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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찬가지로 리옹 감독직에 관심을 드러냈던 디디에 데샹(前 유벤투스)과의 치열한 경합을 벌인 끝에 프랑스 제일 구단의 제 23대 사령탑으로 등극하게 된 페랭이 당면과제로 놓여있는 르 샹피오나 7연패는 물론, 유럽 정상에 목말라하고 있는 리옹의 야망을 과연 그만의 방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지의 여부에 벌써부터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훌리에의 퇴진, 그 배경
전임 폴 르 갱으로부터 지휘봉을 넘겨받은 이래 지난 2년 동안 매우 성공적으로 리옹의 리그 2연패를 이끌어냈던 훌리에는 비록 컵 대회와 챔피언스 리그에서 잇단 실패를 맛봤음에도 불구, 구단주인 장-미셸 올라스의 전적인 지지를 받아오던 인물이었으며 그렇기에 그의 이번 사임은 많은 이들의 의아함을 자아내기 충분한 사건이었다. 훌리에 본인 조차도 시즌 도중 여러 차례에 걸쳐 남은 계약기간 -훌리에는 부임 당시 2년 계약을 맺었으나, 리옹이 2007/08 시즌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확정할 경우 이를 자동으로 1년간 더 연장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을 이행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쳐왔던 상황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구단 측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 업고 있었음에도 훌리에 감독은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서 고심 끝에 물러나는 방향으로 뜻을 정하였다. 그렇다면 그는 왜 리옹을 떠나야만 했던 것일까?
훌리에 감독이 직접 사임 연설에서도 언급했듯, 올 9월로 환갑에 접어드는 그에게 있어 리옹 감독이란 자리는 너무나도 많은 노력과 시간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직업이었다. 리옹은 오는 2010년 새 경기장(OL 랜드)으로의 이전을 앞두고 이에 발맞춰 유럽 정상에 다가서기 위한 야심의 ‘3개년 프로젝트’를 계획 중에 있었으며, 올라스 구단주는 이 과정을 훌리에 감독과 함께하고자 하는 뜻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안식을 원하는 고령의 노감독에게 있어 이는 좀처럼 감당하기 힘든 부담으로 다가왔다. [사진: 재충전의 시간을 원하는 훌리에. “내 나이가 이제 육십이야!”]
리옹을 떠날 경우 프랑스축구협회(FFF)의 기술고문으로 다시 부임하게 될 것이란 언론의 전망이 그간 무성했던 가운데 훌리에 감독은 그러나 향후 1년간 축구계를 떠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하고 이와 같은 가능성을 일축하였다.
왜 데샹이 아니었나?
훌리에 감독의 사퇴 결정이 보도된 지 채 48시간도 지나지 않아 유벤투스의 사령탑 디디에 데샹의 퇴진 소식이 전해졌고, 이는 많은 언론들로 하여금 ‘모종의 합의’에 대한 추측을 가능케 끔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데샹은 지금으로부터 2년 전 르 갱 감독의 후임으로 가장 유력하게 거론을 받았던 인물이었으며, 당시 리옹의 올라스 구단주는 AS 모나코와의 계약문제가 얽혀 영입이 성사될 수 없었던 사실에 무척이나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데샹 본인이 직접적으로 감독직에 관심을 표명한 상황에서 공교롭게도 리옹 수뇌부의 선택이 그를 외면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먼저 리옹 구단 내부의 실정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데, 올라스 구단주의 오른팔이자 구단의 실세로 자리잡고 있는 기술고문 베르나르 라콤(Bernard Lacombe)의 입김이 이번 감독 선임에 개입했으리란 추론을 이 과정에서 조심스럽게 내놓을 수가 있다. 7-80년대 프랑스 국가대표를 지냈으며 리옹에서 선수생활의 전성기를 보냈고, 은퇴 후 다시 친정팀으로 돌아와 감독직을 역임했던 라콤은 축구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구단 사정에도 매우 정통한 인물로써 오랜 기간 동안 올라스 구단주의 측근으로 영향력을 행사해온 ‘유력인사’.
감독으로써 데샹이 가지고 있는 능력에는 물론 의심의 여지가 없었으나, 결국 문제는 구단 수뇌부와 자주 마찰을 빚던 전력을 가지고 있는 데샹의 프로파일에 근거하고 있었다. 과거 모나코 재직 시절은 물론, 마찬가지로 유벤투스에서도 감독으로써의 전권을 요구하며 구단 주요 간부들과의 충돌을 서슴지 않던 데샹의 다소 지나친 독자적 성향은 리옹 내에서 선수영입을 관장하고 있는 라콤 고문은 물론, 구단주인 올라스에게 있어서도 적지 않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다.
데샹이 기존 코칭 스태프에 대규모 인사변동을 단행하려 했던 점도 ‘안정성’을 중시하는 리옹의 경영 철학에 들어맞지 않는 일이었다. 이에 반하여 페랭은 보조 코치 크리스토프 가티에 만을 리옹으로 함께 데리고 왔을 뿐, 이 밖의 모든 기존 인사들을 유임시켰다.
리옹의 선택, 페랭
페랭 감독의 선임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그가 리옹의 하이어라키(hierarchy)를 잘 이해하고 수용했다는 점이 중심에 자리잡고 있다. 다시 말해, 데샹과 달리 페랭은 자신의 권한이 오직 그라운드 이내에만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또한 라콤 고문과의 향후 동업 과정에 있어서 일정 수준의 간섭이 개입될 것이란 사실 역시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다. 과거 훌리에가 선수단 운영 문제를 놓고 라콤과 곧잘 충돌을 빚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페랭의 프로파일은 오직 ‘매니져’로써의 임무에만 충실했던 르 갱의 그 것에 좀더 가깝다는 인상을 풍긴다.
그렇다고 해서 감독으로써의 능력이나 자질이 선정 기준에서 배제가 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지난 1993년, 당시 4부 리그에 소속되어있던 무명의 신생 클럽 트루아를 맡아 이후 9년 동안 감독으로 재직하면서 구단의 창단 첫 1부 리그 승격, 그리고 이은 UEFA컵 진출을 이끌고 일약 스타 보스의 반열에 올라섰던 그는 이후 45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영예로운 올림피크 마르세유의 감독직을 역임하였고 또 비록 짧게나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대륙 축구를 몸소 체험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의 역량이 비로소 빛을 발했던 것은 역시 소쇼에서 맞이한 2006/07 시즌에 이르러서였는데, 신예들과 베테랑들간의 절묘한 신구조화를 이끌어내며 중하위권을 전전하던 클럽을 리그 7위와 프랑스컵 정상으로 인도하게 되는 것. [사진: 페랭, 과연 리옹에서도 웃을 수 있을까?]
전술적인 융통성에 있어서도 페랭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데, 공격지향적 4-4-2를 고집하는 데샹과는 달리 그는 수비 조직력에 중점을 두면서 일정한 틀에 구애 받지 않고 유동적인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세간에 정평이 나있다. 리옹의 기본 전술인 4-3-3에 대해서도 매우 조예가 깊다는 점은 분명 또 하나의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법하다.
뛰어난 전술가이기에 앞서 엄격한 권위주의자로 잘 알려져 있는 페랭이 최근 스타 플레이어들의 잇단 개인행동으로 분열의 조짐을 드러내고 있는 리옹 선수단을 과연 어떠한 방식으로 장악하게 될지 또한 호기심 어린 궁금증을 자아낸다.
◈ 제라드 훌리에 (2005/5~2007/5) - Assessment
- 리그 1: 76전 49승 18무 9패
- 챔피언스 리그: 18전 11승 5무 2패
- 프랑스컵 8강 (2006)
- 리그컵 준우승 (2007)
- 트로페 샹피옹 우승 (2005, 2006)
◈ 알랭 페랭 (2007/5~) - Managerial Career
- 1983~1993: 낭시 유소년팀
- 1993~2002: 트루아 (2001 UEFA 인터토토컵 우승)
- 2002~04: 올림피크 마르세유 (2002/03 르 샹피오나 3위)
- 2004: 알 아인
- 2005: 포츠머스
- 2006~07: 소쇼 몽벨리아르 (2007 프랑스컵 우승)
- 사커라인 윤동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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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데샹 형님 다시 다른팀으로 가서 리용의 독주를 맏아주시길
또 비록 짧게나마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대륙 축구를 몸소 체험하기도 하였다 <- 프리미어리그를 대륙축구라고 부르나요??진짜 몰라서 질문하는겁니다;;
언제부터 프랑스가 섬이고 잉글랜드가 대륙이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