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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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지음 북라이프 펴냄 |
5만 관객 모은 다큐영화
책으로 독자들 만나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정
생생하게 책속에 녹아들어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과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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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재 감독은 “영화에서 공개하지 못했던 비구니 스님들의 깊은 속마음을 책에 담고 싶었다”고 책을 낸 소감을 밝혔다.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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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출가를 꿈꾸었던 영화감독이 불교를 소재로 한 영화에 이어 책을 펴냈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비구니 스님들의 일상과 수행 과정을 밀착 취재한 영화 ‘길 위에서’로 관심을 모았던 이창재 감독(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이 선 보인 <길 위에서>가 화제의 책이다.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이란 부제를 단 <길 위에서>는 영화감독의 눈에 비친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정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길 위에서’의 메가폰을 잡은데 이어 책을 내게 된 이창재 감독은 “영상을 업으로 삼아온 탓에 활자로의 확대 재편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영화에서는 차마 공개하지 못했던 비구니 스님들의 깊은 속마음과 인터뷰, 그리고 뒷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고 싶었다”고 책을 출간한 속내를 살짝 드러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과정을 기록한 300일이 그에게는 어떤 의미였을까? 책머리에서 이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지난 300일, 나는 새로운 사람을 보았다. 그들은 이제껏 내가 보아온 사람들과 아주 비슷하기도 했고, 또 전혀 다르기도 했다.”
이창재 감독이 영화를 찍은 경북 영천의 백흥암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작은 절이다. 금남(禁男)의 공간이자, 금속(禁俗)의 공간인 백흥암에서 영화촬영을 하고 싶다고 제안했을 때 이창재 감독에게 떨어진 것은 불호령이었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만 수차례 방문하고 설득한 끝에 비구니 스님들이 마음을 열었고,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300일은 ‘긴장의 연속’이나 다름없었다. 촬영하다 쫓겨나기를 여러 번. 때로는 스님들의 냉담함에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 역시 수행과 마찬가지였다.
영화감독의 눈과 카메라 앵글에 잡힌 백흥암 비구니 스님들의 모습은 이랬다. “기도와 참선을 통해 맑은 물에 어리는 만사(萬事)를 보는 사람들, 그 어떤 모습이든지 뿌리치지 않고 그릇되다 탓하지 않고 자기 안으로 받고 받고 받아서 맑은 물이 될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가진 것을 버리고,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 버리고 용감하고 외로운 길을 걷고 있었다. 부처를 닮으려는 사람들, 부처가 되려는 사람들이었다.”
이창재 감독은 “무심한 듯하지만 부족함이 없는 곳, 모자란 듯하지만 소박한 멋이 있는 곳, 백흥암은 바로 그런 절”이라고 소회를 털어 놓았다. 여러 사연을 간직하고 무사히 촬영을 끝낸 후 세상에 영화를 선보이자, 반응은 의외로 컸다. 2013년 다큐멘터리 영화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청소년을 위한 좋은 영상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조계종 총무원의 적극적인 후원도 큰 힘이 됐다.
이창재 감독은 백흥암에서 오랫동안 촬영을 하면서 ‘절집’과 ‘속세’가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수행을 하기는 하지만, 밥 먹고, 자고, 쉬고, 때론 정진하고, 때론 다투고 … 생각보다 비슷한 부분이 많았다. 촬영이 끝날 무렵 여러 스님들에게 질문을 했다. 이창재 감독과 스님들의 대화 일부이다. “절집이랑 속세랑 뭐가 다른가요?” “속세에서는 같은 집에서 같은 밥을 먹고 살아도 각자의 욕망에 따라 가는 길이 다르지요. 사람마다 원하는 것도 다 다르고요. 그러나 절집에서는 공양간에서 일을 하든, 수행을 하든, 포교를 하든 오로지 견성(見性)이라는 한길 위에 있습니다. 방황조차도 하나의 길 위에 있는 셈이지요.”
영화감독의 눈에 비친 비구니 스님들의 일상은 그 자체가 수행이었던 것이다. 영화에 이어 책을 펴낸 이창재 감독은 첫 장에서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가는 당신과 마음의 평화와 위안을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적었다. 삶의 과정에서 어려움으로 마음고생을 하는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주기 위해 영화에 이어 책을 펴낸 것이다.
정목스님은 ‘추천의 글’을 통해 “영화 <길 위에서>는 스크린이 열리는 순간 침묵의 커다란 울림으로 말보다 더 강력한 감동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면서 “영화로 못 다한 이야기들이 책으로 엮어져 참으로 반갑고 고마울 뿐”이라고 일독을 권했다.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소박하고 단아한 백흥암 이야기가 담긴 책 <길 위에서>를 읽으며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좋았다”면서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권한다”고 추천의 글을 썼다.
■ 이창재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며, 중앙대 영상대학원 교수이다. 영화를 제작하며 영화를 가르치고 있다. 한양대 법대를 졸업하고, 신문사, 광고기획사, 다큐멘터리 방송채널 등에서 근무하다 미국 시카고 예술학교(School of Institute of Chicago)에서 영화를 전공했다. 2003년 졸업 작품인 <EDIT>가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선정한 ‘세계 30대 다큐멘터리전’에, 2006년의 연출작 <사이에서>는 전주국제영화제, 그리스 테살로니카에 초청되어 개봉 당시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최대 관객을 동원해 주목을 받았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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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길 위에서’의 보이는 비구니 스님들의 생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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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흥암은 작은 사찰이지만 참 예뻐요. 불 없는 달밤에, 보름달빛이 기와지붕에 스르르 내려앉을 때 보면 정말 아름답지요. 지붕의 그림자도 길게 드리워지면서 아주 아름다운 밤이 됩니다. 계절마다 변하는 자연의 모습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우리는 희망을 잃지 않고 도를 찾아서 이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거지요.” 백흥암 선원장 영운스님
“이번 철에는 정말 밥값을 했나? 많은 스님들이 ‘정말 내가 밥값을 했나’하고 생각해요. 사실 아무 것도 안하고 90일 동안 선방에 앉아만 있었잖아요. 수행하는 동안 밥은 누가 주는 거며 빨래는 누가 해주는 겁니까? 죽어서 염라대왕 앞에 섰을 때 그 값을 내놓으라고 하면 뭐로 내놓을 것이냐고요. 그러니까 그 밥값을 해결하려면 수행을 안할 수가 없지요. 정말 무서운 밥값이거든요.” 백흥암 선원장 영운스님
“‘화엄의 바다’라는 말이 있어요. 바다는 깨끗하고 넓은 물줄기라고 받아들이고 더럽고 좁은 물줄기라고 받아들이지 않고 그렇게 하지 않잖아요. 더러운 도랑물도, 시궁창 물도, 큰 강물도, 맑은 계곡물도 다 받아들이는 게 부처님의 화엄의 바다죠.” 백흥암 주지 소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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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를 익히는 것은 곧 자기를 배우는 것이라고 한다. 자기를 배운다는 것은 자기를 잊어버리는 일이라고도 한다. 자기를 잊어버릴 때 모든 것이 비로소 자기 자신이 된다고 한다. 내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시기, 행자 시절은 그렇게 자신의 모습을 조금씩 지워내는 첫 발걸음 같은 시기이다.” 이창재 감독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먹어라. 봄에서 한여름 가을까지 그 여러 날 비바람 땡볕으로 익어온 살 아닌가. 그렇게 허겁지겁 삼켜버리면 어느 틈에 고마운 마음이 들겠느냐. 사람이 고마움을 모르면 그게 사람이 아닌 거여.” 보성 대원사 공양간 글귀
“수행이라는 건 자기 안을 비워내는 공부예요. 바깥세상에서는 무언가를 채우는 공부를 하지만 스님들은 자꾸 비워내는 공부를 하기 때문에 단순해요. 그리고 한 가지에 집중하죠. 말하는 순간에도 화두가 한결같은지, 대상을 대할 때도 한결같은지, 대상에 따라서 내가 무엇을 하든지 간에 화두가 한결같은지 그걸 계속 바라보고 정진하는 거예요.” 백흥암 선원에서 산철결제를 마친 한 스님
“일관된 삶이란 게 어떤 것일까? 우리는 많은 목표를 가지고 때론 많은 이유를 가지고 삶의 길에 선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일관된 길이라 할 수 있을까? 물리적인 시간의 길 외에 우리의 정신의 길이 과연 있을까? 그때그때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진정 어디로 향해 가는 것일까? 삶을 통째로 꿰뚫는 일관된 목표가 있을까?” 이창재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