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우의 FC바르셀로나(이하 바르사) B팀으로의 승격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조금 지나자 백승호의 승격 소식이 전해지며 팬들의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10대 선수들이 아직 어린 나이에 성인팀에 들었다는 사실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이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왜일까. 각고의 노력으로 타지 스페인에서 성장한 두 선수를 위한 불만이 아니다. 고작 10대인 이들에게 과도한 관심을 쏟고 있는 언론과 팬들이 불편하다.
(△ U-17 대표로 소집되어 훈련 중인 이승우. B팀 승격을 축하합니다! 출처: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
우선 사실관계부터 짚고 넘어가자. 최근 언론의 보도는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 사실 바르사 B팀이라고 하니 대단해보이지만, 실상은 스페인의 3부리그에서 시즌을 시작할 팀이다. 물론 어린 나이에 성인 무대에서 뛸 수 있다는 사실은 기특한 일이고, 응원해줘야 할 일이다. 레알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유망주들이 1군 진입에 실패할 경우 프리메라리가의 여러 팀으로 진출하여 훌륭한 선수들로 성장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언론에서 'FC바르셀로나 B팀의 모든 것', 'FC바르셀로나 B팀의 공격수를 꿰찰까?' 등의 보도를 할 정도는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계엔 이역만리 다른 나라의 3부리그 팀보다 더 중요한 문제들이 많이 있다.
실제로 3부리그 격인 세군다 디비시온B(Segunda División B)는 2부리그와도 성격이 현저히 다르다. 우선 세군다 디비시온B는 지역별로 4개 그룹으로 나뉘는데 각 그룹마다 20개 팀으로, 총 80팀이 소속되어 있다. 시즌이 끝난 후에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비로소 2부리그로의 승격이 가능하다. 프리메라리가 소속 클럽들의 하부 팀이 아니고서는 대한민국에 사는 축구팬들로서는 알 길이 없는 팀들이 전부이다. 이승우, 백승호가 10대 후반의 나이에 성인 무대 진출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그렇게 언론이 부풀리고 호들갑을 떨만한 무대는 아니라는 것이다. 유망주 선수들이 3부리그로의 승격이 확정되었다고 그 팀을 분석까지 하는 기자들과 마냥 설레만 하는 팬들의 모습은 우리나라 축구계에도, 선수 자체에게도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바르사'라는 이름값 때문에 큰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사대주의'에 지나지 않는다.
이승우와 백승호는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1997년, 1998년생인 청소년이다. 20대 후반을 지나는 나이가 되어보니, 10대 후반의 그들이 얼마나 어린지 알 수 있다. 그렇게 어린 선수들을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으로 여긴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대한민국 축구를 구원할 구세주로 여겨지는 10대 선수들이 받아야 할 부담은 얼마나 클 것인가. 좋은 학교에 가야하고 좋은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부담감에 많은 청소년들이 부담을 느껴 자살에 이르기도 하는데, 이들을 두고는 대한민국 축구를 책임질 거라는 이야기를 전국민이 하고 있다.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은 어떤 선수 한 명에 달려 있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고작 10대에 불과한 어린 선수들이 매우 성숙한 대처를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리오넬 메시가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에 있다고 가정해보자. 우리나라 축구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을 것이다. 국가대표팀 자체에 지금보다 나은 성적을 가져올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메시의 존재로 인해 대한민국 축구의 수준이 급격하게 올라갈 일은 없다. 게다가 한국 축구의 기반인 K리그의 성장도 기대하긴 힘들고 프리메라리가에 대한 관심만이 높아질 것이다. 그리고 메시가 은퇴할 즈음이면 관심은 자연스레 다른 곳을 향할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 명의 선수가 대단하다고 해서 축구계 전반에 변화를 일으키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승우, 백승호, 장결희 등 ‘FC바르셀로나 유소년 신드롬’을 보면서 떠오르는 것은 ‘축구 천재 박주영 신드롬’이다. 당시에도 언론의 관심은 박주영이라는 유망주 한 명에게 향해 있었다. 박주영의 선발을 두고 본프레레 감독에게 끊임없는 질문이 이어졌던 기억이 난다. 박주영의 성장이 곧 대한민국 축구에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라 믿는 듯 보였다. 유망주가 성장하여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이루는 '성공 신화'를 보고싶어 했다. 한 명의 천재 선수에 들뜨는 팬들과, 이러한 관심을 반영해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건전한 방식의 관심 표현은 아니다.
박주영에 대한 팬들과 언론의 태도변화를 보면 이승우와 백승호가 정말 심각하게 걱정될 지경이다. 박주영은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언론의 호평과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AS모나코에서의 활약과 2010년 월드컵에서 프리킥 득점까지 대한민국 대표팀의 영웅이었다. 하지만 이후 부진에 빠지자 싸늘하게 식은 여론을 마주해야 했다. 'FC바르셀로나 소속'으로 10대부터 주목받던 이 선수들이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우리의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했다고 해도 우리는 그들의 노력을 인정하며 꾸준히 응원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관심 받는 데에 익숙해서 노력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닌지 의심할까?
이승우, 백승호가 바르셀로나의 유망주라는 사실에서 대한민국 축구의 미래를 보고 싶어하고, 우리 대표팀도 그렇게 성장할 것이라 믿고 있다는 사실이 두렵다. 이 두 선수가 1군에 데뷔하기 위해 거쳐야 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그래서 바이에른뮌헨에 진출했다가 J리그로 돌아와서 활약하고 있는 우사미와 비교하면서 우리가 우월감을 더 이상 느끼지 못하는 상황이 왔을 때, 즉 우리의 자랑거리가 될 만하지 못했을 때 팬들의 짜게 식은 반응이 걱정된다. 그리고 이것에 상처받을 어린 선수들이 걱정된다.
바르사 B팀의 유망주들이 모두 제 2의 메시가 된 것은 아니다. 지오반니 도스산토스, 보얀 크르키치 등 모두 최고의 유망주들이었지만 메시처럼 성장하진 못했다. 하지만 지금도 훌륭한 프로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아약스 출신의 석현준은 자신의 축구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고 있고, 함부르크 출신의 손흥민은 이제 대한민국 축구의 대들보가 되었다. 한편 프랑스 발랑시엔에서 뛰었던 남태희는 카타르 리그로 이적하여 리그를 대표하는 선수로 활약하며 미래를 준비하고 있고, 낭트에서 뛰었던 이용재는 실패를 겪고 일본 J리그로 돌아왔지만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면서 반전을 노리고 있다. 우리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선수들인 차범근과 박지성은 해외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성장했고, 기성용, 이청용, 구자철 등 현재 대한민국 주축 선수들은 모두 K리그가 길러낸 선수들이다.이들 중 누가 틀리고 누가 옳은지 말할 순 없다. 각자 다른 모습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했기 때문이다.
(△ 최고의 유망주로 꼽혔던 지오반니 도스 산토스. 메시처럼 성장하진 못했지만 여전히 훌륭한 축구 선수이다.)
이승우와 백승호 역시 우리의 기대대로 성장해야 할 이유는 없다. 그들은 스스로의 길을 개척할 자유가 있다. 바르사 1군 진입은 그들에게도 중요한 목표겠지만, 상황이 바뀐다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승우와 백승호가 최고의 선수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다. 또는 축구를 그만둔다고 해도 괜찮다. 자신들의 판단과 뜻에 따라 자신의 축구인생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것 때문에 절대 다른 이로부터 비난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팬들과 언론이 맘대로 기대에 부응하여 성공할 것을 강요해서도 안되고, 또 기대에 걸맞는 성장을 하지 못했다고 실망해서 그들에게 상처입히지 않아야 한다. 나는 10대에 불과한 그들이 앞으로 훌륭한 선수가 되길 바라는 것보다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길 바란다.
이승우와 백승호를 비롯해 해외에서 재능있는 선수들이 잘 성장하고 있다. 선수에게도 우리 축구계에도 긍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선수들에게 대한민국 축구의 희망이라는 부담을 지게 만들 이유는 없다. 언론이 우리나라 축구의 발전을 생각한다면, 다른 곳들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축구에 있어 중요한 것은 이승우나 백승호가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아니다. 대한민국 축구의 기반인 K리그부터 시작해서 작게는 오는 10월 칠레에서 열릴 U-17 FIFA월드컵까지 관심을 가질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이승우, 백승호에 대한 이슈보다 우리가 주목해야할 문제들은 많이 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은 그들 스스로의 몫으로 남겨두어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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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구 유망주와 관련해서 이보다 더 유익한 글을 읽은 적이 없다. 그동안 잊었던 무언가를 다시 찾아낸 느낌이랄까? 축구와 유망주에 관한 이글을 입시 경쟁 교육 속의 우리 청소년들과 대비해서 생각해도 좋은 글이다.
감사합니다. 제 글의 의도를 정확히 읽어주신 것 같아요. 뿌듯한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