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라의 ‘목로주점’
문학사에 획을 긋게 한 작품이라면 일반인들도 상식이로나마 알려고 한다. 그러나 문인이면서도 문학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는 사실이 놀랍다. 우리가 상식으로나마 알아야 할 대표적인 작품으로, 나는 ‘목로주점’으로 꼽아본다.
‘목로주점’의 목로란 선술집에서 술을 팔기 위해 설치한 널빤지로 좁고 기다랗게 만든 상을 의미한다. 요즘 말로 하면 바가 곧 목로주점이다. 졸라의 루공 마카르 총서의 제7 권이다,
여주인공인 제르베즈는 돈을 벌기 위해 애인 랑티에와 함께 파리로 나온다. 모자 제조기술자인 랑티에는 게으르고 술만 마시는 생활로 일관하다가, 결국 그녀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로 가버린다. 그녀는 두 아이와 함께 세탁부 일을 하다가 다락방에 사는 함석장이 쿠포와 결혼하고 자신의 가게를 가지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 쿠포가 지붕에서 일을 하다 떨어져서 부상하여 모아두었던 돈은 모두 동이 나버리고, 긴 요양기간에 남편은 그 후 빈둥빈둥 놀면서 술에 찌든 생활을 한다. 거기에 전 애인 랑티에가 찾아와서는 세 사람의 추악한 동거생활이 시작된다. 희망을 잃은 일가의 생활은 점점 악화되어가고, 그녀 자신도 가게를 팔아 술만 마셔댄다. 그 후 쿠포는 알코올 중독으로 죽고 뒤이어 그녀도 굶어 죽는다.
졸라는 이 소설을 ‘거짓말을 할 줄 모르는 평범한 사람들에 대한 첫 번 째 소설이다.’ 라고 했다. 근면함으로 빈민가를 벗어나려는 제르베즈의 의지가 환경에 의하여 꺾이는 이야기이다.
‘목로주점’은 노동자 계급의 삶과 대중문화에 예술가들이 관심을 가지도록 도전장을 보낸 것이다. 예술가들도 관심을 가지므로 근대 예술의 형식과 소재에 관하여 논쟁을 일으켰다. 이런 이유로 진정한 근대 소설이라는 평을 듣는다.
보수적 비평가의 말도 옮겨보자. 거리의 속어를 그대로 사용했다, 성적 표현도 솔직하게 했다. 성직자와 관료들의 부도덕 등의 불결함과, 노동자 계급의 가난, 불량한 행동들을 표현함으로 보수적인 비평가들은 격렬하게 비난했다‘
이 소설의 탁월한 점은 가난한 사람들의 생활에 어떤 환상도 부여하지 않는다. 미화하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낮추어 보지도 않는다. 소설의 주인공은 성녀도, 반드시 성공을 움켜쥐는 의지의 여인도, 영웅적인 삶을 사는 여인도 아니다. 우리와, 나와 꼭 같은 나약한 인긴이고, 환경에 휘둘리다가 자살로 생을 끝내는 이야기일 뿐이다.
생각해 보자. 우리가 사는 삶에서 환상을 걷어내버리면 무엇이 남을까. 말하자면 현실이란 무엇일까.
*에밀 졸라의 ‘제르미날’
1885년 출판된 에밀 졸라의 소설로서, 루공 마카르 총서의 13번 잒품이다
졸라는 소설을 쓰기 전인 1884년 북프랑스 앙장 탄광의 스트라이크를 직접 돌아본 뒤에 이 대작을 썼다. 줄거리는 간단한 작품이다. 제목인 ‘제르미날’은 프랑스 혁명력에서 일곱 번 째 달이다. 뜻으로는 대중봉기, 폭동, 폭력, 가난, 기아 긍을 내포하고 있다.
< 줄거리>
제르베즈와 랑티에의 아들인 젊은 에티엔 랑티에는 고용주의 따귀를 때린 것 때문에 해고당한다. 실업자 신세가 되어서 일을 찾으려 북프랑스로 떠난다. 몽수의 광산에 취직하여 일하면서 그곳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목도하게 된다. (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졸라는 광산 노동 현장을 다방면으로 취재했다고 한다.)
광부 가족인 마외 일가를 알게 되고 젊은 딸 카테린과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카테린은 난폭한 일꾼 샤발의 애인이었고, 에티엔의 마음을 몰라주는 것은 아니지만 애매한 태도를 취한다.
광산 회사가 경제난을 이유로 임금을 깎는 삭봉을 선언하자 에티엔은 광부들이 파업을 하도록 선동한다. 광부들의 체념에도 불구하고 설득에 성공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더욱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 이상을 광부들에게 나누어준다.
파업이 시작되자 광산회사는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어떠한 협상도 거부한다. 몇 주에 걸친 투쟁에 굶주린 노동자들의 기세는 점점 활기를 잃어가고, 군인들이 질서를 회복하려 동원되었다.k 그래도 파업은 계속된다. 소요 도중에 많은 광부들은 군인들이 발포하는 총으로 부상당한다. 그래도 시위자들은 군인들에게 맞서는데------, 이 때 에티엔의 하숙주인 마외가 살해당한다.
주인공 랑티에는 갱부(坑夫)로 취직하였으나 생활은 비참하였다. 광부의 지도자가 되어 파업을 일으키지만 군대가 진주하여 무지막지하게 탄압한다. 그때 러시아인으로 망명한 아나키스트가 수도(水道)를 파괴하여 갱(坑)은 순식간에 수몰(水沒)한다. 에티엔느는 살아났지만 애인 카트리느는 그 속에서 죽는다.
졸라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광부들의 삶과, 호화로운 부르주아지의 사치 생활을 대비시키므로 타협보다는 투쟁을 부추긴다는 비판도 받았다.
광부들은 결국 다시 일을 하기로 한다. 그 때 무정부주의자 일꾼인 수바린이 폭발물을 터트리고, 몇몇 광부들이 사망한다. 에티엔과 카테리느와 그 애인 샤발은 광산에 갇힌다. 샤발은 에티엔에게 도발하다가 결국 그에게 살해당한다. 비로소 자신의 연인이 된 카테리느를 안았으나, 카테리는는 자기의 품 안에서 구조원들이 도착하기 전에 눈을 감는다. 에티엔은 이 지옥에서 빠져나와 좀더 평온하게 살기 위해 파리로 떠난다. 나름대로 이유와 희망을 가지고 파업에 참여하였지만,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자본주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그러나 언젠가는 노동자들이 불의를 꺾으리라는 확고한 희망은 버리지 않고서….
논란이 된 제르미날의 결말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면서 끝이 난다. 대답이 없다. 그러나 파괴와 재생이 소용돌이 친 혁명, 또는 노동자 파업이 노동자 계급을 태어나게 함으로 정치적 진화도 곧 나타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군중 서사시적인 장대한 소설로 앙드레 지드는 이것을 졸라의 최고 걸작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