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내 아 들
장마철에는 평소와 달리 일상생활도 불규칙한 것 같다.
오늘도 일찍 집을 나섰지만 갑자기 내리는 비로 운동은 무산되었다.
‘만보걷기’를 위해 우산을 바쳐 들고 중랑천 둑을 터벅터벅 걸었다. 여러 날 계속된 장맛비에 제법 강물이 많이 불어났다.
저만큼 멀리 막내가 근무하는 회사 건물이 바라보인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도 막내를 본지가 오래 된 것 같다. 어제 저녁에 막내가 직장 회식 끝나고 부모님 드시라며 염소 탕을 포장해 가져왔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얼굴 보고 얘기라도 잠시 나누고 싶어 전화를 걸었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막내가 걸어 나오는 게 보인다.
커피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바라보니 막내 머리가 희끗한 것이다.
막내아들 흰 머리카락을 처음 보고 놀라 당황한 순간이었다.
아! 세상에 이럴 수가 ...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내 자신이 나이를 먹고 늙어 간다는 걸 자각 하면서도, 자식의 나이 듦에는 무심했던 자신이 슬프고 억울한 심정이 되었다. 되돌아보니 그동안 2남1여 3남매가 성장해 어느새 50대 장년이 되어 있다.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며 자식들 성장에 가시밭길을 걸어온 아내가 눈물겹도록 고마웠다.
귀갓길 한나절 지하철 안은 한적하다. 빈자리에 홀로 앉아 눈을 감고 옛 추억에 잠겼다. 막내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련히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다. 명절이나 기제사 때면 대가족이 모여 북적대던 시절이다. 저의 엄마가 하루 이틀 집을 비우면 칭얼대며 견디지를 못한다. 어우르고 비위를 맞추며 달래도 그치지 않아 힘들게 했다. 이유가 뭐냐며 회초리를 들면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단 말이야”하며 또렷이 대답을 하였다.
엄마 손잡고 시장을 따라갔다가 은행 지점에 들렸다. 창구 안에서 결재를 하던 낯익은 사람을 바라보고 “우리 아빠 친구 저기 있다” 고함을 질러 객장 손님들이 모두 웃었다는 일화도 있다.
텔레비전 때문에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TV를, 철거 벽장에 올려놓은 때가 있었다. 부모가 여행으로 집을 비운 사이 벽장에서 TV를 꺼내 몰래 시청을 했다는 옛날 얘기를 하며 자식들과 함께 웃기도 했다.
개성이 뚜렷하고 욕심이 없으며 남과 다투는 걸 보지 못한 선량한 막내다.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이가 없는 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한다.
예쁜 손주 하나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은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한 것 같다.
옛날 어른들은 ‘무자식 상팔자’라는 말씀을 하였다. ‘가지 많은 나무 바람 잘날 없다’는 말도 있다. 그냥 농담이거나 자식 없는 사람을 위로하는 말 일수 있다고 생각했다.
부부가 맞벌이 하며 의도적으로 자식을 가지지 않는 가정을 ‘딩크족’이라 한다.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등장한 가족 형태가 우리나라 에서도 크게 번지고 있다. 최근 한국 노동연구원 조사에서 우리나라 맞벌이 부부도 36%가 무자녀라는 통계가 나와 있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DW)’에서는 ‘한국은 만18세까지 자녀를 양육 하는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국가’라고 했다. 한국의 최저 출산 원인도 높은 양육비 때문이라고 하였다. 매체에 따르면 한국 부모는 지난해 자녀 1인당 양육비로
국내총생산(GDP)의 7.79배에 달하는 비용을 들였다고 한다.
한 자녀를 18세까지 양육하는데 드는 비용이 약 3억6,500 만원을 사용한 셈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부모가 혼신의 힘을 다해 자녀들 뒷바라지를 하고 나면 부모에게 남는 것은 거의 없다. 부모 자신은 노후보장이 없는 고난의 길을 걸어야 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자식 없어 노년에 좀 외롭더라도 평생 자식 때문에 힘들게 고생하는 것 보다는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의 젊은이들이 현명한지도 모른다.
세월이 흘러가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게 된 막내아들 흰머리를 보며 허탈하고 서글픈 감정에 마음이 아팠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하던 못하던 간에 그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다.
막내네 내외의 영원한 사랑과, 건강 행복을 기원한다.
첫댓글 세월이 흘러가며 어느 날 갑자기 눈에 띄게 된 막내아들 흰머리를 보며 허탈하고 서글픈 감정에 마음이 아팠다. 자식은 부모의 분신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하던 못하던 간에 그 사랑은 본능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