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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년 11월 <학원> 창간호 사진입니다. 어떻게 보았겠습니까 *^^*
우리 나라에는 학원 세대라는 것이 있답니다. 컴퓨터는 물론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던 1950년대에서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발간되었던 학생 잡지 學園(학원) 당시 학생들에게는 큰 영향을 끼쳤던 매체였지요. 196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저는 집에서 조그만 서점을 운영했던 관계로 중고생 시절에는 잡지 <학원>을 거의 매월 볼 수 있었지요. 학원의 심취했던 마지막 세대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창간호의 표지 그림 마치 나의 학창 시절을 보는 듯 정겹네요. 그림 속의 남학생처럼 우리들은 저렇게 빡빡 깎은 머리로 생활했답니다. 그리고, 그 때 세라복을 입은 여학생은 왜 그렇게 청초하고 아름답게 보였던지….
서재가 있는 내 방에서 나를 찾아온 소녀와 함께 저렇게 공부하는 정경 그것은 우리 세대가 그리던 꿈이었답니다. 우리나라에는 학원세대라고 구분지을 수 있는 특이한 세대가 있다. 한국전쟁 직후부터 1960년대까지 중고등학교를 다닌 지금 60대 전후의 연령층이다. 이들이 학창 시절에 애독했던 잡지가 바로 학원(學園)이다. 우리 나라의 어떤 잡지도 자신의 이름을 딴 세대를 만들지 못했는데, 오직 <학원>만이 그것을 이룬 것이다. 학원을 읽은 세대가 60대 전후의 연령층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1952년 11월에 창간하여 1979년 3월에 폐간되기까지 30년 가까이 지속된 이 잡지는 40대 전후의 세대까지 망라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잡지에 정신 세계를 완전히 지배당한 세대는 역시 60대 전후의 세대이다. 학원은 김익달(1916~1985)씨에 의해 창간되었다. 그는 경북 상주 출생으로 1937년 일본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전문부 상과를 중퇴하였다. 1945∼1978년까지 학원사(學園社) 사장으로 있으면서 1952년에 학원장학회를 설립했다. 이어서 1955년 출판문화협회 부회장, 1960∼1972년 잡지협회장, 《주부생활》 발행인, 출판문화협회 이사장 등을 역임하고, 1983∼1985년에는 학원사 회장을 지냈다. 김익달씨는 출판계의 원로로서 학생잡지 《학원(學園)》(1952년 창간)을 비롯하여 《진학(進學)》 《여원(女苑)》 《주부생활》 《농원》 등의 잡지를 창간했고, 한국 최초의 《세계대백과사전》(전 6권) 《원색과학대사전》(전 8권) 《가정의학대사전》 《농업대사전》 등의 사전류 및 약 3,000여 종의 단행본을 발간했다. 또, 출판계의 후진양성 및 학생들의 장학사업 등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는 이러한 출판사업의 공로로 소파상(小波賞) ·서울시문화상 ·국민훈장 동백장 등을 받았다.
김익달씨의 가장 큰 업적은 출판문화의 발전을 이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출판계의 후진 양성에도 힘써서 오늘날 한국 출판계를 구성하는 여러 중견 출판사의 대표들을 배출한 점이다. 또한 장학재단의 설립으로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을 뒷받침한 점도 꼽을 수 있다. 학원장학재단은 1952년 발족 이후 해마다 20명 내외의 학생을 공개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http://blog.naver.com/yyhome53/600364720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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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사진이 왜 나타나지 않는지요? 학원이라 잡지 본것도 같은데...
태그도 안되고요...복사 파일이 문제를 일으키네요..
출처 클릭 하심...ok
'학원'에는 특히 '이성교제'를 다룬 이야기가 많아 열심히 탐독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특히 '여학생'지는 몰래 몰래.... 열심히... -_-
중학교 시절 이야기 입니다......
초등 6학년때 중학교 형아들 방에서 거꾸리와 짱다리 만화는 생각나네요..
학원을 저도 어릴때 본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