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이른 아침, 제주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전 날, 마무리 해야 할 작업이 있어 밤샘을 하고
옷가지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떠지지 않는 눈으로
허둥지둥 출발했지요.
이번 제주행은, " 제주 청소년 오케스트라" 와 이두성씨의 협연 공연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제주 한라대학교 음악학과 교수님들과 문인들, 연극인들이
주축이 되어 제주의 음악 청소년들을 지도하고 키워내는 단체이지요.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공연은 이 전에도 두 어번 있었는데요,
요즘 여러 공연들이 다른 쟝르와의 죠인 형태를 취하고 있지요.
무용과 시의 만남, 연극과 영상, 음악과 마임, 미술과 음악,
그야말로 총체적 공연 형태가 또다른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습니다.
남편의 마임과 오케스트라와의 이번 공연은,
음악이 마임을 마임이 음악을, 서로의 표현을 돕고 전달하는
앞서 말한 방식의 공연이었습니다.
" 김동조씨의 한국환상곡- 농촌의 아침-" 을 공연으로 전달 하였는데요, 곡 자체가 서양과 우리 음악을 넘나 드는 것이어서,
곡의 아름다움을 떠나, 그 안의 모든 풍경과 이야기를 쉽고 진실되이 전달하기란, 쉽지만은 않은 공연이었습니다.
아무튼 도착 첫날, 아침부터 연습에 들어가
오후 일곱시 반, 한라대학교 내에 있는 " 한라아트홀 대극장" 에서
공연은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제주의 많은 예술인들과 좋은 교제를 나눈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제주도에는,
" 귤 꽃 향기" 가 가득합니다.
귤꽃은 이맘 때 즈음 귤 나무에 새 잎이 돋기 전 개화 하는데요,
그 향기의 달콤함이란 말로 설명이 부족하지요.
도시 전체가 꽃의 향기로 안개 처럼 뒤 덮여 있어,
꽃 향기에 취해 둥실 떠다니다 돌아온 셈입니다.
제주도는 이번이 네번째입니다.
배낭 짊어지고 혼자 두 번, 신혼여행 으로 한번,
관광은 사실 흥미 없는 일이지요.
제주의 모습을 보고 싶었지요.
제주의 땅, 흙과 " 오름(둔덕)", 나무, 사람들을 보다 찬찬히 보고 느끼고 싶었습니다.
제주는 정말 척박한 땅입니다.
물이 귀하고,- 이번에 만난 한 시인은 육지에 나가면 정신을 놓아버림이
마을 앞에 흐르는 실개천이라 하더군요- 그러니 흙이 메말라있습니다.
궁금하여 물어보았습니다.
" 살펴보니 나무는 많은데 무엇이 제주의 토종 나무인지 모르겠군요?"
정말 그렇습니다.
제주는 토종 나무 보다, 외국산 나무들이 그 빠른 번식력으로 산과 들, 거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산에 올라 조금만 살펴보면, " 민들레" 가 지천입니다.
그러나 그 민들레는, 우리의 고향 길 가에 잔잔히 피어 있는 낮은 꽃이 아니라, 외국 어딘가에서 제주로 들어와 제주도민들도 우려할 만큼 놀랄만한 번식력으로 산이며 들에 정말이지 곳곳에 피여있습니다.
모양도 다르지요. 민들레라 해서 들여다 보지만,
키가 어른 무릎보다 높고 줄기도 무척 억센 것이
저희 민들레와는 분명 다릅니다.
채송화 꽃인가 해서 들여다 보면, 이 놈도 브랜드가 외제입니다.
제주의 토양과 기후가 빚어낸 어쩔 수 없음이라 해도,
씁쓸하고 불안한 마음 또한 어쩔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 나무가 왜 이런가요! 꽃과 풀이 왜 이런가요!"
물어도 딱히 이야기 하는 분이 없습니다.
단지, 제주가 관광도시로 성장하는 그 시간들 한켠에서 어쩌면 보다 중요히 가꾸고 일구었어야 할 작은 것들이 모습을 잃거나 사라지기까지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들만이 간간히 있었지요.
제주 또한, 지금 월드컵 준비로 한창입니다.
제주의 경기장, 정말 멋지더군요.( 들어가진 않았습니다.)
거리는 팔차선으로 뻥뻥 길을 뚫어 놓으며 있고,
흙 밟으며 오르면 좋았으련만... 하는 곳 까지, 친절한 시멘트는 잘 발라져 있습니다.
성산에 올랐습니다.
제주에 갈 때마다, " 그리운 성산포" 는 큰 숨 한번 내쉴 수 있는, 벅찬 곳입니다.
제주가 처음인 아이 손을 잡고 성산의 정상을 오른 다는 것은,
제게 큰 의미였지요.
차에서 내리자 마자 아이의 눈을 가렸습니다.
" 자! 지금부터 눈을 꼭 감고있다가 엄마가 보아라! 할 때 보거라~"
아이의 눈을 성산이 가장 크게 보이는 위치에서 풀어주었습니다.
아이가 성산의 모습 하나 만이라도 마음에 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였습니다.
아이와 산에 오르며...
마음이 풀어집니다. 언제 부터 였을까요...
힘들게 올라 정상에 서, 분지를 바라보며 마음 한 곳을 시원히 비워내리라,
내심 부푼 기대를 안고 왔건만,..
힘들게 올라야 시원히 바라보지...
정상까지 따박따박 자로 잰 듯, 올려져 있는 시멘트 계단...
제주를 한 바퀴 돌기만 하고 왔습니다.
가다가 갯벌이 나오면 내려서 아이와 조개 줍고,
오름이 나타나면 내려서 바라보고.
제주의 붉은 흙과 검은 돌을 바라보며
제주인의 심성과 역사를 돌아 보았다면,
어쩌면 전, 이제 문학공부를 시작하는 학생의 마음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제주를 사랑 한다는
깊고 기쁜 슬픔입니다.
돌아오기 전 날,
공연팀들과 그 중 한분이신, 시인 고성기 선생님댁(산 중턱)에서
조촐한 모임을 갖었습니다.
마당에서 불판에 고기 굽고 술잔을 기울이며 참 많은 이야기를
밤 새워 나누었습니다.
잊혀지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 짧게 소개하고 이야기를 마치지요.
작곡가이신 " 장홍용" 교수님,- 정말 순수하신 분입니다. 이런 분을 뵐때마다 예술인의 참 기질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가 없지요- 의 일화 입니다.
이분이 처음 제주도로( 충북이 고향이십니다) 와, 다른 건 다 눈에 안 들어오는데, " 용두암" 에 이르러 입이 딱~ 벌어지더랍니다.
그래서 밤이고 낮이고 용두암에 앉아,
용두암에 대해 곡을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어야 하는데...
마음을 저리고 있었다지요.
그러다가 지금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이신 고성기 시인을 만나,
단번에 의기투합, 시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
그 당시의 고성기 선생 왈, " 아~ 나는 용두암의 이십사시를 꼬박 쳐다 보지 않으면 시가 나오지 않을 것 같네" 이렇게 말했다지요.
장홍용 선생님, 감지덕지... 시인은 용두암에 앉아 먼 곳 쳐다보고
선생은 연신 술심부름, 술 심부름...
밤이 깊어 갈 무렵, 움직이지 않던 시인이 " 자~ 그럼~"
선생은 이제 시가 나오려나... 내심 귀가 솔깃한데...
" 술 먹으러 가세나"
술 한잔 나누고, 다시 용두암으로 들어와 역시 먼 곳 쳐다 보던 시인이
갑자기 옷을 훌렁훌렁 벗더니, 물속으로 뛰어 들었답니다.
작곡가 선생님, 머뭇 거리다 역시 훌렁훌렁~
그렇게 해 뜰때까지, 자칫 사고 위험이 있는 수심 깊은 바다에서
헤엄치고 헤엄치고, 아침 산책 나온 사람들 벌거 벗은 두 남자, 참 기가 막혔겠지요.
그 이 후로도 한 동안의 시간을 거쳐,
결국 작곡가에게 들어온 시 " 용두암" 은, 그의 곡이 붙여져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음반 작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으셨는지,
입에서 입으로만 돌다
이번에, 장홍용 창작가곡집 " 청산은 날보고" 가 첫 발매 되었습니다.
두 분, 선생님의 주고 받음이
얼마나 유쾌하고 머리를 숙이게 하던지요.
가곡 " 용두암" 을 ,
" 당신이 불러야 제일 좋다" 는 시인의 청으로, 사모님의 낮은 곡조로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번 제주도 여행을 마무리 지었습니다.