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속의 붉은 비극
임병식
어느 날 조간신문 한 면을 펼쳐 들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세상에 이런 비극이 또 있을까. 전면을 장식한 소나무들의 참담한 모습을 바라보니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분명 형상은 소나무였다. 그러나 푸른 기상은 온데간데없고 붉게 변색되거나 하얗게 말라죽어가는 나무들만 눈에 들어왔다. 이런 숲을 가꾸는 데는 적어도 반세기의 세월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순간에 융단폭격을 맞은 듯 사라져가는 모습은 차마 바라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나는 고향의 산야를 거닐며 간간이 시들어가는 소나무들을 보면서 불길한 예감을 품곤 했다. 그러나 일손이 부족해서 그렇겠거니, 병든 나무만 베어내면 큰 문제는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해마다 비슷한 현상이 있었지만 제거하고 나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흔적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문 속 소나무 숲은 내가 보아온 그 정도의 피해가 아니었다. 충남 태안의 어느 해안가라고 하는데, 온전한 모습을 간직한 나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숲 전체가 병마에 휩싸인 듯했다.
원인은 소나무재선충병이었다. 재선충병에 걸린 나무는 현재 뚜렷한 치료제가 없어 감염목을 베어내고 확산을 막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사람의 눈으로는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선충이 나무 속으로 들어가 수분의 이동을 막고, 결국 소나무를 서서히 죽음으로 몰아간다.
이 선충은 주로 솔수염하늘소나 북방수염하늘소 같은 매개 곤충을 통해 다른 나무로 옮겨지며, 특히 소나무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다. 자연의 질서를 이용하는 병해 앞에서 인간의 방제 노력은 아직도 한계를 보이고 있다.
재선충의 천적으로 알려진 개미벌침 같은 생물학적 방제 방법도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연의 균형 속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때다.
예로부터 우리 민족은 소나무를 사랑해왔다. 애국가에 소나무가 등장하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곧고 푸른 자태, 사철 변하지 않는 기상은 우리 정신문화의 상징이었다. 문인들이 사랑한 나무 가운데 으뜸으로 소나무를 꼽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그런 소나무가 속절없이 쓰러지고 있다. 생명력이 강하기로 이름난 나무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생명체 앞에서 무너지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피해가 해마다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재선충병의 확산 환경이 좋아지면서 피해목이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이대로 방치한다면 언젠가 우리 산에서 소나무를 보기 어려운 날이 올지도 모른다.
소나무는 단순한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다. 우리 산천의 풍경이며, 조상들의 삶과 정신이 깃든 자연유산이다. 우리와 함께 살아온 그 나무를 지켜내는 일은 곧 우리의 기억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아직 남도의 산야에는 푸른 소나무 숲이 남아 있다. 그러나 태안의 붉게 변한 숲이 보내는 경고를 결코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숲속의 붉은 비극 앞에서 다시 생각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인의 안타까움이 아니라 국가적 관심과 체계적인 방제 노력이다. 소나무가 사라진 산하를 상상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그 푸른 생명을 지켜야 한다.
(2026)
첫댓글 예로부터 우리 정신의 상징이었던 소나무를 향한 선생님의 깊은 애정과 안타까운 시선이 글 마디마디에 묻어납니다. '숲속의 붉은 비극'이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남도의 푸른 기상이 전국으로 다시 퍼져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재선충을 박멸하는 신약을 개발하면 대박나겠다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재선충으로 인해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눈에 뜨게 죽어가는 소나무를 보았는데, 신문에 보도된 다른 지역은 너무나 참담했습니다.
이러다가 소나무가 씨를 마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섭니다.
범정부적으로 방역대책을 세워여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댓글 고맙습니다.
소나무가 죽어가는 것이 재선충과 매개 곤충(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의 관계, 생물학적 방제가 개미벌침 이라니 아주 시급하고 절실합니다.
"개인의 안타까움에 그치지 않고 국가적 관심과 체계적 방제가 필요하다"는 결론은 인식의 전환과 실천적 행동을 촉구하는 강력한 메시지에 공감이 갑니다.
붉게 시들어가는 소나무 숲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 속에서, 우리 삶과 정체성이 담긴 푸른 자연을 지켜내야 한다는 시대적 경고와 책임을 울림 있게 전달하는 글입니다.
소나무가 재선충으로 인해 초토화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확산속도가 가팔라서 이러다가는 전 강토가 폐허가 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에이아이시대에 구충제가 개발되지 않고 있다니 과학이 나아길 길은 멀기만 해보입니다.
이미 늦었습니다
우리 여수도 피해가 도를 넘어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특히 소라면 화양면 일대가 심하다 싶습니다 일본은 소나무가 거의 전멸 상태라고 합니다 속히 치료제가 개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보성이나 순천, 여수의 사정도 심각한것 같습니다.
차를 타고 가보면 도로변 소나무들이 1/3은 이미 감염이 되어 말라가고 있습니다.
보는 마음이 참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