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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 문화마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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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정 포항시 기북면 오덕리에는 임진왜란(1592) 당시 북평사를 지낸 농포 정문부 선생의 별장으로 조선 명종 원년(1546)년에 건립하였고 숙종 12년(1686)에 증축한 용계정이 있다. 계곡의 물과 바위와 어우러진 주변 풍광이 아름다운 용계정은 건물 뒤쪽에는 서원터였던 세덕사지가 있는데 정조 이후에는 세덕사의 부속건물인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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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정에서 바라본 계곡앞쪽 소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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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정에서 내려다본 계곡 용계정의 건물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팔작지붕의 5량집이다. 방 4칸, 마루 6칸으로 된 누각으로 방위에는 다락이 지붕과 이어져 있으며 마루 끝에는 난간을 달았고 부연과 난간 천장마루의 기법이 훌륭하다. 조선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졌을 때 이곳 세덕사도 철폐대상이 되었는데 세덕사의 부속강당으로 쓰이던 용계정을 세덕사와 분리시키기 위해 그 사이를 밤새도록 담을 쌓아 세덕사만 철폐되고 이곳 용계정을 화를 면하였다고 한다.
여름에는 시원한 물이 내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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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계정 뒤쪽 세덕사지의 노거수 용계정 부속건물로는 포사가 있으면 수백년전 은행나무, 향나무, 백일홍 등이 용계정을 둘러싸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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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덕사지 비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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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리 마을 회관인 오덕관
이 마을에는 고장의 유물들을 모아놓은 전시실이 있다.(위는 덕동 유물 전시실 모습) 이곳에서 철폐된 서원 세덕사의 현판을 볼 수 있다. 오덕관에서 볼 수 있는 자료 중 아래의 사진은 조선시대의 호적단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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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간격으로 호적이 정리되어 있어서 조선시대에는 3년마다 호적을 재 작성했음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호적에는 노비들까지도 모두 등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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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곳의 전시물 중에 눈길을 끄는 것 중의 하나가 옛 용광로이다. 화분으로 쓰기 위해 바닥에 누군가 구멍을 만들어 놓은걸 수집해 전시하고 있는데 원래 이 고장은 예전에 전시에는 무기를 평시에는 농기구 등을 생산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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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호수를 끼고 있는 야철지 일대의 모습이다. 기북면 성법리에는 철광석을 캐던 야철지가 있었다 하나 지금은 사과밭 등으로 변해 흔적을 찾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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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동 애은당고택은 조선선조시 吉州목사를 지내고 左贊成에 추증된 農圃 鄭文莩(1565~1625)선생이 식솔들의 피난처로 사용하다가 임진왜란후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손서인 四宜堂 이강(1621~1688)에게 양여하였다. 숙종 21년(1695) 이강의 7남매중 4남인 이덕소의 살림집이었는데 현 소유자의 5대조인 在伋 公이 매입하여 愛隱堂이라 하였다 . 이 집은 역 기역자의 안채와 사랑채 및 고방채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안채의 좌측에 방앗간채와 우측의 별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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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동 이원돌 가옥도 농포 정문부가 이곳에서 임진왜란을 피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그의 손서인 이강에게 양여하고 이강의 다시 그의 차남 덕령에게 물려준 집이다. 이 가옥은 정면 4칸, 측면 6칸의 "ㅁ"자 집으로 그 당시의 생활상을 잘 나차내고 있는 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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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덕동 사우정 고택은 정문부 선생의 조부이신 정언각공께서 청송부사로 재직시 이곳이 길지라 하여 자리잡아 건축하였다고 한다. 이 집 역시 정문부의 손서인 사의당 이강에게 양여되어 3남인 이덕삼이 살림집으로 물려 받았다. 그후 손자인 이헌순 공이 그의 호를 따라 사우정이라 했다. |
환경친화마을로 지정된 덕동마을은 저수지를 활용하여 생활하수를 유입시켜 자연수질정화기법으로 수질을 개선함과 동시에 비오톱(Biotop;비교적 밀도가 높은 생태계가 존재하고 정리된 경관을 가진 장소)을 조성하여 소생물들의 생활사에 관한 자연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