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64]
조만식(曺晩植, 1883~1950)①
1883년 2월 1일 평양에서 태어난 조만식은 일찍 결혼해서 포목상을 시작했고, 사업은 점점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불안한 시국에 부인 박씨와 아들을 잃은 후 술과 노름에 빠져 방황하게 되었고, 이때 친구요 동업자인 한정교의 도움으로 그리스도를 믿기로 하고, 23세에 숭실학당에 입학해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원래 소문난 술꾼이었던 그는 술과 담배는 모두 끊고 그 후로 40년 이상 절제의 삶을 살았습니다. 일생을 하나님과 나라를 위해 바치기로 다짐했던 것입니다. 그는 안태국과 안창호 등을 통해 교육받았고, 애국, 민족계몽, 그리고 신앙의 중요함을 깨닫고 일본 메이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평북 정주에 세워진 오산학교의 설립자 남강 이승훈이 105인 사건으로 투옥되자 그는 오산학교에 초빙되었고, 처음에는 임시로 3개월만 있기로 했으나 그곳에서 9년간 교사와 교장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남강 선생이 돌아오자 조만식은 함께 힘을 모아 열심히 학생들을 교육했는데 그중에 주기철, 함석헌, 한경직,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김홍일(독립운동가) 등이 있었습니다. 경건한 신앙을 바탕으로 민족을 위해 섬길 인재들을 키워냈습니다. 당시 외국 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문물을 천시하는 풍조를 그는 못마땅히 여겼고, 이에 ‘물산장려운동’을 일으켜서 우리 것을 사랑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는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두루마기를 입고 갖신(옛날에 가죽으로 만든 재래식 신)을 신었으며, 양복이나 외국 제품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민중의 호응을 얻었고, 학생들에게 예수를 믿고 나라를 사랑하도록 사회 운동을 일으키면서 금주, 금연, 폐창(廢娼) 운동을 주도했습니다.
김재현. 『한반도에 새겨진 십자가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