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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좋은 사람들 *^^* 원문보기 글쓴이: 봄날의 곰
스튜디오 계단을 경쾌하게 뛰어내려오는 소리는 지진희였다. 블랙 스트라이프드 수트를 입은 아주 말끔한 모습이다. 기껏 넉 달이었지만 이미 상투 틀고 갓 쓴 모습에 익숙해졌나 보다. 현대적인(?)인 헤어스타일의 그는처음 만난 사람인 양 낯선 기분이 들게 했다. 게다가 바람처럼 가볍고 불규칙하게 커팅된 헤어스타일은 그를 소년처럼 보이게 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깜박 잠이라도 들었는지, 막 잠에서 깬 말간 아이 같은 눈으로 인사를 한다. 새의 눈처럼 전혀 닳지 않은 눈이다. 오후 4시 30분에 시작된 인터뷰가 그날의 다섯 번째 스케줄이라고 했다. 실은 아침부터 정신없이 이곳 저곳을 다녀야 했다고. 일 년 전, 앙앙의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보았던 그는 약간 경직된 모습이었다.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안에 앉아 여기저기서 힐끔거리며 날아오는 시선을 의식 안 한다는 듯 그러나 의식할 수밖에 없다는 모습. 이 날은 달랐다. 몇 차례 작업을 통해 익숙해진 스태프들로 구성된 촬영팀은 그를 어린 남자아이처럼 팔짝거리게 만들었다. 미술을 전공했고, 광고 회사에서 사진을 찍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연기자가 되었다. 손으로 만드는 건 뭐든 좋아하고, 사진기를 들고 여전히 촬영 현장을 누빈다는 그. 그러니 손에 목탄을 쥐어주고 벽에 마음껏 그림을 그려보세요,라고 했을 때 그가 얼마나 신나 했을지는 상상에 맡길 따름이다. 처음 그린 건, 커다란 구름이었다. 손오공이 여의봉을 흔들며 올라탔음직한 꼬리가 길게 빠지는 구름. 그 다음은 비행기. 조그마한 경비행기가 벽을 뚫고 날아 나올 것 같은 그림. 세 개의 프로펠러는 신나게 돌아가고, 날개는 기류를 타는 듯, 살짝 기울어졌다. 나무로 장난감 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취미임을 알고 있었기에, 비행기가 그 다음 순서가 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대로 좋아하는 것은 다 그릴 태세였다. 말썽쟁이 고양이 가필드까지 등장한 것을 보면 말이다. 그는 고양이가 좋다고 했다. 위쪽의 공간이 다 차자, 이번에는 허리를 굽혀 아래쪽에 그리기 시작한다. 근데, 이건 정체 불명이다. 연탄을 그렸다고 보기엔 뭔가 어색한데… 성게알 초밥이었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을 마지막으로 그려넣었다. 그리고, 몇 개의 작은 비구름도.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고, 그래서 태어나고 자라고 지금껏 살고 있는 강북을 떠나지 못하겠다고 했다. 수십 년 손맛을 이어온 음식점이 있고, 광고쟁이로 살면서 정을 들인 충무로가 있고, 오랫동안 살아와 몸처럼 느껴지는 집이 있는 곳. 한 번 마음을 주면 쉽게 거둬가지 못하는 타입. 사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데뷔할 때부터 씩씩하게 밝혀왔던, 이제는 6년차(?) 연인이 된 디자이너와는 여전히 사이가 극진하다고 했다. 변함없이 변화무쌍한 그녀가 항상 자신을 긴장시키기 때문에 6년이란 세월이 지루하지 않았다고. |
이제 침대에 그를 누인다. 아주 사적인 느낌이 들 만큼, 그는 자연스럽게 행동했다. 아저씨 같은 버릇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마음에 들 만큼의 높이가 될 때까지 베개를 접고 또 접어 머리를 받치는 모양새가 그랬다. 또, 침대 위를 팔짝거리는 맨발이 어떤 여자의 발보다 예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군살 하나 박힌 곳 없는 다섯 개의 발가락은 알맞은 기울기로 가지런히 놓여 있다. 몸마저 냉정한 사람이 있다면, 그런 몸마저 다정한 사람이 있다. 사실, 침대에서의 촬영은 그를 위한 선물이었다. 대장금 촬영이 한창일 때,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 ‘잠을 실컷 자고 싶다’고 했던 걸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촬영 내내 딱 한 번 하품을 아주 크게 했을 뿐, 구르고 뒹구는 장난에 아주 신이 났다. 촬영장은 그의 엉뚱한 아이 같음에 종종 웃음 바다가 되었다. 평상시의 그를 알 길은 없으나, 기분 좋은 날의 그는 알 것 같았다. 기분이 좋으면 그는 약간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공기만으로 허허 웃는다. 기분이 좋으면 그는 다섯 살 남자아이처럼 몸의 과도한 에너지를 발길질이나 스트레칭으로 분산한다. 기분이 좋으면 그는 단답형으로 짧고 크게 대답을 한다. 이 삶 속에서 누군가의 적이 되지 않고 살기란 불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아니다. 적의라고는 없다. 누가 이런 순진무구한 남자와 싸움을 하려 하겠는가. 그날, 그는 기분이 아주 좋았다. 하루라도 온전히 자신의 시간이 있어야 하는 사람. 그 하루를 만들기 위해 스케줄은 늘 빼곡하게 몰아져 있어야 했다. 혼자 있는 시간, 무언가를 조물락거리며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 나무를 깎아 비행기와 배도 만들고,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종이로 알 수 없는 것들을 만들기도 하는 건,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외동 아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혼자 있어야 숨을 쉴 수 있는 그이지만, 현장에서는 사람들과 함께하지 못하면 또한 숨을 쉴 수 없다. 선뜻 현장의 분위기에 섞이지 못하는 숫기 없는 신인 연기자를 향해 먼저 손을 내밀고, 전화를 걸고, 안부를 챙기는 이유 역시, 그런 모습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강박증. 사람 좋은 웃음 뒤에 숨겨져 있는 혼란스러움일지도 모른다. 현장의 그는 지금 대장금을 차곡차곡 카메라에 담고 있다. 디지털 카메라와 수동 카메라로 이미 500여 컷 이상을 찍었고, 곧 홈페이지에 현장의 치열함과 평화로움과 따뜻함을 담아 사진을 공개할 예정이란다. 사진들은 현장의 동료와 스태프들에게 바치는 인간애가 담긴 헌사가 될 것이다. 몇 번의 웃음과 몇 번의 농담과 몇 번의 장난이 지나가자 촬영은 이미 끝이 나 있었다. 이미 어두워진 홍대 주차장 길을 걸으며 밥집으로 향하는 길에 전화기가 울려댄다. 단독자의 삶을 살기로 유명한 조승우, 신애, 조현재… 드라마와 영화에서 함께한 동생들은 각자 그를 형처럼 오빠처럼 친근하게 불러냈다. 그가 수 많은 사람들의 ‘콜 넘버 1’이라는 사실. 작품을 함께한 사람들은 그의 진정제와 같은 효력으로부터 헤어날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그 자신은 낯을 많이 가리는 편이라니…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과 남이 알고 있는 자신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신.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고민과 충돌이 있었을까. 낯을 많이 가리지만, 아주 명랑했고, 소심해 보이지만 소심을 가장한 대범함도 있었다. 사람과 사람이 함께하는 일이 그에게는 정말 딱 맞는 듯 보인다. 사람과 평온에 대한 믿음이 있는 그. 적어도 그는 사람을 앞에 앉혀놓고 혼자 생각 속으로 빠져드는 듯한 눈빛을 할 사람은 아니다. 적어도 곁의 사람을 외롭게 할 사람은 아니다. 장난스럽고, 고집스럽고, 솔직하고, 연약하고, 헝클어진 모습을 겁내지 않는 관계 지향적인 기질의 남자. 오늘, 지진희는 우리에게 자신을 조금은 보여준 셈이다. |
첫댓글 괜찮은 배우인 것 같아서 기사를 뒤지다 보니.. 정말 좋은 사람인 것 같아서요 ㅎㅎ 대장금 때인 것 같죠?.. 알면 알 수록 좋은 사람 이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