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입식 교육으로는 ‘코포자’만 양산할 것
[중앙선데이] 2017.11.19 02:14 | 558호 21면
[IT는 지금] 소프트웨어 교육 의무화
난 7월 30일 과천 국립과학관에서 여름캠프에 참가한 어린이들이 직접 조립한 로봇을 스마트폰으로 조종해보고 있다. [중앙포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국가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SW) 교육을 강화하는 추세다. 영국이 18세기 말부터 산업혁명을 주도했던 바탕에는 교육이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대학을 중심으로 증기기관을 개발한 제임스 와트, 파라핀을 제조한 제임스 영, 열역학을 발견한 로드 켈빈 등 수많은 기계공학자가 배출됐다. 영국은 또 다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기 위해 2014년을 ‘코딩의 해(The Year of Coding)’로 지정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했다. 컴퓨터 공학을 전 학년에 걸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기본 과목으로 채택했다.
개발 언어는 빠르게 변하는 분야
코딩보다 협업 능력, 사회성 중요
체육·윤리 과목 이수시간 늘리고
제대로 SW 활용할 통찰력 길러야
이 분야 선두 주자인 미국도 교육에 중점을 두고 있다. 미국 컴퓨터공학교사협회(CSTA)는 학교에서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 표준안을 마련했다. 초등·중등·고등으로 단계를 나눠서 이수 교육 표준을 만들었다. 단계별로 컴퓨터적 사고, 협동, 컴퓨팅 연습과 프로그래밍, 컴퓨터와 통신 장비 그리고 커뮤니티 및 윤리적 영향의 5가지 내용을 포함한다.
창업 국가로 유명한 이스라엘도 SW 교육을 강화했다. 1994년부터 컴퓨터 공학 과정을 만들었는데, 2011년부터는 이 과정을 별도로 분리해서 중학교부터 이수하도록 하고 있다. 이과 고등학교의 경우 3년간 270시간을 컴퓨터 공학에 필수로 할애해야 한다. 심화 과정의 경우에는 450시간에 달한다. 컴퓨터 공학 집중 교육은 학생들이 졸업 후에 바로 창업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한국 정부도 SW 교육을 의무적으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개편할 예정이다. 내년부터 중·고등학교에서 SW 교육 과정인 ‘정보’ 과목을 34시간 이상 필수로 이수해야 한다. 초등학교의 경우 2019년부터 5학년과 6학년을 대상으로 SW 교육을 17시간 이상 이수하도록 교육을 개편했다. 이는 바람직한 정책으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의 기대대로 SW 교육이 제대로 실행될지는 의문이다.
어린이들에게 코딩을 가르치는 영국의 비영리 단체 코드클럽. [사진 코드클럽]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수학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한국 학생들은 미국 학생들보다 3년 이상 수학을 선행해서 공부한다. 미국 심화 수능인 SAT 2의 수학을 응시한 적이 있는데, 난이도는 한국 중학교 3학년 수준이었다. 게다가 공학용 계산기 사용까지 허용했기 때문에, 만점인 800점을 맞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 수학 꼴찌하는 학생이 미국 가면 1등 한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한국 학생의 수학 실력은 뛰어나다. 그런데 한국은 수학분야에서 주요한 상 수상자를 단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다.
이는 교육 체계의 문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수학 역시 고질적인 주입식 교육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사교육 시장 규모가 약 18조원에 달한다. 젊은 시절 서울 대치동에서 과학 강사로 일해 본 경험이 있다. 지방에서 올라온 내게 대치동의 교육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고등학교 3학년 과정까지 선행학습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SW 교육과정도 수학처럼 사교육을 통한 주입식 교육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단기간에 고액을 받는 SW 사교육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런 주입식 교육은 오히려 학생들이 SW를 멀리하게 하는 부정적인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수포자(수학 포기한 사람)’에 이어 ‘코포자(코딩을 포기한 사람)’가 곧 등장할 것이다.
학부모들이 사교육에 투자하는 이유는 공교육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서다. SW 교육 의무화를 추진한 영국 또한 인프라 부족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2016년 9월 영국 BBC 방송은 SW 의무 교육의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SW를 가르칠 교사가 부족하다는 것이고, 둘째 학생들을 가르칠 SW 교과 내용이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3209개 중학교의 컴퓨터 관련 교사 수는 학교당 0.4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SW 교육을 위한 컴퓨터 지원도 열악하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국 초·중·고교 컴퓨터 중 구매한 지 6년을 초과한 컴퓨터가 17%에 달한다.
한국의 수학 교육은 지나친 사교육과 선행교육 탓에 왜곡되고 있다. 대치동 학원가 모습. [사진 코드클럽·중앙포토]
갈수록 SW 교육의 필요성은 커지고 있지만 핵심 내용은 개발 언어를 배워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코딩이 아니다. SW는 단순히 생각을 표현해 주는 도구일 뿐이기 때문이다. SW 개발은 간소화해지고 있다. 초창기 개발 언어인 C는 컴퓨터의 깊숙한 부분까지 다뤄서 어려웠다. 이를 간편하게 하려고 자바(Java)가 등장했다. 최근에는 이보다 더 친숙한 파이선(Python)이 주목받고 있다. 이처럼 개발 언어는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초등학교 때 배운 내용이 대학교 졸업 후에는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SW 조기 교육은 개발 언어에 대한 단순 지식이 아니라 SW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 개발 언어 교육에 너무 매달려서는 안 된다. 공교육에서 우수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할 역량도 없을뿐더러, 가장 큰 핵심도 아니다. 교사가 무조건 학생을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부족한 대로 함께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학생은 수평적인 생각을 가지고 창의성을 함양할 수 있다. 개발 언어 교육을 너무 강조해서 또 다른 사교육 열풍을 불러서는 안 된다.
둘째, 체육 과목 시간을 늘려야 한다. SW 공학 석사 과정 이수 당시에, SW 프로젝트 핵심은 협업이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미국 라스알키마대학의 나라시마히아 고를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개발자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회성으로 나타났다. 물론 우수한 개발자는 보통 개발자보다 10배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성과는 프로젝트 전체로 보면 한정적이다. 보통 시스템 하나를 개발하더라도 웹 개발자, 서버 개발자, 디자이너 등 여러 개발자가 모인다. 우수한 개발자도 다른 분야 개발자와 협업할 수밖에 없다. 시스템의 일치성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체육은 협업 능력 함양에 가장 좋은 과목이다. 영국은 기본 과목 중 컴퓨터 공학과 함께 체육을 전 학년에 걸쳐서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과목으로 정하고 있다.
셋째,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아는 융합형 인재가 중요하다. 포드햄대학교 잭 조리슨 교수는 SW 프로젝트의 범위는 SW 구현까지라고 정의했다. 개발자는 SW가 제대로 구동이 되는지에만 집중하면 된다. 이 제품이 사회적 혁신을 가져오는지까지 통찰력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정부가 원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강화할 SW 개발일 것이다. 이를 개발 언어 교육으로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등 개발자 출신이 아닌 혁신가들이 많다. 피터 드러커는 혁신은 기술 개발이 아닌 기술 활용에 기초한다고 말했다. 인문학과 사회과학을 통해 SW 기술을 활용할 역량을 길러야 한다.
넷째, 윤리 과목을 더 강화해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가 도래하면서 개발자의 윤리적인 책임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나이 어린 학생들이 SW에 친숙해지게 되면, 사이버 범죄가 늘어날 수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오히려 윤리 과목을 축소하고 있어 안타깝다. 미국이 윤리 과목을 핵심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참고로 2009년에 한국 중학교 과정에서 정보 윤리 관련 과목을 이수하는 비율은 45%였다. 그러나 2015년 교육과정 개편 이후 36%로 줄었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사람은 개발자만이 아니다. SW 교육 의무화에만 빠져서, 창조형 인재를 기르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유성민 IT칼럼니스트
정보통신기술(ICT) 융합 및 보안솔루션 전문가. 전기차, 스마트시티 사업 분야를 거쳐 현재 보안 솔루션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저서 『사물인터넷(IoT) 시대의 위협』과 『미래전쟁』 등의 역서를 냈다. http://blog.naver.com/dracon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