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글 하나 내가 만난 시리즈로 다시 엮어봅니다.
내가 만난 재벌 총수/1
최근에 <국제시장>이란 영화를 봤는데, 첫 장면이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 가사 그대로다.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봤다 찾아를 봤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메었던가. 피눈물을 흘리면서 1.4 이후 나홀로 왔다.'
1950년 12월12월, 눈보라가 휘날리는 흥남 부두에서 철수하는 미국 군함에 승선하려고 개미떼처럼 밀린 9만8천명 피난민. 그 혼란 속에 가족의 손을 놓치고 발버둥치고 울부짖는 사람들, 그들을 배에 태워 달라고 호소하는 통역관 현봉학, 배에 실은 폭약과 장비를 내리게 하고 대신 피난민을 태운 에드워드 아먼드 소장 모습이 인상깊었다.
노래 2절은 국제시장이 배경이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국제시장>은 어떤 의미인가. 5천만이 사는 나라에서 그 영화에 천만 관객이 몰렸으니 인구 다섯명 중 한 명 꼴 그 영화 본 셈이다.
영화에 재벌도 나온다. 현대건설 정주영 회장 얼굴도 보이고, 앙드레김도 보인다. 정주영은 학벌은 없지만, 사변통에 뱃장 좋게 돈 벌어 재벌된 사람이다. 본명이 김봉남인 앙드레김도 그 사람 웃기는 외국어와 함께 패션계 톱스타 한 사람이다. 따지고보면, 현대 삼성 금성도 사변 통에 성장한 기업이다. 그 틈에 돈 번 사람은 어떤 사람들인가. 한마듸로 나는 그들을 '간뗑이가 크다'고 본다. '간이 그냥 큰 것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놀래 나자빠질만치 크다.'고 생각한다.
나는 재벌 비서로 20년 일했다. 재벌 빤쓰 속까지 들여다 보았다.
그 분에겐 추풍령 쪽 김천에 수십만평 땅이 있었다. 이 땅을 누가 무단 점유하고 있어, 매년 재산세 고지서만 회사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 관재과장에게 물어보니, 조열승이란 사람 아느냐고 묻는다. 그가 그땅을 점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조열승이란 말에 나는 흥미가 솟았다. 그는 <야인시대>란 드라마에 나온 깡패 집단 보스다. 자유당 최고 깡패가 임화수라면, 두번째가 동대문 시장 조열승이다. 이 대한민국 최고 주먹은, 우리가 흔히 보는 동네 술집에서 사이다병 깨고 인상 쓰는 깡패하곤 다르다. 지팽이 짚고 물건 강매하는 상이군인하고도 족보가 다르다. 그들이 하루강아지라면 이들은 범이다.
그 조열승이 회장 땅을 무단점유하고 있다는 사실은, 내가 앞으로 범 만날 일이 있음을 의미한다. 옳치 싶었다. 그의 덩치는 얼마큼 크고, 주먹은 어찌 생겼는지 궁금했다.
그래 회장실에 들어가 김천에 가서 조열승을 만나, 재산세를 받던지, 내보내던지, 양단간 결단을 내고오겠다니, 이 양반이 얼굴에 만면의 웃음을 띄며 그래라고 허락한다. 그동안 그룹 전체에서 한 사람도 그를 직접 만나 담판 짓겠다는 자 없었다. 자네가 조열승 어떻게 다루나 한번 보자는 심보였을 것이다.
종합조정실 관재과장을 데리고 추풍령을 넘어가며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자유당 시절 깡패라면 지금은 늙었다. 환갑 지난 깡패가 무슨 힘 있겠는가. 내 친구 중 부산에서 '타이거'란 이름으로 꽤 알려진 레슬링 선수가 있다. 외항선 타고 돌아오니 도장 채릴 돈이 없다고 전화로 하소한 적 있다. 그에게 그 장소 맡길 생각이었다.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힘은 힘으로 제압하자는 생각이었다..
김천에서 물어물어 추풍령 밑 그 동네 찾아가, 감나무가 선 구멍가게에 들러, 사람에게 근황을 물어보니 예상대로다. 그 동네는 참모총장으로 별을 네개나 단 정승화 장군이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조열승이 더 신화적 존재였다. 조열승에게 재산세 받으러 왔다니 모두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엄두도 내지말라고 한다. 이 정도라 건드릴 맛 났다.
걱정하는 시선들 뒤로 하고 산을 오르니, 양지 바른 능선에 수만평 배밭이 펼쳐져 있다. 그 옆에 한가로히 보트가 뜬 호수가 있고, 호수 옆에 작은 원두막이 있다.
'실장님! 저 사람이 조열승인 갑습니다. 어쩔까요?'
쳐다보니 호수 위 작은 복숭아 밭에 한 노인이 올라오는 우릴 보고 있었다. 과장은 잔뜩 긴장해버렸다.
'우짜긴 뭘 우째! 니가 혼자 가서 인사라도 한번 드리고 싶냐? 그냥 올라가자.'
코 앞에서 빤히 쳐다보는 시선을 무시함은 우선 기를 한 수 꺽자는 의미다. 위에 대궐같은 한옥이 있었다. 기왓장 한 장 한 장 서울의 유서 깊은 고가에서 뜯어온 것이라 한다. 대문 기둥은 덕수궁 기둥 같았다. 문짝에 둥그런 놋쇠고리가 달려있다. 그걸 힘차게 흔드니,
'누구세요?'
안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묻는다.
'여기 조열승씨란 분 살아요?'
그러자,
'저 아래 복숭아밭에 계실낀데요.'
이러고 돌아서니, 그때까지 우릴 지켜보고 있던 조열승 모습이 얼핏 보인다. 일부러 잡담해가며 느릿느릿 내려가니, 우리가 곁에 가자, 이번엔 그가 사람 기척에도 고갤 딴 데 돌리고 서있다.
'조열승씨 맞습니까?'
이렇게 그를 만났다. 뒷태로 보아 그는 키도 덩치도 적었다. 이 덩치로 어찌 그런 이름을 날렸을까. 속으로 약간 실망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천천히 돌아선 그 눈빛이 호랑이 눈빛이였다. 화등잔 이었다. 헤트라이트 불빛이 갑자기 내 얼굴을 비치는 것 같았다. 강열하였으나 그러나 적의의 눈빛은 아니었다. 이런 눈빛을 나는 안다.
<장자>에 싸움 닭 이야기가 있다. 주나라에서 기성자라는 사람이 싸움 닭을 길렀다. 그 닭은 옆에 다른 닭이 다가와도 눈길 한번 건네지않고, 상대가 높은 소리도 울어도, 마치 나무로 만든 닭은 대하듯 전혀 반응을 보이지않았다고 한다. 이미 무심의 경지에 든 것이다.
조열승은 동요가 없었다. 숨결이 고요함은 고수라는 의미다.
'그러면 그렇지!'
고수 만난 것이 기뻤다. 헛걸음 아니었다. 다음 수작은 미리 생각해둔 바다.
'이번에 이 땅 새로 산 사람 입니다.'
그리고 뜸 들이고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땅 주인이란 말을 듣고. 그는 한참 후 물었다.
'서울 김ㅇㅇ한테 이 땅을 샀어요?'
근거를 확인한다.
'그렇습니다.'
'그럼 저기 원두막으로 올라갑시다.'
원래 오야붕은 말을 아낀다. 그도 그랬다.
원두막에 올라가며, 노인의 비웟장을 한번 건드려 보았다.
'저 호수 속에 있는 보트도 노인장께서 사다 띄운 겁니까?'
한옥집, 원두막, 보트, 모두 그가 작만한 것이다. 그리고 이제 쫒겨날 판이다. 그걸 건딘 것이다.
노인은 한동안 침묵하다가, 입을 떼었다.
'김00가 자유당 국회의원일 때, 내가 그 사람 일을 봐주었소,'
사례를 받고 뭔가 주먹이 해결해줄 일 많았다 한다. 냄새나는 일이었을 것이다. 4.19로 감방에 가자, 돈 받고 못해준 일 대신 백지위임장에 손도장 찍어주었다고 한다. 한글을 몰라 그냥 내미는 서류에 찍어줬는데, 그게 정릉 땅 천 평만 주면 될일인데, 김천 땅 수십만평까지 찍어갔다는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 당한 것이다.
'조선생님! 그런 이야기는 나야 알 필요없는 이야깁니다. 지금 부산 내려가야하는데, 시간 없습니다.''
나는 초 치고, 그는 이야길 계속했다.
'그래 임화수 형님께 호소했더니,'김00 한테 얽혔으면 자네 큰 일 났구먼'
하더란다.
이 대목에서 나는 깨달았다. 지금 벤츠 타고 다니는 사람, 재벌이라 불리우는 그 사람들이 더 무서운 사람이다. 깡패까지 등쳐먹던 존재다. 더 냉혹하고, 더 간 크고, 더 뱃장 좋은 사람이다.
조열승은 글을 모르는 대신 기억력은 비상했다. 모년 모일 모처에서 누구와 무슨 이야길 했고, 그때 무슨 이권 어떤 조건부로 누구에게 넘겼고, 정치권 누구가 거기 관여됐는지, 그 시절 어두운 부분을 실명 실시간으로 환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런 선수 만나러 김천 간다니, 빙그레 웃던 회장이 슬며시 존경스럽기도 했다. 역시 재벌 보스는 좀 더 다르다. 규모와 스케일과 차원이 더 프로다.
' 만약 여기 계속 사실 뜻이 있으시면....도지 금액을 정하여 저한테 전화를 주시던지...'
이렇게 끝을 맺고 일어나 박과장과 희심의 미소를 교환하며 총총히 과수원을 내려올 때다.
'여보시오, 젊은 양반!'
그가 우릴 부르며 뛰어왔다.
'먼 데서 온 손님인데, 그냥 가는 것도 그럿고...'
아래 동네에서 막걸리를 사겠다는 것이다. 경우는 있었다.
그래 그와 주전자 비우면서, 긴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술 들어가면 그가 누구던 술술 말 잘 나오는 사람이다. 주거니 받거니 잔을 돌렸다. 그는 꽤 많은 이야길 했다. 감방에 갖히자 아내와는 이혼을 했다. 당시 동대문 모 여학교 재단을 가지고 있었다. 자기는 음지로 부인은 양지로 갔다. 부인은 그 학교 재단이사장이 되었다. 그 소릴 들으니 뭔가 통쾌했다. 그가 형님같이 느껴졌다. 그래 한참 수다를 떠는데,
'형님! 부산 가는 기차 놓치겠소. 그만 일어납시다'
옆에 있던 박과장은 맘이 조마조마 했던 모양이다. 술김에 실수할까봐 재촉했다.
그러고 서울로 올라온 어느 날이다. 수위실에서 전화가 왔다.
'김천서 온 조열승이란 사람이 회장님 뵙겠다고 비서실로 올라갈려고 합니다.'
'어? 그냥 올려보내면 않돼! 수위실에서 제지해야지.'
'이 분은 막을 수가 없는데요.'
하긴 그렇다. 자유당 때 조열승을 수위실서 어찌 막으랴.
'그럼 종조실 김전무더러 만나라고 하시오.'
종조실은 창업주 재산 관리하는 과장이 있다. 김전무가 그 상관이다.
좀 있어 완전 열 받은 김전무 전화가 왔다.
'아니 김비서! 날 더러 그 사람을 만나라고?'
'네! 만나시지요. 관재부서 책임자 아니십니까?'
'뭐라고요? 가만히 있는 조열승 당신이 내려가서 건드려놓고, 뒷처리는 날더러 하라고?'
'그러지 마세요. 거기가 관재담당 부서 아닙니까. 만나서, 그 땅 언제 김 누구누구에게 팔아버렸다 그리 말만 하면 됩니다.'
'아아니! 경우가 그래도 되는거요?'
'무슨 경우 말입니까? 그 말 왜 못합니까? 그렇찮아요? 지금 담당부서가 피하고, 내가 가면 일이 우습게 됩니다'
'당신 정말....'
'당신이라니? 실례 말씀 삼가합시다........'
이러고 전화 끊어버리자, 답답한 사람이 샘 판다. 자긴 어려우니, 김천 갔던 박과장을 내려보냈다. 조열승은 박과장 얼굴 보자, 두말 않고 가버렸다고 한다. 회사가 장난친 걸 당장 눈치 챈 것이다. 그래도 한 시대를 주름잡던 암흑가 보스다. 쎈스가 번개다. 회장 만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조열승이 떠나자, 흥분한 김전무가 회장실로 올라왔다. 횡설수설 하면서, 비서실서 공연히 평지풍파 만들었다고 야단이다. 이때다. 회장님 말씀이 명품이다.
'김전무 자네도 한번 만나보지... 중역들이 뱃짱들이 없어야!'
뱃장 없단 말에 김전무는 무안만 당하고 내려갔다. 그 일로 나는 오히려 점수만 땄다.
첫댓글 거사께서 어느날 하셨든 말씀 이군요.참 대단 하다고 생각 했는데...
그분 지금도 생존해 계시는지요?
재산세는 누가 내고있는지요-속편을^^^^
그가 간 후 그냥 세금은 엣날대로 우리가...
역시 창현이다운 발상과 기개가 보이네!
ㅇㅇ여러친구들을 만나는 정다운933사이트를를펴니,
보고싶던 오랜친구, 박태성을 보느구나~!!
태성친구~!!건강하고 댁내 평안하시제~?
ㅇ디에사는고?나는 마산포구에서 살아간단다.
댁내 평안하시제?? 초등친구들이 보고싶을때가 종종 있단다.
이곳에서도 자주 보면 좋겠구나~!!
거사, ㄱ동안도 댁내 평안하시제??자네는 창작력이
좋아 좋은글 올려주니 너무도 좋구나.~너의
얼굴이보고싶을때가 많이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