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어렵던 수학을 더 골치 아픈 대상으로 느끼게 한 것이 허수(虛數)라는 존재다. 제곱하면 -1이 되는 수, 곧 √-1이면서 i로 표기되는 요상한 수다. 혼란은 두 측면에서 온다. 허수는 이전에 배웠던 ‘모든 수는 제곱하면 양수’라는 철칙을 정면으로 배신한다. 또한 수직선에 표시할 수 없는, 따라서 도무지 머릿속에 잡히지 않는 수다.
15세기 이탈리아 수학자 니콜라스 슈케는 “제곱해서 음수가 되는 수는 불가능하다”고 단언했고, 이후 300여 년간 정설로 통했다. 그러나 지금 허수는 분명 현실세계를 표현하는 수, 다시 말해 실재하는 수다. 물리학의 지도를 바꾼 양자역학만 해도 허수의 다른 이름인 복소수로만 구성된 체계다. 인공위성이 지구 궤도를 한 치의 오차 없이 돌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허수 덕이다. 대신 허수를 실제 있는 수로 느끼려면 상상력을 동원해야 한다. 그래서 수학자들은 허수를 ‘상상의 수(imaginary numbers)’로 불렀고, i라는 약칭도 거기서 왔다.
상상력을 방해하는 건 ‘측정 가능한 것은 모두 실재해야 한다’는 통념이다. 실수 체계는 실제 세계, 허수 체계는 허구 세계로 치부하는 2분법은 틀렸다. 정수이면서 실수인 ‘0’이 ‘실재하는 없음’이듯, i 역시 실재하는 허구다. 허수뿐 아니라 자연수·정수·유리수·무리수를 포괄하는 실수 체계도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관념의 소산이다.
‘허(虛)’만큼 양 극단의 이미지를 함께 담는 글자도 드물다. 일상에서 허수는 거짓·과장·결핍·취약 등 부정적 어감으로 통용된다. 금융위기를 불러온 금융 파생상품 뒤엔 실상을 가장하고 부풀린 허수가 있었더라는 식이다. 반면 노장(老莊)철학에서 ‘허’는 핵심 키워드로 바뀐다. ‘아름다운 음악은 빈곳에서 나온다’는 장자의 ‘악출허(樂出虛)’가 그런 예다. 모든 악기가 속이 비어야 비로소 제 소리를 내듯 인간의 마음 또한 비워야 충만해진다는 성찰을 전한다.
소설가 이문열씨가 지난주 경기도청 강연에서 ‘겁먹은 허수’‘함락된 진지’ 등의 표현을 쓰면서 “지켜야 할 가치를 만들고 그 가치를 지지하는 국민이 지금 필요할 때”라고 말했다. ‘허수’를 언급한 그의 의중을 정확히 헤아리긴 어렵지만 실망과 비관을 섞은 듯하다. 그러나 눈에 보이진 않아도 실재하면서 기여하는 것이 허수다. 묵묵히 사회와 국가를 지탱하는 이들이 아직은 건재하는 것 아닐까.
출처:문화일보 글 김회평 논설위원
첫댓글 숫자 자체가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 낸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연 자체는 내가 열이다 백이다 또는 -100 -1000 이러한 것이 없을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