비유하시면서 그의 양들이 단지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우리 밖 이방인들 중에도 그가 이미 택하신 이방인 양들도 많이 있다면서, 그는 그들을 위해서도 자기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을 강조하여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피 흘려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영원히 죄와 저주와 사망과 영벌에서 완전하 구원해내고자 한 양들에는 이렇듯 우리 안에 있는 양들인 유대인만이 아니라 이방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본격적으로 밝히면서 우리 밖에 있는 양들에게까지도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복된 소식을 전파하라는 명령을 강력하게 부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은 승천하기 전에 이렇게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사도행전 1:6~9 말씀에 보면 이렇게 그의 승천 직전 마지막 당부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시더라”
여기서 예수님은 이제 세상을 떠나시면서 자기의 제자들에게 장차 하늘에 올라가 성령을 보내실 터인데, 그들은 이제 성령을 받으면 영적 권능을 받아 예루살렘과 유다를 넘어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곧 온 세상 모든 이방인들에게까지도 예수님을 증언하는 증인이 되라고 명령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그의 지상의 마지막 명령에서도 예수님의 중요한 관심사가 두드러지게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밖에 있는 그의 양들을 찾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명령을 받아 사도들이 이방인들에게 곧장 전하는 일에 착수했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문화적 혈통적 폐쇄성이 매우 강력해서 이방인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거의 하지 않고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의 유대인들 내부에서만 활동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들어 쓰신 섭리적인 도구가 사울이라는 젊은이였습니다. 이 바리새인 청년 사울이 바로 나중에 사도 바울이 되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울이라는 청년이 예루살렘 안에만 거의 수만 명 가까이 모일 정도로 부흥된 예루살렘 초대 교회를 사도들 외에는 남아 있을 사람이 없을 만큼 무자비하게 박해하였습니다.
그 결과 흩어진 사람들 중에 빌립 집사님은 사마리아 성에 들어가서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열매를 맺었고, 연이어 해변 도시들을 전도하여 많은 영혼들을 건지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또한 흩어진 사람들 중에 일부는 지금의 시리아 수도인 다메섹까지 가서 교회를 세웠고, 또 일부 성도들은 더 멀리 안디오크스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여 그곳에 큰 규모의 이방 교회가 세워지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바로 이 안디옥 교회는 훗날 바나바와 핍박자 바울이 변화되어 사역하다가 이방 지역 선교를 위한 교두보 역할을 하는 이방 선교의 중심 교회가 됩니다. 이처럼 유대인 교회는 본래 이방인 전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유대인들에게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사울의 핍박으로 성도들이 흩어져서 산지 사방에 복음을 전하여 이방인들까지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양우리 안으로 인도해들였습니다. 또한 성령께서는 사도 베드로를 억지로 강권하여 이방인 로마 백부장 고넬료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시고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말씀 도중에 이방인들에게까지 강림하여 이방인들도 동일하게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 들어오도록 일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나바와 사도 바울이 안디옥 교회에서 평안히 목회하고 있는 중인데, 성령 하나님께서 그들을 직접 불러서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시고 그들로 지중해 여러 섬들과 터어키 지역과 바다 건너 그리스와 일루리곤 곧 지금의 알바니아, 세르비아가 있는 지역에까지 올라가 복음을 전하고 로마 제국의 심장부 로마 시에까지 가서 복음을 강권적으로 전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방 선교는 제자들의 주도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강권적이고 주권적인 개입으로 이루어진 일이라는 것을 사도행전이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만큼 삼위일체 하나님의 관심사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구원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역시 오늘 주님께서 그토록 자기 목숨을 버려서 구원하신 이미 우리 안에 들어온 자기 양들 뿐 아니라 아직도 우리 안에 들어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을 찾아내어 구원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신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야 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선한 목자 하나님의 마음은 잃은 양을 찾지 못한 탄식과 아픔으로 나타납니다. 에스겔서 34:4 이하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그 연약한 자를 강하게 아니하며 병든 자를 고치지 아니하며 상한 자를 싸매 주지 아니하며 쫓기는 자를 돌아오게 하지 아니하며 잃어버린 자를 찾지 아니하고 다만 포악으로 그것들을 다스렸도다 목자가 없으므로 그것들이 흩어지고 흩어져서 모든 들짐승의 밥이 되었도다 내 양 떼가 모든 산과 높은 멧부리마다 유리되었고 내 양 떼가 온 지면에 흩어졌으되 찾고 찾는 자가 없도다”
실제로 저 세상에 보면, 많은 영혼들이 우리 안에 보호받지 못한 채 전도 한번 받지 못한 채 진리를 몰라 죽어가며 유리 방황하다가 이단 사이비에게 걸려서 그 영혼이 죽어가고 세상으로 다시 돌아가서 그 영혼이 도적질당한 상태로 지내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우연히 한 분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자기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김노아라는 사이비 목사를 따르는 사이비 신자였습니다. 김노아 혹은 김풍일이라는 목사는 서울에서 목회하는 사람인데, 그는 자신이 보혜사라고 주장합니다. 사람들이 성경을 깨달은 자기에게만 인침을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문선명이나 이만희와 같은 이단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흡사합니다. 김노아라는 이 사람은 그 외에도 많은 황당하고 그릇된 성경 해석을 하는 자인데, 천안에도 그 목사를 추종하는 지교회가 있어서 그 영혼이 미혹당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과거에 군 생활하면서 교회 생활도 적잖이 오래 했던 사람인데, 몇 번 성경 말씀으로 권면해도 아무 소용이 없어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이처럼 유리 방황하는 영혼들이 세상에 참 많이 있습니다. 길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찾기를 원하시고, 그들을 양 우리 안으로 인도해서 주님이 그들의 선한 목자가 되어 저 천국의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그 품에 안겨 쉼을 얻기를 간절히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은 지금도 자기의 명령을 기억하면서 세상에 나가 잃어버린 양들을 찾아 주님께 돌이키는 일꾼들을 부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9:35이하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지상에 계실 때에 친히 전도에 열심을 다하는 중에 자기 제자들을 향하여 이렇게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 9:35~38)
그렇습니다. 주님이 지상에서 친히 전도하러 다니면서 추수할 곡식들은 지천에 있는데, 추수하는 일꾼들이 너무 모자라는 안타까움이 많았습니다. 열두 제자만으로도 부족하고 칠십인 전도대만으로 부족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회에 성령을 보내주시어 이제 예수님을 믿고 진리를 알고 성령받은 모든 성도들에게 이 영혼 추수의 복된 사역에 모두가 참여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 줄 믿습니다. 초대 교회 모든 성도들이 바로 이 일에 동참하였듯이, 지금도 길 잃은 양들을 찾아서 주님의 양우리 안에 모아들이는 일 곧 영혼의 세상 들판에 나가 무르익은 영혼들을 추수하여 주님 곡간에 모아들이는 일에 우리들 모두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먼저, 우리 자신이 복음 진리의 확신을 가지고 구원의 확신을 굳건히 가져야 하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살리려면 먼저 내 자신이 구원의 확신 위에 굳게 서야 함은 당연합니다. 지금 세상의 거친 탁류에 영혼들이 휩쓸려 내려가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같이 급류에 휩쓸려 내려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떠내려 가는 사람을 살리려면 급류 밖에 단단히 반석 위에 서서 구원 진리의 동앗줄을 물 위에 던져야 할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동앗줄을 붙잡을 때 그를 반석 위에 서서 힘을 내어 밖으로 끌어내야 그 사람을 살려낼 수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2:1~3 말씀에 이르기를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라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각종 종교와 이단과 사이비와 철학과 세상 관심과 세상 쾌락의 탁류에 흘러 떠내려 갈 때 우리들이 받은 큰 구원 곧 복음 진리를 등한히 여긴다면 지옥으로 빠르고 거칠게 흘러가는 사망의 물결에 떠밀려가는 저들을 어찌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들은 주님이 친히 말씀해주시고 그 말씀을 친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고 귀로 들었던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자들이 순교의 피로써 확증해주신 이 복음의 진리를 굳건하게 붙들고 그 위에 든든히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들은 항상 기록된 복음 진리에 굳건히 서서 요동하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과 죽은 자의 심판과 천국과 지옥과 장차 임할 하나님 나라의 복음 진리를 확실히 믿고 흔들리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이 터 위에 굳게 서서 흔들리지 않는 자만이 다른 영혼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신을 점검하고 내가 과연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는가, 그가 만민의 구주요 내 영혼의 구주요 그가 장차 만왕의 왕으로서 온 세상을 심판하실 자로 재림하실 유일한 주님이신가를 확실히 믿고 있는가를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이 복음 진리에 굳게 서서 구원의 확신을 가집시다. 그리고 이 진리의 동앗줄을 세상 물결에 떠밀려 사망 길로 떨어져가는 영혼들에게 힘차게 내던져 끌어올려 살려냅시다.
또한 우리가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와 주의 택한 백성들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은 우리 영혼이 구주 예수님을 알고 인정하고 믿어 순종함으로써 우리를 구원받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그뿐 아니라 성령님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이 복음 전리를 전파하는 데 앞장서시는 분입니다. 빌립 집사님으로 하여금 사마리아 지역에서 한참 주의 일에 바쁘게 일할 때인데, 주의 사자가 갑자기 그에게 애굽으로 내려가는 광야 길로 가라고 감동을 주셨습니다. 그곳에 가보니, 마침 예루살렘에서 애굽으로 가서 고국 에디오피아로 가고 있는 에디오피아 내시 곧 그 나라의 재무장관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 성령께서 그에게 수레 가까이 나아가 전도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세례까지 받고 갔습니다. 그 결과 2천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디오피아는 기독교 국가로 남아 있습니다. 성령께서 그 한 사람을 전도함으로써 한 나라 전체가 강력한 복음화의 열매를 맺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들이 전도하여 영혼을 구원하고자 할 때에 언제나 전도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리할 때 성령께서 우리들을 영혼 구원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전도의 길을 열어 주실 것이며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실 것이고 우리 입을 열어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담력과 구변의 은사를 주실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생각나게 해주시고 그래서 복음의 진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사도행전 4:23 이하에 보면, 복음 전도를 방해하고 교회를 핍박하는 일을 겪었을 때 예루살렘 성도들이 사도들과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기를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 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올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29~31)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전도를 위하여 성령 충만함을 늘 사모해야 하겠습니다. 초대 교회 120문도가 10일 동안 간절히 성령 강림을 위하여 기도하였던 목적도 바로 주님이 부탁하신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이 시대에 주님께서 맡기신 영혼 구원의 사명 감당을 위하여 우리에게 불 같은 성령을 충만하게 내려달라고 간절하고 끈질기게 부지런히 기도를 드립시다.
또한 우리들은 전도할 때 도중에 낙심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비유의 말씀을 베푸신 적이 있습니다.
“어떤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청하였더니 잔치할 시각에 그 청하였던 자에게 종을 보내어 이르되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하매 다 일치하게 사양하여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밭을 샀으매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으니 시험하러 가니 청컨대 나를 양해하도록 하라 하고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 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맹인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있나이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고 산 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눅 14:16~24)
여기서 예수님은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와 핑계를 대면서 천국 잔치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는 세태를 말씀해주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지금도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서 주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의 크신 은혜를 누리라고 초대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가 많습니다. 또 교회 좀 다니다가는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결국 교회 다니는 것을 흐지부지하면서 다시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일이 바뻐서, 식구들이 반대해서, 주말이면 놀러가야 해서, 주말이면 결혼식 참석해야 해서 교회 빠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결국 교회 다니는 것을 그만두고 세상으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천국 잔치에 초대하라고 보냄받은 주인의 종들인 전도자들인 우리들은 실망하기 쉽습니다. 낙심하기 쉽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전도해도 나오지 않는 이들 때문에 전도를 포기하게 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빈 자리를 그냥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 천국 잔치의 빈 자리마다 채우기 위하여 그의 종들인 우리들에게 다시 세상에 나가서 만나는 사람마다 강권하여 “사람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명령하십니다.
당장 거두지 아니할지라도 계속하여 복음의 종자 씨앗을 계속하여 뿌리라고 명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그의 순교의 때가 가까운 것을 직감하면서 쓴 그의 마지막 편지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이렇게 그의 후계자 디모데에게 부탁합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딤후 4:1~5)
사도는 “너는 복음의 진리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당장 열매를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변화가 나타나지 않을지라도, 상대방이 우리를 무시하고 조롱한다 할지라도 상관하지 말고 계속하여 전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끈질기게 조급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복음을 전하면서 기도하며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 반드시 열매를 맺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6:7~9 말씀에 그러한 뜻입니다.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미국의 전도자 디 엘 무디에게 세 친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그 세 친구의 구원을 놓고 끈질기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가 생전에 한 친구가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죽을 때에 또 한 친구가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남은 한 친구는 그가 죽은 뒤에 시간이 흘러 구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당장 구원의 열매를 맺히지 않지만, 영혼 구원을 위한 끈질긴 기도와 전도는 하나님의 정한 때가 되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우리 밖에서 아직도 떠돌고 있는 하나님의 잃어버린 택함받은 양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수고해야 하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하였으니, 우리들이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성령 충만을 받아서 도중에 낙심하지 아니하고 끈질기게 전도하며 기도하며 기다릴진데, 반드시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될 줄 믿습니다.
이렇게 우리에 들지 아니한 양들을 찾아서 수고하는 자들에게는 주님께서도 은혜를 더해주십니다.
먼저, 영적인 기쁨이 충만해집니다.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을 친히 전도하신 예수님은 그 여인이 전도받고 구원받은 기쁨을 가지고 물동이를 버려두고 즉시 동네에 달려가서 사람들을 예수님께 인도해오는 모습을 보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이것입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른느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고 하였습니다. 추숫날에 그 주인도 즐거워하지만 그 추수에 함께 동참한 일꾼들 역시 함께 즐거워하는 것처럼, 영혼의 밭의 주인이신 주님과 더불어 그 추수에 참여한 전도자들 곧 영혼의 추숫 일꾼들 역시 함께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누가복음 15장 비유에 보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는 세 가지 비유들을 보면, 그 마지막은 이렇게 끝이 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획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 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기쁨이 되느니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하나님의 기쁨이 잃어버린 영혼을 되찾을 때에 이처럼 기쁘고 즐겁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기쁨이 전도자에게 일하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도 임하는 것입니다. 칠십인 전도자들이 전도하여 열매 맺고 돌아왔을 때 그들도 기뻐하며 돌아와 보고했고 예수님도 성령으로 기뻐하셨다고 누가복음 10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전도자는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더 지속적이고 크나크고 순수한 내적 기쁨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는 세상적인 그 어떤 것을 얻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활 중에 낙심, 근심, 걱정에 마음이 눌리고 우울해지는 성도가 있습니까? 무조건 교회 나와서 뜨겁게 기도한 후에 전도지를 한 웅큼 손에 쥐고 나가서 전도하십시오. “예수님 믿으세요” 큰 소리로 전도하세요. 그리하면 어느틈엔가 마음에 기쁨이 가득차오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함께하시며 각양 은사와 능력을 주십니다.
본래 성령님의 주된 사역이 예수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8 말씀에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고 하셨듯이, 성령님은 우리가 복음을 전하며 주님의 증인으로서 수고할 때 강력하게 우리를 도와 권능을 베풀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약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우리의 삶 속에서 영혼을 구원하려고 힘써 기도하며 전도의 기회를 구하면서 주님을 전하기를 힘쓰면 성령께서 여러 모양으로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예를 들면 전도할 때 친히 우리 마음과 입술을 주장하셔서 마땅히 전해야 할 말을 전하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전도하러 제자들을 보매시면서 약속하시기를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고 하셨습니다. 또 따르는 표적으로 우리의 전도의 말씀을 확실히 증언해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2:4에서도 이르기를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성령의 나누어주신 것은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지 않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애를 쓸 때 성령께서도 그의 은사를 전도자들에게 때를 따라 주시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드러내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증거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복음 전도의 사명을 힘써 감당할 때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각종 은사와 능력도 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전도에 힘쓴 자들에게는 장차 주님 나라 갔을 때 크고 놀라운 영광이 예비되어 있을 것입니다.
전도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에서 영혼 구원을 위하여 수고한 자가 장차 주님 앞에서 받을 상이 크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이 최고의 상을 받기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라고 격려합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라...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린도전서 9장)
당시 고대 그리스 올림픽 경주에서 달리기나 원반 던지기나 창 던지기 등의 경주를 하면 그 종목 우승자는 면류관을 쓰고 그리스 전체의 영웅으로 대접받았습니다. 그래서 운동 선수들은 정말 4년마다 열리는 이 경기에서 우승하려고 최선을 다하여 애써 노력했습니다. 이처럼 전도자들도 장차 천국에서 상이 주어지는데, 그 상을 받는 자리에서 최고의 상을 받으려고 최선을 다하라고 성도들에게 격려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도 바울 자신도 주님 앞에서 최고의 상을 받으려고 온갖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얘기합니다. 예를 들어 바울은 한 영혼을 건지려고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그 사람이 복음을 받을 수 있도록 자기를 내려놓는 노력을 했습니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처럼, 노예에게는 노예의 심정을 이해하는 마음으로, 자유인에게는 자유인으로서 최선을 다하여 가까이 접근하여 전도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허드슨 테일러가 중국을 전도할 때 영국인이지만 변발을 하고 중국 옷을 입고 전도했던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중국 옷 입고 중국 음식 먹고 중국 사람들처럼 침대 없이 방바닥에서 자면서 전도하는 것은 중국인들 중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얻으려고 애쓴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렇게 전도한 것입니다. 그가 그렇게 한 이유는 한 사람이라도 더 전도하여 천국의 상을 얻기 위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전도는 천국에서 큰 상이 준비되어 기다리는 가장 귀한 일입니다. 다니엘서 12:3 말씀에,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다니엘 12:3)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다시 한번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는 이 말씀을 하시면서 양 우리 밖에 있는 다른 양들도 자기에게 있어서 그들도 인도해들여야 하겠다는 이 말씀을 하신 뜻을 깊이 생각합시다. 주님의 마음에는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그 순간에도 저 영적 흑암 속에서 갇힌 영혼들, 지옥길로 떠밀려 내려가는 수많은 이방인들을 생각하면서 그들도 살려내야 하겠다는 갈급한 마음이 있었음을 우리도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지금도 주님의 마음은 동일할 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에 우리들도 주님의 이 마음을 헤아려서 잃은 양을 찾으려는 일에 동참하기로 굳게 결심합시다. 주님께 인도할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날마다 하루도 거르지 말고 주님 앞에 기도하며 구원해달라고 매달리는 자가 됩시다. 같은 아파트나 이웃에 있는 우리의 이웃이나 길거리에 수많은 지나가는 사람들과 우연히 만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을 그냥 무심코 지나치지 맙시다. 마트를 가거나 은행을 가거나 혹은 병원을 가거나 사람들을 만나거나 전화를 하는 중에도 우리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시다. 이를 위하여 전도의 지혜를 주시고 담력을 달라고, 성령님께 기도합시다. 전도할 수 있도록 성령의 은사도 달라고 기도합시다. 성령 충만하여 영혼을 품고 눈물 흘리면서 기도할 수 있는 영혼 사랑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사도 바울이 가르쳐준 대로, 날마다 우리에게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합시다. 전도도 성령께서 열어주시어야 됩니다. 사도 바울 일행이 계속 전도의 문을 열어 달라고 기도하였을 때 이차 전도 여행 때에 소아시아도 막히고 본도 지방도 막혔지만, 서쪽 바다 건너 유럽의 관문인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문이 열려서 복음이 유럽으로 강력하게 전파되었지 않습니까? 성령이 복음 전도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도 성령의 인도 따라 전도합시다. 그리할 때에 정녕코 선한 목자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양우리 밖에 있는 또 다른 양들을 우리를 통하여 찾아내서 구원해가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