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1,1-8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생각하면서
그대를 다시 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렇게 된다면 내가 기쁨으로 가득 찰 것입니다.
5 나는 그대 안에 있는 진실한 믿음을 기억합니다.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에우니케에게 깃들어 있던 그 믿음이,
이제는 그대에게도 깃들어 있다고 확신합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9
그때에 1 주님께서는 다른 제자 일흔두 명을 지명하시어,
몸소 가시려는 모든 고을과 고장으로 당신에 앞서 둘씩 보내시며,
2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3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4 돈주머니도 여행 보따리도 신발도 지니지 말고,
길에서 아무에게도 인사하지 마라.
5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먼저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말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받을 사람이 있으면 너희의 평화가 그 사람 위에 머무르고,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같은 집에 머무르면서 주는 것을 먹고 마셔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마라.
8 어떤 고을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차려 주는 음식을 먹어라.
9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교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13년 11월 24일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발표하였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현대를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등불’과 같습니다.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첫걸음’이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첫걸음의 시작은 창세기 12장의 ‘아브라함’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정든 고향과 친족을 떠나 새로운 곳을 향해 출발하였습니다. 이 첫걸음은 이웃을 향해서 내 딛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가장 헐벗고, 가장 굶주리고, 가장 아픈 이에게 해 준 것이 곧 나에게 해 준 것이다.” 이웃을 향해 내딛는 첫걸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에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첫걸음은 공동체를 향해서 내딛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나의 형제요, 어머니냐?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은 모두 나의 형제요, 어머니다.”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강도당한 이의 이웃이 되어주었느냐?” 율법학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강도당한 이에게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학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공동체를 향해서 내딛는 첫걸음이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공동체는 인간을 넘어 함께 살아가야 할 모든 생명, 어머니인 지구를 포함하는 것입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도 주님을 향해, 이웃을 향해, 공동체를 향해 첫걸음을 힘차게 내딛으면 좋겠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우리가 내딛는 첫걸음에 몇 가지 원칙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첫 번째는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하다.’입니다. 공간에 대한 소유가 시간과 전진에 대한 관심을 압도할 때 비극이 시작됩니다. 공간에 대한 소유가 시간과 전진에 대한 관심을 압도할 때 전쟁과 폭력이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창고에 물건을 가득 쌓아놓고 기뻐하는 부자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다고 하셨습니다. 소유에 집착하는 부자가 하늘나라에게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를 지나가는 것이 더 쉽다고 하셨습니다. 무릇 종교의 가르침은 공간보다 시간을 우선시 합니다.
부처님은 생로병사의 고통 중에 있는 중생들에게 집착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욕망을 버리라고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면 ‘해탈’에 이른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공간과 소유가 차지할 자리가 없습니다. 공자도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때’가 중요하다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섰으며, 마흔 살에 미혹되지 않았고, 쉰 살에 천명을 알았으며, 예순 살에 귀가 순했고, 일흔 살에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따랐지만 법도에 넘지 않았다.” 공자의 이 말로부터, 15세를 지학(志學), 30세를 이립(而立), 40세를 불혹(不惑), 50세를 지천명(知天命), 60세를 이순(耳順), 70세를 종심(從心)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이는 모두 시간이 공간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공간에 대한 집착보다 시간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실재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도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백번 묻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낮다고 합니다. 백번 보는 것보다 한번 행하는 것이 더 낮다고 합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참된 양심이 아닙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고 건강하지 못한 교회 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 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갇혀버리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님, 주님’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갈 수 있다.” 2024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 땅에서 먼저 실천하면 좋겠습니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가거라. 나는 이제 양들을 이리 떼 가운데로 보내는 것처럼 너희를 보낸다. 그곳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의 나라가 여러분에게 가까이 왔습니다.’ 하고 말하여라.”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 ❤️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