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일치] 나의 살던 고향은 / 정현희 수녀
발행일2020-04-12 [제3190호, 22면]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예쁘다 했다. 그래서 그럴까. 꿈사리공동체의 친구들은 모두가 얼짱이다. 그리고 흥이 나면 북한 노래 ‘녀성은 꽃이라네’, ‘준마처녀’, ‘심장에 남는 사람’ 등을 비롯해 ‘바위섬’, ‘친구’, ‘총 맞은 것처럼’ 등 남한 노래도 가릴 것 없이 열창을 한다.
어느 날, 결혼한 꿈사리공동체 자립생이 유치원생 딸을 데리고 와 내가 ‘쎄쎄쎄’를 하면서 ‘반달’ 노래를 부르니, 작년 여름에 탈북한 미향이가 따라 부르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그 노래를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유치원 다닐 때 배웠다고 한다. 그 순간 세대 차이, 남북 차이는 사라지고 우리 모두는 한동네에서 함께 뛰어놀았던 친구 같았다.
6·25 전쟁 당시 어린이 합창단의 실화를 바탕으로 배우 임시완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오빠 생각’에서 남과 북이 함께 부른 노래들이 나온다. 전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고아들이 ‘고향의 봄’과 ‘나물 캐는 처녀’와 ‘즐거운 나의 집’ 등을 부르며 상처와 아픔을 치유하고 전쟁터에 평화와 화해의 꽃을 피워 내는 장면들은 노래의 위대함과 숭고함을 느끼게 해 주기에 충분했다.
지금도 남과 북이 함께 부른 동요들은 우리에게 평화의 다리가 돼 주곤 한다.
2018년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만찬 때 13살 제주 소년 오연준군이 ‘고향의 봄’을 불렀을 때, 김정숙 여사와 리설주 여사가 함께 따라 부르는 모습은 통일의 꽃이 활짝 피어 나는 듯한 감동과 희망을 안겨 줬다.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고 ‘흥’(興)도 많은 민족이다. 나는 안성 하나원 천주교반 레크리에이션 시간 때 대부분의 북한 여성이 서슴없이 무대로 달려 나와 열창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 그리고 노래 중간이 되면 북한 여성들이 무대에 올라와 어깨춤을 추고 모두 하나가 되는 모습을 보면서 ‘노래로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5000년이란 오랜 세월 우리는 같은 전통, 같은 문화, 같은 역사를 가졌던 같은 민족이었다. 그러나 70년 넘는 분단 속에서 우리는 다른 이념과 체제 속에서 살며 다른 사고, 다른 문화를 만들어 왔다.
이 다름에서 오는 긴장과 갈등은 서로를 혐오하고 배척하며 우리 민족의 뛰어난 본질과 선한 본성을 보지 못하게 높은 장벽을 만들었다. 우리가 그 다름을 복음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그 다름 속에 오히려 뿌리 깊은 같음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서로가 용서와 화해의 포용력으로 다름을 받아들인다면 그 다름은 다양함과 풍요로움으로 창조돼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다.
어서 빨리, 부활하신 주님의 용서와 평화가 한반도에 충만하게 울려 퍼지고 세계 속으로 메아리치는 눈부신 날이 오길 매일 기도하며, ‘고향의 봄’을 불러 본다.
정현희 수녀 (‘꿈사리공동체’ 시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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