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발견
김지명
우리는 다시 일자리를 찾았다. 좌절 속에 매양 머무를 수 없어 아내가 다시 몸을 아끼지 않고 일터로 나간다. 아내는 새벽을 헤치며 출근하여 건물 내부의 복도와 사무실에 청소한다. 아내가 나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준비를 해놓고 웃으며 출근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아주 불편하다. 살다 보면 우리에게도 반드시 행운이 있을 거라고 믿으며 산다. 우리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몸이 피곤하여도 관광을 자주 다니는 친구보다 행복지수는 높다. 아내는 빈틈이 없다. 나무랄 데 없이 매사에 철저하여 나는 가끔 잔소리를 듣는다. 아내는 유명상표가 붙은 가방이나 의복을 구매해본 적이 없다. 가난 때문에 한우갈비 한번 양껏 먹어보지 못했다. 그래도 아내는 가족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양지바른 산야에서 봄을 캔다. 몸에 좋다는 쑥과 냉이 고들빼기 등 신토불이를 직접 구해온다. 아내처럼 푸근한 성품을 가진 부인은 보지 못했다. 지독한 혹한에도 얼지 않고 뜨끈하게 열을 가하여도 묵묵히 실온으로 돌려놓는 아내의 좋은 성격은 누구와도 비할 바 없다.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연애할 때보다 혼례가 이루어지면서부터 성격은 밝고 명랑해졌지만, 정에 약하여 눈물이 많아진 편이다. 어른을 잘 모시는 전형적인 한국형 며느리라는 칭찬도 많이 듣는다. 알코올과 물이 합하면 알코올의 농도가 약해지듯이 부부도 두 기氣의 만남에 따라 성격이 달라진다. 크고 작은 물방울이 합치면 작은 물방울이 큰 물방울에 붙어버린다. 사람의 기도 마찬가지다. 아내는 옳지 않은 것을 그냥 넘어가는 꼴을 보지 못하고 잘못을 확실하게 분별하는 수정처럼 맑은 성품이다. 부도가 나서 실의에 빠진 나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애교를 부리던 아내다. 현장 소장이 나의 친구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모은 폐지나 고철을 팔아서 비상금을 마련한다. 정치인은 기업인을 상대로 비자금을 조성하는데 대가성 비자금이다. 그러나 나에겐 아무 조건 없는 비자금이 노력으로 만들어진다. 적은 금액이지만, 내가 모은 비자금으로 아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물로 전하는 마음 한없이 행복하다. 그리고 선물에 놀라워하며 즐거워할 아내를 생각하면 미소가 생긴다. 가난하게 살더라도 이렇게 기분을 업 시킬 때 주는 기쁨과 받는 행복은 서로의 믿음이고 가정의 화목으로 이어진다.
나는 일요일 하루라도 아내를 편히 쉬게 하려고 노력한다. 대청소를 끝낸 후 식탁에 마주앉아 차를 마시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미담을 나눈다. 두 사람은 연애할 때를 추억하며 즐거운 시간을 잡고 있다. 젊은 시절에 고생한 것은 지워지고 즐거웠던 일들만 활동사진처럼 스쳐 간다. 아내는 긴 머리가 짧아지고 흰머리가 하나씩 늘어나더니 지금은 반백이 되어 염색을 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 보인다. 집에서 서로 염색한다. 염색약은 뚜껑을 열면 한번 밖에 사용을 못 하므로 한 통으로 두 사람이 번갈아 머리에 바르면 남는 것 없이 딱 맞다. 머리만 희게 물들어 가는 것만 아니다.
아내의 생일에 찰밥을 하지 않았다. “여보, 오늘이 며칠이에요?” 하고 물으니 아무런 생각 없이 며칠이라고 대답한다. “당신의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하였더니 아내는 깜짝 놀라며 아! 맞네, 오늘이 내 생일이구나 하면서 안타까워하는 표정이다. 내가 맛있는 것을 대접할 테니 외식하러 가자고 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아내에게 비축해 둔 비자금을 풀어 선물하기로 마음먹었다. 함께 살면서 아내에게 생일 한번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살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반드시 아내가 좋아하는 선물로 입이 찢어질 듯 웃는 모습이 보고 싶다. 외출하자고 간청을 했다. 일에만 열정을 쏟던 아내에게 데이트하자고 하니 할 일이 많다고 하더니 금세 좋다는 반응을 보인다. “어디로 데이트하시려고요? 등산복을 입을까요? 아니면 양장으로 할까요?” 은근히 외출하고 싶은 눈치다. 선물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양장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아내에게 생일 선물 하고 싶다며 백화점으로 가자고 했다. 낭비가 아니냐며 기어이 사양한다. 아내를 달래면서 여보, 우리가 중년이 되도록 고생하면서 살아오지 않았소. 삶이 달라진다는 보장도 없으며 우리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어요? 아내는 나의 간청을 거절 못 하고 순순히 따라주었다.
두 사람은 백화점으로 갔다. 숙녀복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는 다종의 의류가 눈을 교란 시킨다.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 보라고 했다. 아내는 그동안 친인척으로부터 헌 옷가지를 얻어 입으며 살았기 때문에 거액을 투자하여 옷을 사는 것에 불만을 털어놓는다. 구매하지 않겠다며 화장실로 나가 버린다. 한참 후 되돌아온 아내는 눈시울이 젖어 있다. 돈을 낭비하는 것 같아 아까운 모양이다. 구매를 극구 만류하던 아내가 마음을 돌려 옷을 입어본다. 모델처럼 자세를 취해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어때요? 하면서 입이 양 귀에 걸릴 듯 미소 지으며 좋아한다. 아내는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이렇게 큰 선물을 받으니 감개무량하다고 한다. 아내가 나들이에서 이토록 행복해하니 이런 기회를 자주 만들어서 사랑받는 남편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백화점 1층에는 번쩍이는 보석들이 아내의 걸음을 멈추게 했다. 아내가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귀금속 주인에게 ‘그냥 한번 껴보아도 됩니까?’ 하고 물어본다. 금가락지 몇 개를 손가락에 끼어볼 때 나는 가락지의 호수를 기억해두었다. 나중에 선물하기 위해서이다. 아내가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하지만, 사주지 못한 나는 마음이 아프다. 아내가 백화점을 나와서 곧장 집으로 가자고 하는데 나는 끼니를 해결하고 가자고 아내를 달랬다. 그러나 아내는 나의 팔짱을 꼭 끼고 기어이 집으로 가자고 조른다. 백화점을 나와 지하상가를 돌아보며 요즘 유행하는 의복을 살펴보았다. 전철을 타고 버스로 또 마을버스로 갈아타면서 세 번의 환승제도가 가난한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다며 정책에 박수를 보낸다.
시계추처럼 생활하는 우리는 찌들린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부부가 데이트를 하기가 어렵다. 아내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하여 처음으로 나들이를 했다. 노동으로 고생하는 아내를 보면 너무나 애처롭다. 그러나 아내는 처음으로 받아보는 생일 선물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행복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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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에 다녀 갑니다 강건하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