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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 탈출기의 말씀 23,20-2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20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21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가 너희 죄를 용서하지 않으리니, 그를 거역하지 마라.
그는 내 이름을 지니고 있다.
22 너희가 그의 말을 잘 들어 내가 일러 준 것을 모두 실행하면, 나는 너희 원수들을 나의 원수로 삼고, 너희의 적들을 나의 적으로 삼겠다.
23 나의 천사가 앞장서서 너희를 아모리족, 히타이트족, 프리즈족, 가나안족, 히위족, 여부스족이 사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나는 그들을 멸종시키겠다.”
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 18,1-5.10
1 그때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하늘 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하고 물었다.
2 그러자 예수님께서 어린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에 세우시고
3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5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10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 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의 묵상글
<인간은 참으로 존엄합니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하느님께서는 ‘작은 이들’ 하나라도 그지없이 존귀하게 여기신지라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두어 당신과 함께 있도록 하셨음을 말해줍니다.
곧 천사들이 존귀한 존재인 것이라기보다 천사들을 붙여 보호해야 할 만큼 ‘인간이 존재가 존귀함’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서로 송사하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성도들이 이 세상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세상이 여러분에게 심판을 받아야 할 터인데, 여러분은 아주 사소한 송사도 처리할 능력이 없다는 말입니까?
우리가 천사들을 심판하리라는 것을 모릅니까.”
(1코린 6,2-3)
그렇습니다.
그날이 오면, 천사들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천사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이토록 인간은 존귀합니다.
이는 <시편> 8편을 떠올려줍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주십니까?
신들보다 조금만 못하게 만드시고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시 8,5-6)
그렇습니다.
‘영광과 존귀의 관’이 천사에게 씌워진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인간에게 씌워진 것입니다.
결국 ‘천사’는 하느님이 되지 못하지만, ‘인간’은 하느님이 되는 ‘영광과 존귀의 관’이 씌워졌습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참으로 존엄합니다.
그지없이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의 이 존귀함을 잘 보전해야 할 뿐만 아니라 타인의 존귀함도 잘 보호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 인간의 존귀함은 개인의 능력이나 재능에서 오는 것이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이토록 인간의 존귀함이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그 누구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인간의 존엄을 평가하거나 도구로 전락시키서는 안 될 일입니다.
또한 누구든지 예외 없이 존귀한 존재로 존중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이를 지켜나가야 할 사명도 부여받고 있음을 알아야 할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늘 복음의 제자들처럼, 혹 우리의 관심이 ‘큰 사람’에게 있지는 않는지 들여다보아야 할 일입니다.
진정 중요한 것은 소중한 것을 ‘소중한 것으로 볼 줄 아는 눈’입니다.
곧 우리가 '큰 사람이냐 작은 사람이냐?'가 아니라, 하느님께 얼마나 '소중하고 존귀한 존재냐?'를 보는 일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는 형제가 나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소중한 존재인지’를 보아야 할 일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마태 18,5)
주님!
무엇을 하든 당신을 지향하여 일하게 하시고, 아무리 사소한 일일지라도 당신의 이름으로 하게 하소서!
모든 주어진 것을 당신의 이름으로 받아들이게 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드리는 감사가 되게 하소서!
오늘 나의 모든 삶이 당신께 바치는 기도가 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님의 묵상글
<내겐 무용지물 천사?>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레가게 하겠다."
(탈출 23,20)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ㄷ)
여러분의 염려와 기도 덕분에 긴 기간의 외국방문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저의 여정의 처음부터 끝까지 참으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고 그래서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놀라실 테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해외여행을 많이 했어도 저 혼자 여행한 적이 없고 늘 누가 안내 해줘야만 합니다.
그러니까 혼자 어느 나라를 가도 공항까지 누가 늘 마중 나와줘야 하고, 돌아올 때 공항까지 데려다줘야 하며, 그곳에 있는 동안에도 혼자 밖을 다니지 않고 꼭 누가 있어야만 나가고, 한 번도 그 나라 돈을 바꾼 적도, 제가 가지고 있은 적도 없으며, 그러니 당연히 저 혼자 뭘 산 적도 없지요.
그래서 해외여행을 할 때의 저는 오늘 복음말씀의 어린이처럼 제 스스로 어디를 갈 수 있다고 생각지도 않고 안내해 줄 사람이 없으면 아예 가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해외여행을 할 때는 이처럼 안내를 잘 받는데, 영적인 여정을 가는 데는 그 길의 안내자인 천사의 안내를 잘 받는지 오늘 수호천사의 축일을 지내며 성찰케 되고 반성케 됩니다.
사실 저는 수호천사의 안내를 잘 받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에게는 영적 지도자나 안내자를 가지라고 하면서 참 부끄럽게도 제게는 영적 동반자는 있어도 지도자는 없으며, 그것도 따로 한 사람이 특별히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여럿이 있습니다.
왜일까를 생각하면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른 사람의 영적 여정의 동반자나 지도자는 되어줘도 나는 나 혼자 갈 수 있기에 혹 동반자는 필요해도 굳이 지도자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적 안내자인 수호천사를 필요로 하냐 하면 그렇기에 수호천사의 안내를 잘 받지도 않는 것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보면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천사를 보내주시어 우리가 갈 곳을 가게 하신다고 하지요.
말하자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안내를 잘 받건 받지 않건 우리의 개별 안내자 수호천사를 보내주신다는 것인데, 그럼에도 우리가 그 천사의 안내를 잘 받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차에 내비게이션이 있어도 사용치 않는 것처럼 영적 내비게이션인 수호천사도 잘 이용치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더 문제인 것은 앞으로 한 동안 그럴 것 같은 점입니다.
교만이 쉽게 깨지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그 안내서인 복음이 있으니 그 복음을 제가 꾸준히 묵상하고 저를 성실히 성찰한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여전히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저는 수호천사를 보내주시는 하느님의 호의와 사랑에 소홀해도 하느님께서는 그 수호천사를 거두지 않으시고 수호천사도 제가 알게 모르게 보호하고 안내해 줄 거라고 믿습니다.
어린애가 자기 혼자 갈 수 있으니 가겠다고 해도 부모가 '그러면 그래라!'하며 내버려 두지 않고 어떻게 가나 뒤에서 몰래 따라가며 보고 보호해 주시듯이 말입니다.
아무튼 수호천사가 무용지물이 아닌지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 작은형제회
♠ 반영억 라파엘 신부님의 묵상글
<누가 가장 큰 사람입니까?>
'천사'라는 말은 어떤 존재의 본성이 아니라 기능을 가리키는 명칭입니다.
'하느님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 '하느님의 심부름꾼'입니다.
천사는 “모두 구원을 상속받을 사람들에게 봉사하도록 파견된 시중드는 영들”(히브 1,14)입니다.
그리스도의 협조자들이 된 인간을 보호합니다(마태 18,10)
그들은 하느님께 성도들의 기도를 전달하고, 의인들의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합니다(루카 16,22).
그리고 자기들의 지휘자인 미카엘과 더불어 교회를 보호하기 위해 태초부터 사탄과의 싸움을 계속합니다(묵시 12,1-9)
모든 천사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써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의 자리를 차지합니다.
우리를 보호하는 천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타산지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남의 실수나 잘못을 거울삼아 나는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말입니다.
누군가의 허물과 부족함을 보면 내 부족함을 챙겨봅니다.
누군가의 꾸중을 접할 기회가 있다면 내가 그 꾸중을 듣는 것처럼 부끄러워합니다.
잘 준비된 고해성사를 접하면서 저의 무뎌진 마음을 질책합니다.
나 자신을 보고, 또한 상대의 부족함을 어떻게 보완해 줄까를 생각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하늘나라에서는 누가 가장 큰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어린이 하나를 불러 세워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나라의 주인공은 어린이가 아니라 어린이같이 된 사람입니다.
어린이가 지닌 가장 큰 특성은 의존성입니다.
어린이는 어리면 어릴수록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특별히 부모의 품에 있어야 합니다.
맑고 밝은 순수함은 그다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은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사람입니다.
그 무엇에 앞서 하느님의 품에 안겨 있는 사람입니다.
계산하지 않고 하느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많이 가진 사람, 높은 지위에 있고, 권력을 가진 힘 있는 사람을 높은 사람이라고 하지만 하늘나라에서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이 위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마르 10,21),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이다.”(마태 19,2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관념, 틀, 명예욕, 지배욕, 물질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주님께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늘나라의 주인이 어린이가 아니라 ‘회개하여 어린이같이 된 사람’이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다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께만 의지하는 사람은 복됩니다.
워즈워드는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고 말했습니다.
어린이의 솔직함과 겸손, 단순함, 신뢰, 순진무구, 천진난만, 특별히 의존성 안에서 한 수 배우시길 바랍니다.
키가 커서 큰사람이 아니라 주님을 차지해서 큰 사람, 마음의 품이 넓어서 큰 사람이 되시길 바랍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내덕동 주교좌 성당
♠ 전삼용 요셉 신부님의 묵상글
<먼저 자기를 멸시하지 않고는 타인을 멸시할 수 없다>
오늘은 수호천사 기념일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라고 하십니다.
작은 이들을 멸시하지 않아야 하는 이들이 그들이 수호천사를 통해 하느님 아버지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란 뜻입니다.
여기에 타인을 멸시하는 이들은 반드시 자기 자신부터 멸시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소위 ‘땅콩 회항’과 같이 나의 위치로 타인을 멸시하는 행위는 이미 자신이 자기를 멸시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사랑받는다는 증거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그 가장 큰 증거가 수호천사입니다.
수호천사와 가까웠던 비오 신부님은 항상 영적 자녀들에게 수호천사를 공경하고, 그들에게 기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해 열심히 가르치셨던 비오 신부님은 때때로 밤새도록 수호천사들이 메시지를 전하는 바람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어느 날 밤, 비오 신부님과 함께 산 조반니 로톤도에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밤 11시가 되었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누군가가 성스러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내어 축복받자고 제안했습니다.
모두 무릎을 꿇고 그렇게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비오 신부님이 고아원으로 가시던 길에 그들 앞을 지나가시며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어젯밤 11시에 다섯 명의 수호천사가 한꺼번에 들이닥쳤소.”
어느 날 한 부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아이가 열이 나고 있었습니다.
약이 있긴 했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자정 무렵, 남편이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이와 함께 여기에서 잠을 자고, 나는 옆방에서 자겠소.”
그러고 나서 남편은 잠들기 전에 자신의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습니다.
정확히 1시 5분 전이었습니다.
새벽 3시에 남편이 깨어나 아이를 생각하고 가 보니, 아이의 열이 내리고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습니다.
남편은 기뻐서 아내를 깨웠습니다.
그러자 아내는 말했습니다.
“나도 그것을 알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 수호천사를 비오 신부님께 보냈어요.”
그러자 남편도 자기가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몇 주 후, 남편은 감사의 뜻을 표하기 위해 비오 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성당에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었고, 비오 신부님은 남편을 향해 가리키며 농담을 하셨습니다.
“당신 집에서는 밤에도 쉴 시간이 없어요!”
남편이 미안하다고 말하자, 비오 신부님은 밝게 웃으며 말씀하셨습니다.
“미안해 할 일이 아니오.
밤에도 수호천사들이 찾아오는 것은 나를 기쁘게 하는 일이오.”
남편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하려고 하자, 비오 신부님은 그 감사를 사양하셨습니다.
“먼저 감실로 가요 아니면 성모님께 가든지.”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보고 있는 것을 안 남편은 겸연쩍게 물었습니다.
“비오 신부님, 하나 여쭤볼까요?
어느 쪽 수호천사가 먼저 왔지요?
제 아내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저의 수호천사였습니까?”
이에 비오 신부님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셨습니다.
“당신 수호천사가 먼저 왔소.
1시 5분 전에 당신의 수호천사가 왔고, 조금 뒤에 아내의 수호천사가 왔소.”
비오 신부님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할 상황이 생기면 자신의 거룩한 수호천사에게 미사 중의 뜻을 하느님께 전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수호천사를 통해 은총을 받는 존재임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타인을 멸시할 수 없습니다.
타인도 그러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남을 무시하는 사람은 나도 무시당하는 사람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미움이 사라지려면 우리 곁에 수호천사를 많이 두어야 합니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드미트리 카라마조프의 변신은 극적으로 전개됩니다.
아버지를 죽인 누명을 쓰고 감옥에 있는 동안 그의 자각이 깊어지고 사랑과 구원의 본질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해 그를 공개적으로 죽이고 싶다고 말해왔지만, 정작 아버지를 죽인 사람은 사생아였던 스메르쟈코프였습니다.
드미트리는 자기 애인인 그루센카도 아버지가 빼앗으려는 것을 알고는 아버지와 형제들, 애인에게까지 분노합니다.
그러나 스메르쟈가 자신의 살인이 들통날까 봐 자살하자, 형의 약혼녀인 카테리나와 바람을 비운 동생 이반까지도 형의 편을 들어 그를 석방시키려 합니다.
알료샤는 수도사가 되어 하느님께서 사랑하심을 매일 방문하여 끊임없이 설득하고 그루센카는 자신과 함께 벌을 받자며 20년 동안 드미트리를 기다리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지금까지 자신이 아버지와 형제들과 애인까지도 멸시하며 살아온 것에 20년 형도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를 통한 모든 이들도 자신처럼 사랑받는 존재임을 알고는 모두를 존중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받는 소중한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들이 수호천사들입니다.
하느님은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고 우리 각자에게 수호천사를 보내주신 것입니다.
수호 천사를 믿지 않으면 자기를 멸시하는 사람이고 그 멸시는 이웃에게 이어집니다.
1948년 10월 3일, 요한 23세 교황은 자신의 여동생 안젤라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매일 최소 다섯 번은 천사에게 기도하고, 마음속에서 자주 천사와 대화한다고 고백했습니다.
“네 수호천사와 친해지고, 당신이 알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수호천사와도 가까워져라.
이 하늘의 파수꾼들, 그 신비로운 증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 수원교구 조원동 주교좌 성당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의 묵상글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혹시 그런 사람 있으신가요?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는 사람 말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나를 지지해주고, 나를 걱정해주고, 나를 생각해주는 사람, 나를 위해 대신 죽을 수도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는 것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릅니다.
사극(史劇)에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호위무사(護衛武士)라는 직책이 있습니다.
왕의 신변의 안전을 위해 무예나 검술이 뛰어난 민첩한 사람을 호위무사에 임명합니다.
이 사람의 행동의 특징은 은밀함입니다.
언제나 왕 근처에 있지만 있는 듯 없는듯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의 시선과 온몸의 신경은 언제나 왕의 안전을 위해 깨어 있습니다.
위기 상황이 오면 지체 없이 개입하거나, 최악의 상황에서는 온몸을 던져 왕을 대신해 칼을 맞습니다.
그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왕의 안전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느님께서는 우리 각자의 안전과 영혼 구원을 위해 아주 충실하고 날렵한 호위무사(護衛武士)를 파견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명령을 받고 우리에게 파견된 그의 이름은 수호천사(守護天使)입니다.
믿기 어려우시겠지만 그만큼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 소중한 존재인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토록 우리를 끔찍히 생각해주시고 귀히 여기시는 것입니다.
언제나 우리를 위해 노심초사하시면서 돌보아주시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매일의 인생 여정 안에, 지근 거리에서 경호실장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을 대신해서 인생의 세세한 부분까지 배려해주십니다.
얼마나 은혜롭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결국 수호천사의 존재는 우리 인간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극진한 하느님 사랑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마음으로 우리 인생길을 동반하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하느님의 시선으로 매일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수호천사들은 매일 우리가 걷는 여행길의 방향을 올바른 쪽으로 인도하고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리 천사에 대한 강조가 많이 약해진 것이 사실이지만, 성경 여러 곳에서 수호천사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 아주 명백히 표현되고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언급하신 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로서 수호천사의 현존에 대해 의심치 말고 믿어야 마땅합니다.
수호천사는 굴곡지고 사연 많은 우리네 인생길을 지켜줍니다.(시편 91,11)
수호천사는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합니다.(탈출 23,20)
뿐만 아니라 수호천사는 우리의 시중까지 들어줍니다.(히브 1,14)
하느님을 대신해 인간에게 복을 내려줍니다.(창세 48,16)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서서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달해 줍니다.(토빗 12,12)
투옥되어 큰 곤경 중에 빠져있던 베드로 사도는 여러 차례 수호천사의 도움을 받았습니다.(사도 12,7)
베르나르도 성인의 권고에 따라,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순수하고 어린이다운 마음을 회복해야겠습니다.
수호천사에 대한 신심을 좀 더 키워야겠습니다.
하느님을 대신해서 우리를 수호하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는 마음을 지녀야겠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탈출 23,20)
- 살레시오회
♠ 송영진 모세 신부님의 묵상글
<우리는 서로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마태 18,10)
1)
여기서 ‘작은 이들’은 ‘나보다 작은 이들’, 즉 ‘나보다 힘이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천사들’은 ‘그들의 수호천사들’을 뜻합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라는 말씀은 수호천사가 항상 하느님 곁에 있으면서, 자기가 맡고 있는 사람의 일을 하느님께 곧바로 말씀드린다는 뜻입니다.
수호천사가 항상 곧바로 말씀드리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각 사람의 일을 세세하게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인데, 그것은 곧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을 뜻합니다.
알고 계시니까 곧바로 조치를 취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보호와 사랑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일도 수호천사가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사실 천사가 하는 일은, 또는 천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은,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의 진짜 뜻은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의 일을 언제나 항상, 늘 살펴보시고, 다 알고 계시고, 언제나 항상 ‘사랑으로’ 보살펴 주시고, 보호해 주신다.”입니다.
수호천사가 늘 지키고 있으니까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예수님 말씀은 작은 이들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것은 곧 그들을 보살펴 주시는 하느님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일이 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2)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서 이런 의문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 있는가?
내가 힘이 없어서 무시당하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나의 수호천사’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을 반대로 읽으면, “너희가 힘이 없어서 업신여김을 당하더라도 좌절하지 마라. 하늘에서 너희의 수호천사들이 하느님께 늘 말씀드리고 있으니.”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이 말씀은 ‘작은 이들’, 즉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하시는 말씀이 됩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그냥 그렇게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수호천사가, 또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해 주신다는 것이 실감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늘만 쳐다보면서 언제 올지 모르는 하느님의 도움을, 또는 수호천사의 도움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가?
그렇지만 인간 세상에는 착한 사람들도 많고, 곤경에 처한 이웃을, 또는 힘이 없어서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이웃을 마치 자기 일처럼 나서서 도와주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런 이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이 그런대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그 사람들을 하느님께서 보내신 수호천사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금 나를 도와주고 있는 그 사람이 나의 수호천사입니다.
3)
그것을 믿는다면, 이제 우리도 ‘작은 이들’을 위한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무기력하게 하늘만 쳐다볼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정의와 평화가 제대로 실현되는 세상을,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너무 거창하게 생각할 것은 아니고, 지금 내가 있는 위치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조금씩이라도 세상을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힘만으로는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공동체가 나서야 하고, 서로 연대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인들의 공동체, 즉 교회는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한 안식처와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작은 이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4)
수호천사의 반대쪽에는 항상 악마가 있고, 수호천사는 늘 선행과 사랑을 권고하는데, 악마는 늘 악행을 부추깁니다.
천사의 권고대로 할 것인지, 아니면 악마가 유혹하는 대로 할 것인지, 선택과 결정은 내가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슬기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로마 12,13-16)
궁핍한 성도들, 우는 이들, 비천한 이들은 ‘나보다 작은 이들’이고,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은 곧 수호천사의 권고대로 선행과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기도 하고, ‘작은 이들’을 위해서 수호천사가 되어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악마는 그들을 무시하고 외면하라고 유혹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성경에서도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히려 ‘그대의 원수가 주리거든 먹을 것을 주고, 목말라하거든 마실 것을 주십시오. 그렇게 하는 것은 그대가 숯불을 그의 머리에 놓는 셈입니다.’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
(로마 12,19-21)
내가 ‘작은 이’의 입장에 있을 때, 수호천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선으로 악을 굴복시켜라. 주님의 심판에 맡겨라.” 라고 권고하는데, 악마는 “주님의 정의가 실현되는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기다리지 말고 직접 정의를 실현해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라는 율법이 있으니, 네가 당한 만큼 앙갚음해도 된다.” 라고 유혹합니다.
- 전주교구 상지원
♠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의 묵상글
<누가 천사일까요?>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습니다.
잘못된 길에서 얻는 쾌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흡연, 음주, 도박, 마약과 같이 중독성이 있는 것은 웬만한 결단으로는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도 있습니다.
특히 집단적인 선택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는 로마의 영광을 되찾겠다는 명분으로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처음 전투에서 15,000명이 사망했습니다.
이때라도 정치인들이 잘못된 선택이었음을 인정하고 평화협정을 맺었으면 더 큰 피해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고, 이탈리아는 12번의 전투를 더 벌였고, 700,000명의 군인이 사망하고 나서야 전쟁을 끝냈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시청사 건물을 4000만 파운드를 들여 2년 안에 건축하기로 했습니다.
건설사는 비용이 더 든다는 이유로 예산을 청구했고, 시간도 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코틀랜드 정부가 건설사를 잘못 선택했다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더 큰 손실은 없었을 것입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수렁에 빠져들 듯이 예산을 쏟아 부었고, 4억 파운드를 들여 5년이 지나 완공할 수 있었습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는 걸, 가래로도 막지 못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2년 전에 이태원 참사가 있었습니다.
1년 전에 해병 순직 사고가 있었습니다.
최근에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이 있습니다.
응급실에 의사가 부족해서 군의관과 공공 보건의가 파견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손이 잘못하면 손을 버려야 한다.
두 손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한 손 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발이 잘못하면 발을 버려야 한다.
두 발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한 발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눈이 잘못하면 눈을 버려야 한다.
두 눈으로 불타는 지옥으로 가는 것보다는 한 눈만으로도 천국으로 가는 것이 좋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책임자를 문책하고, 진실을 파악하고, 잘못된 것에 대한 사과가 있는 것입니다.
국회는 야대여소로 구성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야당의 협조 없이는 국정을 이끌어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도 인정해야 합니다.
행정부는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쌓여 있는 국가의 현안을 풀어가야 합니다.
김구 선생님이 꿈꾸던 나라가 되면 좋겠습니다.
김구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 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오늘 독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너희는 그 앞에서 조심하고 그의 말을 들어라.
그분이 당신 천사들에게 명령하시어, 네가 가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시리라.”
누가 천사일까요?
아첨과 아부로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은 결코 천사가 아닙니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권력의 동아줄에 의지하려는 사람도 결코 천사가 압니다.
법과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권만 챙기려는 사람도 결코 천사가 아닙니다.
주변을 보면 아름다운 나눔을 실천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연말연시에는 사랑의 나눔이 있었습니다.
어린아이가 돼지저금통을 가져오기도 하고, 군인들도, 기업체를 운영하는 분들도 이웃을 위한 나눔에 동참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나눔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김치를 해도 함께 나누고, 잔치가 있으면 이웃을 초대하였습니다.
누군가 돌아가시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돌아가신 분의 장례를 위해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예전에 농경시대에 있었던 방식의 나눔이 계속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바쁘고 분주한 현대사회에 살면서도 나눔의 아름다운 모습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바로 수호천사입니다.
오늘 내가 전하는 따뜻한 말과 친절은 고통 중에 있는 이웃에게, 절망 중에 있는 친구에게 위로와 힘을 줄 것입니다.
수호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지만, 우리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기도 할 수 있고,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런 우리들의 모습이 수호천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천사를 보내어, 길에서 너희를 지키고 내가 마련한 곳으로 너희를 데려가게 하겠다."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 미국 댈러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성당
♠ 조명연 마태오 신부님의 묵상글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
100달러 지폐 속 인물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미국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프랭클린입니다.
그는 정치적으로도 뛰어났지만, 대단한 세계적인 과학자이기도 합니다.
피뢰침, 다초점 렌즈, 민간형 비행기, 뇌파 측정기, 홀로그램 기술 등을 발명했습니다.
더군다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의 저자 스티븐 코비가 벤저민 프랭클린이 64년 동안 기록하고 실행한 13가지 덕목을 기본으로 하여 디자인한 시스템 다이어리로도 유명합니다.
그렇다면 그의 모습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대부분 땅딸막하고 뚱뚱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100달러 속에 있는 노년의 프랭클린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실제 키는 177cm로 그 당시에는 장신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평생 꾸준히 운동해서 아주 단단한 근육질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매력적인 갈색 눈동자에 숱이 아주 많은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100달러 속에 있는 인물과 왜 다를까요?
몸 좋은 프랭클린의 초상화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이 좋을 때는 유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노년의 벗겨진 머리, 많이 나온 배만 두드러집니다.
외모에 신경을 많이 쓰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성형도 하고, 또 명품으로 온몸을 감싸기도 합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떻게 사느냐가 아닐까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큰 가치입니다.
사람들은 화려한 외모보다 삶 자체에 더 큰 관심을 갖고 그 삶을 기억합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처럼 말입니다.
예수님도 세속적 삶보다 영적인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대사회에서는 어린이를 미숙하고 유치한 존재로 취급하여 경멸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옛날에는 아이들은 어른들의 말참견을 할 수 없었고, “조그만 게 까불어.”라면서 무시하곤 했었지요.
이렇게 보잘것없는 어린이가 오히려 하늘 나라를 차지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세상의 기준과 다른 하느님 나라의 기준을 이야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순간의 만족보다 영원한 만족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지를 늘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는 세상의 기준만을 따르다가는 후회할 삶을 만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이처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어린이를 당신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의 수호천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큰 관심을 갖고 우리의 삶을 기억해 주십니다.
수호천사 기념일인 오늘, 우리는 누구의 수호천사로 살고 있는지를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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