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0대 트레일 중 하나인 ‘영국 코스트 투 코스트
(Coast to Coast Walk)’ 306km 국내 최초 답사기
남자의 인생에는 두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다. 결혼과 퇴직이다. 요즘은 독신과 무직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일반적인 통념으로는 그렇다. 나는 몇 해 전 퇴직했다. 현직의 세계에선 하나의 톱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퇴직 후에는 혼자서 자기 바퀴를 돌려야 했다.
함께하던 모든 것을 혼자서도 잘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퇴직이란 걸 깨달았다. 현직에 있을 때, ‘혼자서도 잘 하면서 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한동안 이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곤 했다. 내가 생각해 낸 답은, ‘걷기’였다. 베이비부머 세대인 내가 퇴직 5년차를 맞은 지금,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내놓을 수 있는 답은 ‘걷기’다.
‘세계 10대 트레일’이란 단어를 인터넷에서 집중적으로 검색하던 시절이 있었다. 사춘기 때 짝사랑하던여학생의 이름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해지던 단어였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뽑은 ‘세계 10대 트레일’을 알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매거진이 뽑은 ‘세계 10대 트레일’을 알게 되었다.
미국 잡지였기에 1~2위는 미국 동부의 ‘애팔래치아 종단’과 미국 서부의 ‘존 뮤어 트레일’이었다. 관심을 끈 건 3위에 오른 ‘영국 횡단길(Coast to Coast Walk・CTC)’이었다.
처제가 아일랜드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기에, ‘언젠가 방문할 때 바로 옆나라인 영국의 시골길도 걸어보리라’고 예전부터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그때부터 영국 여행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5년 9월 한 달간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15일 동안 잉글랜드 횡단길 CTC를 걷고, 15일 동안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과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처제가 아일랜드에서 정착해 살고 있었기에, ‘언젠가 방문할 때 바로 옆나라인 영국의 시골길도 걸어보리라’고 예전부터 마음먹고 있던 터였다. 그때부터 영국 여행은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3년이 지난 2015년 9월 한 달간 영국 여행을 다녀왔다. 15일 동안 잉글랜드 횡단길 CTC를 걷고, 15일 동안은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지방과 여러 도시를 여행하는 일정이었다.
영국은 지형적으로 한반도와 비슷하다. 스코틀랜드는 휴전선 너머 북한을, 잉글랜드는 남쪽 대한민국을 연상시킨다. 잉글랜드 북부 지역을 횡단하는 길이 ‘코스트 투 코스트(Coast to Coast Walk)’다. 한반도에 빗대면 인천에서 강릉까지의 도보 길로 비유할 수 있다. 아이리시해의 세인트비스에서 시작해 북해 앞 로빈훗베이까지, 영국의 산과 호수와 시골을 걷는 길이다.
CTC의 시작, 영국 서해 절벽길
CTC의 시작, 영국 서해 절벽길
기차가 드디어 멈췄다. 차창으로 보이는 정겨운 역 이름 ‘St. Bees(세인트비스)’, 오랫동안 꿈꿔 왔던 곳에 비로소 도착했다. 런던 유스턴역을 출발해 세 시간 넘게 잉글랜드 내륙을 수직으로 올라왔다. 그리곤 중세 도시 칼라일에서 시골 기차로 갈아타고 한 시간 반을 달려 영국 서해 바다 앞까지 왔다. 처음 타본 영국 기차는 잉글랜드 내륙의 시골과 들판의 모습을 섬세한 스케치로 내 망막에 그려 놓았다.
잉글랜드 북부의 8월은 해가 길다. 오늘 같은 여름날은 저녁 8시가 넘어야 일몰이다.
한 달 전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의 골목길과 해변을 빈둥거리다 날이 어두워져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대부분 아침식사가 포함된 B&B(Bed and Breakfast)다. 아침 식탁에서 팀스(Tims)씨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식사 후 함께 출발했다. 런던에서 온 이 부부는 3일간만 걷고 돌아간다고 한다. 60대 중반의 나이라지만 걸음이 빠르고 활기가 있다.
세인트비스 기찻길을 벗어나 아이리시해안 절벽 앞에 이르면 ‘CTC 출발점’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길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1973년 한 권의 책과 함께 이 길을 세상에 알린 여행작가의 말년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알프레드 웨인라이트(1907~1991), 잉글랜드의 여행작가로 자신이 스케치한 삽화들과 함께 40여 종의 여행서를 써냈다.
수백 년 전부터 있어온 여러 갈래의 길을 묶은 것이 CTC가 되었다. 한 여행가의 열정 덕택에 여러 길이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다져지면서 더 좋은 길로 거듭났다. 밟아본 적 없는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CTC가 시작되는 해안선은 가파른 절벽이다. 남벽과 북벽 능선길이 끝나는 내륙 입구까지 드라마틱한 정경을 보여 준다. 왼쪽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아이리시해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오른쪽은 양떼들이 풀을 뜯는 푸른 초원이다. 등 뒤로 멀어지는 세인트비스마을에 자꾸만 눈이 간다.
잠깐 벤치에 앉아 파도를 내려다보며 숨을 고른다. 벤치에 새겨진 문장 한 줄이 눈길을 끈다. ‘저희 부모님을 생각해 주셔요. 매인과 한나 두 분, 여기 세인트비스에서 40년을 사신 분들이랍니다.’ 자녀들이 하늘나라로 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나 같은 모양이다.
한 달 전 예약해 둔 숙소에 짐을 풀고, 마을의 골목길과 해변을 빈둥거리다 날이 어두워져 돌아왔다.
이번 여행의 숙소는 대부분 아침식사가 포함된 B&B(Bed and Breakfast)다. 아침 식탁에서 팀스(Tims)씨 부부와 인사를 나누고, 식사 후 함께 출발했다. 런던에서 온 이 부부는 3일간만 걷고 돌아간다고 한다. 60대 중반의 나이라지만 걸음이 빠르고 활기가 있다.
세인트비스 기찻길을 벗어나 아이리시해안 절벽 앞에 이르면 ‘CTC 출발점’이라는 표지판과 함께 길에 대한 설명이 곁들여져 있다. 1973년 한 권의 책과 함께 이 길을 세상에 알린 여행작가의 말년 사진이 큼지막하게 붙어 있다. 알프레드 웨인라이트(1907~1991), 잉글랜드의 여행작가로 자신이 스케치한 삽화들과 함께 40여 종의 여행서를 써냈다.
수백 년 전부터 있어온 여러 갈래의 길을 묶은 것이 CTC가 되었다. 한 여행가의 열정 덕택에 여러 길이 하나로 묶일 수 있었다. 이후 40여 년 동안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이 다져지면서 더 좋은 길로 거듭났다. 밟아본 적 없는 새로운 길에 들어섰다.
CTC가 시작되는 해안선은 가파른 절벽이다. 남벽과 북벽 능선길이 끝나는 내륙 입구까지 드라마틱한 정경을 보여 준다. 왼쪽 깎아지른 절벽 밑으로 아이리시해의 거센 파도가 몰아치고, 오른쪽은 양떼들이 풀을 뜯는 푸른 초원이다. 등 뒤로 멀어지는 세인트비스마을에 자꾸만 눈이 간다.
잠깐 벤치에 앉아 파도를 내려다보며 숨을 고른다. 벤치에 새겨진 문장 한 줄이 눈길을 끈다. ‘저희 부모님을 생각해 주셔요. 매인과 한나 두 분, 여기 세인트비스에서 40년을 사신 분들이랍니다.’ 자녀들이 하늘나라로 간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세상 어디나 같은 모양이다.
남벽이 끝나자 길은 잠시 내려갔다가 다시 오르막을 따라 북벽 고지대에 이른다. 잉글랜드의 서쪽 땅끝이다. 그저 비슷한 해안 절벽일 뿐인데, 바다 건너 아일랜드 섬과 가장 가까운 위치라는 의미를 붙이고 보면 그 느낌이 새로워진다.
절벽 주변에 바다새 수백 마리가 붙어 있다. 멀리서 온 나를 반기는 건지 한순간 모두 쏴아~ 하고 날아올라 재잘거린다. 경사진 초원에는 수십 마리의 소들이 묵직한 자태로 풀을 뜯고 있다. 흰색 등대를 지나며 아이리시해와 작별한다.
해안선을 벗어나 호젓한 시골길로 들어서자 아담한 마을에 이른다. 시골마을 샌드위스, 아기자기한 집들이 줄지어 섰지만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로와 집 사이사이로 펼쳐진 푸른 잔디가 싱싱하다. 잔디 위 벤치에 앉아 팀스 부부와 휴식한다.
샌드위스마을을 지나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덴트힐을 오른다. 영국답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해발 353m의 정상에 이르렀지만 세찬 바람과 비 때문에 바로 내려선다. 영국인인 팀스씨를 믿고 그를 따라왔는데, 지도 보기를 소홀히 한 모양이다. 팀스 부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길을 잘못 들었다. 지도를 보며 부부가 한참 의견을 나누다 GPS에 의존해 방향을 잡아 나간다.
나 혼자였다면 비오는 산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아찔해진다. 가이드북의 지도만 믿고 GPS도 없이 왔다는 게 후회된다. 은근히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된다. 제대로 길을 찾았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헤매는 바람에 두 시간이 걸렸다. 에너데일 다리에서 각자 예약한 숙소를 향해 헤어졌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그렇게 안심일 수 없었다. 어제 팀스 부부를 따라 걸으면서 길찾기가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물론 동행이 아쉬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런던에서 온 밥 험프리와 후배 사이먼, 내일 그래스미어까지만 걷고 직장 때문에 돌아간단다. 내년 하기휴가 때 다시 그래스미어에서 시작해 3일 걷는 식으로 5년 동안 구간 종주한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숙소를 나왔다. 가로수 울창한 시골길을 걸어 에너데일호수에 도착했다. 호숫가를 따라 한 사람이 걸을 만한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산자락에는 보라색 들꽃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사이먼은 “‘헤더(heather)’라는 꽃이며 지금이 만발하는 절정기라서 앞으로 매일 볼 수 있을 것”이라 알려 주었다.
4km의 호수를 지나자 우람한 산이 앞을 막았다. 그레이너츠(Grey Knotts) 산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을 오른 뒤에야 능선에 닿을 수 있었다. 능선에 닿자 사방으로 확 트인 광활한 정경이 시각과 후각을 비롯한 온 신경을 압도하며 다가온다. 크고 작은 산들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뻗어 있고, 산과 산 사이는 신비로운 호수들이 메웠다. 능선과 능선, 골짜기와 계곡 사이로 여러 갈래의 길이 실뱀처럼 늘어져 있다.
절벽 주변에 바다새 수백 마리가 붙어 있다. 멀리서 온 나를 반기는 건지 한순간 모두 쏴아~ 하고 날아올라 재잘거린다. 경사진 초원에는 수십 마리의 소들이 묵직한 자태로 풀을 뜯고 있다. 흰색 등대를 지나며 아이리시해와 작별한다.
해안선을 벗어나 호젓한 시골길로 들어서자 아담한 마을에 이른다. 시골마을 샌드위스, 아기자기한 집들이 줄지어 섰지만 사람은 눈에 띄지 않는다. 도로와 집 사이사이로 펼쳐진 푸른 잔디가 싱싱하다. 잔디 위 벤치에 앉아 팀스 부부와 휴식한다.
샌드위스마을을 지나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덴트힐을 오른다. 영국답게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해발 353m의 정상에 이르렀지만 세찬 바람과 비 때문에 바로 내려선다. 영국인인 팀스씨를 믿고 그를 따라왔는데, 지도 보기를 소홀히 한 모양이다. 팀스 부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심각한 표정으로 멈춰 섰다. 길을 잘못 들었다. 지도를 보며 부부가 한참 의견을 나누다 GPS에 의존해 방향을 잡아 나간다.
나 혼자였다면 비오는 산 속에서 얼마나 헤맸을까, 아찔해진다. 가이드북의 지도만 믿고 GPS도 없이 왔다는 게 후회된다. 은근히 앞으로의 일정이 걱정된다. 제대로 길을 찾았다면 한 시간이면 충분했을 텐데 헤매는 바람에 두 시간이 걸렸다. 에너데일 다리에서 각자 예약한 숙소를 향해 헤어졌다.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게 그렇게 안심일 수 없었다. 어제 팀스 부부를 따라 걸으면서 길찾기가 만만치 않음을 알았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하며 새로운 사람들과 인사를 나눴다. 물론 동행이 아쉬운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런던에서 온 밥 험프리와 후배 사이먼, 내일 그래스미어까지만 걷고 직장 때문에 돌아간단다. 내년 하기휴가 때 다시 그래스미어에서 시작해 3일 걷는 식으로 5년 동안 구간 종주한다는 것이다. 이들과 함께 숙소를 나왔다. 가로수 울창한 시골길을 걸어 에너데일호수에 도착했다. 호숫가를 따라 한 사람이 걸을 만한 오솔길이 이어져 있다.
산자락에는 보라색 들꽃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사이먼은 “‘헤더(heather)’라는 꽃이며 지금이 만발하는 절정기라서 앞으로 매일 볼 수 있을 것”이라 알려 주었다.
4km의 호수를 지나자 우람한 산이 앞을 막았다. 그레이너츠(Grey Knotts) 산이었다. 가파른 산길을 땀을 뻘뻘 흘리며 두 시간을 오른 뒤에야 능선에 닿을 수 있었다. 능선에 닿자 사방으로 확 트인 광활한 정경이 시각과 후각을 비롯한 온 신경을 압도하며 다가온다. 크고 작은 산들이 판타지 영화의 한 장면처럼 뻗어 있고, 산과 산 사이는 신비로운 호수들이 메웠다. 능선과 능선, 골짜기와 계곡 사이로 여러 갈래의 길이 실뱀처럼 늘어져 있다.
사방이 탁 트인 고원이 한참 동안 이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땀을 식혀 준다. 처음 만나는 영국의 호수지방 경치는 이국적이며 감미롭다. 보노라면 온 신경이 녹아내림을 알 수 있다. 하산길은 갑자기 나타난다. 완만한 내리막인가 싶더니 갑자기 깎아지른 산 중턱에 건물과 차량이 나타난다. 채석장이면서 관광지인 호니스터광산이다. 4억 년 전 대규모 화산폭발 때 변한 지질이 오늘날까지 저렇게 사람들을 모여들게 한다.
CTC는 3개의 국립공원을 지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풍광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21개의 국립공원이 있는 것처럼 영국에는 14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영국 횡단길에 걸쳐 있는 세 국립공원은, 서부의 호수지방(Lake District)과 중부의 요크셔 데일스(Yorkshire Dales) 그리고 동부의 노스 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이다.
CTC는 3개의 국립공원을 지난다는 사실만으로도, 자연풍광이 어떤지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 21개의 국립공원이 있는 것처럼 영국에는 14개의 국립공원이 있다.
영국 횡단길에 걸쳐 있는 세 국립공원은, 서부의 호수지방(Lake District)과 중부의 요크셔 데일스(Yorkshire Dales) 그리고 동부의 노스 요크 무어스(North York Moors)이다.
4일간 걸어 지나는 이 호수지방국립공원은 이름처럼 호수가 많은 지역이다. 19세기 영국 모습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을 보면 ‘호수지방은 잉글랜드 걷기의 심장과 영혼이라 불릴 만한 곳’이라고 극찬했다. 영국 도보여행의 성지인 셈이다. 밥과 사이먼, 두 영국인 덕택에 이틀째도 헤매지 않고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3일째 되던 날, 완전히 길을 잃었다. 전날 와인을 많이 마셔 아침에 늦잠을 잤다. 오전 9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고, 길에는 나 혼자였다. 산길로 접어들고 얼마 후부터 지도에 표기된 지형과 실제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이미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고 난 뒤였다. 마침 맞은편에서 등산객 한 명이 내려왔다.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3일째 되던 날, 완전히 길을 잃었다. 전날 와인을 많이 마셔 아침에 늦잠을 잤다. 오전 9시 반이 되어서야 숙소를 나섰고, 길에는 나 혼자였다. 산길로 접어들고 얼마 후부터 지도에 표기된 지형과 실제가 완전히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이미 엉뚱한 곳으로 들어서고 난 뒤였다. 마침 맞은편에서 등산객 한 명이 내려왔다.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그는 “그린업산(Green Up Edge)으로 가야 하는데 컴브리아 웨이(Cumbria Way)라는 다른 길로 들었다”고 알려 주었다. 친절하게도 다시 돌아가기에는 먼 길이니 “이 산을 넘어 랑데일 골짜기로 하산해서 콜택시를 부르라”고 권해 주었다.
해발 600m 높이의 산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길을 못 찾고 헤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오후의 졸음이 밀려왔다. 감실감실 잠겨오는 눈꺼풀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기로 하고, 잠시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등산객이 지나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잠결에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 화들짝 일어났다. “헬프 미!” 망망대해에서 조난된 사람처럼 손을 흔들어 이들을 불렀다. 2주간 영국을 여행 중인 뉴질랜드인 형제였다. 산 밑에 렌터카를 세워두고 반나절 동안 산행을 하고 하산하는 중이란다. 그들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젊음으로 무장한 형제는 길을 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형제를 따라 하산해 랑데일 골짜기의 오솔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알랭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을 보면 영국의 호수지방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길 잃은 덕택에 내가 우연히 걷게 된 랑데일 골짜기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해발 600m 높이의 산 정상에 올랐으나, 하산길을 못 찾고 헤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상황에서 오후의 졸음이 밀려왔다. 감실감실 잠겨오는 눈꺼풀을 이겨낼 재간이 없어 여행자의 여유를 즐기기로 하고, 잠시 바위에 누워 잠이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등산객이 지나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
잠결에 멀리서 사람 목소리가 들려 화들짝 일어났다. “헬프 미!” 망망대해에서 조난된 사람처럼 손을 흔들어 이들을 불렀다. 2주간 영국을 여행 중인 뉴질랜드인 형제였다. 산 밑에 렌터카를 세워두고 반나절 동안 산행을 하고 하산하는 중이란다. 그들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젊음으로 무장한 형제는 길을 찾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형제를 따라 하산해 랑데일 골짜기의 오솔길을 여유롭게 걸었다. 알랭드 보통의 책 <여행의 기술>을 보면 영국의 호수지방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길 잃은 덕택에 내가 우연히 걷게 된 랑데일 골짜기를 작가는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호수지방에 온 이후 처음으로 우리는 깊은 산골에 들어왔다. 자연이 인간보다 두드러진 곳이었다. 작은 길 양 옆으로 떡갈나무들이 서 있었다. 나무마다 다른 나무의 그림자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서 자라고 있었다. 나무들 아래의 들판은 특별히 양들의 식욕을 돋우는 곳인지, 양들이 바짝 뜯어 먹어 완벽한 잔디를 이루고 있었다.’
골짜기를 따라 한참을 걸어 랑데일마을에 도착했다. 시골 카페에서 생맥주와 주스로 뉴질랜드 형제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주변 윈더미어호숫가에서 캠핑한다는 그들은, 나를 그래스미어까지 태워 주고 돌아갔다.
소박한 워즈워스 시인의 고향집
소박한 워즈워스 시인의 고향집
영국의 낭만파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고향인 그래스미어를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 표현했다. 산과 호수로 둘러싸인 낭만적인 마을. 마을 한복판에 워즈워스의 시 제목을 딴 ‘수선화 정원’이 있다. 울창한 숲과 편안한 산책로, 온갖 색깔의 야생화와 우직한 고목들이 촘촘히 늘어선 쉼터다.
정원 한켠에 윌리엄 워즈워스의 묘비가 있다. 묘비 앞에 선 사람들 모습에서, 시인을 향한 영국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시인의 생가 ‘도브 코티지(Dove Cottage)’는, 위대한 시인의 유적치고는 꽤 소박하다. 시인의 집을 나서면서 오래 전 영화 <초원의 빛>이 떠올랐다. 나탈리 우드가 시를 읊조리는 마지막 장면.
‘한때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였건만/ 이제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들 어떠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정원 한켠에 윌리엄 워즈워스의 묘비가 있다. 묘비 앞에 선 사람들 모습에서, 시인을 향한 영국인들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근처에 있는 시인의 생가 ‘도브 코티지(Dove Cottage)’는, 위대한 시인의 유적치고는 꽤 소박하다. 시인의 집을 나서면서 오래 전 영화 <초원의 빛>이 떠올랐다. 나탈리 우드가 시를 읊조리는 마지막 장면.
‘한때 그토록 찬란했던 광채였건만/ 이제 눈앞에서 사라졌다 한들 어떠랴/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그 시간들/ 초원의 빛이여/ 꽃의 영광이여.’
그래스미어를 벗어나 패터데일에 묵었다.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해 호수지방 마지막 산을 올랐다. 앵글탄(Angletarn)은 산 속에 자리 잡은 넓은 호수이다. 며칠간 걸어온 길을 한눈에 돌아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산 아래로 지난 밤 묵었던 호스텔과 마을이 보인다. 흰구름과 엷은 안개에 싸여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무릉도원이다. 멀리 지평선에는 거쳐 온 마을들이 희미한 추상화처럼 앉아 있다. 해발 500m의 산 속에서 만나는 호수는, 여러 시간 땀 흘려 오른 덕분에 한라산 백록담 같은 감동이 있다.
해발 784m의 킷스티 산(Kidsty Pike)까지는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다만 워낙 드넓어서 길을 잃기 쉬운 능선이다. 앵글탄호수를 지나 여러 개의 능선을 오르고 내리고서야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저 멀리 앞서가는 두 사람이 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그들을 놓치지 않으려 열심히 뒤따라왔다. 그들은 저 아래로 하산 중이고, 나는 하산이 시작되는 내리막 앞에 앉아 잠시 숨을 돌렸다. 산 아래로 드넓은 호수가 웅장하게 똬리를 틀었다. 호수지방 20개 호수 중 여섯 번째로 큰 하웨스워터(Hawes Water)다. 옥황상제가 백두산 천지를 내려다볼 때의 느낌이 지금 같지 않을까.
이 산을 내려가 하웨스워터를 지나면 호수지방 국립공원이 끝난다. 잉글랜드 내륙으로 깊숙이 들어가는 것이다. 유럽대륙 변방의 섬나라에 불과했던 영국이지만, 한때는 세계를 주도했고 세상의 중심이었던 땅이다.
“대영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55년 8월 26일에 시작되었다.”
“대영제국의 역사는 기원전 55년 8월 26일에 시작되었다.”
영국 총리 윈스턴 처칠의 말이다. 기원전 그날은 줄리어스 시저의 로마군이 처음으로 영국 땅에 상륙한 날이다. 당시 이 섬은 브리타니아로 불렸다. 브리튼족이 사는 땅이란 뜻이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은 비슷하다. 브리타니아 대신 ‘그레이트 브리튼(Great Britain)’으로 살짝 바뀌었다. 이 섬의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스와 인근 섬 북아일랜드가 더해져, 4개의 나라(Nations)로 된 하나의 영국 연방이 되었다.
세계를 지배하려던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땅 영국, 그 깊숙한 속살을 걷는다. 산 아래 호수 너머, 앞으로 밟아갈 동쪽 요크셔 지방의 산과 들을 내려다보며 크게 심호흡 한번 해본다. 오른손 스틱에 힘을 더 주면서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조약돌 하나를 만지작거린다. 세인트비스해변을 떠날 때 몇 개 주웠다며 팀스씨가 첫날 나에게 준 선물이다. 조약돌에 볼펜으로 ‘TIMS’라고 써뒀다. 이곳 사람들은 세인트비스해변의 조약돌을 주워 품고 있다가, 종착지인 로빈훗베이 앞바다에 멀리 던진다고 그가 말했다. 팀스씨 목소리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묵직하게 가슴에 들려온다.
“미스터 리, 이 조약돌을 가져가세요. 이 조약돌이 당신을 로빈훗베이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겁니다.”
세계를 지배하려던 나폴레옹과 히틀러도 정복하지 못한 땅 영국, 그 깊숙한 속살을 걷는다. 산 아래 호수 너머, 앞으로 밟아갈 동쪽 요크셔 지방의 산과 들을 내려다보며 크게 심호흡 한번 해본다. 오른손 스틱에 힘을 더 주면서 왼손을 주머니에 넣어 조약돌 하나를 만지작거린다. 세인트비스해변을 떠날 때 몇 개 주웠다며 팀스씨가 첫날 나에게 준 선물이다. 조약돌에 볼펜으로 ‘TIMS’라고 써뒀다. 이곳 사람들은 세인트비스해변의 조약돌을 주워 품고 있다가, 종착지인 로빈훗베이 앞바다에 멀리 던진다고 그가 말했다. 팀스씨 목소리가 든든한 버팀목처럼 묵직하게 가슴에 들려온다.
“미스터 리, 이 조약돌을 가져가세요. 이 조약돌이 당신을 로빈훗베이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줄 겁니다.”
이영철 여행 작가
nudles7768@hanmail.net
한솔제지에서 30년 근무 후 2011년 퇴직해 세계 10대 트레일을 걸으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현재 10곳 중 2곳만 남겨놓았다.
여행서적으로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자의 행복>을 펴냈다. 블로그 : 네이버 검색창에서 ‘누들스 라이브러리’
nudles7768@hanmail.net
한솔제지에서 30년 근무 후 2011년 퇴직해 세계 10대 트레일을 걸으며 여행기를 쓰고 있다. 현재 10곳 중 2곳만 남겨놓았다.
여행서적으로 <안나푸르나에서 산티아고까지>, <동해안 해파랑길, 걷는자의 행복>을 펴냈다. 블로그 : 네이버 검색창에서 ‘누들스 라이브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