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나먼 석병산 – 삽당령,두리봉,석병산
1. 멀리 가운데 오른쪽은 옥녀봉, 그 오른쪽은 서득봉, 앞은 대화실산(?), 맨 왼쪽 멀리는 노추산(?)
대관절 너의 전공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산이라고 대답했고 너의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산이었으며
너의 특기가 무엇이냐고 물어도 산이고 너의 애인이 누구냐고 물을 때도 또 산이라고 대답한 옹고집 산쟁이였다.
정일한 산속에서 넋을 달래고 산숲에서 자기를 성찰하고자 했으며 산마루엔 애인이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40여 년.
그러니까 18세 때 아버님을 여의고 산은 나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산에 오른다는 것이 결국 방랑
의 길이기에 사람들은 의례히 첫 인사가 ‘요새도 산에 가느냐’고 묻는다. 산에 가지.
―― 손경석(孫慶錫, 1926~2013), 『그 산길 그 여로』(평화출판사, 1990), 머릿말인 ‘산마루 길목에서’에서
▶ 산행일시 : 2025년 8월 15일(금), 맑음
▶ 산행코스 : 삽당령,866.4m봉,두리봉,1,010m봉,헬기장(988m),석병산, 온 길 뒤돌아 감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12km(도상 11.7km)
▶ 산행시간 : 4시간 10분(13 : 37 ~ 17 : 47)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산악회(26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06 : 51 – 양재역 12번 출구 200m 전방 국립외교원 앞
09 : 32 – 문막휴게소( ~ 09 : 45)
13 : 37 – 삽당령(揷當嶺, 680m)
14 : 57 – 866.4m봉
14 : 52 – 두리봉(斗里峰, 1,033m)
15 : 08 – 헬기장(988m)
15 : 27 – 석병산(石屛山, △1,055.3m), 휴식과 점심( ~ 15 : 50)
16 : 06 – 헬기장(988m)
16 : 34 – 두리봉, 휴식( ~ 16 : 40)
17 : 47 - 삽당령, 산행종료, 자유시간( ~ 18 : 32)
19 : 32 – 평창휴게소( ~ 19 : 45)
21 : 43 - 양재역
2. 산행지도
양재역을 출발할 때부터 조짐이 좋지 않았다. 산악회 버스는 양재역에 정해진 시간(06시 50분)에 도착하여 회원들
을 태우고 잠시 머물렀으나 한 분이 타지 않았다. 그분과는 연락할 수단도 없고 마냥 기다릴 수 없어 출발하였다.
죽전 간이정류장에 도착할 무렵 그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왜 아직까지 양재역에 버스가 오지 않느냐는 물음이었
다. 산행대장님 방금 전의 사정을 설명하는 한편 회원들의 양해를 구하고 죽전 간이정류장에서 15분 정도 기다리겠
으니 이쪽으로 오는 산악회 버스를 타고 오시라고 했다.
산악회 버스는 죽전 간이정류장을 무시로 지나고 20분 정도 지났으나 그 사람은 오지 않고 연락도 되지 않았다.
출발했다. 얼마 안 가서 그 사람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죽전에 도착했는데 버스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영동고속도로 진입하기 직전이었다. 산행대장님은 왜 전화를 받지 않았느냐며(9번이나 전화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으니 그리 아시라고 했다. 우리는 20분이나(이른 아침 고속도로에서는 크다) 허비했고, 그 분은 낭패를 당했다.
버스가 영동고속도로에 진입하자마자 몰려드는 차량들로 빽빽한데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숫제 기어간다. 3일
연휴의 시작이라 너도나도 동해안으로 휴양하러 가는 행렬이다. 어찌어찌 문막휴게소에 들른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서 용변만 얼른 보고 오시라는 주문이다. 당초에는 삽당령에서 백복령(18km, 7시간)까지 진행하려던 계획이
어그러졌다. 백복령 전인 생계령에서 직원2리로 하산하기로 수정했다. 영동고속도로는 곧 풀릴 듯하다가 다시 막히
기를 반복한다. 평창휴게소를 지나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이러면 명절 민족대이동이다.
대관령에 가서야 정체가 풀린다. 그래도 삽당령에 도착하면 13시 30분이 넘을 것 같다. 3시간을 예상했는데 6시간
30분이나 걸린다. 당초에는 삽당령에서 10시에 산행시작을 예정했다. 산행계획 재수정에 대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1안. 석병산만 갔다 오자.
2안. 생계령까지 가자. 석병산에서 돌아오는 것과 생계령까지 가는 것은 별로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
3안. 석병산만 가는 팀과 생계령까지 가는 팀으로 나누자.
4안. 백두대간 인증이 필요하니 석병산을 갔다 와서 버스로 이동하여 직원2리에서 생계령을 갔다 오자.
나는 3안을 지지했으나, 그러면 산행을 마치고 서울에 도착해서 집에 갈 대중교통수단이 끊어질 게 뻔하지 않느냐
하는 우려가 먹혔다. 1안이 채택되었다. 산행마감시간은 18시 30분으로 정했는데 나는 18시로 잘못 알고 서둘렀다.
석병산(왕복 12km이다)을 4시간 30분에 갔다 오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았다. 점심밥을 먹을 틈이 없다. 빵과
인절미 한 곽을 조끼 호주머니에 넣고 걸어가면서 먹기로 했다. 산행초반은 으레 숨 차는 오르막의 연속이다.
‘삽당령’의 이름 유래에 대하여는 설들이 분분하다.
『월간 산』(1995.12)에서 보는 ‘김장호의 명산행각, 石屛山 1,055.3m, 고봉준령 속에 솟구친 명주 ㆍ 정선의
험산’의 내용이 그럴 듯하다.
“강릉의 오봉저수지에서 정선 임계까지 장장 25km에 달하는 이 고갯길은 지금 한자로 ‘揷當嶺’이라 적지만, <동국
여지승람>에는 ‘삽현(鈒峴)’이라 나와 있다. 물론 전자에는 ‘끼워댄다’라는 아리송한 뜻으로밖에는 풀이가 안 되지
만, 후자로는 삼지창(三枝槍)처럼 산속을 뚫고 날카롭게 뻗은 잿길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전자를 본디 말의 음차(音
借)로 본다면 이 고개는 워낙 ‘삽등’이라 일컬어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 백두대간의 이 구간에는 묘하게도 큰 봉우리 틈서리마다 그 봉우리 못지않은 큰 고개가 또 하나씩 뚫려 있다.
그것들이 모두 내륙으로는 고갯마루의 고도가 그대로 이어지는 대신 동해 쪽으로는 모두 급경사를 이루고 있다.
대관령을 비롯하여 고루포기산 다음 닭목재, 대화실산 다음 삽당령, 석병산 다음 백복령이 예외없이 그렇다. 여기서
야말로 영(嶺)이란 과연 고봉준령, 산의 어깨를 딛고 뚫어낸 잿길(山肩通道)이었던 것이다.”
3. 삽당령 표지석
4. 두리봉 정상
5. 모싯대
7. 마타리
8. 돌마타리
새벽인 05시에 아침을 먹고 점심때가 훨씬 지난 14시이니 허기졌다. 빵을 첫 한 조각 입에 넣었는데 마른입이라
목이 멘다. 도저히 삼킬 수가 없다. 그렇다고 배낭에서 물을 꺼내려면 시간이 적잖이 지체된다. 석병산에서 먹기로
하고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음에는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배낭 옆 주머니에 500ml짜리 작은 물병 하나를 넣고 다니
는 게 좋겠다.
절대 선두로 나서지 않기로 한다. 그럴 대열에 낄 수나 있을지 의문이지만. 지난 2주 연속 벌에 쏘였던 터라 아무래
도 벌은 선두가 쏘일 것이라 그 비명(?)을 듣고 나는 피할 수 있으려니 생각했다. 백두대간이라 길은 좋다. 돌길이
아닌 부드러운 흙길이다. 가파를만하면 계단을 놓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도 가도 울창한 숲속이라 하늘이 열
리지 않아 뭇 산들을 조망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길고 가파른 오르막은 산행시작한 지 1시간 20분이 지난 866.4m봉
을 넘자 수그러들고 잔잔한 오르내리막이 이어진다.
등로 주변 풀꽃은 새며느리밥풀꽃이 흔하다. 내 처음 알고 보는 풀꽃이다. 며느리밥풀꽃은 심한 시집살이에 허기진
며느리가 밥풀을 훔쳐 먹다가 시어머니에게 맞아 죽은 뒤 꽃이 되었다고 한다. 애처롭다. 혹시 덕순이라도 보게
되면 어떡할까? 고민하다 연만한 덕순이는 데려가자 하고 마음먹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버섯의 계절이다. 대부분
‘발로차버섯’(킬문 님 버전이던가?)이다. 산죽 숲을 지날 때는 삭막하다. 산죽 숲을 한참 지난다.
두리봉을 오르기 시작하고부터 여태와는 다른 산세다. 긴 돌계단과 가파른 오르막이다. 이제야 산을 가는 것 같다.
흙먼지 일고 낙엽 들썩이게 하는 엎드린 거친 숨으로 두리봉을 오른다.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울창하여 아무런
조망이 없다. 너른 공터에 탁자가 여럿 놓여 있다. 곧장 석병산을 향한다. 한 차례 뚝 떨어져 내렸다가 1,010m봉을
오르고 다시 길게 쏟아져 내린다. 봉봉 오르내리는 굴곡이 심하다. 988m봉은 묵은 헬기장이다. 마타리 꽃이 반긴다.
석병산 오름길은 땀깨나 빼게 한다. 어둑한 숲속 등로를 모싯대가 연등처럼 밝힌다. 그걸 들여다보는 핑계로 발걸음
을 멈추고 가쁜 숨을 고른다. 돌계단 연속으로 올라 백두대간 생계령 갈림길을 지나고 그 60m 옆이 석병산 정상이
다. 일행 중 2착이다. 비로소 하늘이 열린다. 백두대간의 드문 경점이다. 석병산은 3개의 암봉이다. 가운데가 정상이
고 그 북쪽 아래는 일월봉이다. 특히 첨봉인 일월봉이 보기 좋다. 전위봉에 올라 사방 첩첩 산 일람하고, 암벽 밑을
돌아서 정상에 오르고 다시 자세히 살핀다.
산악인 김형수의 눈을 빌린다. 다음은 그의 『韓國400山行記』(깊은솔, 2002)의 ‘석병산(石屛山) 개관’이다.
“백두대간상의 대관령에서 동해안쪽으로 뻗어 내려가던 대간은 삽당령을 넘어 옥계면에서 석병산의 솟구치고 해안
선과 가까이 분수령을 이루면서 청옥산으로 이어 내려간다.
석병산 정상은 두 개의 흰색 암봉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정상에 오르면 북쪽 면의 깎아지른 절벽이 아찔하고 암군은
북동 세 능선으로 흘러내린다. 정상에서 조망은 남쪽 병골 주변의 암벽이 병풍처럼 펼쳐져 선경을 이루고, 동해의
수평선이 장쾌하게 펼쳐 보이고, 대관령 및 청옥산ㆍ두타산과 노추산을 넘어 내륙의 산이 아련하다.”
11. 솔체꽃
13. 석병산
15. 일월봉
16. 일월문
17. 석병산 전위봉과 정상 사이의 협곡
18. 멀리 왼쪽은 옥녀봉, 그 오른쪽은 서득봉, 앞은 대화실산(?)
19. 앞 능선 중간이 두리봉
석병산의 명소라는 일월문은 정상 바로 아래에 있다. 일월문 밖은 천 길 낭떠러지라고 하니 멀찍이서 바라볼 뿐이
다. 일월봉은 오르지 않는다. 거기서 별다른 조망을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뒤돌아 정상 남쪽 사면 암굴 앞에서
점심밥 먹는다. 크림빵이다. 한 입 베어 물고 물 한 모금 마시곤 한다. 얼추 허기를 달랬다 싶어 하산한다. 올 때 못
본 풀꽃이나 조망이 있을까 예의 살핀다. 돌마타리도 처음 본다. 금마타리인 줄 알았는데 잎이 다르다. 돌이 많은
척박한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돌마타리라고 하는가 보다. 제천 이북으로 영월, 정선 쪽에 자생한다니 만나기 쉽지
않은 꽃이다.
이 걸음이라면 생계령까지 가도 될 뻔했다. 어쩌면 시간이 갈수록 체력이 급격히 떨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하산이라
발걸음이 사뭇 가볍다. 다만, 두리봉을 넘을 때까지 1.6km는 힘들다. 두리봉 정상 탁자 하나 차지하고 휴식한다.
두리봉이 산행교통의 요충지다. 두리봉 북쪽은 만덕지맥으로 이어지고 두리봉 아래 ┣자 갈림길 오른쪽은 석병골과
범바위골로 내린다. 두리봉을 넘어서는 쭉쭉 내린다. 오히려 발걸음을 제동하기 땀난다.
사족 하나 덧붙인다. 며칠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 언제나처럼 비수면 상태로 위내시경을 받았다. 수면의 경우 9만
원을 내야 한다. 그 돈이 아깝기도 하지만(길어야 3분정도 구역질을 견디면 된다), 그보다는 구역질의 고통이 어떠
한지 또 경험해보고 싶었다. 검사결과 헬리코박터균이 검출되었다고 열흘치의 내복약을 처방받았다. 의사와 약사는
약을 먹는 동안 술은 일체 입에 대지 마시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하여 산행 중이나 산행 후에는 막걸리도 술 축에
끼는지 의심스럽지만 마시지 않는다. 이 무슨 비극인가! 무엇보다 산행 맛이 반감한다. 더하여 산행 때 기운이 빠지
는 느낌이다. 괜히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는가 싶다. 그렇다면 평소처럼 산행 때 막걸리를 마음껏 즐길 것이 아닌가
말이다.
방금 전에 올라 온 길이지만 내려갈 때는 보는 풍광이 다르게 보인다. 삽당령 주변의 숲속도 그렇다. 삽당령에는
우리 버스만 덩그러니 있다. 서울 가는 길. 교통은 올 때와는 달리 원활하다.
이제 다시는 석병산을 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일본 작곡가이자 피아노 연주자인 류이치 사카모토(龍一坂本,
1952~2023)의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황국영 옮김, 위즈덤하우스, 2023)의 맨 첫 대목이
가슴에 쓸쓸하게 와 닿는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의 보름달을 볼 수 있을까.’ 올해로 일흔이 되어 고희를 맞이했습니다만, 요즘 들어 이런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영화 <마지막 사랑>(1990)에 이 대사가 나왔던 것을 기억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네요. 제가 <마지막
사랑>에 이어 음악을 맡았던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Berdnardo Bertolucci)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의 마지막
에 원작자 폴 볼스(Paul Bowles)가 등장해 나지막이 이런 말을 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지 못하고, 인생은 마르지 않는 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 모든 일은 고작 몇
차례 일어날까 말까다. 자신의 삶을 좌우했다고 생각할 정도로 소중한 어린 시절의 기억조차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른다. 많아야 네다섯 번 정도겠지.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보름달을 바라볼 수 있을까? 기껏해야
스무 번 정도 아닐까. 그러나 사람들은 기회가 무한하다고 여긴다.”
20. 맨 왼쪽이 만덕산(?)
22. 맨 왼쪽 멀리는 노추산(?)
23. 석병산 일월봉
24. 새며느리밥풀
25. 삽당령 주변
26. 삽당령 주변 강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