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반 기다려야 겨우 수강
타종교 절반…문화로 인식
사찰ㆍ지자체 특화사업 추진
불교 이미지 제고할 기회
검증되지 않은 강사 ‘문제’
이론과 실습이 병행돼야
지난 12일 종단이 운영하는 사찰음식교육관 ‘향적세계’에서 초급반 강의가 진행되고 있다. |
지난 12일 서울 신정동에 위치한 국제선센터 지하. 굵은 눈발이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배움의 열기로 뜨거웠다.
20여 명의 사람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강의에 집중하고 있었다. 필기도구를 들고 단 한마디라도 놓칠 새라 열심히 받아적고 있었다. 이곳은 종단이 운영하는 사찰음식교육관 ‘향적세계’다.
지난 2011년 4월 개원한 향적세계는 30명이 동시에 실습할 수 있는 전용공간이 마련된 첨단시설을 자랑한다. 개원과 동시에 강의를 시작한 향적세계는 초급, 중급, 고급반으로 구분돼 각 3개월간의 강좌로 구성돼 있다.
이날 강의는 초급강좌로 벌써 7기를 맞았다. 매주 목요일 오전10시부터 이뤄지는 초급강좌는 이론 수업과 실습으로 진행된다. 사찰음식 특화사찰인 대전 영선사 법송스님이 강의를 맡은 이날 강의는 사찰음식의 역사를 배우고, 팥죽과 고구마견과류 조림, 동치미를 만들어보는 내용으로 꾸며졌다.
정원이 30명인 향적세계의 수강생은 단 차례도 미달되거나 부족함이 없이 채워진다. 한 수강생은 “사찰음식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듣고 수강하게 됐다”며 “가족의 건강을 위한 밥상을 차려보기 위해 열심히 배우고 있다”고 말했다.
사찰음식에 대한 호응도는 배우고자 하는 일반인들의 열정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서울 전국비구니회관 법룡사가 마련한 사찰음식 강좌의 인기는 대단하다.
사찰음식 교육시설 가운데 가장 역사가 깊은 곳 중 하나인 법룡사의 사찰음식 강좌는 1년 과정으로 진행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곳에서 강의를 들으려면 1년6개월을 기다려야 했다.
최근 들어 사정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신청해놓고 6개월이 지나야 수강이 가능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종단이 본격적으로 사찰음식을 종책사업으로 추진한지 불과 5년 세월이 흘렀지만, 사찰음식교육관에는 이렇듯 수강생으로 넘쳐나고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 따르면, 현재 종단이나 사찰 등 불교계가 운영하고 있는 사찰음식강좌는 30여 개에 이른다.
지역적 특성상 서울이 30%에 이를 정도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전국 곳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사찰음식의 사회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사찰과 지자체가 협력해 지역특화사업으로 추진하는 경향도 눈에 띈다. 제16교구본사 고운사는 경상북도와 의성군의 지원을 받아 지난 9월 교구본사로서는 처음으로 사찰음식체험관을 개원하고, 연구개발 표준화, 대중화에 나서고 있다.
사찰음식강좌는 불교를 벗어나 일반사회로까지 확산되는 추세다. 유행과 트렌드에 민감한 백화점 문화센터 등에 사찰음식 강좌가 속속 개설돼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는 것에서 이러한 경향을 찾아볼 수 있다. 문화사업단 조사에 의하면, 서울과 부산, 대구, 울산, 마산, 부천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하는 백화점에 개설된 사찰음식 강좌는 20여 개에 이르며, 점차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같은 현상은 사찰음식의 현재 위치와 대중들의 호응도를 알 수 있는 바로미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사찰음식 강좌와 교육시설은 사찰음식을 단순히 보고 먹으며 즐기는 수준을 뛰어넘어 스스로 직접 만들면서 일상화, 생활화 된다는 의미에서, 대중화의 참된 모습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중요하다.
또 하나, 수강생의 절반이 불자가 아니라는 점도 주목된다. 가톨릭이나 개신교 등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의 수강비율이 높다는 것은 사찰음식을 종교가 아닌 문화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는 사찰음식의 대중화 가능성을 높임과 동시에 사찰 문턱이 낮아짐으로써 불교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받아들여진다.
다만 불교계에 시설을 제대로 갖춘 교육관이 많지 않고 강사진도 한정돼 있는 등 대중의 호응을 따르지 못하는 단점이 존재한다.
또 사찰이 아닌 일반강좌의 경우, 검증되지 않은 강사가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 사찰음식의 진정한 의미를 홍포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불교문화사업단 관계자는 “불교계의 경우 이론과 실습이 병행돼 의미를 전달하는 데 부족함이 없지만 일반강좌는 기술과 기능을 가르치는데 집중돼 있다”며 “강좌의 건전성을 도모하기 위해 종단차원에서 자격 인증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