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의 졸정원
김순덕
한발 한발 내딛는 발자국은 한 폭의 그림 위를 걷는 것 같다.
앙증맞은 조약돌들이 오솔길을 따라 알알이 수를 놓듯이 꽃그림과 물고기 그리고 수
복을 그리는 글 등 다양한 문양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다보니 내가 천상에서 노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중국의 소주(州)지방의 특성은 산이 없고 가도 가도 끝없는 뽕나무 밭이고 평야이
다.
이런 지형을 만여 평이나 되는 넓은 대지를 연못과 물길을 파서 만들면서 그 흙은 아
름다운 동산이 되고 그곳에는 이름조차 알 수 없는 꽃과 나무들로 한 폭의 산수화가 되
어있다. 차단된 공간에서 사대부, 문인, 화인 들이 즐겼다는 정원의 누각에서 음 주 ·
시·화·정·담(飮·酒·詩·畵·情·淡)으로 세월을 역어 나갔을 모습들이 상상의
그림으로 남는다.
문이나 창에서 단순한 드나 듬과 빛의 조화가 아닌 계절의 변화에 따라 도화 창(圖畵
窓) 공창(空窓) 투창(窓) 등 한 폭의 명화 액자가 그 자리에 걸린 것 같은 착각으로
그 자리를 떠날 줄 몰랐다.
드나드는 문 또한 원으로 만든 문 타원형 등 우리가 늘 보던 보편화된 각진 문을 떠난
또 다른 문에서도 오백여년이 흐른 오늘에도 많은 이들이 감탄하고 놀라 입을 다물지 못
하는 진풍경도 같이 보고 있다.
내가 찾던 그날은 겨울의 끝자락에서 한국보다 조금은 따스하게 느껴지는 기후 때문
인가 이름모를 꽃들이 제법 피어 있고 동백꽃과 매화꽃이 곱게 피어 있다.- 10
내가 좋아하는 매화를 만남이 이른 봄 내 고향에 피던 매화를 보는 듯 아늑하게 다가
온다.
내가 지금 즐기고 거니는 정원은 오백 여 년 전 명대에 어사를 지낸 왕 헌신 이 관직
을 버리고 낙향하여 20여년에 걸쳐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다는 졸정원 이다.
이명 작품에 빠져 들면서 중국인들의 만만디와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 라는 성급한
성격의 민족성을 비교 하면서 오랜 시간 깊은 생각과 연구 그리고 시행착오를 거듭하면
서 일구어 냈을 작품 앞에서 우리는 할말을 잊는다.
차경(借景) 법도 다양하다 원차(借) 앙차(仰借) 부차(俯借) 그리고 응· 시 · 이·차
(應時而借) 등 경치를 보는 각도와 계절에 따라 다름을 이곳에서 그대로 보여주고 있
다.
중국을 대국이라고 일컫는 말이 땅덩이가 큰 것만이 아님을 느낀다.
가는 곳 마다 깊이 생각하고 긴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유물들이 존재하기에 그들은 당
당 이 대국이라 말하는 것 같다. 세계의 4대 정원을 배우고 난후의 여행이라서인지 졸정
원 을 거닐던 마음은 당시의 왕 헌신 의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며 우리
가 배운 또 다른 정원도 꼭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중국 여행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졸정원의 끝 간 데 없는 오솔길 가에 늘어진 능수버
들이 물기를 머금은 채 물에 손을 담그고 있다.
저 연못 속에서도 이름모를 나무들이 배시시 웃으며 흐느적거리고 있다 심연 속에는
예술을 사랑하고 찬양하던 문인 화인들의 화기애애하게 대화하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덩달아 나비인양 하얀 매화 꽃잎이 살포시 내려 와 내 머리위에 내려 않는다 꿈속에
서인양 두 팔을 벌려본다.
2005/23집
첫댓글 중국을 대국이라고 일컫는 말이 땅덩이가 큰 것만이 아님을 느낀다.
가는 곳 마다 깊이 생각하고 긴 시간 정성 들여 만든 유물들이 존재하기에 그들은 당
당 이 대국이라 말하는 것 같다. 세계의 4대 정원을 배우고 난후의 여행이라서인지 졸정
원 을 거닐던 마음은 당시의 왕 헌신 의 심정이 바로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미치며 우리
가 배운 또 다른 정원도 꼭 만나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