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페이에서 시내버스타고 양밍산, 예류, 담수이 다녀오기
오늘은 조금 서둘러 숙소 근처에 있는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갑니다. 잠시 기다리니 타이페이역에서 출발한 260번 시내버스가 도착하여 15위엔(600원)을 지불하고 올라 탑니다. 타이완의 신형 시내버스는 크고 실내가 높아 매우 쾌적합니다. 의자도 무척 안락하지요. 버스는 30여분을 달려 시내를 빠져나와 산길로 접어 듭니다. 발아래로 대도시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숨가쁘게 20여분을 올라 종점에 도착합니다. 여기서는 추가요금으로 15위엔을 더 내야 합니다. 양밍산(양명산)국가공원은 해발 1,191m로 산세가 높고 광활하며, 자연공원, 온천 등이 여러곳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 인기가 많지요. 20여분 산을 돌아 공원에 이르니 울울창창 고목과 수풀이 빽빽하게 우거져 완전 열대밀림 수준입니다. 풍광을 구경하며 한바퀴 돌아 나오는데 목덜미와 발목에 송충이 같은 벌레가 달라 붙어 통증이 오네요. 늘 가지고 다니는 항생제연고를 바르고 나서야 좀 나아집니다.
공원을 돌아나와 타이페이에서 양밍산을 거쳐 진산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1시간여 산길을 내려옵니다. 내려오는 내내 어찌나 길이 험하고 위험한지 버스는 속도를 제대로 내지를 못하네요. 여유있게 즐기며 드라이브하는 코스로는 좋을 것 같습니다. 진산의 로칼식당에서 맛도 없는 비싼 식사를 마치고 예류로 향합니다. 예류는 풍경특정구로 지정되어 있는데 파도와 바람으로 침식된 기암들이 늘어선 해안입니다. 여러가지 형태의 암석들이 있으며, 그중에서 클레오파트라를 닮은 여인상이 가장 인기가 높지요. 이 앞에서 기념사진 한장 남길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합니다. 강렬한 햇살때문에 살이 익어가는 듯하여 안전요원에게 인증사진 한방 부탁하고 서둘러 빠져 나옵니다. 지난번에 갔을 때는 비바람치는 해변에서 관광온 중국 젊은 처자가 미끌어져 바다로 쓸려간 사고가 발생하여 커플인 듯한 사내가 울부짓는 모습을 보았었지요. 지금은 곳곳에 안전요원을 배치하여 사고예방을 하고 있습니다.
국내외 관광객들로 북적거리는 예류를 벗어나 해안도로를 경유하는 담수이행 버스에 오름니다. 1시간 넘게 달리는 동안에 맑고 푸른 바다를 듬뿍 만끽할 수 있지요. 버스는 어느새 담수이역 앞에 도착하고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해안 산책로로 접어드니 행락객들이 벌써 좋은 자리는 다 차지하고 있네요. 해넘이 구경을 마치고 아쉬운 발길을 돌려 담수이역으로 향합니다. 이곳은 서울에서 인천가는 거리에 비해 약간 짧은 구간이면서 주변 경관이 무척 아름다워 타이페이 시민들이 저녁나절에 잠시 휴식차 들려가는 곳입니다. 멋진 자연환경과 더불어 주거환경도 좋아 한번쯤 살고 싶은 동네이지요.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 체크아웃을 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시내 한복판에 있는 중정기념당으로 갑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관광버스 몇대가 사람들을 풀어 놓았네요. 허지만 내려쬐는 따가운 햇살 때문에 감히 광장으로 나서질 못하고 그늘에 모여 있지요. 광장 한바퀴를 돌아 지하철 입구로 다시 돌아오니 온몸이 땀으로 범벅입니다. 지하철, 지상철을 두번 갈아타고 쑹산공항역에 도착하여 대만산 짝퉁 김치라면과 삼각김밥으로 점심을 대충 때우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름니다.
첫댓글 타이페이 조그만 섬으로 생각하기엔 볼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짝퉁 라면이라니? 우리말도 있네요.
한글이 세계어가 되는 날을 보고 죽어야 할텐데......
타이완은 작은 섬나라이지만 산세가 수려하고 사회 기반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여행하기가 편해서 좋습니다.
이번 여름방학 기간에 한번 다녀오시기 바랍니다. 한국라면이 인기가 좋아서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비슷한 라면을 팔고 있으며, 이번 쑹산공항 편의점에서 사먹은 라면은 현지에서 생산한 것인데 맛은 우리라면과 많이 다르지요.
바빠서 못 들어온 사이 벌써 대만에 다녀왔네요. 저는 31년 전에 가 봤는데 많이 변했겠죠? 당시 인상적이었던 것은 고궁 박물관이었습니다. 장개석이 대륙에서 도망 나올 때 가져온 보물들을 전시한 곳입니다. 되놈들 역사가 만만치 않다는 걸 그곳에서 느꼈어요. 신기했던 건 쌀알에 불경을 새겨넣은 것이었는데 큰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 작은 것도 잘 다루는 걸 보면서 그들의 문화에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장소가 비좁아 흠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