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후 시를 쓰고 싶었다. 시 공부를 하면 치매예방에 좋을 것 같아서다. 또한 시간을 보람되게 보낼 수 있어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늙었기에, 내 두뇌 또한 늙었다. 두뇌가 늙었는데 시를 쓸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해보았다. 이때 바로 일본의 시바타 도요라는 할머니의 시가 유행되었다. 시바타는 9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다. 100세에 시집을 발간했다. 그 시집이 일본에서 1백만 권 이상 팔렸다. 한국에도 그녀 시집이 번역되어 많이 읽혔다. 시바타를 보고서, 두뇌가 늙었어도 시를 쓰는 데는 별 상관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늙어오는 동안 많은 경험을 했다. 그렇다면 나는 시를 쓸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다. 시집을 읽기 시작했다. 동네 미국 도서관에 가 보았다. 한국소설이나 수필 책은 수두룩하게 많아도, 시집은 단 한 권도 없었다. 그래서 시집을 사든가, 혹은 빌려서, 많이 읽었다.
막상 시를 쓰려고 하니까 전연 써지지가 않는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경험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시를 쓰는 데 있어서, 첫째 시를 쓰고 싶다 하는 강한 의욕이 있어야 한다. 그에 따른 사색(思索)이 있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안 된다. 시를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소수의 천재들은 배움 없이 시를 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시 쓰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배우기 위해서, 시 선생을 찾았다. 뉴욕에는 시를 가르치는 학교나 학원이 하나도 없었다.
시상(詩想)이란 뜬금없이 저절로 떠오른다. 시상이 떠오를 때, 얼른 그 시상을 종이에 적어놓아야 한다. 떠오르는 시상은 오래 가지 않는다. 한번 사라지면 다시 찾아내기가 어렵다. 종이에 적어놓은 시상을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하고 또 교정한 후에 한편의 시를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써놓은 시를 아내한테 읽어보라고 한다. 아내가 좋아할 때까지 혹은 내가 만족할 때까지 시를 고치고 수정한다. 시를 쓰다보면 짜증도 나고 골치도 아프다. 높은 산을 올라갈 때는 희망도 있지만 고통 또한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다 써놓은 후 완성된 시를 읽어볼 때의 기분은, 마치 높은 산 정상에 도달했었을 때의 만족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