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가 모처럼 아니 처음으로 부탁한다.
“저.. 여기 겁나게 오래된 침대가 있는디잉... 이거 둘 다 그동안 정이 들어서 말이지,
그냥 버리자니 좀 그래서 궤짝이나 뭐 그런걸로 만들어 주믄 쓰것는디...잉~"
목우님들은 잘 아시겠지만, 기존 가구를 분해해서 다른 가구를 만드는 일은 새 가구를
만드는 작업보다 두 곱절 이상의 집중력과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분해하고
잘라서 작은 가구 두어개쯤 만드는건 전문가들이니 쉽게 만드리라 생각한다.
이런 고충을 안고 제의를 받아들인 것은 나이탓이다. 수십년전부터 눈에 익고 몸에 베인
물건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게 되면 뭔가 또 내 주변에서 없어짐의 허전함으로 공허해진다.


가장 큰 고민거리가 되는 칠은 그대로 둔다니(사실은 이게 추억의 초점이겠다) 빈티지 스타일로
뭔가 만들 수 있겠다 싶었다.
화물로 들어온 날 밤에 비가 온다해서 분해부터 했다. 역시 우려하던 바대로 굵직하게 보이는
재목들은 거의 속이 빈 무늬목들이었다.



주인이 그런걸 알 리가 없다. 침대가 두 개인데 제대로 쓸 부분은 바닥판인
갈비살 뿐이었다.
헤드레스트 부분의 두껍게 보이는 목재는 상채기들도 많고 좌우상하로 온통 조립구멍
투성이라 길이가 부족하니 쓸모없다.
게다가 모든 부재가 다 삼목이다. 삼나무는 소프트우드로 가볍고 가공이 쉽지만,
너무 무르기 때문에 쉬이 상처가 나서 재생목으로서는 사실 불편한 목재라 할 수 있다.
게다가 갈비살을 해체하려니...
모두 본드바르고 나사와 타카로 빽빽히도 붙여놨다. 나보고 어쩌라고...
생채기 나지않게 암만 조심하려해도 해체하려면 눌려지고 쪼개지는 부분을 피할 수가 없었다.
붙여진 상태를 유지하여 만드는 방법으로 급선회했다. 당연히 전에 설계해 두었던 것
역시 수정해야 했다.
친구한테 놓을 곳과 크기와 높이를 정해달라 하여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새 침대옆에 놓일
낮은 탁자와 옷을 보관할 서랍을 구상했었다.
아무래도 큰 서랍 하나짜리 탁자는 남은 부재를 총동원해서 만들어야 했다.
당분간 평일에는 작업을 못하는 관계로 휴일을 이용해서 작업하려는데, 그도 여의치가 않다.
기온이 내려가서 조금씩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서 조립해야 했다. 오일로 마구리면을
마감할때 역시 안에서 하는데, 우여사가 암말도 안한다. 친구가 부탁한 것이니 잘 만들어 주라고 한다.
음... 이러쿵 저러쿵 간섭도 안하는게 협조 잘하고 있다. 다른 때도 쫌...
***
본드로 접합시키고 기다리는 동안에 미루던 밴드쏘의 세팅을 다시 했다. 톱날 폭에 따라 베어링의
위치를 맞춰주곤 하는데 뭔가 좀 잘 안되어서 또 열심히 공부를 한 뒤에야 전반적인 이해가 되었다.
또 한껀한 기분^^
기념으로 간단한 3D 애니멀들을 오려봤다.
이건 예전에 카브리올 다리를 만들 때 익혔던 방법이라 어렵지 않았다.
거친 면을 다듬고 오일이나 칠을 하면 장식품으로 괜찮겠다. 구조목조각으로 연습삼아 만든거니
다음에 적당한 부재를 찾아서 다시 만들어봐야쥐. 그런데 너무 예쁘믄 뺐긴단 말이지...

굵은 사포로 거스러미를 털어내기만 했는데도 벌써 우여사의 손이 탁자위를 치우고 나열시켜놨다.
거친 질감도 좋다한다. 뭘 좀 아나싶네...역시나 더 만들어 놓으란다.
딴거 만들 것 천지인디 날 기계로 아나... 인자 비싸게 굴자.
***
작업개시 한달여만에 드디어 완성했다.
그동안 너무 추웠다. 아니 지금도 눈오고 춥다.
오늘 아침은 눈치우는거 아들시켜 묵었다.
영하의 주차장에서 조금씩 작업하려니 능률이 안오른다. 벽걸이형 전열기로는 어림도 없다.
여기에 설치할 수 없는 화목난로가 부럽다.
손잡이는 늘 그래왔듯이 만들어 붙이는 것이 더 정감이 있다.
남은 부재에 월넛과 오크 집성해서 선반못써먹어서 안달한 것처럼 막 돌려 만들었는데,
우여사가 이쁘다니 됐지 모...
변신1 : 침대옆 서랍탁자


변신2 : 낮은 서랍형 탁자


원래의 색을 그대로 유지하려니 새로 자른 면의 처리가 여간 고심거리가 아니었다.
어중간히 색을 넣었다간 더 언발란스하기 십상이다.
마구리면이라 오일로 먹여두면 시간이 흐르면서 좀 더 진해지리라.
< 설 전에 기어이 한번 더 올라고 함 >
첫댓글 오오, 이런것이 진짜 예술. 오래된 재료로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창조 작품이 나왓네요. 역쉬, 백마님 짱! 받은 사람은 행복하고도 행복할 듯.
주고오는 길에 좋아하는 모습에 저으기 안심.. 하지만, 복수의 칼을 다듬을 일이 있었다요^^
마음에 항상 담고있는 친구인지라, 마음에 썩 들지 않을지는 몰라도 내 것처럼 생각하면서 만드는 사람인줄 알기 때문에
곁에두고 쓰다듬어 주길 바라지요^^
역시 친구를 잘 두어야 한다는 진리!!!
백마님은 예술가!!! 글 음악 건축 공예... ∞
'다른 때도 쫌'... 저희 나이에 관심 받는다는건 크나큰 사랑의 표시입니다요~~~^^
보는 저희도 같이 행복합니다.^^
역시 이렇게 칭찬해주는 친구가 있으니 기분 확업!!
띄어 줄때 잠시 붕~~ 날아봅니다^^
나무라는 사물에대해 많이 생각해봅니다. 무궁무진한 쓰임새. 고대부터 잉간 창의력의 원발산지가아닐까.
나무가 인간의 손길을 거쳐 윤회로의 지름길이 아닐까 하옵니당^^
감탄입니다. 아! 나도 갖고싶다~^^
눈에 거슬린 가구하나 부숴서 맹글어봐여^^
친구는 행복하겠네요. 뜯어서 새로 만드느라 얼마나 많은 상상력이 동원되고 오래 쓰일 쓰임새를 위해 고심하셨을 제적과정의 진정이 부럽습니다.^^
그렇죠? 즐거움으로 일하면 공정마다 재미있답니다.고마워요^^
목공예가 김철! 정말 멋지네~잘 모아 전시회 한번 해야겠네~
나무에 빠지다보니 이곳에 또 하나의 세상이 있더라고. 작품을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이것들이 집에 붙어있질 않더라니깐. 고마우이~
@빛가람마 진지하게 전시회에 대하여 생각해보셔야할듯.
재주꾼 남편을 둔 우여사는 얼마나 행복할까?
백마님 솜씨 대단하십니다
오래된 묵은 가구의 변신 놀랍습니다
지금은 생활목공에 집중하는 편이라 다 자기것인 마냥.. 나중엔 아마 뭔 이런 쓰잘떼기없는거나 만드냐고 눈치주지나 않을까...^^
나이들어 집중할취미가 있는것도좋고 그것이 주변인들을 즐겁게까지한다면 금상첨화지.
어떤친구(?)는 고장난욕실손잡이하나를 못갈고 테이프로 붙여놓고 쓰질않나.ㅎㅎ^^
그 친구야, 아마 아예 욕실문을 바꿀 생각일걸^^
이 글을 읽는 동안 머릿 속은 나의 편백침대가 몇 번이나 부서지고 조립되었는지 아십니까?
편백은 무늬도 부드럽게 곱고 초기에 뿜어내는 피톤치드향이 사람을 홀리지요.
어느 나무라고 허투루 쓰이겠습니까만, 아직 정붙이고 둘만한 것이면 그대로 두옵소서^^ 나무는 알아 갈수록 돈구덩이 파낸답니당~
세상에나 이런 분이~~나무처럼 나이 들수록 돈구덩이 인 분이셨군요 ~~ 나무와 하나되어 작품 만드시는 모습도 뵙고 싶어요
그러게요, 작업장 둘러보니 온통 쪈이네요. 그런디 언제 초대하나 싶습니다. 워버그릴 직구하고 아직 3층에서 자는중^^
이런 예술적인 감각을 어디에 숨겨두시고 정년까지
내말이, 애초에 길은 여기였지않나 싶어.
와우~~~대단한 솜씨네요.
대단한 친구사이!!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