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국불교의 대표적 사판승(행정업무가 주된 스님)이었던 ‘자승스님’이 세상을 떠났다. 불교용어로는 ‘입적(入寂)’ 이라는 표현을 써야 하겠지만, 조계종의 공식입장(!)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이라고 하니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은 해본다.
자신의 몸을 불사름으로 해서 ‘번뇌’를 끊어야 한다는 자승스님의 유서와 그 배경에 대한 논쟁적인 부분이 있음에도 조계종단의 핵심 관계자들은 자승스님의 입적을 소신공양 자화장(自火葬)으로 평가하고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지난 20년간 조계종을 이끌어온 자승스님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나뉜다. 관악산 연주암 주지를 비롯, 조계종의 4대 계파 (종책모임 / 화엄회, 무량회, 금강회, 무차회) 중 핵심인 화엄회를 이끌며 불교광장으로 확장했고 최다 투표로 총무원장에 당선, 두 번의 임기를 역임했다.
한국 불교의 중흥을 위한 그의 노력이 있었겠지만 재산소유, 사생활 논란, 조계종과 동국대에서의 권력집중과 전횡등은 상당한 오점으로 남겨져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 임기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명진스님’에 대한 처분은 자승스님의 정치적 태도에 많은 의문점이 남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내며 서울 지역 대불련(한국대학생불교연합) 활동을 했고, 조계종의 개혁과 발전에 관심이 많은 시기가 있어 2006 ~ 2010년 정도의 자승스님에 대한 인상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관상은 총무원장으로서 제법 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머리를 깎은 스님들은 ‘골상’을 보기 쉬운데, 관록궁(이마)을 중심으로 이마와 정수리 (도덕골)이 발달된 상이었다. 세력을 의미하는 ‘귀’와 힘이 있는 관골(광대뼈)와 코, 적당히 크고 두툼한 입은 자신의 지위를 구축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런데 최근 보여진 사진은 전혀 그때와 다른 모습이었다. 스님인데도 머리를 길렀고, 얼굴에 살이 빠지고 기색이 어두워져 있었다. 뼈는 양(陽)의 단단함과 강인함을 표현하여 양의 기운이고, 살은 물렁함과 저장성으로 음(陰)의 기운이다.
나이가 들면서 살이 빠지는 것은 흉함으로 보는데 50대 이후에 급격하게 살이 빠지면 금전, 관운에 문제가 발생한다. 또한 귀와 관골, 코로 이어지는 수평라인의 기세가 약해진 모양이었다.
입을 보면 변화된 특징이 극명하게 나타나는데, 이전과 다르게 입꼬리가 왼쪽으로 상당히 치우쳐져 있는 모습이었다.
왼쪽으로 올라간 입꼬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인 면이 있다. 어긋난 자존감이 타인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장기간 이어지면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무너지고, 인간관계 형성이 어려워지며 미래에 대한 부정적 연상이 강해지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삐뚤어진 입의 부정적 성향은 여성보다는 남성에게 더 강하게 나타난다. 남성의 뇌는 좌뇌와 우뇌가 더 독립적이고 전문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인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에 대해서 자세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자승스님이 유서에서 말씀한대로 생사와 인연의 덧없음을 깨닫고 이러한 결정을 한 것일 수도 있고, 항간의 추측인 건강 문제 였을 수도 있다.
그의 모습으로 보아 한편에서 제기하는 ‘타살설’은 근거가 부족하다는 판단이 든다. 차에서 발견된 유서에 대한 불확실성과 동반자, 사찰관계자, 제3의 인물까지 의심하는 설이 돌고 있기도 하다. 자세한 내용은 세밀한 필적 조회와 수사결과가 나오면 확인되겠지만 ‘인상’의 변화를 보면 본인이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필적/글씨체는 관상학에서도 활용되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남기신 유서와 열반송이라 하는 글을 대조해 본 결과, 유서가 빠른 글씨로 쓰여지기는 했으나 크게 다른 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조계종 총무원과 동국대 건학위원회 (이사회가 있음에도 옥상옥으로 만든), 상월결사까지 조직하여 좌지우지 해온 자승스님이었던 바, 그의 입적과 관련한 의문은 한동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자승스님의 세간의 평가가 엄중하게 나뉘어 있기도 하고, 그에 대한 저의 생각도 분명하지만 세상을 떠난 분을 두고 냉정한 언어를 사용하는 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르면 더 객관적이고 자세한 말씀을 드릴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자승스님이 남기셨다고 하는 “"생사가 없다 하나 생사 없는 곳이 없구나. 더 이상 구할 것이 없으니 인연 또한 사라지는구나"라는 열반송이 스님의 진솔한 음성이었기를 바래볼 뿐이다.
[ 관명 관상학 연구원 / 010 3764 434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