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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 때문에 소중한 ( )을 놓치지 말라
[마태복음 6장 25-34절]
어느 목사님께서 방글라데시에서
선교사로 사역하실 때의 일입니다.
이분은 하나님만 의지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는
이 믿음이 흔들릴 때가 있었다고 해요.
한 번은 전임 선교사님이 물려주신
승용차를 타고 방글라데시 도로를 달리는데,
비가 엄청 온 겁니다.
안 그래도 도로 사정이 나쁜데 비까지 오니
이곳저곳이 물웅덩이더랍니다.
겨우 피해서 가다가 어느 순간
큰 웅덩이에 차가 푹하고 빠져 버렸습니다.
차는 크게 부서지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제게 좋은 짚차를 주세요.“
그런데 목사님이 고집이 있으셔서
후원교회에는 절대 말하지 않고
기도만 드린 겁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도
아무런 응답이 없던 겁니다.
그러다 ‘이젠 구체적으로 기도하자’고 생각하고
날짜를 정했다고 해요.
데드라인이죠.
”그때까지 주실 줄 믿습니다.“
하고 간절히 기도했어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한 날짜에 우편함을 확인했는데,
아무런 편지가 없는 거예요.
혹시나 하고 그날 밤까지 기다렸데요.
마침 그날이 막내딸의 백일잔치가 있어서
한국 선교사님들이 함께 모여
저녁을 먹었거든요.
그날 저녁 늦게까지
어느 누구도 짚차에 대한 말을
하지 않더랍니다.
‘아, 응답은 물 건너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분도 이와 비슷한 경험 있으신가요?
기도해도 응답이 없어서 염려만
가득한 삶을 살고 있진 않습니까?
목사인 저도 때론 고민이
저를 짓누를 때가 있어요.
솔직히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많이 그랬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병원에 입원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염려했습니다.
이번주 예배를 놓고 걱정이 많았어요.
설교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요즘 걱정 많으십니까?
하루를 시작하면서도
“오늘 하루를 잘 보낼 수 있을까?”
걱정하고,
밤이 되면 “내일은 또 어떻게 하지?”
고민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그게 우리의 모습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그 전에 염려의 특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염려는 우리의 삶을 소진시킵니다.
염려의 특징 염려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a. 첫 번째는 불필요함입니다.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염려는 오히려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마 6:25).
사람들은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생명은 그보다
더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마 6:27)라고 하셨습니다.
즉, 염려한다고 해서 키가 더 크거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키’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헬리키아’란 말로
그 뜻은 ‘나이, 생명’입니다.
또한 ‘한 자’는 한 규빗으로 약 45cm입니다.
그러므로 염려함으로 생명이나
나이를 연장할 수 없다는 말이죠.
부모는 자녀들을 키우면 키울수록
걱정이 늘어납니다.
사장은 사업이 커질수록 근심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집이 작으면 작아서 염려,
크면 커서 염려합니다.
이것은 우리 삶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까요?
아닙니다.
이런 의미에서 지나친 염려는 불필요합니다.
b. 염려의 두 번째 특징은 유해함입니다.
염려라는 단어의 헬라어 뜻은
‘나눔’, ‘분열됨’입니다.
즉 염려란 마음이 분열되어
어수선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 생각으로 밤을 새우고,
저 생각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결국 몸과 마음과 영혼의 건강을 해칩니다.
이와 관련하여 설교를 준비하며
염려와 관련된 질병을 알아봤습니다.
먼저는 심혈관 질환입니다.
여기엔 고혈압, 심장병,
뇌졸중이 있습니다.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일수록
고혈압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이걸 줄이기 위해
콩팥의 부신에서 ‘코르티솔’이란
호르몬이 분비된답니다.
이와 동시에 기분을 좋게 만들어 주는
‘아드레날린’도 함께 나온답니다.
이게 혈액을 빨리 돌게 만드는 역할을 해요.
문제는 갑자기 혈액이 빨리 돌려면
심장 박동이 빨라져야 하고,
그러면 혈압이 상승한다는 겁니다.
장기적으로 보면 혈관이 손상되고,
심장병이나 뇌졸중으로
쓰러질 수 있다고 해요.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서 갑자기
뒷 목 잡고 쓰러지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왜 그런 장면이 나옵니까?
앞에서 충격적인 말을 듣거나 보았을 때
그렇죠.
“아니, 너가!”
또한 염려로 인해 소화기 질환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속이 쓰리거나
배가 아픈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스트레스는 위산 분비를 증가시키고
소화 기능을 방해합니다.
이로 인해 위염, 역류성 식도염,
심할 경우 위궤양이 생길 수 있습니다.
또한, 장의 운동을 방해해
설사나 변비를 유발하는
과민성 대장증후군(IBS)도
흔하게 나타납니다.
이외에도 정신 건강(불면증, 우울증, 공황장애),
피부 질환 (아토피, 두드러기, 탈모),
체중 변화(폭식, 거식증, 비만),
근육 및 관절 장애(긴장성 두통/ 허리 통증)
등도 나타납니다.
부끄럽지만 제가 하나님의 은혜와
성도님들의 기도 덕분에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논문을 쓰는 동안
제 몸무게가 엄청 늘었어요.
논문에 대한 염려가 계속되니
계속 먹었던 거예요.
머리에는 아토피처럼 피부가 일어나기도 했어요.
편두통도 와서 글을 쓸 수도 없던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논문이 끝나자 이 모든 게
눈 녹듯이 사라졌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염려가 몸을 이렇게 상하게 하는구나.’
c. 이와 더불어 염려의
세 번째 특징은 전염성입니다.
염려와 걱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전염됩니다.
그래서 결국 공동체를 깨뜨리기도 합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민수기 13, 14장에
등장하는 정탐꾼 사건 아닙니까?
가나안 땅을 다녀온 10명이 염려 섞인 말로
선동하자 어떻게 되었나요?
갈렙과 여호수아의 말이 하나도
안 들어오는 겁니다.
“우리를 다시 애굽으로 돌려 보내라!”
고 외치며
온 백성이 다 염려했어요.
이스라엘 공동체는 코로나19보다 무서운
염려병에 걸렸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이들 모두를 광야에서
죽게 내버려 두십니다.
이처럼 염려는 하나도 이로울 게 없습니다.
그러면 인생을 살면서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본문 28-30절을 읽어볼까요?
마태복음 6:28-30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예수님께서는 들에 피는
백합화를 보라고 하십니다.
백합화는 이스라엘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wild flower)입니다.
우리로 치면 민들레나 토끼풀 정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는
들꽃조차 아름답게 가꾸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돌보지 않으시겠습니까?
허드슨 테일러는 19세기 중반,
중국 선교를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난
선교사였습니다.
그가 중국에 도착했을 때,
그의 상황은 너무나 어려웠습니다.
어떤 후원도, 정부의 지원도 없었습니다.
선교를 시작했지만, 돈은 전혀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습니다.
정말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죠.
어느 날, 테일러는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는
상황에서, 다급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주님, 오늘 하루 아이들과 함께
무엇을 먹을 수 있을까요?"
그때, 한 현지인이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허드슨 선교사님, 제가 드릴 게 있는데
한 번 보시겠습니까?“
그 현지인을 따라 가보니
식료품과 돈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테일러는 하나님이
그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믿음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또 다른 날, 그의 선교단체는
급히 의료용 약품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돈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하며 하나님께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이 지난 후,
한 선교지에서 헌금이 들어왔습니다.
그 헌금은 정확히 필요한 양만큼의
의약품을 구매할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믿음대로 공급하셨습니다.
테일러는 그때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을 보고,
다시 한 번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이와 관련하여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쓴
편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주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십니다.
그래서 그 풍성함을 따라 쓸 것을
채우십니다.
그냥 대충 채우시는 것도 아닙니다.
쓸 것들 ‘모두’를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니 오직 주님만 신뢰하십시오.
예전에 축구 국가대표 선수들의
락커룸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여기 보니까 시합 전 회의를 마무리하고
빙 둘러서서 어깨동무를 하더라고요.
그리고 손흥민 선수가 선창을
이렇게 선창을 했습니다.
”우리가 누구?!“
그러자 선수들이 함께 외쳤습니다.
”대한민국!“
그 말 한마디가 제 마음에
탁하고 꽂혔습니다.
저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마음으로 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경기에 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아들이요, 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염려와 싸워야 하고
싸워 이길 수 있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32절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6: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하나님은 우리가 이방인처럼
살기를 원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가 대기업 회장이라면
염려하겠습니까?
당장 내일이라도 용돈 타서
해외 여행 가지 않을까요?
먹고 싶은 소고기 실컷 먹을 것 같아요.
그런데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신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분이
동네 아저씨가 아닙니다.
처음 보는 낯선 외국인이 아니예요.
우리를 창세 전부터 알고 계시며
창조하신 하나님이 아버지십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우리 안에 두려움은
거짓된 사탄의 계략입니다.
내가 누군지 ‘정체성’을 잊게 만드는 게
바로 두려움 아닙니까?
이걸 가장 기뻐하는 존재인
사탄의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미국 라이프 교회의 담임이신
크레이그 그로쉘이라는 목사님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악한 자의 도구인 근심은
우리의 주위를 흩뜨려
하나님의 가장 좋은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서 근심과 걱정이 허수아비 같다고 했어요.
허수아비가 어떤 힘이 있어서
무슨 해를 끼치진 않잖아요?
도리어 허수아비가 있는 곳에
가장 알이 찬 옥수수가 있는 것처럼,
원수가 가져온 근심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심어 놓으신 곳 아닐까요?
그러므로 우리는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 아버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있어야 할 줄 아십니다.
염려는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하늘 아버지만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주님의 귀한 자녀입니다.
갈라디아서 4:6, 7을 읽어봅시다.
갈라디아서 4:6, 7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우리가 누굽니까?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딸입니다.
지혜로운 자의 기도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변화시킬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할 수 없는 일을 용납할 수 있는
겸손함을 주십시오.
그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시오.“
위의 기도를 다음 말씀을 붙들고 하십시오.
빌립보서 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베드로전서 5:7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앞서 말씀드렸던 방글라데시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백일 잔치가 끝나고 밤 늦게 아이들과
선물 꾸러미를 풀고 있는데,
그 안에서 작은 장난감 모형
짚차 두 개가 나온 거예요.
선교사님은 이렇게 생각하셨대요.
‘하나님, 정확한 날짜에 짚차를
두 대씩이나 주셨네요’
처음엔 실망했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좀 더 기다리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였답니다.
그리고 감사했데요.
‘하나님은 신실하시니 반드시 주실 거야.’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어느 한국 선교사님이 문제가 생겨
갑자기 추방을 당하셨어요.
그분이 타던 짚차가 매물로 나온 겁니다.
그런데 아무도 그 차를 구매하지 않았어요.
당시 선교사님은 그 차를 구매할 돈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딜러가 차 가격을 파격적으로
내린 겁니다.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자신이 타던 그 승용차를 팔면 되겠다
싶더래요.
곧장 매물로 내놓았고,
돈을 가지고 짚차를 사고도 남았답니다.
짚차의 원래 가격은 훨씬 비쌌지만
하나님께서 이렇게 주신 거예요.
그분의 고백입니다.
”지금도 순간순간 환경과 사람을 의지하려는
유혹이 있지만
나의 필요를 절대로 사람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
하나님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키신 적이 없고,
부족하여 어려움을 당한 적도 없다.
하나님은 정말 신실하신 분이시다.“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를 사랑하시죠.
그게 바로 우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염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어요.
염려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3. 또한 세 번째로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본문 33, 34절을 읽겠습니다.
마태복음 6:33, 34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게 뭘까요?
구제 사역, 선교 사역, 전도 사역 등이 될 수 있죠.
즉, 복음을 듣고 순종하여 전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고 하셨어요.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을 책임져 주시겠다는
말씀이죠.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살아갑시다.
주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십니다.
이와 더불어 주님은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염려의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이 시간의 흐름 속에서
오늘 해결해 주실 것은 오늘 해결해 주시고,
내일 해결해 주실 것은 내일 해결해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오직 주님 한 분만을 믿을 때
여러분은 모든 염려에서 해방될 것입니다.
이 구절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 나온
이야기를 가져왔습니다.
1900년대 초 윌리엄 오슬러라는 사람이
대형 여객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했습니다.
그때 선장이 선교에서 버튼을 누르자
땡그랑 소리가 나며 배의 각 부분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곤 차단벽이 올라가면서
각 부분이 격리되었고 방수 구역이
만들어졌습니다.
이 모습을 보곤 깨달았답니다.
‘안전한 인생의 항해를 위해선
어제와 내일을 차단하는
오늘의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구나’
죽어버린 과거와 완벽하게 단절되어야 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내일을 차단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내일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이 말은 내일은 내일이 염려하게 하고,
다가올 내일을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거죠.
마틴 루터 킹 Jr.는
미국의 유명한 인권 운동가이자 목사로,
1960년대 인종차별에 맞서 싸운 인물입니다.
킹 목사의 삶에서 염려 대신
오늘을 살아가는 힘을 느낄 수 있는
명언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다.
그러나 오늘 한 가지 일이라도 옳게 하면
그것이 내일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도 오늘을 충실히 살아가며
하루하루의 선택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십시오.
내일에 대한 걱정을 덜고,
오늘 하나님께 맡기며,
오늘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한 일을 찾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어느 목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시골 교회에 집회하러 가려는데,
아내의 건강이 갑자기 안 좋아졌습니다.
목사님은 염려가 되었죠.
그때 9살 난 아들이 툭하고
이런 말을 던졌습니다.
“아빠, 그곳에 가서 설교하는 게
하나님 뜻이라면,
아빠가 없는 동안
하나님이 엄마를 지켜주실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해요.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염려했구나.’
병상에 누워있던 아내도 같은 마음으로
기도했습니다.
“맞아, 아들.
하나님께서 엄마를 지켜주실 거야.”
그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감동이
마음속에서 울려 퍼졌답니다.
‘내가 너를 지키리라.’
그래서 종이를 꺼내 들고는
감동 받은 것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널 지켜주시리.
매일 매일 그리고 마지막까지,
그분이 널 지켜주시리.’
그리고 오르간에 앉아서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찬양이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입니다.
"너 근심 걱정 말아라" (찬송가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 주 너를 지키리 /
주 날개 밑에 거하라 / 주 너를 지키리
후렴) 주 너를 지키리 / 아무 때나 어디서나 /
주 너를 지키리 / 늘 지켜주시리
오늘 설교의 제목을 기억하십니까?
“염려 때문에 소중한 ( )을 놓치지 말라”
괄호에 들어갈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오늘’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은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께 맡길 때,
우리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십시오.
지나간 과거를 잊고,
아직 닥쳐오지 않은 미래도 내려놓고
오직 오늘을 소중히 여기며 사시길 바랍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