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다가옵니다.명절이 가까워지면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지요. 전통주를 빚는 이들입니다.
비록 반짝경기지만, 이맘때는 술도가 사람들이
가장 신명나게 일할 때입니다. 하지만 올핸
신명과 함께 한숨소리도 배어나옵니다.
“반품이 얼마나 나올지. 밤에 잠이 안오네요.
”충남 서천에서 전통주를 빚는 나장연(40·한산
소곡주 사장)씨의 걱정이 말이 아닙니다.
백화점, 할인점 등에 보낸 술이 무사히
소비자의 손에 닿기를 바랄 뿐입니다.
전통주만큼 토속적이고 문화적인 것이
있을까요. 술엔 우리 고유의 맛과 멋, 문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이같은 우리 술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양주와 맥주,
와인이 차지한 널찍한 매장 한 구석에,
초라하게 자리한 전통주의 모습은 바로 나
자신의 자화상인 듯해 보기 민망합니다.
서울신문 주말판 We가 이번 주부터 매주 금요일
독자 여러분과 함께 ‘주가(酒家) 기행’을
떠납니다. 주가 기행은 전통주에 얽힌 애환과
역사, 술 빚는 이들의 치열한 장인 정신, 정감
넘치는 술도가 작업장의 이야기를 담을
것입니다. 또 가까운 곳의 여행 명소도 함께
소개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궁궐에서,
주막에서, 집에서 즐겼던 우리 술의 맛과 멋을
주가기행과 함께 느껴보십시오. 첫회는 ‘한산
소곡주’ 편입니다.
한산 소곡주를 처음 마시면서 속기 쉬운 한
가지. 부드럽고 달콤한 맛에 주도가 낮다고
판단해 폭음하기 쉽다는 것. 오죽하면 ‘앉은뱅이술’이란
별명이 붙었을까. 문헌상 가장 오래된 백제의
술이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 의자왕이
달콤한 소곡주에 취해 삼천궁녀와 놀다가 나랄
말아먹었구나.’란 추측이 들기도 한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 따르면 무왕 37년(635년)
왕이 신하들과 어울려 백마강 기슭 고란사
부근 경치 좋은 곳에서 마셨던 술이 한산
소곡주다. 소곡주 제조법은 조선시대의
산림경제, 양주방, 임원십육지, 동국세시기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현재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의 우희열(64) 여사와 아들
나장연씨가 소곡주를 빚고 있다. 어머니는
제조 기능 보유자(충남 무형문화재 3호)겸 명주
명인, 아들은 제조기능 이수자다.
두 모자(母子)를 한산모시관내 양지바른
곳에서 마주했다. 모시관 길 건너편엔 소곡주
공장이 있지만, 상당 부분의 공정이 대형화,
자동화돼 예전의 술도가 정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모시관 한쪽엔 관광객들이 단체로
오면 소곡주 빚기를 시연하기 위해 아궁이와
소주고리 등 전통적인 술 도구들을 갖춰놓았다.
“술맛은 누룩이 첫째지유. 누룩을 잘 띄워야
맛이 깊고 은근하니께유.”
나씨 집안으로 시집와 시어머니(김영신)의
가르침을 받아 소곡주를 빚은 지 35년.
시어머니가 친정 집안에서 대대로 내려오던
소곡주 제조 비방을 시집오면서 가져와 며느리,
손자에게 명맥을 잇게 했다.
“술 빚는 방법이야 비슷하지만 같을 수는
없지유. 그래서 똑같은 술이라도 빚는
사람마다 맛이 달러유. 아니 지가 빚는 술도
빚을 때마다 맛이 조금씩 차이가 나유.”
그래서 술은 ‘만든다’ 하지 않고 ‘빚는다’고
하나 보다. 예술하는 이들이 저마다의 예술
세계를 추구하며 그림이나 조각을 ‘창조’하듯,
술도 미세하지만 빚는 이만의 맛이 담겨있는
것이다.
소곡주 맛은 달고 그윽하다. 이는 술 빚을 때
들어가는 들국화가 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게
우씨의 설명. 들국화 자체의 그윽한 향과
잡균에 대한 강한 살균력으로 잡미를 없애
곡주 그대로의 감칠맛을 낸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생하는 들국화를 채취해다가
말려서 썼는데, 이젠 여의치 않아 고민입니다.”
나장연씨는 술 생산량이 늘면 결국 들국화도
재배해서 써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제조과정도 다른 약주와 조금 다르다. 우선
술을 빚을 때 물을 절반 정도만 써 알코올 도수(18도)가
약주치고는 꽤 높은 편. 또 다른 약주는
효모균이 알코올을 만들 때 전분에서 나온
당분을 모두 소모하지만, 소곡주는 절반
정도만 소모, 남은 당분이 술 맛을 달게 한다.
대개의 약주는 사라진 단맛을 내기위해
올리고당이나 아스파탐 등 인공적으로 당을
가미한다.
나씨는 어머니로부터 소곡주 제조 기능을
전수받았지만 맛의 개선에 관심이 많다. 젊은
세대의 미각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
“누룩 특유의 냄새가 문제지요. 예전의
어르신들은 누룩에서 나는 묵직한 맛을
좋아했지만 젊은 세대들은 가볍고 깨끗한 맛을
좋아합니다. 누룩이 아닌 효모균만을 넣어
빚은 일본의 청주 같은 술 말입니다.”
그는 전통적인 소곡주는 그대로 보존하되,
이를 개선한 술도 빚을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단순히 상업적 차원이 아니라, 우리 술의
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도 명주를 빚는 집안에선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해 더 좋은 맛을
창조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전통식품 관련법상
민속주로 지정돼 제조면허를 받은 것은 재료나
방법을 조금이라도 달리하면 술을 생산할 수
없어 제도적으로 매우 어렵게 되어 있다.
한산 소곡주는 현재 약주(18도)와 증류식 소주(43도)
두 가지로 나온다. 주도를 더 낮춘 13도짜리도
곧 나올 예정이다.
“명절 때가 아닌, 평소에 누구나 마시는, 특히
젊은 세대들이 즐겨 찾는 소곡주를 빚고
싶습니다.”
모자의 꿈이 마치 술잔에 담긴 소곡주의 고운
빛깔만큼이나 담박했다.
서천 글 임창용기자 sdragon@
●한산 소곡주 가는 길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에서 빠져 서천읍내를
지나 23번, 29번 국도를 차례로 갈아타면
한산모시마을에 닿는다. 모시관 건너편에 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으며, 모시관 옆 특산물
판매장에서 소곡주 시음 및 구입이 가능하다.
소곡주 공장(041-951-0290). 신성리 갈대밭은
모시마을에서 금강 방향으로 차로 10분 정도
가면 나오며, 금강하구둑은 모시관에서 29번
도로를 타고 15분쯤 남쪽으로 달리면 닿는다.
■한산 소곡주 따라 만들기
●준비물
찹쌀, 멥쌀, 누룩(통밀을 쓴 것), 들국화 말린
것, 메주콩, 엿기름, 생강 각각 한줌씩. 홍고추.
들국화는 경동시장 등 한약재시장에서 살 수
있다.
●빚는 법
①멥쌀 2.4㎏을 빻아 떡(백설기)을 찐다.
②백설기를 누룩가루(1㎏)와 혼합해 독에 넣고
물 8ℓ를 부어 섞어서 밑술을 만든다.
③3∼4일간 밑술을 발효시킨다.
④찹쌀 8㎏으로 고두밥을 짓는다.
⑤누룩가루 1㎏ 및 들국화 말린 것, 메주콩,
엿기름, 생강을 각각 한줌 정도 고두밥, 밑술과
혼합한다.
⑥덧술에 홍고추를 꼽아 서늘한 곳(섭씨 15도
정도)에서 100일간 발효, 숙성시킨다.
⑦용수를 박아 술을 떠낸다. 용수를 구하기
어려우면 베보자기 등에 덧술을 담아 짜내도
된다.
■ 간재미회 입안에서 펄떡펄떡
●여행명소
겨울철엔 한산 소곡주 공장이 있는
한산모시마을, 마량포구, 금강하구둑, 신성리
갈대밭, 희리산 자연휴양림이 가볼 만하다.
모시마을에선 그 유명한 한산 세모시를
구경하고, 구입도 할 수 있다.
충남 장항과 군산을 잇는 금강하구둑 주변은
철새들의 천국. 청둥오리, 고니, 붉은부리
갈매기 등 겨울철새 수만 마리가 연출하는
군무를 하루에도 여러번 감상할 수 있다. 다른
철새 도래지와 달리 먹이를 주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가까이서 철새를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변에 펼쳐져 있는 폭 200m,길이 1㎞의
신성리 갈대밭은 영화 ‘공동경비구역’으로
유명해진 곳. 저녁 무렵 금강의 금빛 물결과
멋진 조화를 이룬다.
마량항은 해돋이와 동백숲이 유명한 곳.
서해에선 드물게 일출과 일몰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종천면 산천리의 희리산
자연휴양림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해송
휴양림으로 사계절 푸르름을 자랑한다. 숲속의
집과 야생화 관찰원, 저수지 등이 주변과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서천군
문화공보실(041)950-4224.
●맛집
서해안은 간재미가 제철이다. 모양은 홍어와
비슷하지만 크기는 작다. 값은 홍어보다
싸지만 맛은 홍어 못지 않아 날씨가 추워지면
간재미를 찾는 발길이 잦다.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먹을 수 있다.
서천에선 대부분의 횟집에서 간재미를 낸다.
마서면 당선리의 ‘해강’은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들이 많은 식당. 이곳에서 내는
간재미 요리는 회와 회무침 두 가지. 연한 뼈째
두툼하게 저민 회는 기름소금에 찍어 상추에
싸서 먹거나 묵은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고소하면서 연골과 함께 살점이 씹히는 맛이
일품. 달콤한 소곡주 맛과 잘 어울린다.
회무침은 매콤달콤한 양념맛 때문에 여성과
아이들이 좋아한다. 간재미 회는 한 접시에 1만
8000원. 둘이서 먹을 만하다. 회무침은 2만 5000원.
(041)956-8885. |
첫댓글 역시 구경꾼님.
구경꾼님의 마법의 창고를 보고 싶네요
구경꾼님 대단해요....주님의 사랑 가득하시길..주영숙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