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 80학번들의 동기 이야기
80학번은 구보회(74) 선배님이 주장이실 때 역도부로 스카우트되어 김성근(73) 선배님의 지도하에 1학년을 시작했다. 우리 ‘80학번은 1학년 때 당시 정치 시국상황으로 정상적인 대학생활을 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역도부원으로 깊이 뿌리내리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잠시 돌아보면 80년 3월 2일 입학식 후 신입생으로 캠퍼스의 낭만을 막 누리다가 바로 5.18 광주민주화 운동이 일어났고 당시 전두환 정권의 비상계엄으로 8월 말까지 휴교령을 맞게 되었다. 또한 가을 개학과 더불어 한달 만에 데모로 인하여 고려대 휴교 조치를 당하였다. 11월 경 학교가 다시 열리고 얼마 안되어 바로 열흘간의 문무대 입소 훈련을 받게되었다. 1980년은 고려대학교 문이 열린 기간이 총 5개월 여 밖에 되지 않았다. 당시의 계엄령 시국 및 휴교 중에는 5인 이상 술집이든 어디든 모이면 검거되는 살벌한 분위기였다.
그러나 비정상적인 시국상황으로 데모와 휴교, 검거, 문무대 입소 등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선배님들의 각별한 후배사랑으로 역대 선배님들이 거치신 길을 열어주셨다. 신입생 환영절차 (다들 아시지요? 10대였는지 20대였는지 아물아물..), 학생회관 2층 교수식당에서 밴드 및 티켓판매로 동원(?)된 여학생들이 넘치는 환영회, 5월 축제기간 중의 기도 및 장사(?), 민주화 요구 고대에서 시청, 서울역까지의 민주화 행진의 선두에 선 역도부, 비상계엄 중에 강행된 밴드를 대동한 대천합숙, 12월 문무대 입소 후에도 민주화 요구 데모의 앞열에 역도부가 있었다.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그나마 역도부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도 열심히 운동하였고, 힘의 미전을 준비하였으나 아쉽게도 80년 1학년 때는 2학기 휴교령으로 무산되었다.
80년 입부한 역도부원은 어려운 환경에도 대부분 낙오없이 지금도 부부동반으로 모이고 있다. 우리 동기생들을 소개하면 금융 consultant 하고있는 강성호(경제), IBM 근무 후 스위스 공기청정기 사업 (컨텍이사)을 하고 있는 김종필(전자), 대호상사 부장 김호(화공/법학), 한결같은 교육자의 길을 걷고있는 성남고교 지질학 교사 김흥배(지리), 역시 스승의 길을 가고 있는 수원고교 교사 박영재(체교), 20년을 한결같이 한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한라산업 폐기물사업부장 백익현(재료), LG건설에서 오래 일하고 최근 사업구상 중인 손준열(토목), 신도리코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여 푸르덴셜에서 MDRT 등 최고의 생명보험 전문가로 10여년 째 일하고 있는 안장호(기계), 역시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윤승호(영문), 기아자동차에서 배우고 익힌 자동차 기술로 사업에 접목하여 승승장구하고 있는 이승재(기계), 생명보험업계의 새로운 Business Model을 접목하여 탄탄히 사업자리매김하고 있는 이창언(수학), 파주군청 소속되어 태능선수촌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 김기웅(체교), 미국에서 탄탄한 사업을 자리메김한 김준열, 아쉽게 연락이 되고 있지 않는 김길선, 백기창 등이다
역도부원이면 누구나 많은 회상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인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하며 80동기 소개를 마칠까 한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지만 당시에는 고려대학교에 여학생이 귀할 때다. 문과대학 어문계열에 조금, 사범대학에 조금, 그외 법대, 경영대, 공대, 농대, 이과대 등은 여학생이 거의 전무하였다. 당시 월요일 집합이 끝나면 단체운동을 하곤 하였는데 그때는 꼭 빤스(팬티) 차림으로 박물관과 역도부실 사이에서 강도높은 운동을 하였다. 그리고 끝나면 참 좋겠는데 꼭 운동장을 맨 발로 맨 빤스차림으로 돌게 하였다. 그런데 당시 문과대 마지막 강의가 끝나고 서관에서 내려오는 한 무리의 동기 여학생들과 자주 마주치곤 하였다. 다른 동기들은 여학생이 거의 없는 정경대, 법대, 이공대, 농대 등이어서 관계없었겠지만 유일한 문과대생인 나는 어린 나이에 얼굴이 빨게질 수 밖에 없었다. 꼭 그 다음 날 수업시간에는 나만 보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돌아보면 웃음이 나곤 한다. 그 때 빤스는 요즘같이 멋진 것이 아닌 광목에 고무줄로 된 것이었고 자주 갈아입지 않던 것이어서… (이하 생략)
단 한번 뿐인 인생의 앳띤 20대를 불굴의 역도부에서 자란 우리 역우들이 모두 그렇듯이 참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감사하다. 후배들도 쉬운 길 보단 어렵지만 자기를 단련하고 나를 위한 것이 아닌 세상을 위한 삶의 길을 가기바란다
우리 80 동기들은 아쉽게도 역도부 주장을 내지 못한 기수다. 대신 79, 81에서 각각 두분이 주장의 역할을 해 주어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돌아보면 당시의 역도부 생활이 힘들고 도망가고 싶은 시기도 많았고 고민도 많이 했지만 호랑이 소굴에서 멋진 동기생들과 강인하게 성장할 수 있어 선배님들께 참 감사하다. 건강한 힘과 건강한 정신, 불굴의 역도부원이었던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글쓴이 : 80 윤승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