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는 세 자매가 있었다. 막내와 쌍둥이 언니는 함께 어울려 다니면서 동네 문방구 앞의 게임기에서 테트리스를 즐겼다. 속칭 ‘잡기’에 능하고 손재주가 좋아 ‘만물박사’로 통했던 아버지는 귀여운 딸들이 길 옆에 쭈그리고 앉아 게임하는 것을 보고는 안쓰러운 마음에 컴퓨터를 구입해 집에서 편안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도록 해줬다. 단계별로 벽에 부딛혀 고민할 때에는 자신이 직접 해본 뒤 해결책을 찾아 도와줬다. 아빠를 닮아 세 자매 모두 게임에 재능이 있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세 자매는 각각의 재능을 살려 서로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쌍둥이 자매 중 동생인 서지수(21)는 한국 최고의 여자프로게이머로 활약하고 있고. 언니 지은은 평범한 대학생. 그리고 막내 지승(18)은 연예계에 진출해 촉망받는 CF 모델 겸 탤런트로 활동하고 있다. 대중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길을 선택한 지수-지승 자매를 만나 그들의 꿈에 대해 들어봤다.
◇속일 수 없는 ‘맥가이버 서’의 핏줄
아버지 서영석씨는 가족들에게 ‘맥가이버 서’로 통한다. 전자제품이 고장나면 애프터서비스에 맡기지 않고 집에서 다 고칠만큼 손재주가 뛰어났다. 컴퓨터게임 당구 볼링 스키 축구 골프 등 만능 스포츠맨이기도 했다. 한 때는 애완동물에 심취하기도 했다.
한 번 빠지면 끝을 볼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 얼마전까지 골프에 빠져 각종 교재와 비디오테이프. 퍼팅연습 장비 등을 사놓고 “나중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면 레슨프로를 하겠다”고 선언해 가족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어머니 박경숙씨는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고. 깊이 빠지는 성격인데 딸들이 아빠를 닮은 것 같다. 게이머든 연기자든 창의력과 열정을 갖고 깊이 빠지지 않으면 최고가 되기 힘든 일 아니냐”며 “나를 고생시킨 남편이 딸들에게는 좋은 재능을 전해준 것 같다”며 웃었다.
◇수의사를 꿈꿨던 지수
지수는 어릴 적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물론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아버지가 키우는 각종 애완동물이 집안을 가득 채워 발디딜 틈이 없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다. 거실은 강아지 토끼 오리 앵무새 햄스터 등이 사는 동물의 왕국이었다. 자연스럽게 동물 다큐멘터리를 좋아했다. 사자 호랑이 등 모든 어린이가 좋아하는 동물 뿐 아니라 악어 도마뱀 등 파충류도 좋아했다. 항상 동물과 함께 지내면서 보살펴주는 동물원의 수의사가 되는 행복한 꿈을 꾸며 잠자리에 들던 시절이 있었다.
◇육상선수가 되고 싶었던 지승
운동을 좋아한 아빠를 닮아 지승은 어릴 적부터 힘이 셌다. 아빠와 함께 공놀이를 즐기고 운동장에서 뛰어놀면서 운동신경이 발달했다. 중학교 때 반에서 팔씨름을 하면 항상 일등이었고. 달리기도 잘했다. 지승은 “달리면 기분이 좋아진다.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에는 달리기가 최고다. 연기를 하지 않았으면 아마 육상선수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게임계의 미셸 위’가 되겠다!
국내 여자 프로게이머 중 최고의 기량을 갖춘 지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다. LPGA에서 활약하고 있는 프로골퍼 미셸 위가 성벽을 허물겠다며 남자대회인 PGA에 도전하고 있는 것처럼 그도 남자게이머들의 리그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여자 게이머 중 최초의 본선진출 도전이다. 게임단 STX SouL 소속인 그는 지난해부터 동료 게이머들과 함께 합숙하면서 게임계의 새로운 신화를 쓸 준비를 하고 있다.
◇언니처럼 1등이 되겠다!
지승의 연예계 입문은 ‘길거리 캐스팅’을 통해서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롯데월드에 놀러갔다가 연예기획사 탱크M 매니저의 눈에 띄어 잡지와 CF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그후 ‘신돈’ ‘반올림2’ 등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연기까지 폭을 넓혔다. 최근에는 온라인게임 ‘메이플 스토리’의 모델로 발탁돼 CF촬영을 마쳤다. 고3 수험생으로 대입준비에 한창인 그는 “언니의 인기가 높아 사인을 받아달라는 부탁을 많이 받아왔다. 앞으로는 언니에게 내 사인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좋겠다. 열심히 노력해 나도 언니처럼 이 분야의 최고가 되겠다”고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이 세상 그 무엇도 너희를 슬프게 할 순 없어
게이머의 세계나 연예계나 어느 분야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한 곳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게 되고. 실패와 좌절을 겪을 때도 많다. 어머니 박경숙씨는 어릴 적부터 딸들이 풀죽어 있거나 힘들어할 때 “이 세상에서 어떤 것도 너희를 슬프게 할 수는 없다”는 말을 들려주곤 했다. 지수와 지승은 힘들거나 지칠 때 항상 이 말을 되새기며 힘을 얻는다. 학창시절 성우를 꿈꿨던 어머니는 지승이 롯데리아 CF에 출연했을 때 목소리 연기를 맡아 어릴적 꿈을 이뤘다. 출연료로 받은 15만원으로 가족과 함께 멋진 불고기 파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