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연예인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사실로 가끔 미안함을 느낄 때가 있다. 나이도 나이려니와 그쪽 세계와는 거의 무관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주 이유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미안함까지 느끼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나는 의식 있는 김제동을 몰랐었고, 이혼 당하고도 떳떳하게 재기해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고현정을 알게 된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문성근이야 비슷한 연배이기도 하고 또 고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일찍부터 알고 있었던 예외적 연예인이다.
김여진은 아마 이름도 처음 듣고 인터넷을 통해서 얼굴도 처음 봤다.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얼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가 한 작은 실천만으로 나에겐 무척 예쁘게 보였다. 예쁘다는 것이 얼굴만 잘 생겼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을 혼자가 아닌 약자와 더불어 살아가겠다는 얼굴, 따라서 지적인 얼굴로 나에게 비춰졌다는 말이다. 연예인이 아무리 대중의 인기를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인기 이전에 소외받고 있는 계층과 삶 ? 생각을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참으로 소중하게 여겨졌다.
배우 김여진이 홍대를 다녀왔다고 해서 화제이다. 아니 지금 홍대에서 쫓겨난 미화원들을 찾아 그들과 한 끼 식사를 하고 왔다고 해서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단지 그것만으로는 이렇듯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인기 연예인으로서 박봉에 인간 대접 제대로 받지 못하고 청소 일을 맡아온 미화원들과 함께 하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밑반찬을 직접 만들어 칼바람이 귓전을 때리는 매서운 겨울 날, 예고 없이 해고된 홍대 미화원들을 찾아 맨 바닥에 깐 지 위에서 함께 저녁을 들었다.
그 시간에 또 다른 귀한 손님이 항의 농성장을 찾았다. 홍대 총학생회장이라고 했다. 김여진이 그 학생회장과의 잠깐 동안의 만남에서 주고받은 대화에 개인 느낌을 얹어 쓴 글이 화제의 주인공이다. 그러니까 김여진이 그 글로 추운 겨울 이웃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시랄 것도 없이, 그의 느낌을 자유롭게 쓴 글인데, 그 속에는 무시하지 못할 따스한 메시지가 함축되어 있다.
글의 요점은 이런 것이다. 해고된 미화원 어머니들(어머니는 김여진이 그의 글에서 표현한 단어)이 부당하다며 농성하고 있는 곳을 홍대 총학생회장이라는 여학생이 찾아와 학습권에 방해가 되니 농성을 풀어달라, 그리고 현수막 등을 철거해주고 외부인 방문도 막아달라고 요구한 것이 주 내용이다. 이런 요구에 대해 김여진은 '너희의 학습권과 어머니들의 생존권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하니?'라며 그 학생회장을 나무라고 있다.
홍대 학생회장이 비운동권 출신인지도 나는 그의 발언을 통해 알았다. 항의농성 같은 것을 싫어하는 비운동권 학생들의 지지로 학생회장에 당선되었으니 그들의 의견을 들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운동권과 비운동권이 칼로 무 자르듯이 명확히 구분될 수 있는 사안인지 잘 모르겠다. 또 구분할 수 있다고 해도 학교 내 청소를 담당했던 어머니뻘 되는 일꾼들이 부당하게 해고 된 것에 대한 이의 제기를 비운동권이니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양심에 반하는 생각이다.
아무리 취직이 중요하고 개인의 안위에 방점을 두고 살아가는 세태가 되었다고 해도 불의를 보고 그냥 지나치지 않고, 약자에 대한 꾸밈없는 연민은 인간의 기본 양심에 속하는 것이다. 즉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서 언제나 진리로 통하는 현상이라는 이야기이다. 나는 배우 김여진과 홍대 총학생회장의 대화 내용을 접하고 세상이 잘못 돌아가도 한참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김여진은 지금 37세라고 한다. 이 나이는 세상 물을 먹은 기성세대에 속하는 나이이다. 홍대 그 총학생회장은 지금 대학생이다. 미래에 대해 장밋빛 이상을 꿈꾸며 삶을 설계해야 할 나이이다. 그런데 그 학생은 이런 것 뿌리치고 세속적 삶을 준비하는 데만 철저한 듯하다. 미화원들의 농성이 그것에 방해되니 멈추어 달라는 것이다.
나는 여기서 두 가지만 짚으려고 한다. 우리나라 연예계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야겠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연예인이 생존권을 외치며 농성을 하는 현장을 찾아 그들과 함께 하는 일을 옛날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사회적 환경도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런 의식을 가진 연예인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것 같다. 김여진과 같은 배우로 인하여 연예인 전체가 달리 보이는 것이다. 역사의 물결을 함께 탈 수 있다는 희망을 그에게서 읽게 된다.
다른 하나는 대학생들이 처한 현실에 대한 우려이다. 분명히 밝히는 바이지만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대학은 자고로 지성인을 길러내는 교육의 장이다. 세상이 아무리 바뀐다 해도 이 가치는 계속 유효할 것이다. 그렇다면 홍대 총학생회장이 학내 청소를 담당하는 미화원들에게 내보인 언행은 대학생답지 않다. 이것이 그 학생 개인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홍대라는 한 학교 아니 나아가 대학들 전반에 흐르는 한 조류라면 적이 걱정된다. 진리와 정의, 순수로 이상을 꿈꾸며 사회에 진출해도 시나브로 현실에 잘 적응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걸어가는 길이다. 그런데 대학 학창 시절부터 현실에 적응하는 연습을 한다면, 그래서 모두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이 나라 장래는 밝지 않다.
대학생은 대학생다워야 한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이상을 좇는 사람이어야 한다. 이것이 건전한 사회가 요구하는 대학생들에 대한 바람이다. 배우 김여진의 홍대 미화원 농성장 방문, 그와 만나 잠깐 나눈 그 학교 총학생회장의 대화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어쭙잖게 생각해 보는 것은 나도 시대에 뒤떨어진 기성세대임을 고백하는 것 같아 좀 멋쩍다. 하지만 위의 두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이 나를 추스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것도 의미가 없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