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이 사는 소돔과 고모라는 에덴동산 같은 낙원이었습니다.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더라(창13:10)” 하나님께서 롯에게 소돔을 떠나라 하십니다(창19:12).
에덴동산 같은 소돔을 떠난다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롯의 사위들은 소돔의 멸망 예언을 농담으로 듣습니다.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창19:14)” 롯도 망설입니다(창19:16). 롯 역시 에덴동산 같은 소돔을 떠나는 게 마뜩찮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망설이는 롯 가족의 손을 잡아 ‘성 밖’으로 빼돌립니다(창19:16). 성벽 안에 있어야 안전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견고한 것이라도, ‘보이는 것’은 안전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성 밖’이 오히려 안전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산성이십니다(시94:22).
아직 롯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성벽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을 빠져나와 ‘산’으로 도망하라 하시는데, 롯은 여전히 ‘성읍’을 고집합니다(창19:17~20). 롯의 생각엔 그래도 ‘성벽’이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롯은 아주 현실적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비현실적인 하나님의 미련함을 현실적인 자신의 지혜로 보완할 줄 아는 책임감 강한 가장입니다. 아직 롯은 하나님의 미련함이 사람의 지혜보다 나은 것인 줄 모릅니다.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고전1:25)”
하나님께서는 큰 걸음으로 ‘산’에 이르지 못하고 작은 걸음으로 또 다른 ‘성읍’으로 가는 롯의 ‘어리석은 지혜’를 허용하십니다. 다만 돌아보면 안 됩니다(창19:17). 그러나 롯의 아내가 돌아보고 맙니다. 에덴동산 같은 곳을 왜 돌아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롯의 아내를 이해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금하신 것입니다. 작은 믿음, 작은 걸음으로 또 다른 성읍에 머물 순 있지만, 불신 때문에 뒤돌아보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속도는 느려도 방향은 정확해야 합니다. 믿음은 방향에 관한 것입니다. 롯의 아내는 보이는 성벽으로 둘러싸인 에덴 동산같은 소돔을 뒤돌아보다가 ‘소금 기둥’이 되고 맙니다. 뒤돌아보면 가야할 길을 갈 수 없습니다.
롯은 소돔 성읍이 멸망하는 것을 본 후에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겨우 ‘성읍’을 떠나 마침내 ‘산’으로 갑니다. “롯이 소알에 거주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가 거주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주하였더니(창19:30)” 롯은 소돔이 멸망하는 것을 목격한 후에야 ‘보이는 것의 허망함’을 깨닫습니다. 보이는 성벽이 얼마나 허술한 것인지 깨닫습니다. 산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출19:3). 롯은 한 박자 늦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랐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보이는 성벽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 에워싸인 ‘산’에 이르렀습니다.
여기까지입니다. 롯의 이야기 속에는 ‘소금기둥’이 된 아내를 제외하곤 드라마틱한 게 없습니다. 롯에겐 사위들을 데려올 만큼의 카리스마도 없고, 아내를 지킬 만큼 가정을 믿음으로 꾸리지도 못했습니다. 우유부단했고, 온전히 순종하지도 않았습니다. 소돔의 멸망을 보고 두려운 마음에 마지막에야 겨우 순종했습니다. 딸들을 통해 간신히 대를 잇습니다(창19:37~38). 이마저도 후대사람들에게 본이 되진 않습니다(레18:6). 롯에겐 자랑할 만한 자기의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롯의 이야기엔 가치가 있습니다. 한 박자 늦긴 했지만 롯이 마침내 ‘산’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롯의 가치는 그가 방향을 잃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롯은 하나님의 말씀에 겨우 순종했지만, 마침내 롯은 자기가 있어야할 곳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산’보다 높은 ‘하늘’에 이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길이신데,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니까요. 하늘에 이르는 문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늘에 이르는 문은 ‘바닥’에 있습니다. 산보다 높은 하늘에 이르려면 땅보다 낮은 바닥을 향해야 합니다(마25:40). 하늘 문은 바닥으로 통한다는 역설을,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만. 농담 아닙니다. 하늘로 올라가는 사닥다리는 땅 아래로 드리워져 있습니다. 아마 우리들 대부분은 롯처럼 주춤주춤 머뭇머뭇 타협하듯 땅 아래로 뻗은 사닥다리를 탈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겨우 순종하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선 기어이 우리를 ‘하늘’로 인도하십니다.
저 높은 곳에 이르기 위하여, 저 낮은 곳을 향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