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팔백일흔일곱 번째
잔인한 사람들
전국에 반려견이 300만 마리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 사회적 골칫거리 하나가 유기견입니다. 사정이 있어서 버려졌겠지만, 인간의 잔인함을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영국 왕실에서 키우던 개로 유명하며, 영국 웨일스 지역의 목양견이었던 웰시코기Welsh corgi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 개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듯한 따스한 식감의 엉덩이를 가졌기로 ‘식빵 궁둥이’로 불리기도 한답니다. 본디 목양견이었던 이 개가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애완견으로 키우기 시작하면서 보기 좋은 웰시코기의 엉덩이를 보겠다고 꼬리를 자르기 시작했답니다. 개의 꼬리는 중요한 감정표시 기관입니다. 신이 나면 열심히 흔들거나 꼬리를 바짝 세워 경계하고, 무서우면 숨기는 등의 표현으로 그들끼리 소통하는 신체 기관입니다. 신체 기관의 일부를 잘라내는 이런 행위에 대해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등에서는 꼬리를 자르는 수술을 동물 학대로 규정해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답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분양받았다가 불편해지면 언제든지 내버리는 잔인함. 비단 반려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루왁커피를 대량 생산하기 위해 사향고양이를 가둬놓고 커피 열매만 먹게 하는 행위도 잔인합니다. 그런 행태가 여기저기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납니다. 사랑해서 결혼했다는 부부들조차도 아니다 싶으면 언제고 돌아섭니다. 물론 아픈 사연도 있고, 고통도 따를 겁니다. 그러나 내 안위를 위해, 내 행복을 위해 많은 이들이 그럽니다. 인간관계에서 우정이나 신뢰 따위는 이제 덕목이 아닌 세상이 되었습니다. 아, 나는 누구를, 무엇을 버렸을까, 관한 얘길 꺼냈나 보다고 얼굴이 화끈거려집니다. 허긴 우리도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사육당하고 있는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