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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오가 되어 브뤼헤에 도착했다. 니나가 준 호텔 카드는 나중에 찾았는데 일기장에 끼워져 있었다.
카드에 나온 약도를 보니 호텔은 역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내가 역 앞에 있는 지도를 보고 있자 한 경찰이 내게 오더니
어디를 찾느냐고 물어봤다. 내가 카드를 보여주자 그는 이 호텔은 아주 가까이 있다면서 나보고 길 건너서 조금만 죽 가다 보면
나온다고 말했다.
나는 고맙다고 하고 경찰이 일러준 대로 갔더니 정말 5분도 되지 않아 쉽게 호텔을 찾을 수 있었다. 내 방은 3층으로 침대는
두 개 있지만 나 혼자 쓰는 방이었다.
작지만 깔끔하고 창 밖으로 공원을 볼 수도 있었다. 니나 말대로 나 혼자 편히 쓰기에 적합한 방이었다.
언니가 싸준 빵을 먹고 밖으로 나갔다. 브뤼헤도 브뤼셀 만큼이나 추웠기에 나는 내복을 꺼내 입고 또 혼자 다니려면 지루하니
mp3 와 카메라등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나갔다. 문밖을 나가려는데 보니 호텔 주인 가족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2명의 딸들
이 귀여웠다. 안주인이 내게 웃으며 인사를 해서 나도 인사를 하고 나갔다. 호텔을 나오는 순간 나의 완벽한 준비 속에 정작 중
요한 여행 책자가 빠져 있는 걸 알았지만 브뤼헤는 작고 아담한 도시라 그냥 돌아다니면 길이 나오겠지 라는 생각으로 다시 돌
아가지 않았다.
여행책자에 브뤼헤에서는 자전거를 타고 돌면 좋다고 추전해서 자전거 빌리는 곳을 찾았다. 역 앞에 수많은 자전거가 세워져
있고 또 중앙역에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는 것을 들었기에 다시 역으로 갔다.
사람들에게 자전거 빌리는 곳이 어디에 있냐고 물어봤는데 모두 다른 대답을 해서 찾기 힘들었다. 한 사람은 역이 아니라 길 건
너 보이는 빨간 건물이 자전거 대여소라고 했다. 역에서 찾기 힘드니 거기나 가자 해서 빨간 건물로 갔는데 안에 들어가니 일반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일하는 여자에게 자전거 빌리는 곳이 여기냐고 물어보니 아니라고 하면서 건물 뒤편에 information
center로 가보라고 했다.
Information center 에 갔더니 자전거 빌리는 곳을 알려주긴 하는데 지도를 사야 한다고 했다. 마침 여행 책자를 놓고 온 터라
50센트에 지도 하나를 샀다. 지도를 보니 자전거 빌리는 곳들이 다 표시가 되어 있었다. 중앙역에도 자전거 빌리는 곳이 있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비슷한 거리에 마르크트 광장에도 대여소가 있어서 거기로 가기로 했다.
그 직원은 친절하게도 자전거를 타려면 울퉁불퉁한 시내 길 보다는 외곽으로 빠져 자전거 전용도로를 달리는 게 더 편하고 경
치도 좋다고 알려주었다.
Information center를 나와 나는 사람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물으며 갔는데 생각보다 멀진 않았다. 처음 브뤼헤 도착했을 때
는 그리 예쁘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는데 마르크트 광장을 찾아가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서자 집들이나 가게들이 모두 아기자
기 하고 귀여워서 꼭 작은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았다. 도로는 모두 네모난 돌들로 깔려져 울퉁불퉁하여 자동차가 쌩쌩 달릴
수 없다. 도로 때문에 차들은 툴툴 거리며 달려 좀 뒤뚱거리는 아이를 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시간이
조금 더디 가는 곳 같았다.
나는 먼저 자전거 대여소를 찾아야 했지만 골목길 예쁜 건물들에 눈이 팔리고 특이 하게 생긴 나무들에 시선을 빼앗기고 예쁜
상점들이 있으면 보기만 하지 않고 들어가 안에도 천천히 구경하면서 사진 찍기도 해서 그냥 걸으면 20분이면 가는 곳을 1시간
반 만에 갔다. 가다 보니 공원에 한 동상이 서 있길래 공원에 있는 학생들에게 저게 누구의 동상이고 무엇을 한 사람이기에 동
상을 세웠냐고 물었더니 자기들도 모른다며 스스로 창피해 했다.
흠 .. 역시 우리나라나 다른 나라나 자기네 나라의 역사를 아는 건 중요한 것 같다.
그렇게 설렁 설렁 걷고 구경하다 보니 마르크트 광장이 나왔다. 광장 앞에는 커다란 동상이 있고 그 뒤로 빨간 벽돌의 인형의
집 같은 건물들이 색색으로 나란히 서 있었다.
영국의 런던이나 브뤼셀도 이국적이고 예쁘지만 그래도 현대의 느낌인데 브뤼헤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중세의 어떤 장소로 왔다고나 할까 그래서인지 차보다는 마차가 이곳에 더 잘 어울렸다.
마르크트 광장
‘자전거 빌리는 곳이 이 근처라고 했는데’ 하며 지도를 보려고 하는데 어디선가 굉장히 고소하면서도 좋은 냄새가 났다. 사람들
을 보니 모두 감자튀김을 독특한 소스에 찍어 먹고 있었다.
냄새를 따라서, 사람들이 나온 곳을 따라가다 보니 감자튀김을 파는 곳이 보였다.
감자튀김과 7가지 소스 중 2가지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매운 소스와 겨자를 선택했다.
감자튀김은 냄새도 좋았지만 맛은 더 좋았다. 나는 원래 감자튀김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 감자 튀김은 맥도날드나 여타의
감자튀김과는 차원이 달랐다. 바삭하면서도 고소하고 담백한 감자의 맛이 나는데 그냥 감자만으로는 이런 맛이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또 매콤한 독특한 소스에 찍어먹으니 더 맛있었다. 나는 좀 전에 빵을 먹어 그리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도 너무 맛있어
서 빨리 먹게 되었다. 마르크트 광장 벤치에 앉아 한가롭게 경치를 구경하며 맛있는 감자튀김을 먹는 맛이란 정말 ‘이래서 여행
을 하는구나’ 하는 감동을 내게 주었다. 내 자신이 이렇게 여유롭고 인생을 즐기는 것에 뿌듯해졌다.
감자 튀김을 파는 아저씨들 날 행복하게 해준 감자 튀김
감자튀김에 행복해진 나는 본격적으로 자전거 대여소를 찾았다. 자전거 대여소는 구석에 있어서 찾기 어려웠으나 다행히 많이
헤매지 않고 찾을 수 있었다.
자전거 빌리는 값은 하루는 10유로이고 4시간은 7유로라서 나는 7유로를 내고 자전거를 빌렸다.
내가 4시간 안에 헤매지 않고 다시 이곳을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생겨 시간 초과하면 얼마를 내야 하냐고 물으니 10분
당 1유로던가 벌금이 생각보다 비쌌다. 빨리 갖다 줘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박히는 순간이었다.
자전거는 새것으로 성능이 좋아 보였다. 나는 그 정보센터의 직원이 일러준 대로 외곽으로 가야 했지만 자전거로 타고 가야 하
기에 사람들에게 물어보기 불편해서 난생 처음 지도로 길을 찾는 시도를 했다. 다행히 브뤼헤는 거리 표지가 잘 되어 있고 지도
가 정확해서 쉽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또 외곽으로 가는 길만 충실히 가지는 않았다. 가는 길에 또 멋진 교회가 있길래
자전거를 세우고 교회 안으로 들어가 사진도 찍고 멋진 풍경이 있으면 자전거를 멈추고 한참을 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기도 했
다.
이름 모르고 들어간 교회 교회 앞에 예쁜 장식
브뤼헤는 북부의 베니스라고 일컬어 지는데 그건 그만큼 운하가 많기 때문이었다.
곳곳에 운하고 있고 그 운하 아래로 오리와 백조들이 한가로이 헤엄을 치고 있었다. 운하 사이로 펼쳐진 건물들과 다리는 그 풍
경 하나 만으로도 엽서 속의 한 장면이었다. 사실 브뤼헤는 곳곳이 다 그림이고 엽서였다. 네델란드에 풍경화가들이 많이 이유
를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사는데 이곳의 그림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드는 건 당연 할 것 같았다.
(참고로 벨기에 여행하면서 왜 네델란드 화가와 연결시키나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몰라 말씀드리지만 예전에 벨기에와 네델란
드는 한 나라였습니다. 종교전쟁으로 벨기에는 천주교 신봉하고 네델란드는 신교를 받아들임으로써 나라가 갈렸습니다. 또 우
리에게 플란다스의 개로 알려진 곳은 네델란드가 아니라 벨기에의 한 마을입니다.)
아름다운 브뤼헤의 운하들
그렇게 구경하면서 한 손으로 지도를 보면서 자전거를 타고 가다 보니 직원이 일러준 대로 외곽 자전거 전용도로가 보였다.
안쪽에는 차가 다니고 밖으로는 바다가 보였다. 울퉁불퉁한 도로가 아닌 아스팔트가 매끄럽게 깔린 전용도로로 신나게 달리니
기분도 좋았지만 시내와는 달리 옆에 차들이 쌩쌩 달리며 매연을 뿜어내고 소음이 나니 계속 그곳을 달리고 싶은 마음이 사라
졌다. 조금 가다 예쁜 공원이 있길래 다시 그곳으로 돌아왔다. 브뤼헤는 넓고 예쁜 공원도 많았다. 날씨는 추운데 파란 잔디가
펼쳐져 있고 벚꽃과 개나리가 펴 있어 경치만 보면 봄 나들이 해도 될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바람이 차갑게 불어 코트를 입어야
했다. 공원에는 우리나라 수목원에서나 볼 수 있는 커다란 나무들이 이열 종대로선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나는 mp3로 내가 좋아
하는 음악을 들으며 자전거로 달렸다. 그때의 기분이란 ‘자유’였다. 그래 이거다. 나 혼자 이렇게 자유롭고 나 혼자 이렇게 행
복할 수 있구나. 브뤼셀에서는 아름다운 건물을 봤을 때 혼자인 게 그렇게 쓸쓸하더니 여기서는 혼자라도 너무 행복했다.
아니 그 순간만큼은 오히려 혼자여서 더 좋았던 것 같다. 그렇게 가다 보니 풍차가 보였다. 풍차 언덕에 올라가서 한참 시내 거
리를 보다 또 흐뭇한 마음으로 자전거를 타고 내려갔다.
그 이후로는 지도를 보지 않았다. 원래 지도 보는 게 적성에도 맞지 않았지만 지도 없이 그냥 헤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동화
의 나라에서는 좀 헤매도 괜찮을 것 같았다. 길을 잃고 헤매다 보면 어딘가에서 요정이나 동물들이 나와 도와 줄 것 같기도 했
다.
그러다 엽서 파는 곳이 있어 그곳에 들러 그에게 쓸 브뤼헤 풍경이 담긴 엽서 한 장을 샀다.
조금 더 가니 또 동상이 있는데 누군가 봤더니 반야크였다. 얄미울 정도로 너무 귀족적이고 우아한 초상화를 잘 그렸던 화가가
브뤼헤 출신이라니 놀랐다. 그 사람의 초상화를 보면 귀족적이란 단어를 실감한다. 그런 인물들을 골라 그린 건지, 그가 다른
사람보다 그런 장면을 잘 포착한 건지 아니면 화가가 실제 인물보다 더 잘 표현한 건지는 모르지만 보면 태생이 잘나고 우아하
고 고상한 그런 인물들을 고상하게도 그려놨다. 그래서 좀 재수없기도 한데 너무 이쁘게 잘 그려서 나도 이 시기에 귀족으로 태
어났으면 꼭 이 사람한테 초상화를 부탁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 것 같았다. 실제로 이 사람에게 초상화를 받으려 안달 난 귀족
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반 야크
그러다가 또 길을 갔는데 마르크트 광장이 나왔다. 브뤼헤가 작긴 했다. 헤매고 다닌지 얼마 되지 않아 원래의 장소로 도착하다
니.. 4시간 안에 이곳에 못 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시계를 보니 돌아 다닌지 2시간 10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아직은 자전거
를 돌려주기 아까워 다른 곳으로 가보자 하고 나갔는데 지도를 보지 않고 가서 그런지 다시 와보니 또 마르크트 광장이었다.
다시 나가 볼까 하다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피곤하기도 했다. 여행이라 짧게 느껴져 그렇지 내가 만약 한국에서 두 시간 넘게
자건거를 탔으면 나는 쓰러졌을 것이다.
자전거를 돌려주고 다시 호스텔로 오는 길에 나는 와플이 먹고 싶어졌다. 벨기에 오면 두 가지는 꼭 먹고 가야 하는데 하나가
초콜렛이면 다른 하나는 와플이다. 뭐 홍합탕 같은 것도 있는데 그것보다는 와플이 먹고 싶었다.
밖에 예쁘게 전시된 와플을 보고 한 와플 가게에 들어갔다.
커피 한잔과 과일과 크림을 얹은 와플 하나를 시켰다. 와플은 한국에서 먹는 것과는 완전 다른 맛이었지만 또 특별히, 그렇게,
보이는 것만큼 맛있지는 않았다. 아까의 감자튀김의 감동보다는 덜하다고나 할까.. 맛있긴 했지만 행복을 주는 수준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기대를 많이 해서인가 초콜렛도 그렇고 와플도 그렇고 먹지 못하고 가면 울고 간다고 하는데 맛을 일단 보면 울
진 않지 하는 정도였다.
중앙역으로 와서 다시 호텔을 찾는데 조금 헤맸다. 아직까지 역시 한번에 찾는 건 내게 무리인 것 같다. 내 방에 와서 샤워를 하
고 빨래를 하고 나니 사방은 고요한 게 적막함마저 감돌았다. 하지만 브뤼셀에서처럼 외롭진 않았다. 그냥 한적한 마음에 일기
를 쓰고 그에게 엽서를 썼다. 그에게 엽서를 쓰자 그가 많이 보고 싶었다. 정말 우스운 건 평생을 같이 산 가족들은 별로 보고
싶지 않은데 이제 만난 지 두 달 반 밖에 되지 않는 사람이 참 많이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아까 혼자 즐길 때와는 다르게 또 그
가 여기에 와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하루를 돌이켜 보니 여행을 잘하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산뜻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출처 : ★ No.1 유럽여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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