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양은 제가 사회생활로 첫발을 내딛으며 인연을 맺은 곳입니다. 그리고 결혼을 하면서 본격적으로 가정을 꾸리고 이곳에 정착을 하게 되었지요. 이제 만 10년이 넘었네요.
하지만 이곳 안양에 살면서도 의외로 가본 곳이 별로 없었습니다. 멀리 있는 여행지는 시간을 내서라도 찾아다녔는데 가까이 있다고 무시하고 있었나 봅니다. 하지만 제 주위부터 확실하게 살펴보자는 생각에 요즘 시간 날 때마다 근처를 돌아다녔습니다. 참 볼 것 많은 곳이 이곳 안양이더군요.
자! 추운 겨울이 지나 날씨가 조금 따뜻해지면 아이들과 한번 안양으로 오세요. 이제부터 제가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이들과 대중교통으로 다니면 많이 걸어야 하고 그에 따라 시간도 많이 걸리니까 차를 가지고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우선 안양 8경중 제5경인 '최경환 수리산 성지'부터 가보겠습니다. 최경환(1805~1839) 성인은 우리나라 두 번째 한국인 사제인 최양업(토마스 1821~1861)의 아버지입니다. 그는 부인 이성례(마리아 1800~1840)와 이곳 담배촌에 정착하여 교우촌을 이루고 천주신앙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1839년 천주교를 탄압하던 기해박해가 일어나자, 한양을 오가며 순교자들의 유해를 거두어 안장하고, 불안해하는 교우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와 그의 가족은 그해 7월31일 서울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잡히고 맙니다. 그리곤 고문을 받았겠지요. 천주교를 버리라고 곤장도 맞았을 겁니다. 그래도 그는 뜻을 버리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자신의 신념을 지켰습니다. 그의 나이 35세, 1839년 9월 12일 옥에서 그렇게 순교했습니다.
이곳 수리산 성지는, 예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사형을 선고받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모습을 단계별로 형상화 하여 순례자들이 그 단계마다 묵상을 하며 예수의 십자가 길을 함께 걷도록 만들어져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을 보며 올라가면 마침내 최경환 성인의 가묘가 나옵니다. 이곳은 2000년에 순례지로 지정되면서 새롭게 문을 연 성지입니다.
| | ▲ 최경환 수리산 성지, 안양 8경중 제5경 | | ⓒ2005 방상철 | | 찾아가는 길은 전철 1호선 안양역을 기준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이 안양역을 등지고 서면 삼거리가 형성됩니다. 이 길이 명학역에서 안양역을 지나 관악역으로 이어지는 만안로(萬安路)입니다. 안양역 중앙에 로터리를 지나 계속 직진하여 올라가면 병목안, 수리산입니다. 안양예술고를 지나 더 올라가면 최경한 수리산 성지 이정표가 보이는데, 그 이정표에는 직진방향 2km라고만 적혀 있어 처음 가는 사람은 혼동할 수 있습니다.
삼거리 마트를 정면에 두고 좌회전해야 하는데 이 표시가 없으니 유의하세요. 여기서 10분 정도만 올라가면 성지성당이 나오고 바로 위가 수리산 성지입니다. 차는 성당 근처에 잠시 세워두시고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 됩니다.
다음에 갈 곳은 병목안 돌탑입니다. 이곳은 안양 8경중 제7경으로 병의 목을 형상화하여 1990년 5월 27일에 삼림욕장 준공과 함께 만들어진 돌탑입니다. 5만5700개의 주변 자연석을 모아 높이 7미터, 폭 3미터, 무게 84톤의 어마어마한 탑을 만들어 놓아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좋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 | ▲ 병목안 돌탑, 안양 8경중 제7경 | | ⓒ2005 방상철 | | 수리산 성지에서 다시 차를 돌려 밑으로 내려오면 오른쪽으로 삼림욕장 입구가 보입니다. 개천에 놓인 다리를 건너 약간 비탈진 길을 오르면 조그만 주차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돌탑이 나타납니다.
탑 앞 벤치에 잠시 앉아 숨을 고르고 이제 만안교를 찾아 떠나보겠습니다. 만안교는 안양 8경중 제4경입니다.
수리산에서 안양역 방향으로 다시 내려옵니다. 그러면 제일 큰 도로를 만나게 됩니다. (이 길이 노선버스들이 많이 다니는 길로 왕복8차로입니다.) 좌측 전방에 JEFE쇼핑몰(구 본 백화점)이 보이면 좌회전하세요. (여기서 그냥 직진하면 안양역입니다.) 그리고 서울 방향으로 계속 올라갑니다. 안양대교를 건너 관악역 이정표가 보이면 우회전 하세요.
그러면 정면에 관악역이 보이고 만안로를 만나게 됩니다. 앞으론 철로가 막혀 있어 길이 없습니다. 여기서 우회전하여 다시 안양역 방향으로 내려가다가 석수교회 가기 전에 있는 삼막교에서 골목으로 우회전하여 삼막천을 따라가다 보면 만안교가 보입니다.
| | ▲ 만안교, 안양 8경중 제4경 | | ⓒ2005 방상철 | | 이제 직접 다리를 건너봅시다. 다리 위는 상당히 넓은 편입니다. 8미터의 폭과 31.2미터의 길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이 만안교는 현재 안양을 대표하는 문화재 중 하나로 조선 후기의 교량축조 기술을 볼 수 있는 홍예석교(다리의 수문 윗부분이 무지개처럼 반쯤 둥근 돌다리)로 7개의 홍예수문과 그 위에 화강암판석(花崗岩板石)과 장대석(長臺石)을 깔아 축조한 것이랍니다.
1795년, 처음 이 다리가 만들어질 때는 지금의 안양유원지로 올라가는 교차로에서 삼성산 쪽으로 약 20미터 지점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1980년, 국도확장으로 인해 지금의 삼막천으로 옮겨온 것입니다.
만안교를 건너가면 '만안교비'가 보입니다. 비문은 경기도 관찰사 서유방(徐有坊)이 글을 짓고 조윤형(曺允亨)이 썼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비는 귀부와 비신(비문을 새긴 비석의 몸체), 가첨석(지붕돌)을 갖춘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석비 양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비신 앞쪽은 '만안교'라고 음각되어 있고, 붉은 색이 칠해져 있습니다. 뒤쪽에는 만안교의 공적과 관련된 내용이 각인돼 있습니다. 이 교량을 만들어 백성들이 만년 동안 편안하게 건너게 된 것을 기린다는 뜻의 '만안교' 이름을 정조(正祖, 1776∼1800 재위)가 직접 지었다는 내용이 만안교비(萬安橋碑)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제 차를 돌려 안양8경중 제6경인 안양유원지로 가보겠습니다. 이곳은 삼성천 계곡의 울창한 숲 속 사이로 등산로가 여럿 있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전통사찰인 안양사, 염불암 과 함께 유물로는 보물 제 4호인 중초사지당간지주와 3층 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제 164호), 석수동 마애종(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92호), 안양사 귀부(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 93호)등도 볼 수 있어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소중한 공간입니다.
우선 만안교에서 차를 돌려 안양역 방향으로 가다보면 만나는 첫 사거리에서 이정표를 보고 좌회전합니다. 그 길로 쭉 올라가면 안양유원지입니다. 맨 처음 볼 수 있는 유물은 (주)유유 안에 있는 중초사지당간지주와 3층 석탑입니다. 이정표를 보고 유유길로 들어가 회사 근처에 차를 세우고 정문으로 들어가면 됩니다.
| | ▲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와 중초사지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164호) | | ⓒ2005 방상철 | | 이 '중초사지당간지주'는 높이 3.73m이며, 명문(글로 명백히 기록된 문구)이 새겨져 있어서 만들어진 연대(신라 흥덕왕 826년에 채석하여 그 이듬해인 827년에 완성)를 알 수 있는 국내 유일한 당간지주랍니다. 그래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고 하네요. 현재는 남아 있지 않지만 중초사지 당간지주 아래쪽에는 직사각형의 돌 받침이 있었는데, 그 중앙에 지름 34㎝의 구멍을 파서 당간을 받쳤다고 합니다.
동서로 마주보고 서 있는 지주 사이의 간격은 60㎝이며 당간을 고정시키는 구멍(간구; 竿溝)이 위아래에 나란히 2쌍 있고요, 당간지주의 위쪽을 보면,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깎았으며 위쪽 구멍 아래에 1단의 턱이 있습니다.
다음은 바로 옆에 서있는 중초사지 삼층석탑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탑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안내문에 따르면 이 석탑은 높이 2.2미터의 고려 시대 일반 형 석탑으로 본래 이 탑은 중초사지당간지주(보물 제4호, 827년)에서 동북쪽으로 약 80미터 되는 밭 가운데에서 도굴되어 훼손되었던 것인데, 그곳에 공장이 건설됨에 따라 1960년, 현재의 자리에 옮겼다고 적혀 있습니다. 탑신부의 2,3층 탑 몸돌과 상륜부는 찾지 못한 채 복원되었으며, 기단 면석 가운데 한 면이 없어 새로 보강하였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물들과 함께 볼 수 있는 우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도 한번 살펴보세요. 이 우물은 <오마이뉴스> 최병렬 기자님의 도움으로 안양시 문화예술계에 문의한 결과, 중초사지 당간지주 옆의 우물은 내부 돌쌓기에 있어 시멘트와 돌을 함께 축조한 것으로 보아 일제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문가들의 실사 결과 밝혀졌다고 합니다. 절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중초사지 옆에 우물을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제 마애종을 보러 가보겠습니다. 이곳에서 그냥 걸어가도 되고 차를 공영주차장 안에 세워도 됩니다. 그 주차장 뒤쪽으로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바로 마애종을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 | ▲ 마애종,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 | | ⓒ2005 방상철 | | 마애종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2호입니다. 마애종이란 암벽에 새긴 종이란 뜻으로 석수동 마애종은 승려가 종을 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한 것입니다. 자연 암각에 조각되어 있는 이 종은 비바람에 심하게 마멸되었으나 그 형상은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종은 건물의 대들보에 쇠사슬로 연결되어 있고 그 왼쪽에는 승려가 긴 막대를 사용하여 종을 치고 있습니다.
이 마애종은 전형적인 한국 종을 묘사하고 있다는데, 소리의 울림을 돕는 음통과 종을 거는 고리인 용뉴가 비교적 정교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종의 상단 표면에는 상대와 유곽이 있고요, 종의 중간 부분에는 연꽃문양과 당좌가 새겨져 있습니다. 하대는 선명하지 못한 문양을 새기고 있으나 전체적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안정감이 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현존하는 마애종으로는 유일한 것으로 종의 세부표현이 청동종과 다를 바 없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합니다.
마애종을 살펴봤다면 다음엔 전통사찰인 안양사에 올라 귀부를 보러 가보겠습니다. 차를 타고 간다면 마애종 앞길로 올라가면 됩니다. 걸어가면 약 10분 정도 걸립니다만, 굳이 차를 가져간다면 안양사 앞에 좁은 주차장이 있으므로 그곳에 세우면 됩니다.
안양사는 전통사찰 제10호로, 경기도 안양(安養)이란 지명의 명칭이 고려 태조 왕건에 의해 창건된 안양사(安養寺)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이 사찰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정작 지금의 건물들은 대부분 근세에 들어 다시 조성한 것이랍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요. 이러한 이 절의 역사를 증명하는 자료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팔각원당(八角圓堂)의 부도(浮屠)와 귀부(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가 남아 있다는 사실은 그나마 다행한 일입니다.
| | ▲ 안양사 귀부,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3호 | | ⓒ2005 방상철 | | 귀부를 보기 위해서 요사채 마당을 지나 대웅전 앞으로 갑니다. 이 귀부의 얼굴에는 눈, 코, 입이 표현되어 있으며 목에는 비늘모양의 딱딱한 껍데기가 묘사되어 있고 주변에는 갈기가 표현되어 있습니다. 또 등에는 육각형의 거북등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귀부의 중앙에는 비신을 꼽기 위해 장방형으로 홈을 판 자리(비좌,碑座)가 보이고, 그 홈의 옆면에는 구름무늬가, 윗면에는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습니다. 귀부의 머리를 용으로 표현한 것과 거북등무늬, 연꽃무늬를 보아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 귀부의 옆에는 부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부도도 고려시대 유물도 추정되지만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현재 탑신과 기단중석은 없으며 하대석은 높은 2단의 8각 지대석으로 복련(覆蓮)을 장식하였고 상대석은 앙련(仰蓮)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이제 다시 염불암으로 가보기로 하겠습니다. 안양사에서 내려와 안양유원지 입구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삼성3교' 다리를 건너(좌측에 안양 블루몬테 호텔이 보입니다.) 도로를 따라 계속 올라가다 '금수식당 별관'을 지나면 바로 왼쪽으로 골목길이 나타납니다. (염불암, 이정표 없음) 이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염불암입니다. (넓은 주차장이 있습니다.)
염불암은 가파른 암벽에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명소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말사입니다. 이 절의 창건에 대해서는 두 가지가 전해오는데 하나는 고려 태조가 창건하였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원효, 의상, 윤필 등의 세 성인이 창건하였다는 것입니다.
| | ▲ 염불암 대웅전과 보리수나무(도 지정 보호수) | | ⓒ2005 방상철 | | 절의 대웅전 앞에는 500~600년 된 보리수나무가 있는데 당대에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 거사의 고승들이 은거하여 토굴에서 염불을 올리던 유서 깊은 곳으로 고려 말, 14세기경 수도하던 스님이 식계 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답니다.
이제 안양사와 염불암을 둘러봤으니 삼막사도 봐야지요. 삼막사는 이곳 염불암에서 30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합니다. 지금까지 차를 타고 조금씩 걸었으니 이제 한번 제대로 산길을 타볼까요? 아이들이 있어서 힘들다고요. 그럼 저를 따라 오세요. 산길이 아닌 아스팔트길로 올라가는 길을 알려드리지요.
안양유원지를 완전히 빠져나와 1번 국도를 타고 서울 방면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삼막사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제2 경인 고속도로가 시작되는 부분에서 삼막사로 가는 길이 나타납니다. 그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천천히 걸어서 삼막사까지 올라가보겠습니다. 이 길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고 미리 포기하지 마시고 한번 올라봅시다.
이 절은 지금으로부터 1300여 년 전인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원효와 의상, 그리고 윤필 3명의 성인이 막을 치고 수도를 하여 창건하였다는 일화가 있고, 그 뒤 9~10세기경에 도선 국사가 머물면서 절을 더욱 굳건히 다졌다고 합니다. 삼막사가 있는 삼성산(455m)의 이름도 이 절에서 유례하였다고 합니다.
이 사찰에서 볼 것은 참 많습니다. 우선 지난 1990년 신축된 6명의 부처를 모신 육관음전(六觀音殿)이 있습니다. 이 육관음전이 이 삼막사의 주 법당입니다. 육관음전에 봉안된 육관음상은 다른 사찰에서는 잘 보기 어려운 존상입니다.
| | ▲ 삼막사 명부전,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 | | ⓒ2005 방상철 | | 그 다음엔 명부전(경기도 문화재자료 제60호)이 있습니다. 이 건물은 조선 고종 17년(1880)에 건립되었고 1975년 중수(重修, 건축물 따위의 낡고 헌 것을 손질하며 고침) 되었습니다. 이곳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해주는 지장보살을 위시하여 명부(사람이 죽은 뒤에 심판을 받는 곳)의 10대 왕을 모신 곳으로 이들 명부의 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왕전이라고도 한다는군요.
그리고 삼층석탑(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112호)은 사찰내부 뒤쪽 언덕에 있답니다. 현재 삼막사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로 나무에 가려 쉽게 보이지 않습니다. 삼귀자 석각은 월암당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가면 있습니다. 이곳은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인 지운영이 이곳에 머물 때 꿈에 관음보살을 본 뒤 새긴 석각이랍니다. 이 삼귀자 석각을 지나면 마애삼존불(경기도 유형 문화재 제94호)이 모셔진 칠보전이 있습니다. 마애불은 조선시대 후기에서는 그다지 흔하게 조성되지 않았으므로, 당시 마애불상의 좋은 자료가 된답니다. 그리고 이 칠보전 앞에 안양 8경중 제2경인 남녀근석(민속자료 제3호)이 있습니다.
삼막사에는 정말 볼 것이 많지요? 그럼 이제 다시 절을 내려와 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안양 8경중 제 1경인 망해암 일물을 보러 갈 차례입니다. 물론 시간이 잘 맞아야겠지요.
1번 국도를 타고 다시 수원 방면으로 내려가면 좌측으로 대림대학교를 지나게 됩니다. 그러면 지하차도가 나타나는데 그리로 들어가지 말고 지하차도 위로 유턴하여 돌아옵니다. 주유소를 지나면서 망해암 이정표가 나타납니다. 길이 여러 갈래이지만 계속 위쪽으로 올라오면 다 만나게 됩니다. 아파트 숲을 지나 삼거리에서 이정표를 보고 왼쪽으로 들어가면 좁은 포장길이 나타납니다. 이 길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망해암입니다. 절까지 차가 올라갑니다. 그러면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일몰 전망대로 향하면 되지요. 참! 우선 사찰도 둘러봐야겠지요?
이곳 망해암은 봉은사말사지에 신라 때 원효 대사가 창건했고 조선 영조 때 신경준이 지은 가람고에도 기록이 되어있는 유서 깊은 사찰이라고 합니다.
망해암에 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세종임금 때 남쪽지방에서 조세로 받은 양곡을 실은 여러 척의 배가 인천 팔미도 근처에 왔는데 갑자기 거센 풍랑을 만나 위기에 처했답니다. 그때 갑자기 나타난 스님 한 분의 덕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합니다. 뱃사공들이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라고 묻자 '관악산 망해암에 있소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배가 무사히 육지에 닿자 그 뱃사공들 중 몇 명이 바로 망해암을 찾았지만, 그 스님은 없고 대신 스님을 닮은 부처가 모셔져 있음을 보고 부처의 자비로 자신들이 살았다며 그 사실을 임금님께 알렸습니다. 세종대왕은 이를 가상히 여겨 매년 한 섬의 공양미를 이 망해암 불전에 올리도록 분부했는데, 그 공양미가 그 후 400년간이나 계속 되었답니다.
| | ▲ 망해암 일몰, 안양 8경중 제1경 | | ⓒ2005 방상철 | | 안양에서 선정한 일몰이 멋진 곳에서 붉게 불든 노을을 보셨으면 이제 안양 시내로 내려가 보겠습니다. 안양의 또 다른 명물, 안양 제8경의 마지막인 '안양 1번가'입니다. 젊은 사람들의 명소로 조금 시끄럽겠지만 한번쯤 찾아볼 만합니다. 먹을거리, 놀거리 등 쇼핑 천국입니다.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라면 조금 힘들다고요?
그럼 혹시 안양 순대골목을 아십니까? 이곳도 제가 학창 시절에 일부러 멀리서 찾아왔던 곳인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그 당시는 신림동 순대와 비교될 정도로 이름 날리던 곳인데 이번에 한번 찾아가 볼까요? 중앙시장은 안양1번가 건너편에 있습니다.
| | ▲ 저녁 식사로 순대, 곱창볶음은 어떻습니까? | | ⓒ2005 방상철 | | 중앙시장에는 곳곳에 유료 주차장이 마련돼 있습니다. 30분에 500원으로 값도 저렴하지요. 일부 좀 비싼 곳도 있으니 유의하세요.
자! 안양에서 보낸 하루가 어떠셨습니까? 생각보다 볼 것이 많지요?
주저마시고 한번 안양으로 꼭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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