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血)를 아껴야 생명이 산다 "수혈은 현대의학에서 가장 남용되는 치료법 중의 하나이며, 그 비용은 수십억 달러에 달한다. 이제 과학자들은 의료비 절감과 환자의 건강을 위해 수혈을 줄이는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2009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대형 병원중 하나인 스탠퍼드 호스피털 & 클리닉스(Stanford Hospital and Clinics)은 비용절감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다. 이 병원은 연간 680만 달러어치의 수혈용 혈액을 구매하고 있었는데, 자료를 분석해 보니 '의사들이 수혈을 남용하고 있다'는 증거가 포착되었다.
그래서 병원 측은 2010년 7월부터 병원의 컴퓨터 주문시스템을 이용하여, 불요불급한 수혈 줄이기에 나섰다. 의사들이 수혈 오더를 내릴 때, 컴퓨터가 자동으로 환자의 최근 기록을 분석하여 수혈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만약 환자가 수혈을 받지 않고도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면, 수혈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상기시키는 경고창이 뜨면서, 의사에게 '수혈의 정당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고 요구했다.
18개월간 실시된 「컴퓨터화된 수혈관리 시스템」의 성과는 놀라웠다. 《Transfusion》에 실린 두 편의 논문에 의하면(참고 1, 2), 2009~2013년 사이에 적혈구 수혈의 건수가 24% 감소하여, 혈액 구입비용만 연간 160만 달러 절감되었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수혈 비율이 감소하면서 사망률과 평균 재원일수(length of stay), 그리고 수혈 이후 30일 내에 재입원을 요하는 환자의 수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단지 의사에게 '수혈 전에 한 번만 더 생각하라'고 요구함으로서, 이 병원은 비용 절감은 물론 환자의 경과를 향상시키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둔 것이다.
【컴퓨터화된 수혈관리 시스템】
단지 팝업창을 통해, 의사들이 수혈 오더를 내릴 때 현행 수혈 가이드라인을 상기시킨 결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한 병원은 수혈과 관련된 비용을 절감함은 물론 환자의 소중한 생명까지도 살릴 수 있었다.
① 수혈에 사용되는 혈액의 양을 거의 1/4 감소시킴으로써, 병원은 연간 160만 달러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었다.
② 수혈을 받은 환자의 평균 재원(在院)일수는 10.1일에서 6.2일로 감소했다.
③ 수혈을 받은 환자의 사망률은 5.5%에서 3.3%로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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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 선진국의 경우, 수혈은 흔히 사용되는 치료법이다. 2011년 미국의 의사들은 2,100만 단위, 영국의 의사들은 약 300만 단위의 혈액 및 혈액 제품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혈이 생명을 살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종종 불필요하거나 심지어 해롭기까지 하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수혈이 생명을 살리며, 다다익선(多多益善)이다'라는 고정관념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이제 상황은 180도 달라졌다. 우리는 소소익선(少少益善)이 맞는다고 생각하고 있다"라고 존스홉킨스병원의 마취과 전문의로서 동(同) 병원의 혈액관리프로그램을 지휘하고 있는 스티븐 프랭크는 말한다.
오늘날 과학자들은 '수혈은 가급적 삼가는 게 좋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 수십 년 동안 굳어진 의료관행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리 가이드라인이 명백하더라도, 의사들이 따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수혈과의 짝사랑'에 빠진 의사들을 단념시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다"라고 런던 위생열대의학 대학원 산하 임상유닛의 이언 로버츠 박사는 말한다.
1. 수혈의 기준
심각한 실혈(失血)은 물론 (백혈병과 비타민 결핍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질환들이 조직의 산소를 고갈시킬 수 있다. 이 경우 혈액형이 맞는 사람에게서 채취한 적혈구를 수혈하면 산소결핍 상태를 해소할 수 있다. (어떤 환자들은 혈소판 등의 다른 혈액요소를 수혈받기도 하지만, 가장 흔한 것은 적혈구 수혈이다.)
과학자와 의사들이 수혈을 실험하기 시작한 것은 최소한 17세기 이후지만, 1900년대 초 과학자들이 혈액형을 발견하고 헌혈받은 피의 저장법을 알아낼 때까지는 수혈이 일상화되지 않았다. 나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혈액은행이 출범했다. 영국의 경우 헌혈팀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전선에 있는 군인들을 도와달라'고 국민들의 손을 잡아끌었다. 1944년에 인쇄된 한 포스터를 보면 이렇게 하소연하고 있다.
"피 몇 방울만 기증하시겠어요? 부상당한 우리 병사들은 당신의 피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전쟁이 끝날 즈음에는 무려 75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헌혈에 나섰으며, 어떤 사람들은 7~8번씩 헌혈하기도 했다.
그 후 수십 년 동안, (특히 전쟁이나 재난이 발생했을 때) 헌혈을 독려하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그러나 수혈은 엄밀한 과학적 근거 없이 널리 유포되었다. 당시에는 무작위대조시험이 표준화되어 있지 않았던 데다가, 헌혈의 근거가 워낙 명확해 보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수혈을 당연시했다. 그저 '피를 흘렸다면, 피를 보충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로버츠 박사는 말한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두 가지 요인이 순차적으로 등장하면서 '수혈을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관심을 모았다. 혈액을 통해 감염되는 C형 간염과 HIV 바이러스가 수혈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고조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감염성 질환의 체크가 확대되자 채혈비용이 증가했고, 헌혈기준이 까다로워지면서 헌혈도 감소했다. 그러자 일부 의사들은 '혹시 수혈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혈중 헤모글로빈(적혈구 속에 있는 단백질로, 산소에 결합함) 수준을 측정함으로써 수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상례였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규정한 ‘건강한 헤모글로빈’ 수준은, 남성의 경우 데시리터당 13그램(g/dL), 여성의 경우 데시리터당 12그램이다. 의사들은 환자의 혈중 헤모글로빈 수준이 10 g/dL 이하로 떨어졌을 때 수혈을 고려해 왔는데, 문제는 이 기준이 1942년에 발표된 논문의 내용을 근거로 정해진 것이라는 점이다(참고 3). 이에 1994년 캐나다의 한 연구팀은 '수혈량을 줄일 경우, 환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평가하기 위한 연구에 착수했다.
캐나다의 역학자이자 중환자관리 전문가인 폴 에베르 박사가 이끄는 연구진은 '널리 사용되고 있는 수혈기준'을 검증하기 위해, 838명의 응급실 환자들을 두 그룹으로 분류했다. 그리고는 한 그룹에게는 혈중 헤모글로빈 수치가 10 g/dL 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다른 한 그룹에게는 7 g/dL 밑으로 떨어질 때마다 수혈을 했다.
30일이 지난 후, 첫 번째 그룹에 속한 환자들은 모두 수혈을 받았고, 평균 수혈량은 적혈구 5.6단위(혈액으로 환산하면 500mL)였다. 이에 반해 두 번째 그룹에 속한 환자들의 평균 수혈량은 겨우 2.6단위에 불과했고, 수혈을 전혀 받지 않은 사람이 1/3이었다. 데이터 분석 결과 두 그룹의 사망률은 동일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55세 미만의 환자'와 '경미한 질환을 가진 환자'만을 따로 분석해 보니, 두 번째 그룹의 사망률이 오히려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결과를 받아보고, 내가 통계학자들에게 처음으로 던진 질문은 이거였다. '그룹 할당을 제대로 한 건가요?' 그러고 나서, 우리는 데이터를 모두 체크하기 시작했다. 왜냐하면 - 솔직히 얘기해서 - 우리 자신도 연구결과를 신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라고 현재 캐나다 몬트리올 대학교에 재직하고 있는 에베르 박사는 술회했다.
연구팀은 연구결과를 정리하여 1999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했다(참고 4). "비록 한 건의 임상시험에 불과하지만, 세상의 반응은 뜨거웠다"라고 스탠퍼드 대학교 메디컬센터에서 수혈 프로그램 및 서비스를 지휘하고 있는 로런스 팀 구드너프 박사는 말했다.
그 이후로 2007년부터 2014년 사이에 최소한 6건의 대규모 무작위대조 임상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참고 5-10). 이 임상시험들은 다양한 질환(패혈증 쇼크, 외상성 뇌손상, 위장관출혈)과, 집중치료를 받고 있는 어린이, 심장수술을 받고 있는 성인, 고관절 수술을 받고 있는 노인 등을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그런데 6건의 시험 모두에서, '수혈을 덜 받은 환자들'의 건강이 '수혈을 많이 받은 환자들'과 비슷하거나 때로는 그 이상인 것으로 밝혀졌다
2. 수혈의 위험성
'수혈이 항상 의도한 효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알게 된 과학자들은, 그 이유가 뭔지를 밝혀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현재 과학자들은 두 가지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 첫 번째 생각은 "어쩌면 헤모글로빈 수준은 '의사들이 관심을 갖고 있는 환자의 상태(즉, 조직에 산소가 충분히 전달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지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두 번째 생각은 "수혈된 피가 환자들의 몸속에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신선한 적혈구 세포는 탄력성이 있으며, 모세관을 쉽게 통과할 수 있다. 그러나 혈액은행에 며칠 동안 보관된 피는 세포막이 뻣뻣해지고, 형태가 변형되며, 끈끈해져서 산소에 너무 찰싹 달라붙게 된다. 이러한 변화를 저장손상(storage lesion)이라고 하는데, 저장손상이 일어난 적혈구 세포는 효능이 감소하게 된다. "소위 생명의 선물(gift of life)로 알려진 수혈이 환자에게 이익을 주지 못하는 것은 저장손상 때문이다"라고 구드너프 박사는 말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저장손상이 실제로 환자의 경과를 악화시키는지 여부에 대해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올해 말에 발표될 예정인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 결과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
수혈의 문제는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것뿐만이 아니다. 수혈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서, 감염증을 옮기거나, 심장을 위협하거나, 폐를 손상시킬 수 있다. 또한 면역계를 교란·파괴할 수도 있다. "수혈은 액상장기(liquid organ)를 이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수혈받은 피는 타인에게서 이식받은 조직이나 다를 바 없다"라고 프랭크는 말한다. 의사들은 공여자와 수혜자의 단백질 또는 탄수화물, 즉 항원이 일치하는지를 확인함으로써, 파국적인 면역반응을 예방할 수 있다(항원에는 ABO식과 Rh식이 있다). 그러나 혈구세포는 그밖의 다른 항원들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항원들이 일치하지 않을 경우 경미하거나 치명적인 면역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다.
역설적으로 - 메커니즘은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 수혈은 면역반응을 약화시킴으로써 환자를 감염증에 취약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상과 같은 위험들은 임상에서 일상적으로 관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수혈을 받는 사람들은 이미 병세가 위중한 경우가 많으며, 감염은 병원에서 드문 일이 아니다. 따라서 수혈에 수반되는 위험은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서만 명확히 밝혀질 수 있다.
물론 일부 환자들, 특히 짧은 시간에 대량의 혈액을 잃은 환자들에게 있어서, 수혈은 생명을 살리는 도구임이 분명하다. 2014년 발표된 연구결과에서(참고 11) 로버츠가 이끄는 연구진은, "혈액은 가장 심각한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만 유익하며, 경미한 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는 오히려 사망률을 증가시킨다"고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적절한 수혈기준(혈중 헤모글로빈 농도)가 얼마인가'에 대한 논쟁도 아직 결말이 나지 않은 상태다. 예컨대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환자에게 엄격한 수혈기준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지를 확인하는 대규모 무작위 임상시험은 아직 실시되지 않았다. 지난 1월, 과학자들은 "암 수술을 받은 환자의 경우 넉넉한 수혈이 예후를 향상시킨다"는 의외의 연구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참고 12).
개인별로 질병과 위험인자가 매우 복잡하므로, 수혈을 처방할 때 임상적 판단을 내리는 것은 의사들의 몫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에 의하면, 상당수의 환자들이 불필요하게 수혈을 받는 것만은 분명하다고 한다. 로버츠의 말을 빌리면, "수혈을 받지 않으면 목숨을 잃는 환자들도 있지만, 수혈 때문에 목숨을 잃는 환자들도 있다"는 것이다.
3. 임상적 진화
'수혈을 줄이자'는 주장은 임상의들 가운데서 힘을 얻기 시작하고 있으며, 헤모글로빈 역치(수혈 기준)를 7~8 g/dL 근방으로 할 것을 권고하는 의학협회와 전문가 단체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또한 많은 병원들이 수혈의 빈도 자체를 줄이는 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의사들은 수술을 앞둔 빈혈 환자들에게 철분 보충제를 투여하고, 실험실 검사를 위한 채혈량을 최소화하며, 적혈구수집 기법(cell salvage technique: 환자가 수술 중에 흘린 피를 모았다가 다시 주입하는 방법) 등을 이용하고 있다. 이상과 같은 방법 중에서 상당수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을 치료하는 데 사용되어 왔던 것들이지만(여호와의 중인 신도들은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거부한다), 이제 적용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최근 ‘환자의 수혈관리 프로그램을 수립하려고 한다’며 조언을 구하는 국가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라고 엥글우드병원(뉴저지주 소재) 산하 환자혈액관리 및 무수혈수술 연구소의 의료담당 책임자인 아라이 셴더 박사는 말한다.
'수혈을 줄이자'는 움직임의 선봉에 선 국가는 네덜란드다. 2000년 네덜란드는 건강한 사람의 수혈기준을 헤모글로빈 6.4 g/dL로 정했는데, 네덜란드의 한 혈액은행에 의하면 2009년에 수혈이 12% 감소했다고 한다. 또한 많은 나라에서 혈액관리프로그램을 바꾸고, 새로운 임상가이드라인을 제정하며, 덜 침습적인 수술기법을 도입하고 있다. 예컨대 영국의 경우 1999~2012년 사이에 적혈구 수요가 20% 감소했다. 미국의 경우, 2008~2011년 사이에 전혈(全血) 및 적혈구 수혈 단위가 8% 감소했는데, 이것은 입수 가능한 최신자료이며, AABB(미국 혈액은행협회)에 의하면 2012~2015에는 추가로 10%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2011년 이후, 미국의 병원에서는 혈액부족 때문에 예정된 수술을 취소하는 비율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부터 헌혈자들이 소매를 걷어올리는 것을 완전히 중단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혈액이 부족하며, 재해발생 직후에는 더욱 그러하다. 또한 의사들은 특정 혈액형이나 혈액요소들에 대한 수요가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대 혈소판은 저장 기간이 짧아 꾸준한 수요가 예상된다.
그러나, AABB의 미리암 마코위츠 회장에 의하면, 수혈을 줄일 수 있는 여지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한다. 예건대 2011년 9,000여 개 영국 혈액은행에 대한 감사(監査)결과에 의하면(참고 13), 절반 이상의 수혈이 회피가능한 것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수혈을 줄이려면, 임상적 권고를 바꾸는 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가이드라인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임상 가이드라인이 자신의 경험과 배치되는 것처럼 보일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외과의사들은 경험에 의존하는 성향이 매우 강하다. 외과 의사들이라면 누구나,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수혈을 통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라고 켄터키 대학교 메디컬센터의 빅터 페라리스(흉부외과 의사)는 말한다.
작년 10월에 발표된 한 연구결과를 읽어 보면(참고 14), 수혈을 줄이는 것이 현실적으로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 수 있다. 존스홉킨스 병원의 집중치료시설(ICU) 두 곳에서 일하는 의사들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대다수의 의사들이 "이상적인 수혈기준은 헤모글로빈 혈중농도 7 g/dL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의 전자의료기록을 조회해 보니,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한 ICU의 경우 84%, 다른 ICU의 경우 92%의 환자들이 헤모글로빈 혈중농도가 7 g/dL로 떨어지기 이전에 수혈을 받은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연구의 제1저자인 에모리 대학교의 중환자관리 전문가 데이비드 머피 박사에 의하면, 어떤 의사들은 "내 환자는 병세가 너무 위중하므로, 과학적 기준의 적용대상이 아니다"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또한 저자들에 의하면, 의사들은 일반적으로 「권장 수혈기준」을 알고 있지만, 상당수의 간호사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에 저자들은 "존스홉킨스 병원 ICU는 수혈에 대한 표준화된 접근방법을 갖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의료진이 개별 환자의 수혈전략을 거의 논의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결론지었다. "'환자를 위해 뭘 해야 하는가?'에 대한 원칙이 모호하다면, 환자에게 올바른 케어를 제공할 가능성은 현저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라고 머피 박사는 말한다. 앞에서 소개한 스탠퍼드의 병원의 사례를 감안하면, 이상과 같은 문제들을 극복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경고창을 띄우는 방법이 사용되기 전에는 수혈받은 환자의 절반 이상이 헤모글로빈 농도 8 g/dL 이상일 때 수혈을 받았지만, 2013년 이 비율은 30% 아래로 뚝 떨어졌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컴퓨터를 이용한 수혈관리의 효과는 매우 즉각적이며 지속적이다"라고 두 편의 논문에 제1저자로 참가했던 구드너프 박사는 말한다(참고 1, 2).
컴퓨터 경고창과 같은 간단한 방법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구드너프 박사의 의견은 이렇다. 일단, 의사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자신의 행동을 바꾸게 되는 것 같다. 그러나 경고창은 단지 경고만 하는 게 아니라, 가이드라인을 환기시키고 관련 문헌에 대한 링크까지도 제공한다. 나아가 경고창은 의사들에게 "오랫동안 몸에 배어 있는 디폴트값(표준절차)을 반사적으로 사용하지 말고, 잠깐 멈춰 다시 한 번 생각하라"고 독려하는 기능이 있다.
마지막으로, 컴퓨터 경고창은 의료진에게 '개별 환자의 니즈(needs)가 무엇인지'를 논의하는 계기를 제공할 수 있다. "의사의 지시를 받고 수혈 오더를 내린 인턴이 팀에 돌아가 '경고창이 떴다'고 말하면, 의료진은 이를 계기로 해당 환자에 대한 수혈의 적절성을 논의하게 될 것이다"라고 구드너프 박사는 말한다. 물론 - 수혈을 그대로 강행하든, 아니면 의료진의 논의를 통해 바람직한 합의점에 도달하든 - 최종적으로 수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의료진의 몫이다. "가장 안전한 수혈은 무수혈이다"라고 구드너프 박사는 강조했다.
※ 참고문헌 1. Goodnough, L. T. et al. Transfusion 54, 1358–1365 (2014). 2. Goodnough, L. T. et al. Transfusion 54, 2753–2759 (2014). 3. Adams, R. C. & Lundy, J. S. Anesthesiology 3, 603–607 (1942). 4. Hébert, P. C. et al. N. Engl. J. Med. 340, 409–417 (1999). 5. Lacroix, J. et al. N. Engl. J. Med. 356, 1609–1619 (2007). 6. Hajjar, L. A. et al. J. Am. Med. Assoc. 304, 1559–1567 (2010). 7. Carson, J. L. et al. N. Engl. J. Med. 365, 2453–2462 (2011). 8. Villanueva, C. et al. N. Engl. J. Med. 368, 11–21 (2013). 9. Robertson, C. S. et al. J. Am. Med. Assoc. 312, 36–47 (2014). 10. Holst, L. B. et al. N. Engl. J. Med. 371, 1381–1391 (2014). 11. Perel, P. et al. PLoS Med. 11, e1001664 (2014). 12. de Almeida, J. P. et al. Anesthesiology 122, 29–38 (2015). 13. National Comparative Audit of Blood Transfusion: Part 1 Audit of Use of Blood in Adult Medical Patients (2011); available at http://go.nature.com/yubguj 14. Murphy, D. J. et al. Transfusion 54, 2658–2667 (2014). ※ 출처: Nature 520, 24–26 (02 April 2015) doi:10.1038/520024a(http://www.nature.com/news/evidence-based-medicine-save-blood-save-lives-1.172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