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무렵 인사동 사진 몇 장으로 잊혀 진 추억을 돌아본다.
옛 민정당사 앞에는 가격이 폭락한 농산물을 쌓아 놓고 농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민정당사 자리는 대성산업에서 삼성화재로 넘어가 지금은 ‘안녕 인사동’ 호텔이 들어섰는데,
그 당시는 밤이 되면 검은색 세단을 탄 정치인들이 인사동에 들락거렸다.
골목 안쪽에 우정, 다미, 가회 등 많은 한식점이 자리 잡은 것도 다 정치인들 때문이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밥만 먹고 떠났을 뿐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그 때는 전시장을 대여해 주는 ‘관훈미술관’이나 민중미술가들의 집합 처인 '그림마당 민' 같은
대안공간이 생기면서 인사동에 젊은 미술인들의 출입이 부쩍 늘어났다.
그때부터 전시회 오픈이 있는 매주 수요일은 축제의 날이 된 것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형성된 이런 분위기는 자연스레 화가는 물론 문인과 사진가 등
다양한 예술인들이 모여들게 함으로서 언론인과 지식인을 끌어들이는 구심력으로 작동했다.
골목구석구석에 박힌 크고 작은 술집들은 늘 이들의 차지였고,
그곳에선 세상 이야기와 진지한 예술 담론이 술잔을 넘실거렸다.
이때가 인사동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1988년 인사동이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면서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전통문화의 거리에 관이 개입하여 꽹과리 치고 떡판을 두드리는 축제를 벌이면서
인사동 거리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97년부터 일요일은 차 없는 거리로 만들자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며 인사동이 제정신을 잃어 버렸다.
골동가게와 표구점 등 기존의 점포가 밀려나고 잡화상이나 옷가게가 잠식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세상이 급변하고 인심이 변하는데 어찌 인사동만 변하지 않겠는가?
인사동 밤거리의 포장마차나 여관방에 들어박혀 있는 그때 그 사람들을 보며 추억을 곱씹는다.
아득한 그 시절을 고은 시인의 시로 추억한다.
“인사동에 가면 오랜 친구가 있더라/ 얼마 만인가/ 성만 불러도/ 이름만 불러도 반갑더라// 오로지 빈손을 잡고/ 그냥 좋기만 하더라// 인사동에 오면/ 그런 날들 가슴에 묻어/ 고향 같은 골목들/ 그냥 좋기만 하더라// 서로 나눌 지난날이 있더라// 밤 이슥히 손 흔들어/ 헤어질 친구가 있더라”
사진, 글 / 조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