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어도
천태봉
“배에는 엔진이 두 개냐, 세 개냐?”
간혹 육상의 친구들이 이렇게 묻곤 한다. 거친 파도를 헤치고 대양을 건너다니는 배는 엔진이 고장 나서는 안 된다. 그래서 하나가 탈이 나면 다른 것을 돌려서 갈 것이라고 여기는 것 같다. 그들의 의문을 생각하면 우리 선원들과 선주들은 용감한 사람들이다. 배는 대부분이 엔진을 하나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 그 하나의 엔진이 튼튼하고 정교하게 잘 만들어져 있고, 고장 나기 전에 예방 정비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병이 날 수 있듯이 엔진도 언제든지 고장이 날 수 있다. 돌아보면 내가 탔던 배나 관련된 선박들에서 마음 졸였던 일들이 더러 있었다.
좀 오래 전에 같은 회사 동료들이 큰 위기를 극복한 적이 있다. 태평양 가운데서 태풍에 쫓기며 황천 항해를 하던 중 갑자기 엔진이 멈추어 섰다. 고장이 난 현장에 가보니 실린더 윤활유 주유기에 동력 전달이 안 되고 있었고, 살펴보니 감속기어가 파손돼 있었다. 불과 몇 주 전에도 이렇게 깨져서 신품으로 교체한 것이었다. 부품의 재질이 불량하거나 파손의 원인제거가 안 되었던 모양이었다. 예비품은 차항에서 보급 받을 예정이어서 갈아 넣을 것이 없었다. 그 배는 특이하게 4사이클 엔진이었고, 주유기가 각 실린더마다 독립 설치돼 있지 않고, 한 유닛에서 전 실린더로 오일을 보내는 구조였다. 모터와 일체형이었고 한 대만 장착돼 있었다. 예비품이 없으니 깨진 것을 다시 붙여서 쓸 수밖에 없었다. 힘을 많이 받는 부위이고, 정교하고 단단하게 용접하기가 어려운 조건이어서 수리를 해서 조립하여 돌려 보면 다시 깨지거나 비틀려 버렸다.
태풍은 점점 가까워지면서 파도가 높아져서 선체의 요동이 심해져 갔다. 회사에서도 비상대책회의를 열고 있지만, 수만리 먼 바다에서 그렇게 됐으니 잘하기를 기도할 뿐, 어떻게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승무원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고, 그런 그들 앞에서 기관장은 피가 바짝바짝 말랐다. 수차례의 용접수리가 실패로 돌아가고 작업에 임하는 사람들은 지쳐갔다. 용접을 하던 조기장이 일손을 놓고, 고개를 가로 저어며 일어섰다. 조기장의 낙심한 모습을 본 승무원들 사이에 싸늘하게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래도 기관장은 고칠 수 있다고 안심을 시키고, 스스로는 어떻게든 고쳐내야 한다며 결의를 다졌다. 이 때 주유기의 모터를 살펴보던 2기사가 “발전기 스타팅 모터하고 비슷하게 생겼네.”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곁에 있던 1기사가 그 말을 듣고 보니, 그것 보다 갑판 갱웨이 에어모터가 생각났다. 차라리 전기모터를 떼어내 버리고 에어모터를 연결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친 것이다. 에어모터는 에어 유량으로 속도를 조절할 수 있어서 감속 기어가 없어도 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기관장에게 말했더니, 처음에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정색하며 가져와 보라고 했다. 어떤 사람은 어림도 없다며 고개를 내젖고 돌아섰다. 가져와서 현장의 구조를 맞대보고 회전수를 조정해보니, 몇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중에서 동력을 연결하는 커플링의 정렬(Alignment)을 맞추는 것이 관건이었다. 전혀 다른 기기끼리 연결하려니 그게 제대로 안 맞는 것이다. 이리저리 궁리하고 의견을 모아보니 연결 장치를 신축성 있게 만들면 비틀리는 정렬을 보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축이 잘되는 고무로 된 유압호스를 가져와 이중으로 끼워서 강도를 높이고, 비틀림 흡수율을 높이기 위해 길이를 좀 길게 커플링을 만들었다. 그리고 주유기와 에어모터의 동력을 연결하고, 에어모터 놓을 받침대를 만들어 조립을 했다. 태풍이 더욱 가까워져서 사람들이 이리 기울고 저리 쏠리고 하면서 드디어 작업이 끝났다. 에어모터를 돌리고 엔진을 걸어보니, 투박스럽지만 십분, 이십분, 삼십분, 한 시간이 지나도 부서지지 않고 돌아갔다. 불안해하면서도 항진을 지속할 수 있었다.
항해가 안정되자 작업을 마친 조기장이 말했다.
‘죽으라는 법은 없구나!’
그의 말대로 그 무엇이 그들을 어찌 되도록 내버려 두는 것 같지 않았다. 노심초사 주유기 앞에서 당직을 서면서 엔진을 돌렸다. 다음 날, 에어모터가 긴 시간 운전에 견디지 못하고 베인(Vane)이 탈락했다. 반대했던 사람이 안 된다고 했던 자기 말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베인을 갈아 끼웠고, 가다가 또 부셔졌지만 감속기어 보다는 수리가 어렵지 않아서 계속 고쳐가면서 다음 항구까지 갈 수 있었다.
요즘은 선박의 자재들이 질적으로 많이 개선됐고, 기기들의 성능도 크게 향상 되었다. 오늘 날 배들의 기기들이 백화점에 진열된 깔끔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상품들 같다면, 예전에는 고물상의 잡다한 물건들처럼 난삽한 것들이 많았다. 그러한 배들에서는 생각지도 않은 기기 고장들이 종종 났다. 그래도 어떻게든 고쳐서 자력으로 항구까지 돌려서 갔다. 엔진의 한 실린더가 고장이 나면 나머지 실린더만으로 운전을 했다. 어떤 펌프가 고장이 나면 다른 펌프와 연결을 해서 기능을 융통했다. 전기 모터가 고장이 나면 코일을 새로 감아서 다시 만드는 주준으로 수리를 해서 운전하기도 했다. 중동 전쟁터에서 폭탄을 맞아서 부서진 조타기를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기능을 회복시켜 싱가폴까지 자력으로 배를 몰고 와서, 회사를 구했다는 소리를 들은 선배도 있다.
이렇게 난관이 해결되는 경험이 직접 간접 거듭되다 보니, 이런 일에 대해 미신처럼 어떤 믿음 같은 것이 생기기도 한다. 신앙이 있는 사람은 그 대상이 지켜주어서 그렇다고 믿는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도 역시 그 비슷한 믿음이 든단다. 그러한 믿음 덕분일까. 엔진이 고장이 나고 수리를 못해서 애를 태우다가, 출항을 하느냐 못 하느냐는 결정의 시간이 임박해서야 수리가 되어 출항을 할 수 있었던 일도 있다. 검사를 받으려면 시운전을 해보여야 하는 기계가 고장이 나서 선박이 억류될까 조마조마 하다가 검사 직전에 고친 경우도 더러 있다. 기기들이 과연 돌아갈까 싶을 정도로 노후한 배에 배승이 되면, 운항을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그래도 닥치면 해낸다는 믿음으로 승선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고장이 나서 고치기를 계속 하다가 안 돼서 포기하려는 순간이나, 사고로 이어질 것 같은 즈음에 고쳐지곤 한다.
이러한 극복들은 해내겠다는 의지로 최후의 순간까지 노력을 다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간절한 바람이나 강인한 의지에는 확실히 행운도 따른다고 믿어진다. ‘열정이 길을 만든다.’거나, ‘신은 사람에게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준다.’는 등의 세간의 말에도 이러한 믿음을 담고 있다. ‘가고 가고 가다보면 알게 된다.’는 노자의 말은 길이 없어도 더듬고 헤치며 나아가다보면 길이 나타난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런 일은 비단 우리 선원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고, 두루 두루 많은 사람들에게서 일어난다. 특히 굳은 의지와 진취적 기상으로 어렵고 큰일을 많이 해내신 이순신 김구 박정희 김대중 정주영 같은 역사적 위인들에게는 그런 일들이 더 크게 더 많이 일어나서, 개인사를 넘어서 민족이나 나라의 다행이나 행운으로 확대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내가 알고 있는 이상의 큰 가능성이 내 안에 잠재해 있다는 믿음이 더욱 든든해진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말로 드러내기는 조심스러운 면도 있다. 불가항력적으로 극복하지 못한 분들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고, 이와는 반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안전과 사고에 대한 이론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 현장에서 작은 사고들이 모여서 큰 사고로 이어진다는 하인리의 법칙이 그것이다. 이는 ‘방귀가 잦으면 똥싼다’는 우리 속담에 담겨 있는 확률적인 경험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그것에 의하면 나의 이런 생각은 비합리적이며 업무를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고, 벌이고 보자는 무모한 행동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이 사고발생 이론을 우리들의 운항현장 업무과정에 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여기서 나온 위험예방 방책들이 수칙 매뉴얼로 정리되고 체계화돼서 위험상황 가까이 가지 않도록 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반복된 위기들을 잘 극복했다고 고무될 게 아니라, 그런 위기가 오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안전 준비를 잘하고, 안전장치를 이중 삼중 다중으로 확보해 놓고서 실천을 해도 사고는 일어날 수가 있다. 우리 선원들은 육상과 멀리 떨어진 바다에서 귀중한 것을 담보하고 선박을 운항한다. 평소에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만전을 기해고 있다. 그러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는 당황하지 않고, 어떻게든 수습해서 항구까지 배를 몰고 가겠다는 승무원들의 강한 의지 또한 매우 요긴하다. 모세의 기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길이 없어도 나아가고자 하는 강하고 끈질긴 의지 앞에는 길이 펼쳐진다는 전설이 많이 있다. 어쩌면 우리 해기사들이야말로 그 전설들이 실제 이야기라고 믿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